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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23화 (12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23화

“지, 지진?”

“여기 무너지는 거 아냐?”

지진이 시작되자 동굴 안에 있던 헌터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경험 많은 헌터인 김성연의 얼굴에조차 동요가 스쳤다.

그도 그럴 것이, 발치를 울리는 진동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만일 이대로 동굴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신체적 능력이 강화된 헌터라고 한들 생사를 보장할 수 없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선이 목소리를 높였다.

“침착하세요! 다들 빠르게 움직인다면 입구까지 나갈 시간은 충분합니다. 이대로 열을 무너트리지 않고 이동하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는 긴장을 흐트러트리지는 못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헌터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이선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선은 동굴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며 찬찬히 상황을 가늠해 보았다.

김성연 말마따나 이번 던전에 들어온 공략대는 한국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최정예였다.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는 게 걸리기는 해도 S급 몬스터 공략을 시도할 만한 조건이었다.

다만 문제는 현재 공략대가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다는 것.

일단 2조에게는 텔레파시 스킬로 현 상황을 전달했다.

그들은 원래 마석을 캐던 장소에서 별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 후 곧장 동굴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 류세연 찾았어. 곧 합류할게.

그리고 사고뭉치를 찾으러 간 김하현 쪽도 다행히 무사하다고 연락해 왔고.

이대로라면 보스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대부분의 공략대가 합류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다만, 문제는…….

- 우연아, 메시지 봤어?

동굴 속의 히든 루트를 발견한 강예나와 이우연이었다.

이우연과 텔레파시로 연결이 가능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머릿속에서 금세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 네, 방금 보스 몬스터가 출현한다는 메시지를 봤어요. 대체 왜 바로 처치한 거예요? 좀 지켜보는 게 나았을 텐데.

역시나 이우연도 이선과 같은 의견이었다.

이선은 헌터들을 인솔하며 이우연에게 대강 이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정을 설명했다.

- 김성연 길드장은 내 선에서 컨트롤 안 돼. 망할, 애초에 공략대에 넣는 게 아니었는데.

이우연이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아마 한숨을 쉬었으리라 생각되는 간극이었다.

- 어떻게 된 건지 이해했어요. 그러게, 처음부터 김성연은 빼지 그랬어요?

- 정부 입장에서 최상위권 헌터가 참여한다는데 무작정 안 된다고 할 수는…….

- ……없었겠죠. 네, 네. 알겠습니다.

- 애초에 김성연은 너네 길드장이잖아. 왜 우리한테 그래? 네가 좀 컨트롤해 봐.

- 그렇지 않아도 탈퇴하고 싶은 참이에요. 어쨌든, 그래서 지금 다들 합류 중인가요?

- 응, 곧 합류할 것 같아. 그쪽은? 바로 합류할 수 있겠어?

- 음, 좀 애매하네요.

애매하다고? 이우연답지 않은 설명이었기에 이선은 재차 물었다.

- 무슨 문제라도 있어? 히든 루트라더니 설마 탈출 조건이 필요하다거나…….

- 공간 이동 마법은 먹히지 않는 걸 보니 탈출도 문제긴 한데…….

- 뭐, 뭐?

공간 이동 마법이 불가능하다고?

현 시스템상, 마법사 클래스를 발현하더라도 공간 이동을 해낼 수 있는 마법사는 진언을 깨우친 단계의 마법사뿐이다. 그래서 물론 이우연 또한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 중 하나였고.

그래서 이우연이 미탐색 지역에 가는 걸 막지 않은 것이기도 했는데 아예 이동 마법 사용 불가 지역이었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둘의 탈출도 문제지만 당장 공략대 전력에서 이우연과 강예나가 빠지게 된다.

이건 치명타였다.

심지어 이우연이 덧붙인 말은 더욱 심각했다.

- 그보다 여기에서 몬스터 시체 하나를 발견했는데, 보기에는 그냥 코끼리 같거든요? 엄청나게 크긴 하지만.

- 코끼리라고? 그렇지만 이쪽 동굴에서 발견된 몬스터는 뱀의 형태였는데.

- 그러니까요. 한쪽에서는 새끼 뱀, 그리고 이쪽에서는 코끼리…… 그런데 코끼리 쪽이 정황상 그 새끼의 부모란 말이죠. 이 혼종, 뭔가 떠오르지 않아요?

- 뭐가?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보스 몬스터가 뭔지 감이 왔다는 이야기인 거지?

시스템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타나는 몬스터의 형태를 보면 현대 세계에서 존재하는 설화나 신화에서 따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근거가 갖춰지기만 한다면 시스템에서 뜨는 이름만 가지고도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예상하는 것도 가능했다.

- 확신은 없지만 강예나는 동의하더라고요. 보스 몬스터 이름이 ‘거만의 왕’이라고 해서 생각난 건데…….

콰쾅!

이우연과 머릿속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며 동굴을 달려 나가던 이선은 갑작스레 들려온 폭음에 깜짝 놀랐다. 땅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흩어졌다.

앞서 달려 나가던 헌터들이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무, 무슨 소리야?”

“벌써 보스 몹이 출현했나?”

“멈추지 말고 달려요!”

이선은 고함쳤다.

아직 동굴을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헉, 헉…….”

그 와중에 무리에서 뒤처진 사람도 있었다. 체근민 수치가 크게 떨어지는 양태원이었다.

이선은 무릎을 붙잡고 헉헉대고 있는 양태원에게 다가갔다. 긴장 때문인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양태원이 땀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 저 괜찮……!”

이선은 휙, 하고 양태원의 허리를 들어 옆구리에 꼈다.

“가자!”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갑작스럽게 또 짐짝이 되어 버린 양태원이 달랑 들린 채 비명을 질렀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얌전해졌다.

‘그냥 지금 진언을 써?’

동굴의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가며 이선은 짧은 고민에 빠졌다.

이선 또한 진언을 깨우친 마법사이기에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지도 않은 상황이라 그렇게 대규모로 마력 소모를 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 맞아. 우연이가 뭐라고 했지?’

- 우연아, 그래서 보스 몬스터가 뭐인 것 같다고?

갑작스러운 폭음 때문에 끊겨 버린 대화를 이어 보려고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이우연 쪽이 대답이 없었다. 혹시 스킬까지 중지된 건 아닌지 시스템 창을 열어 보았지만 스킬 쪽은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저쪽에도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

이선은 혀를 찼다.

물론 시스템이 생겨난 이 5년간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던전 공략의 난도가 불쑥 높아져 버린 느낌이다.

본래 S급 몬스터라는 게 이렇게 흔한 게 아니었는데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서까지 S급 몬스터가 출현했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SS급 몬스터까지 출현했다.

설마 이렇게 계속 위험도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이선은 그런 불길한 예감을 고개를 흔들며 무시했다.

‘으, 이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교수님하고 상의해도 늦지 않아.’

그러려면 일단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

우르릉!

쾅!

하지만 아무래도 이선의 소망은 이루어질 확률이 극히 낮을 듯했다.

드디어 동굴을 나서려는 순간, 입구 밖에서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허, 허억…….”

“어떡해…….”

도착한 헌터들은 하나둘씩, 동굴을 나서지도 못하고 절벽의 끝자락에 멈추어 섰다.

“뭐 하는 건가? 빨리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중간 즈음에서 따라가고 있던 김성연이 멈춘 헌터들을 재촉하려다가 멈칫했다.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제 발로 선 양태원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벌렸다.

“와…… 세상이 멸망하려나?”

양태원의 말대로였다.

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져 마치 휴양지 같던 아름다운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하늘과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투명하던 바다는 어느새 시커멓게 물들고, 수평선 저 너머에서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해변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콰광!

바다의 수면 위로 거대한 천둥이 내리쳤다.

헌터들이 위치한 절벽 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는 커다란 돌들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땅이 흔들리며 부스러지기 시작한 건지, 거대한 절벽은 한낱 조각이 되어 동굴 앞을 스쳐 지나가더니 그대로 바다에 낙하했다.

콰쾅!

폭음이 천지를 울렸다.

그 소음에 동굴 입구 가까이에 서 있던 몇몇 헌터들이 귀를 막았다.

그 와중에도 동굴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심지어, 헌터들에게 닥친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헌터가 떨리는 손을 들어 바다 저편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내 눈이 잘못된 건가?”

“뭐야, 저거?”

하늘과 땅이 죄다 울리는 그 파열음 속, 번개가 내리치는 바다.

그 바다에서 나타난 무언가를 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레비아탄……?”

그렇게 말하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였습니다.

- S급 몬스터 : ‘거만한 왕’

광활한 바다의 가장 깊숙한 곳에나 존재할 것 같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모습의 뱀.

삐죽한 콧구멍에서는 용암 같은 화기를 품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간에게 공포 그 자체인 괴물이 바다를 가르며 나타났다.

**

“그거 있잖아, 그거.”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이우연은 곧장 알아차리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육지의 베헤모스와 바다의 레비아탄.”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지식을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네가 무슨 왕관 앵무라도 되냐?

“들어 보지 않았어? 게임에도 많이 나오는데.”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게임을 많이 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우연이 시무룩해졌다.

“뭐, 쉽게 말하자면 바다뱀이야. 고래라는 설도 있기는 하지만 이선 헌터가 발견한 게 뱀이었다니까. 이렇게 따지면 해양 몬스터가 맞기는 하군.”

어쨌거나 이우연의 설명을 들어 보면 베헤모스는 코끼리의 형태, 레비아탄은 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해당 전승에서는 레비아탄을 ‘거만한 것들의 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모양이다.

확실히, 이선 헌터 쪽에서 발견한 새끼 몬스터가 뱀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물론 전승에 따르면 둘의 새끼는 신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 같긴 하지만…… 여러 구전이 있는 모양이니 있을 법한 이야기지.”

그건 그랬다. 시스템이야 근본도 없이 이것저것,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이야기에서 몬스터의 원형을 따다 만드는 것 같았으니까. 여러모로 설득력이 있었다.

“부모의 나머지 한쪽이 바다뱀이라면 이 동굴이 만들어진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우연이 동굴의 벽면 한쪽을 손으로 두드렸다. 손가락이 동굴 벽의 감촉을 확인하듯 돌을 쓸어내렸다.

“물이 있었던 흔적이 있어. 지금은 아니지만 만조 때는 여기까지 물이 차올랐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그런 마법 같은 찰나가 있어서…… 본래라면 만날 수 없었던, 사는 세계가 다른 두 존재가 만날 수 있었던 거지. 신의 눈조차 피해서.”

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우연의 말이 어쩐지 감상적으로 들렸던 것이다. 이게 그럴 일인가?

“그러니까…….”

내가 운을 떼자 이우연이 무언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보스 몹은 바다 필드에서 나타날 확률이 크단 거네. 정체는 거대한 바다뱀이고. 공략하기 힘들겠다.”

“……후우.”

이우연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대체 뭘 기대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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