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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12화 (11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12화

망할.

고기를 열심히 구워 먹으면서도 내 눈치를 보던 양태원은, 계산 후 가게를 나온 후에도 나와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안 때린다고.”

“청룡 님, 청룡 님. 저게 진실인가요?”

- 글쎄다.

“아, 진짜 왜 저래.”

내가 진저리를 치자 양태원이 눈을 흘겼다. 눈이 아주 세모꼴이었다.

“용사님께서 절 기절시키려고 하다니…… 너무나 실망입니다. 모름지기 용사란 동료를 버리지 않고…….”

“너 진짜 혼날래?”

“왜 제가 혼이 나는 거죠? 절 때리려던 건 누나…… 아악!”

결국 한 대 얻어맞은 양태원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청룡은 이번에는 딱히 양태원의 편을 들어 줄 생각은 없는지 조용했다.

시계를 보니 집합까지 앞으로 대략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양태원을 바라보았다.

“너, 진짜 이 던전에 들어갈 거야?”

“새삼스러운 말을 하시네요? 이럴 거면 일주일 전에 이야기하시지.”

태원이는 아주 불퉁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사실 내 사적인 감정을 빼고 논하자면 굳이 양태원을 이 던전 공략대에서 뺄 필요는 없었다. 청룡의 힘을 빌릴 수 있는 헌터가 있다면 공략에 도움이 될 건 확실했다.

그래서 김숙자 교수가 정한 인선에 무어라 하기 어려웠던 거고.

다만, 막상 태원이의 얼굴을 직접 보니 생각보다 더 신경이 쓰였던 것뿐이다.

그 와중에 청룡까지 이렇게 나오다니…… 나는 청룡을 힐끗 올려다보았지만 청룡은 눈도 마주쳐 주지 않았다.

자기 좋을 때만 대답하다니, 네가 시스템이냐?

양태원이 내 표정을 살피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유라도 있으면 말씀을 하세요. 누나 부탁이면 들어줘야죠.”

“……위험하니까?”

“그럼 기각.”

“……여의도 던전, 미공략 던전이 확실해.”

“오오.”

나름대로 마음을 먹고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양태원의 표정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조사단에 연락을 돌릴 때는 랭킹 1위가 가진 스킬로 해당 던전의 공략 여부를 판별할 수 있기에 함께 파견된다고만 들었을 텐데.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설마, 알고 있었어?”

“그야 당연하죠. 제가 누군데요? 연락받았을 때부터 청룡 님한테 물어봤는데용.”

즉, 청룡이 미공략 상태라고 바로 알려 주었단 이야기인가. 던전 클리어 보상으로 이 대답을 얻어 낸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뭐…… 청룡이 시스템보다 훨씬 낫네.

“그럼 왜 굳이 참여하겠다고 한 거야? 알아서 빠지지 그랬어. 위험하다니까.”

그러자 양태원은 오히려 그런 내가 의아하다는 듯 곧바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위험한 던전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겠죠. 제가 한국에서 가장 세다니까요? 클래스는 한정이긴 해도.”

그 말에 잠시 숨이 턱 막혔다.

닮으려면 정소현 얼굴만 닮을 것이지, 왜 쓸데없이 이런 성격까지 닮은 거지?

내가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는 사이 양태원은 까불거리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리고 누나한테 청동검까지 받았는데 이걸 못 살리면 멍청이잖아요. 제가 이럴 때 나서야 빛을 발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니, 사람들 앞에서 청동검을 쓰겠다고?”

내가 양태원에게 청동검을 넘겼다는 사실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이우연뿐이다.

“너 요새 뉴스 못 봤어?”

양태원과 최근 연락을 지속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이 녀석은 의외로 콘솔 게임류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인터넷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한 인터뷰도 못 읽었나, 싶었는데 양태원은 고개를 저었다.

“누나 인터뷰를 말하는 거면 그건 이미 봤죠. 사이다 마신 줄. 그런데 그거랑 청동검이 무슨 상관이에요?”

“……생각을 해 봐라. 지금 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청동검을 사용하면 너한테 내 정체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을 거 아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마계 던전을 봉인하는 과정에서 양태원이 청동검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다들 내가 아이템을 돌려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청동검을 양태원이 사용한다면 얘가 내 정체를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됐다.

“헐, 누나 저 못 믿어요? 제가 누나 정체를 남에게 까발릴까 봐요? 저 그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에요!”

양태원은 상당히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야. 널 걱정하는 거지.”

양태원을 못 믿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외부였다.

“다들 내 얼굴이 궁금해서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네가 나한테 아이템을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 다 너한테 달려들 거야.”

내가 직설적으로 다른 헌터들과 헌협에 경고 겸 떡밥을 흘린 인터뷰를 한 후에 여론이 상당히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동검만큼은 그 상징성 때문에라도 아이템 효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청동검이 양태원에게 양도됐다는 사실이 공개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내가 정체를 밝히라는 여론과 압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남들이 뭐라고 떠들건 그리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우연과의 친분도 슬슬 알려진 듯했지만 그는 본인의 위치가 확고하고, 처세도 알아서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양태원은 경우가 다르다.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상 주위의 압박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보호해 줄 어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사회의 부침을 쉽게 넘길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내 설명을 들은 양태원이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무슨 소린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이제 다들 여의도 던전에 오면 누나 얼굴 알게 되는 거 아녜요? 모르는 척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내 얼굴을 볼 일 없게 만들려고.”

“네?”

나는 주위를 둘러본 후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슬쩍 ‘은의 장막’을 착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면을 착용한 내 모습을 본 양태원이 입을 쩍, 벌렸다.

“와, 이거 뭐예요? 얼굴이 안 보이는데?”

“그렇지?”

“네, 가끔 생전의 기억을 잃어버린 귀신이 자기 얼굴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꼭 그거 같……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한 말이 주워 담아지냐?

식겁할 소리를 한 양태원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내 얼굴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누르더니 화면을 보며 감탄했다.

“카메라로 찍어도 안 나오네요. 보통 물체에 한 번 굴절되면 시야에 보이던데. 혹시 제 거울로 확인해 봐도 돼요?”

“굳이?”

말릴 새도 없이 양태원은 가죽 재킷 주머니에서 거울을 꺼내더니 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나는 그 거울을 보았다가 약간 놀랐다.

“어, 가면이 보인다.”

양태원의 말대로 거울에는 은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반가면과 가려지지 않은 내 하관이 그대로 비쳤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뭐야, 이 거울? 어디서 구했어?”

설마 스킬도 아니고 이런 거울로 ‘은의 장막’을 꿰뚫어 볼 수 있다니. 그렇다면 내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양태원이 고개를 저었다.

“헌터 스토어에서 파는 보통 거울이긴 한데, 거기다 제 도력을 추가해서 본모습이 비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던전 부산물을 이용해 제작한 아이템인 건 맞지만 태원이의 도력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저런 거울로는 ‘은의 장막’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는 거로군.

역시 어지간하면 내 얼굴은커녕 가면을 쓴 것조차 들킬 일이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양태원이 그런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근데 누나,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해 봐.”

“아X언맨 같아요.”

“…….”

“아니지. 정체를 안 밝히니까 스X이더맨?”

나는 약간 미묘한 감상을 느꼈다.

이게 세대 차이인가? 이우연도 나처럼 어린 시절 봤던 만화부터 떠올리던데 얘는 영화부터 나오네.

어쨌거나 상황을 이해한 양태원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일단 누나랑 모르는 척하면 된다는 거네요.”

던전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 때와 다르게 순순히 대답이 나왔다. 이렇게 말 잘 들을 거면 던전에 아예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면 좀 좋을까.

‘하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청룡을 힐끗 쳐다보았다. 언제 나를 제지했냐는 듯 양태원의 몸을 감싸 안은 청룡은 느긋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청룡이 이렇게 나온 이상 내가 양태원을 제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지.

물론 아무리 청룡이 제지하더라도 내게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다짜고짜 기절시키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청룡의 말대로, 태원이의 선택을 내가 강제할 수 있는 권리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거라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것뿐인가.

……어머니나 아들이나, 하여간 둘 다 남의 말은 더럽게 안 듣네.

“이야기 정리됐으면 슬슬 갈까요? 시간 다 되어 간다.”

꼬맹이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가죽 재킷을 좀 더 멋있게 보이도록 맵시를 고쳤다. 분홍색 머리가 오늘따라 더 눈 아프게 보였다.

영 불길한 예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일단, 정부 측의 배려로 여의도 던전 주위는 교통 통제 등 주변 정리가 된 상태였다. 일시적으로 지하철역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가게 한다던데, 확실히 일반인들의 통행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나를 위한 배려도 있겠지만, 헌터들이 다수 모이다 보니 혹시 모를 충돌을 방지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김숙자 교수가 뽑은 조사단의 인원은 모두 스물여섯.

정부에서 책정한 등급으로 볼 때 대다수가 S급에서 A급, 혹은 양태원처럼 특수한 클래스로 등록된 헌터들이었다.

내 인터뷰가 월척이긴 월척이었다니까.

미공략 던전이 S급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 정도 인원이 모두 공략한다면 제법 승산이 있을 거다.

다만 이렇게 되면 공략보다도 한데 모인 헌터들이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였다.

가령, 그래.

“처음 보는 헌터인 것 같은데, 맞나?”

이 김성연이라든가.

나는 눈앞의 김성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원 길드의 길드장으로 뉴스에서 이미 본 터라 얼굴은 알고 있었다. 오십대 정도일 텐데 클래스가 검사라서 그런지, 건장한 체격이 어지간한 청년보다 훨씬 훌륭했다.

그러니까 저 뒤에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백사현에 비하자면 어딜 보나 제대로 된 검사 같았다.

현 정부에서 매긴 등급으로도 S급이며 시스템 랭킹상으로도 10위.

‘그럴 만하네.’

사실 이우연을 통해서도 그리 좋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보니 약간 마음속으로 깔보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제법 기백이 느껴지는 검사였다.

다만, 그런 긍정적인 인상과 다르게 긴장을 풀 수는 없는 상대기도 했다.

내 정체를 매우 궁금해하고 있는 헌터 협회의 회장이자 실세이기도 하니까.

“대답이 없군.”

김성연 길드장이 한마디 더 내뱉자, 그제야 주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뭐, 뭐지?”

“저기 사람 있는 거 맞지?”

“은신 스킬인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길드장이 내게 말을 걸기 전까지 내 존재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뭐, 여기까지만 봐도 김성연이 제대로 된 검사 클래스 헌터란 건 알겠다.

‘은의 장막’을 아무런 정보도 없이 육감 하나로 꿰뚫어 본 것은 김성연이 처음이니까.

보통 타인의 인지를 흐리는 아이템은 육감 따위의 스킬로 간파당하기 마련인데, 이런 스킬은 검사에게 잘 발현되기 마련이다.

굳이 여기서 아니라고 빼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아서 나는 김성연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반갑습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성연 길드장이 내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장갑?”

“손에 상처가 많아서요.”

물론 혹시라도 맨살이 닿을 경우에 발동하는 스킬이 있을까 염려해 미리 장갑을 낀 것뿐이다.

그 경계심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김성연은 그런 기색조차 밖으로 보이지 않고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였다.

“실례지만, 조사단 명단에서 내가 모르는 헌터는 없었는데……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어지간히 돌려 말하는군. 어차피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시점에 내가 누군지 뻔히 알아차렸으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이미 예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굳이 말할 필요가?”

그러자 김성연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김성연 길드장은 김숙자 교수가 확정한 명단 중 가장 뜻밖의 인선이었다.

그야 영원 길드 및 헌터 협회 입장에서는 내가 제일 궁금할 테니, 어떻게든 조사단에 그쪽 입김이 닿은 인원을 집어넣으리라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설마 협회장 본인이 오실 줄이야. 제법 비싼 몸 아닌가?

뻔히 아는 대답을 들은 김성연 길드장이 웃으며 손을 세게 흔들었다.

“아, 역시나. 그 소문 무성한 랭킹 1위 헌터가 이렇게 어린 분일 줄이야.”

제법 큰 목소리였기에 주변의 모든 헌터들이 듣지 않으려 해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의 이목이 한꺼번에 쏠렸다.

“1위? 1위라고?”

“헉, 이제 보인다.”

“저기 있어!”

“얼굴이 안 보이는데? 스킬인가 봐.”

김성연 때문에 존재감을 흐리게 만드는 효과가 떨어진 모양이다.

주목을 받으며 김성연이 여유 넘치는 얼굴로 웃어 보였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제법 젊은 것 같은데, 맞나?”

“무슨 문제라도?”

“하하. 문제라니. 너무 까칠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그냥 의례적인 말인데 말이야.”

“…….”

“역시 젊어서 그런지 혈기가 왕성한 건가? 하하하.”

“…….”

“물론 그런 혈기는 좋네만, 그래도 나이 많은 어른이 이야기하면 조금은 들을 줄 알아야…….”

나는 옆구리에 달린 에이펙스의 광검을 툭툭 쳤다.

봐라, 파트너. 저런 게 진짜 꼰대라는 거야.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만, 이 이상의 정보를 넘겨주는 꼴이 될 것 같아 나는 그냥 잡생각을 하며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래, 너는 말해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적당히 딴청을 피우는데 저 멀찍이 선 이선과 우연히 시선이 마주쳤다.

이선이 엄지손가락만 편 채 손을 뒤집더니 목을 그어 보였다.

“…….”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이선에게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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