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10화
내가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하게 된 경위는 이랬다.
일단 내 스킬을 구실 삼아, 여의도 던전이 미공략 던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단을 꾸리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던전 조사단의 인선을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김숙자 교수는 어떻게 인원을 꾸릴 것인지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마석의 60퍼센트 이상이 그 던전에서 채굴되고 있어. 정말로 미공략 던전이라면 공략 기간 동안만이라도 당분간 폐쇄해야 할 텐데…… 누굴 보내도 말이 많아지겠군.”
이우연도 불퉁하니 대꾸했다.
“말이 많은 정도면 다행이게요? 폭동이 일어나겠죠.”
“그래, 그러니 최대한 공정하면서도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인선을 꾸려야 해.”
“네, 네. 거기다 소속까지 딱딱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겠죠. 정말 머리 아픈 문제네요. 저번처럼 퍼센테이지 운운하면 나도 베니스의 상인이나 되어 볼까.”
그렇게 말하던 이우연은, 사정을 채 파악하지 못한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한숨을 폭 내쉰 후 설명해 주었다.
“저번에 제한 인원이 10명이었던 던전에 정부 측, 헌협 측, 무소속 각각 셋을 뽑았다가 나머지 한 명은 어쩔 거냐고 싸움이 났거든. 그렇게 공평하게 33.3을 맞추겠다니 토막이라도 내야지, 뭘 어쩌겠어.”
말의 곳곳에서 짜증이 묻어난다. 아마 엄청나게 시달린 모양이다. 높은 확률로 그 갈등에서 정부 측을 맡았을 김숙자 교수가 미간을 꾹꾹 눌러 대고 있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담그지 못할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이 나오는 건 둘째 문제지.”
“그럼 제일 큰 문제가 뭡니까?”
“정답! 괜찮은 헌터들은 다 거절할 거야.”
이우연이 냉큼 대답했다. 김숙자도 옆에서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그래, 이런 말 많은 사안에 끼기 싫다고 거절할 게 뻔하니. 그렇다고 아무나 데려올 수도 없고.”
“그래도 헌터 협회 쪽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최대한 입김을 넣어 볼게요.”
이우연의 말에 김숙자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내키지 않지만 일단 부탁하지. 지금은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니까.”
“협조한다는데도 찬물 취급이라니 너무하시네. 제가 이래 봬도 경로사상이 투철…… 아야야!
듣다 못한 나는 이우연의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이우연, 너는 이 와중에 왜 깐족댈 생각이 드냐?”
“깐족대다니. 난 교수님 응원해 드린 건데?”
“잘도 그런 뜻으로 들리겠다.”
저놈 주둥이는 정말 언젠가 파멸을 부르지 싶다.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도 두 사람은 한참 여러 이름을 거론하며 조사단 인원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딱히 별다른 수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나섰다.
“그럼 제가 낚아 올게요.”
한참 토의에 열을 올리던 두 사람이 나를 휙 쳐다보았다.
“어떻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간단한 이야기잖아요?”
결국 혹시라도 여의도 던전이 폐쇄될 경우, 그 뒷감당을 할 게 귀찮아서 다들 조사단에 들어가는 걸 꺼려 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귀찮음을 이길 만한 동기를 던져 주면 그만이다.
나는 씩 웃으며 방안을 제시했다.
“날 보고 싶다면 다들 들어오라고 해요.”
이제 굳이 신원을 숨길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왕 숨기게 된 거, 마침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써먹어야 했다.
김숙자 교수의 말대로 다들 내 정체를 궁금해하고, 더 나아가 나를 본인들의 길드에 넣고 싶어서 안달이니까.
그러니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그냥 미공략 던전을 공략할 예정이다, 그렇게만 말해도 떡밥을 물 사람은 차고 넘쳤다.
게다가 나에게는 ‘은의 장막’이 있으니 실제로 얼굴까지 내보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평소 행보에 지장이 올 일도 없을 테고.
이렇게 보니 정말 생각보다 ‘은의 장막’의 쓸모가 많았다. 이 아이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우연은 감탄하는 동시에 부러워했다.
“정말 당신만이 쓸 수 있는 방법이네. 그 던전 안에서 가면을 썼던 건 난데 왜 나한텐 그 아이템이 들어오지 않은 거야?”
“부러우면 네가 최대 업적자가 됐어야지.”
“와, 나빴다.”
하여간 그렇게 진행하게 된 인터뷰는 예상한 대로의 효과를 가지고 왔다.
아니, 어쩌면 예상한 것 이상으로.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김숙자 교수님은 다른 의미로 피곤해진 모양이었다.
“다들 앞다퉈 조사단에 참여하겠다고 난리야. 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은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니 적당히 거를 생각일세.”
“인선은 교수님에게 맡기겠습니다.”
어차피 한국 헌터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조사단이 꾸려지기만 한다면 인선 자체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어련히 김숙자 교수가 알아서 뽑겠거니,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조사단이 뽑히기 시작하면서 내게 뜻밖에도 몇몇 연락이 도착했다.
예나 씨! 저도 이번에 여의도 던전 조사단 들어가게 됐어요. 아마 오후에 들어갈 것 같던데 같이 밥이나 먹고 들어가요!
무슨 엠티 가는 것처럼 식사 약속부터 잡으러 온 이선 헌터.
누나 저 제주도 오자마자 다시 올라가게 생김요 ㅠㅠ 이럴 거면 그냥 강원도에 처박혀 있을 걸 그랬어요…… 그래서 누나 시간 있음 잠깐 보러 가도 대여? 청룡님이 누나 보고 싶어 하는 듯
그리고 양태원이었다.
참고로 태원이는 내가 무슨 일로 올라오는 것이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그건 기밀 사항입니다!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가르쳐 줄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기밀이 있다는 걸 제 입으로 폭로하고 있다만 그래도 의지가 보여 제법 기특했다.
꼬맹이가 이 정도면 훌륭하지.
이선이야 그렇다 치고, 양태원은 의외의 인선이면서도 김숙자와 이우연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일단 양태원은 아직 어떤 길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마석을 주요하게 쓰는 클래스가 아니니 미공략 던전임이 확실해져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능력도 어느 정도 입증되어 있다. 양태원이 사용하는 일종의 실드인 수호부는 물리적인 공격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고 하니까.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미공략 던전인 만큼 입장할 헌터들의 능력을 최대한 다양화시키는 게 나았다.
아마 조사단에 편성될 다른 헌터들 또한 비슷한 기준으로 뽑혔겠지.
그렇게 내가 양태원의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이른 오전 중에 김숙자에게서 최종 연락이 왔다.
여의도 던전 조사단 인원이 확정되었네. 파견 날짜는 아직 미정이지만 일주일 내로 잡을 예정이야.
인터뷰가 나간 후 여기까지 딱 3일 걸렸다. 미친 추진력이었다.
나는 곧장 목록을 열고 읽어 내려가다가 약간 놀랐다.
‘이 사람이?’
의외의 이름이 끼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약간 변경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저기요. 딴짓하지 마세요! 안 들어가실 거예요?”
그때 던전 앞에서 입장을 관리하고 있던 공무원 중 하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렸다.
고개를 들었더니 나와 눈이 마주친 공무원이 찔끔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명백하게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저런…….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네, 들어갑니다.”
어쨌거나 당장 해야 할 일은 해야지.
공무원이 쭈뼛대며 할 말을 이었다. 아마 최민혁과 비슷하게 내 기운에 눌려 버린 듯했다.
“여기 주의 사항 읽어 보시고 사, 사인하시고요. 혼자 드, 들어가시는 거 맞죠?”
마치 굶주린 야생의 사자를 눈앞에 둔 표정이었다.
서류에는 주의 사항이랄 것도 없이, 해당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본인 의지이며, 사망 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류의 각서였다.
사인해야 할 부분에 노란색 형광펜이 쳐져 있었다.
“그, 그럼 이, 이입…….”
내게 말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기어 들어갔다.
슬슬 그 모습이 안타까워졌기에 나는 빠르게 검과 갑옷을 착용하며 던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던전 입구인 마름모꼴 문양을 터치하기 전에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이거 기록 잘못된 거 아냐? 저 사람, 오늘만 A급 던전 세 번째 공략인데?”
“저, 저도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야, 인마! 헌터 하루 이틀 봐? 뭘 쫄고 그래. 기록 보니 나이도 너보다 어리구만.”
“아, 선배님이 눈을 안 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니까요……. 맨몸으로 몬스터 앞에 내던져지는 것도 그것보단 낫겠더라고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나는 속으로 딴지를 걸며 던전에 입장했다.
익숙한 감각이 몸을 감쌌다.
던전 입장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보기만 해도 습해지는 늪지였다.
입장하자마자 발이 늪으로 푹푹 빠져들었다. 미리 봐 두었던 던전의 데이터 그대로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후두둑 떠올랐다.
- 서브 퀘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 서버 :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미공략 던전을 모두 클리어하십시오. (0/5)
- 현재 플레이어가 입장한 던전은 ‘공략’ 상태입니다.
그래, 나도 여기가 공략된 던전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것도 다 필요한 과정이라고.
나는 검을 든 채 시선을 늪지로 옮겼다.
그러자 곧 늪지대의 수면 위로 뽀글대는 방울과 둥그렇고 작은 눈이 솟아오른 게 보였다.
- A급 몬스터 : 검은 꼬리 악어가 출현하였습니다.
- 몬스터의 상세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메시지를 읽은 나는 버릇처럼 씩 웃었다.
“검은 꼬리 악어라.”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지금은 꾹 다물고 있는 턱의 근육은 일반적인 인간의 육체 정도야 가볍게 두 동강 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상당히 빠르다는 것도 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점은, 검은 꼬리 악어가 항상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
얼마 있지 않아 나와 눈이 마주친 악어의 뒤로 수많은 공기 방울이 늪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뽀글대는 그 방울의 수만큼 동그란 눈들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던전이 A급 던전 중에서도 상당히 고위 위험군으로 분류된 이유 중 하나가, 저 악어들이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악어 떼 무리에 잘못 휩쓸려 늪에 가라앉기라도 하면 바로 비명횡사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검에 비치는 햇빛에 파충류의 동공이 더욱 가늘어지는 게 보였다.
사냥감을 발견한 눈이었다.
조용히, 늪의 물살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잠수해 있던 것처럼 보였던 악어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늪지대 안에 숨어서 사냥감을 관찰하던 악어가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
커다란 주둥이가 조금씩 뭍 위로 올라오며 내 눈치를 살피더니, 짧고 굵은 앞다리가 어느 순간 땅 위로 튀어나왔다.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나 흙 위를 크게 쳤다.
콰앙!
악어가 소리도 없이 아가리를 벌리며 덮쳐 왔다. 내 다리를 물고 늪지대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아마 저 아가리에 물린다면 그대로 늪지대로 들어가 익사하게 될 것이다.
뻐억!
경쾌한 타격음이 울렸다.
물속으로 들어가 몸부림치게 된 것은 내가 아니라 악어 쪽이었다.
-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내가 뛰어올라, 악어의 아가리에 발목을 잡히는 대신 콧구멍이 있는 머리 쪽을 걷어차 버렸기 때문이다.
푸드덕!
고통에 몸부림치는 악어 때문에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면서, 그 뒤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악어 떼들이 일제히 대가리를 쳐드는 모습이 보였다.
크르르릉.
의외로 사자와 닮은 울음소리가 늪지대에 울리기 시작했다.
대충 보아도 스무 마리는 되려나. 그래, 누가 봐도 참 무서운 모습이긴 한데.
“그래 봤자 악어지.”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냥 경험치 팩으로만 보였다.
오랜만에 생긴 단기 목표에 의욕이 샘솟는군.
그럼, 레벨을 올리러 가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