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18화
그러는 한편, 절벽 밑 해안가에서는 조금 색다른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근데 협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곧 다른 조와 합류해야 할 텐데, 마석을 빨리 캘 수가 있을까요?”
“맞아요. 시간이 문젠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구체적인 작전에 대해 묻는 1조의 다른 헌터들을 향해 김성연이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누가 봐도 신뢰가 갈 법한 미소였다.
“저 절벽 뒤 동굴 중 하나에 마석들이 즐비해 있다더군. 힘들여 채굴할 필요는 없네.”
“오, 오오! 진짜 귀한 정보네요.”
“어떻게 그런 노다지가 있죠?”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아무리 이 던전에 마석이 많다고는 해도 대부분 시간을 들여 캐내야 했는데, 채굴할 필요도 없이 그냥 널려 있다니.
“내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나.”
“하하하. 물론이죠. 회장님이 너무 좋은 정보를 주셔서.”
“이런 걸 들어도 될지…….”
겸양을 떠는 헌터들 앞에서 김성연은 허허 웃어 보였다.
김숙자가 만든 그 이상한 규칙을 따라 헌터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회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것도 다 우리 헌터들을 위한 거지. 나 혼자 독점해 봐야 뭐하겠는가?”
물론 말만 그런 것이다.
김성연 입장에서 이 정보를 푸는 것은, 엄연히 말해 큰 손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김성연은 몇 주 전 영원 길드가 이 던전에 진입했을 때, 이미 해안가 절벽에 있는 동굴 중 하나에 마석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 탐사만 했을 뿐, 동굴까지 진입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영원 길드의 다음 입장은 반년 후.
영원 길드로서는 그때까지 다른 길드가 해당 동굴을 발견하지 못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던전 안을 둘러보는 김성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길드장인 김성연이 이 던전에 직접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기에, 그도 이곳에 오는 것은 두 번째였다.
예전에는 김성연의 ‘육감’ 스킬의 레벨이 높지 않아서 몰랐지만, 레벨이 6이 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강한 몬스터가 있다.’
그것도 현재 공략대만으로는 클리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김성연은 이름 모를 여자가 밝힌, 자신에게 스킬이 있다는 말은 믿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미공략된 던전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 던전은 공략 전까지 폐쇄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공략하게 되더라도 이 마석이 나는 동굴이 제 모습을 유지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석이 즐비한 동굴에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이 정보를 썩혀 봐야 소용이 없지.’
캐지도 못 하는 마석의 정보를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길드들을 포섭하는 용도로 풀어 버리는 게 백번 나았다.
이렇게 정부 몰래 다른 길드와 함께 마석을 나눠 가지게 되면 김성연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갈 뿐 아니라, 이후 던전이 폐쇄되었을 때 정부에 대한 반감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놈의 랭킹만 발표되지 않았어도 이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리고 다른 길드 소속 헌터들의 신뢰를 사는 건, 시스템상 랭킹이 기대보다 낮아 체면을 구긴 김성연에게는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조직이 끈끈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모름지기 외부의 적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김성연 본인이 일부러 이 던전 조사대에 참여한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현 랭킹 1위인 ‘방랑하는 구도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기는 했다.
막상 만나 보니 그 호기심은 불쾌감으로 바뀌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느끼기는 했지만 랭킹 1위는 생각보다도 훨씬 건방졌다. 김성연이 뭐라고 하든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게 뻔히 보였다.
물론 랭커 중 2위를 차지한 이우연도 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난 5년간 함께 던전을 공략하며 그 실력도, 처절함도 보았다. 그래서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가진 어린 플레이어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국의 던전을 공략했다고 밝혔다지만, 김성연은 대한민국의 굵직한 던전들을 모두 다 직접 공략해 본 몸이었다.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웃기지도 않은 플레이어명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즉, 본인이 직접 공략 업적치를 쌓아 1위가 되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김성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그러십니까, 협회장님?”
옆에서 입안의 혀처럼 굴던, 이름 모를 헌터 하나가 맹하게 물어 왔다. 아마 표정이 굳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가지.”
김성연은 금세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튀어나와 랭킹 1위가 된 그 여자가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무슨 치트키를 써서 1위가 된 것이라면 언젠가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김성연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 굳이 나서서 처리하려 해 봤자 여론만 나빠질 뿐이다.
‘시스템의 랭커 보상을 받았을 거라는 게 좀 걸리기는 한다만.’
랭킹이 발표되면서 최상위 랭커들은 시스템에게 보상을 받았다.
김성연의 경우 물리적 타격을 흡수해 착용자가 일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스릴 갑옷을 받았다. 시험해 본 결과, S급 몬스터 수준의 공격도 흡수 가능했다.
이우연도 말은 안 하지만 제법 굉장한 걸 받은 모양이고.
‘10위도 이 정도니, 1위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상념에 잠겨 있던 김성연은 다른 헌터의 재촉에 정신을 차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보고대로라면 해안가에서 위로 올라갈 만한 절벽이 있다고 하더군. 내가 갈고리와 로프를 준비해 왔네.”
물론 던전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었기에 소지창 내에 보관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넉넉히 챙겨 왔기에 김성연은 인심 좋게 로프를 헌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들 감격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김성연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을 이끈다는 거지.’
물론 김성연 또한 이게 어느 정도 비난의 요소가 있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자신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정부가 너무 헌터들을 옥죄는 게 문제지.’
던전이 생긴 초반부터 최전선에서 활약해 왔던 김성연은 최근 정부의 행보에 불만이 아주 많았다.
애초에 김숙자가 정부 측 자문 위원이 되면서 헌터 스토어를 공기업으로 만든 게 문제였다.
헌터 스토어에 초반 아이템 물량이 모두 몰린 데다, 결정적으로 김숙자와 연이 있는 조한율이 선율 공방을 헌터 스토어에 독점으로 입점시키면서, 한국의 아이템 거래가 모두 헌터 스토어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조한율이 만들어 낸 포션이 헌터 스토어에서만 유통되니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헌터들이 목숨 걸고 던전을 공략해 얻은 아이템들이 전부 다 정부의 감시 아래 투명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즉, 그 모든 것에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붙었다.
던전 아이템들이 워낙에 고가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김성연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상위 던전을 한 번 공략할 때 공략대 전체가 쓰는 물약값만 해도 장난이 아닌데, 거기서 얻은 아이템을 처분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이래서 학자들이란,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른다니까.’
결국 던전 공략은 헌터 개개인의 능력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손해만 본다면 누가 헌터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이렇게 김성연처럼 헌터들을 이끄는 사람이 나서서 숨통을 풀어 줘야 했다.
“우왁, 파도 진짜 세다.”
“바다에 몬스터가 사는 건 아니겠지?”
가파른 절벽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헌터들이 하나둘씩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김성연 또한 민첩하게 절벽을 타고 미리 보고받은 동굴 쪽으로 헌터들을 이끌었다.
“여기다!”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김성연은 곧 동굴을 찾아냈다. 절벽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뜻밖에도 정말 뻥 뚫린 동굴 입구가 있었다.
뒤를 따르는 헌터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동굴에 들어선 순간,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세,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아무리 이 던전에 마석을 캐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들, 전부 곡괭이를 들고 깊이 파 나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동굴 안에는 굴을 팔 것도 없이 동굴 벽면 전체에 마석이 드러나 있었다. 아마도 파도가 닿는 곳이라 자연적으로 벽면이 깎여 나가며 드러난 듯했다.
마석 특유의 둔탁한 반짝임이 사방에서 번쩍거렸다.
보고받은 대로였기에 김성연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그냥 보기에도 몇백 개는 되겠는데.”
이곳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력을 잘 탐지하는 능력을 가진 헌터를 영원 길드의 입장 차례에 들여보내, 마석이 좀 더 많이 포진되어 있는 스폿이 없는지 탐색하다가 찾은 곳이다.
‘아쉽긴 하군. 반년 후에도 입장 가능하다면 이곳은 우리가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지나간 건 지나간 일이다.
김성연은 마석에 정신이 팔린 헌터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자. 시간이 얼마 없네. 위험하니 다들 빨리 마석을 챙긴 다음 돌아가지. 지현 양, 이선과 연락은 잘 하고 있겠지?”
“아, 네! 방금 전에도 해안가 탐사 중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선과 텔레파시로 연결되어 있는 최지현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김성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할까? 마석은 캔 다음 바로 소지창에 넣지 말고, 내 앞에 쌓아 두게. 쓸데없는 말이 안 나오도록 내가 분배하도록 하지.”
“네!”
“당연하죠! 협회장님은 쉬고 계십쇼.”
물론 마석을 캐내는 노동은 다른 헌터들의 몫이었다.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다른 헌터들 입장에서는 던전 조사차 왔다가 갑자기 횡재를 하게 된 셈이니까.
헌터들이 곡괭이를 쥐고 제각기 빠르게 흩어졌다.
곧이어 곡괭이질을 하는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이미 거의 다 드러나 있던 마석들이 쉽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하하. 횡재다!”
“이게 다 얼마야!”
다들 헌터라 신체 능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보니 마석을 캐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금세 마석이 바닥으로 쌓여 갔다.
김성연은 혹시 소지창에 몰래 마석을 은닉하는 헌터가 있는지는 않은지 감시하며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김성연의 육감에 무언가가 걸렸다.
마석이 박혀 있는 동굴 앞쪽이 아니라, 저 안쪽.
동굴의 바깥쪽은 바다에 반사되는 온갖 눈부신 빛으로 마석들이 반짝여 무척 화려해 보였으나, 빛이 닿지 않는 굴 안쪽은 음습한 냉기가 풍겨 나오는 듯했다.
“잠깐. 다들 멈춰 보게.”
그 말에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던 헌터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김성연은 그중 가장 능력치가 높은 헌터 몇을 뽑아 손짓으로 불렀다.
“안쪽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모, 몬스터입니까?”
“아니, 움직임은 없어. 다만 마력이 느껴지는데…… 일단 접근해 보지.”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김성연 또한 지난 5년간 던전 공략에 열성을 쏟은 헌터였다. 또 ‘방랑하는 구도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에서 1위로 손꼽을 만한 검사였고.
물론 마석을 가로채려는 심산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만일 몬스터가 나온다면 몸을 뺄 생각은 없었다.
김성연은 헌터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동굴 안쪽으로 접근했다. 마법으로 피운 불이 동굴 안을 천천히 밝혔다.
그렇게, 동굴 안에 있던 ‘그것’을 발견한 김성연은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뭐지?”
* * *
“와, 진짜 끔찍하다.”
이우연이 그런 감상을 내뱉었다.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지난 10년간 타르토스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우리의 눈앞에 놓인 것은…… 거대한 시체였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상황이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