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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17화 (11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17화

류세연은 옹기종기, 자신을 포위하듯 모여든 헌터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김성연 헌터.”

“아니, 류세연 헌터. 아무리 규칙이래도 김성연 헌터가 뭡니까.”

류세연의 말에 대답한 것은 김성연이 아니라 그 옆에 딱 붙어서 있는 다른 헌터였다.

저기는…… 어디 소속이더라. 하여간 헌협에 아직 가입하지 못한 길드 소속 헌터였던 것 같은데.

“헌협 회장님이신데 예의를 갖추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참고로 대한민국의 헌터들 사이에서는 김숙자, 이우연. 그리고 조한율이 모여 채택한 암묵의 룰이 존재한다.

던전 안에서는 서로를 헌터 외 사적인 호칭으로 부르는 행위를 삼가라.

호칭은 권력에 의해 생성되고, 그 언어의 권력이 의견 교환을 방해해 결국에는 모두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한국 현역 헌터 중 최고령에 속하는 김숙자 교수조차 던전 내에서는 헌터라고 지칭한다.

그런데, 헌협 회장이 다 뭐라고.

이우연 그 새끼가 재수는 없지만 틀린 말은 안 한다니까.

이거 봐. 딱 그 꼴 났구만.

과하게 빌빌대는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을 듯해 보여 류세연은 그 헌터에게서 관심을 끄고 다시금 김성연을 노려보았다.

“뭐 하는지 물었는데.”

그 태도에 그저 류세연을 불붙기 직전의 폭탄처럼 방관하던 다른 헌터들도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그야 그랬다.

김성연. 한국 최상위권 랭커 중 하나.

시스템상으로 매겨진 랭킹으로도 충분히 권위가 있을 만한 헌터였으나, 그가 한국 헌터계에서 가진 무게감을 표현하기에 시스템의 랭킹만으로는 사실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오히려 김성연 입장에서는 외려 10위라는 순위 때문에 손해 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단순한 인기도로 따지자면 한국 최고 헌터의 자리는 당연히 이우연이 가져갈 테고, 화제성은 현재로서는 신원 불명의 랭킹 1위 헌터가 가져가겠지만, 현재 한국 헌터계의 흐름은 김성연이 완전히 틀어쥐고 있었다.

김성연은 한국 최초로 길드를 만들어서 헌터들을 규합해 초기 던전을 빠르게 공략하고, 당장 급한 불을 끈 정부가 길드와 헌터라는 직업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하려 하자 곧바로 헌터 협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대항하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좋으나 싫으나 김성연이 한국 헌터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류세연도 딱히 김성연이라는 인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던전 안에서 그런 권위 따위에 눌려 자신의 의견을 굽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뿐.

방금 전 랭킹 1위의 신원을 과하게 보호하려 한 이선 헌터에게 항의한 것과 같은 행동 원리였다.

아닌 건 아니다.

“던전 공략하러 들어왔는데 담합해서 마석을 캐내자니, 집에 있는 우리 두부가 웃겠습니다.”

그랬다.

김성연이 한 제안이, 웃기지 않게도 바로 저거였다.

1조는 2조, 3조와 헤어져 절벽 밑 해안가 필드를 탐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안가를 조사하러 왔더니 마석을 캐내자는 말을 꺼낸 것이다.

해안가 필드 쪽. 절벽 밑에서 마석을 캐낼 수 있는 동굴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그 길로 가서 빠르게 마석을 캐내고 나누어 갖자.

제안 자체도 웃긴데, 그 제안에 다들 동의한다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류세연의 말을 들은 다른 헌터들이 조용히 수군거렸다.

“두부가 어떻게 웃어?”

“몰라. 원래 쟤 미친년이잖아…….”

“누가 미친년이야? 두부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왜!”

어른들이 이야기하는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들을 조잘거려?

뒤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그렇게 대답해 준 후, 류세연은 김성연을 노려보았다.

정작 장외에서 이래저래 옹호하는 것에 비해, 김성연은 자신이 제안한 짓이 제법 양심에 걸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것도 꾸며 낸 건가?

“나도 이 제안이 어떻게 들릴지는 아네, 알아. 당연히 비판할 수 있지.”

“비판이 아니라 반대하는 건데.”

“그렇지만 말이야, 세연 양. 생각 좀 해 보게.”

양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류세연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김성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었다.

“미공략 던전이라는 핑계도 생겼는데, 이러다가 정부가 앞으로 던전 입장 허가를 틀어쥐면 어떻게 하나? 정부에게 우호적인 길드에게만 입장 허가를 내준다면?”

“그건…….”

사사건건 간섭해 목줄을 틀어쥐려 하는 정부와 얼굴 붉히는 일이 많은지라 그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정부나 헌협이나, 류세연이 보기엔 둘 다 웃기지도 않은 짓거리를 자주 했으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헌협은 헌터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정부와 싸우고 있지. 우리가 정부와 왜 그렇게 얼굴 붉혀 가며 매일 기자 회견을 하겠나.”

이것도 부분적으로 옳은 이야기기는 했다.

헌협이 여론을 등에 업고 항의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제정되었을 몇 가지 특별법이나 조세법이 있긴 했으니까. 헌터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는 않은 것들이다.

김성연이 그 침묵의 동조에 힘입어 호소했다.

“그리고 그런 불이익을 받게 되면 류세연 양이 소속된 길드라고 다를 것 같나? 내 개인적인 예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걸 핑계로 정부가 이 던전을 독식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네.”

너무 급진적인 추측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류세연의 마음 한구석에서 의심이 싹텄다.

그런데…… 솔직히 합리적인 추측이기는 했다.

만약 이번 공략대가 공략에 실패하고 던전을 탈출한다면 정부가 나설 테고, 던브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마석 채굴량이 어마어마한 이 던전을 국유화하려고 들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헌터 스토어도 공기업으로 만들어 아이템 거래를 꽉 틀어쥔 마당이니.

이런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유일했다. 김숙자라는 거물이 던전이 생성된 초기부터 정부에 협력한 덕분에 탄생한 괴물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선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투명한 조세, 아이템이 특정 소수에게 몰릴 가능성, 부당 거래 방지…… 그 외에도 모든 사람이 입찰 가능하다는 공평성 등의 타당한 입장을 밝혔을 테지만, 류세연은 유리 통장과 거대한 세금에 우는 헌터였기에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다.

류세연이 할 말을 잃은 와중에 1조의 다른 헌터들이 제각기 소리를 높였다.

“마, 맞아요. 안 그래도 갈수록 정부가 던전 입장 허가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좋은 아이템이 드랍되는 던전은 은근히 정부 소속 헌터들이 쓸어 가려고 하고, 우리한테는 쓰레기만 떠넘기잖아요. 이럴 때 우리도 챙길 건 챙겨야 됩니다!”

……이선 이 새끼, 조 편성 실수한 거 아니야?

류세연은 학부 시절 동기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적어도 김하현은 이쪽으로 넣어 줬어야지. 나 혼자서는 쪽수가 부족한데?

물론 이선의 계산으로는 1조의 헌터 구성은 매우 적절했었다. 헌협 소속과 그렇지 않은 길드의 헌터, 아예 무소속 헌터들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었으니.

게다가 가장 대인원이었기에 무슨 일을 꾸미더라도 뱃사공이 많으니 쉽게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류세연이라는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미친 개…… 사람 하나가 있기도 했고.

다만 이선의 착오는 김성연이라는 인물이 생각보다 선동에 매우, 아주 능하다는 거였다.

류세연은 김성연 곁에서 과하게 아부하는 한 헌터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자신이 알기로 분명 헌협과 그리 친근하지 않은 길드 소속 헌터인데, 저렇게 굽실대는 걸 보면 이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김성연의 저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동의했으니까.

심지어 류세연은 저들을 설득할 인망도, 근거도 없었다.

망할.

결국 두부 엄마는 백기를 들었다.

“그…… 마석 캐는 곳으로 이어지는 굴은 어디 있는데요? 난 해안가는 안 와 봐서 모르겠는데.”

“오, 그럼 류세연 헌터도 찬성하는 건가?”

김성연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그 얼굴에 류세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미쳤냐?”

“…….”

“아무리 정부가 하는 짓이 짜증 나도 그렇지.”

타인을 설득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 짓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별개 문제였다.

그래, 저 꼰대가 하는 말은 알겠다. 솔직히 저 우려가 다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까지 정부 측과 헌터 측이 대립한 게 한두 번 일이던가?

그리고 자신이야 헌터 입장이라 그렇지, 갖다 버린 양심을 다시 주워 넣고 말하자면 정부는 정부대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보니 서로 간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

우리 교수님이 틀린 말은 안 하신다고. 강의가 어려워서 그렇지! 과제도 더럽게 많고. 학점도 짜고!

소싯적에 전공 강의였던 사회 철학에서 F를 맞은 전적이 있는 류세연은 울분을 토했다.

“저거에 다들 동의한다고? 미친 거 아니야?”

어쨌든,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이러다 던브 터지면 다 뒈지는 거야. 그럼 마석이고 뭐고 무슨 소용인데?”

그렇게 말하며 류세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을 마주친 헌터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깜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물론 류세연의 발언에 항의하는 헌터도 있긴 했다.

“류세연 헌터, 말이 너무……!”

“주둥이 다물어라. 거기서 그대로 폭죽처럼 터지기 싫으면.”

하지만 류세연의 성질머리는 무척이나 유명해서 알 사람들은 다 알았으므로 그 대상이 된 헌터는 찔끔해 입을 다물었다.

“개 같아서 못 해 먹겠네. 퉤.”

류세연은 땅에 침을 탁 뱉었다. 밝은색의 해안가 모래가 발밑에서 거슬리게 부스러지고 있었다.

막타 보상을 가로채려는 동료의 칼에 얼굴을 베였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이가 없었다.

“됐어. 난 안 해. 그리고 이거 다 이선 놈한테 보고한다.”

“류세연 헌터, 같은 헌터들끼리 왜 이래! 본인 소속 길드 생각도 안 해? 당분간 마석 공급이 끊긴다고 생각해 보라고!”

“이거 고발하고 포상으로 여기 우선 입장권이나 받지 뭐!”

그 당당하고도 정의 따위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선언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김성연이 한숨을 쉬었다.

“뭐, 한둘쯤 반발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 상관없어.”

“기, 김성연 협회장님…….”

“아, 신경 쓰지 말게. 내가 류세연 헌터 소속 길드장과 직접 담판을 지을 테니까.”

“뭐어?”

류세연은 황당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길드장을 압박해서 추후에 내가 입을 여는 걸 막아 보겠다는 건가?

‘아, 망할.’

근데 생각해 보니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류세연이 소속된 길드는 빈궁했으므로 솔직한 양심 고발보다는 마석을 반길 거였다.

그리고 만일 길드장이 그렇게 나오면 길드에 큰 빚을 지고 있는 류세연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류세연은 마법사로서는 특이하게도 텔레파시처럼 타인과 연락 가능한 스킬을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했다. 이선은 가끔, 네 성질머리가 그런 데서 티가 나는 거라며 비웃곤 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이선과 연락할 수단조차 없었던 것이다!

“아, 망할! 나는 왜 텔레파시도 없고 완드도 없는데!”

심지어 이선이 걷어찬 내 완드는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그래서 류세연은 곁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며 마법진을 시전하려 드는 마법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다.

“잡아!”

류세연은 어떻게든 도망가려 시도했으나, 결국 사방에서 펼쳐진 마법진에 그대로 굳어진 채 모래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완드만 있었어도. 이선 이 나쁜 새끼!

“야, 시발! 이거 안 풀어? 이 개새끼들아!”

홀로 해안가에 남겨진 류세연의 비명만이 애처롭게 울렸다.

*   *   *

“뭐야.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이선은 귀를 툭툭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이물질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세연이가 내 욕을 하나?”

“이선 누, 아니, 헌터! 빨리 이쪽으로 와 보세요!”

“그래그래.”

이선은 양태원이 부르는 쪽으로 재빨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백사현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대기나 할 것이지 왜…….”

“아오, 파리가 윙윙대네!”

옆을 달리던 김하현이 경쾌하게 외쳤다.

졸지에 파리가 되어 버린 백사현이 울컥했지만 그가 무어라 하기 전에, 동굴을 나와 절벽 앞에 먼저 도착한 양태원이 크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여기래요!”

김하현이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감 좋은 무당이라더니 확실히 다르네. 거의 예언자 아니야?”

상황은 이랬다.

강예나와 이우연 둘이서 동굴 안으로 사라진 후, 갑자기 양태원이 무언가 ‘감’이 온다며 무조건 동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다.

동굴 밖에 공략의 단서가 있다면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양태원의 말을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따라온 것이었는데…… 절벽 앞에 당도한 이선은 말없이 양태원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려다보았다.

“태원아.”

“네?”

“여긴…… 절벽 아랜데?”

깎아지른 것처럼 높은 절벽이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 아찔한 높이였다. 절벽 아래에서는 파도가 거세게 치고 있었다.

“네!”

양태원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밑이에요.”

“……뒤쪽에 해안가로 내려가는 완만한 경사가 있는데, 거기로 가면 안 되나?”

“에이, 안 돼요.”

이선의 희망 사항을 양태원이 한 번 더 확인 사살했다.

“꼭 여기로 내려가야 한대요.”

이선은 절망했고, 김하현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번 던전 공략대는 골 때리는 놈들만 모아 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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