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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26화 (12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26화

쿠콰콰쾅!

거센 물보라가 일어났다.

레비아탄의 머리가 표면에 닿아 일어난 파도가 절벽 위까지 튀어 올랐다.

그리고, 양태원이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에휴.”

황금빛의 날개가 퍼덕였다.

양태원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휙 딸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악!”

“그러니까 체력 수치 좀 올리라니까.”

이우연이 허공에서 양태원의 팔을 잡아채고 날아오른 것이다. 날갯짓 한 번에 그렇게 높아 보였던 절벽이 순식간에 낮아졌다.

그리고 양태원은 팔을 잡힌 채로 한숨을 쉬었다.

안도보다는, 이제 슬슬 짜증이었다.

“대체 왜 다들 나를 짐짝 취급하는데?”

“진짜 짐짝이니까 그렇겠지.”

순식간에 절벽 위까지 도달한 이우연은 무성의하게 땅바닥에 양태원을 던졌다.

던져진 양태원은 땅바닥을 굴렀다.

이우연이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만졌다는 것처럼 옷을 탁탁 털었다. 약을 올리기에는 최적의 행동이었다.

양태원은 무릎에 힘이 빠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아, 죽는 줄 알았네…….”

“정말 죽었을 거야. 한발만 늦었어도.”

이우연이 날개를 펼치고 떠오른 채 엎어진 양태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곧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른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거의 모든 헌터들이 그 시선에 움찔, 하고 어깨를 떨었다. 이우연은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뱉듯 말했다.

“모두들 여기서 더 이상 발목 잡는 짓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S급 보스 몬스터예요. 클리어 실패는 용납 못 합니다.”

“이우연 헌터, 내가……!”

“그리고 양태원.”

김성연이 이우연에게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이우연은 듣지 않았다. 대신 양태원에게 말했다.

“거기서 얌전히 있어. 연습 게임은 끝났어. 괜히 나서서 신경 쓰이게 하지 마라.”

이건 좀 억울했다. 물론 방금은 이우연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어쨌거나 양태원은 모두를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떨어진 건데!

그 울컥한 마음을 담아 양태원은 소리쳤다.

“이우연, 네가 언제부터 날 신경 썼다고! 주어는 똑바로 이야기해!”

하지만 이제 이우연은 뒤를 돌아보기는커녕 할 이야기는 끝났다는 듯, 곧바로 날아가 버렸다. 한 손에는 익숙한 모습의 검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마법을 캐스팅하기 전의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막 수면 위로 쓰러졌던 레비아탄이 막 다시 몸체를 일으키려고 할 때 이우연의 손에서 마법이 날아가 처박혔다.

다시 한번 물보라가 일었다.

“태원아!”

그리고 뒤늦게 절벽 위를 기어 올라온 이선이 황급하게 양태원에게로 뛰어왔다.

양태원은 두 손을 내저었다. 이우연 말마따나 여기서 더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저 괜찮아요! 그보다 얼른 보스 몹 공략을……!”

“마법사 클래스들은 앞으로!”

이선 또한 이제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지금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콰콰쾅!

절벽 아래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두 헌터가 보스 몬스터에게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한쪽은 검으로, 또 다른 한쪽은 마법으로.

S급 몬스터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마다 그대로 수면 위에 쓰러졌다. 얼마나 쉴 새 없이 공격이 이어지는 건지 시야가 현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폭음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우연! 잘 좀 해 봐!”

“나도 알아!”

“뭘 알아, 이 새끼야! 하나도 안 먹히잖아!”

“와, 말이 심하네! 노력 중이야!”

이선은 상황도 잊고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안 친하다더니, 이렇게만 들으면 10년 지기 절친 같네. 물론 강예나 본인이 들었다면 부정했을 것이다.

물론 정말로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강예나 말대로 이렇게까지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전혀 먹히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법의 위력과 강예나가 내리치는 검의 위력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세히 보면 보스 몬스터의 비늘 하나도 손상된 것이 없었다.

저 정도면 S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상급이다.

이렇게 되면 이쪽에서도 얼른 화력을 보태야 했다.

“약점이나 핵부터 찾아야 합니다! 먼저 부위별로 나눠서 공격할게요. 지금부터 호명하는 9명은 머리, 몸, 꼬리순!”

“알겠습니다!”

“네!”

같은 마법사 클래스더라도 신체 강화, 근거리 공격, 원거리 공격 등 각자 특화된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같은 정부 소속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고위 던전 공략에서 제법 자주 보이는 얼굴들이었기에, 누가 이런 원거리 공격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실드 유지와 마력 보조로…….”

“잠시만, 이선 헌터.”

그때 나선 것은 김성연이었다. 그는 롱소드를 든 채로 보스 몬스터와 강예나, 그리고 이우연이 벌이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둘은 근접 전투를 보조할 수 있도록 돌려 주게. 영원 길드 소속 검사들은 부유 마법을 사용하는 공중전을 이미 실전에서 경험했었네.”

그 말에 이선은 보스 몬스터가 날뛰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강예나가 든 검의 날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이우연과 강예나가 몬스터보다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것 같았지만, 몸체가 워낙 거대하고 단단하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강예나는 완전히 성질이 난 모양인지 몇 번이고 욕설을 내뱉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이선은 한 가지 특이점을 알아차렸다.

‘어라, 아까 전에 봤던 거랑 뭐가 다른데?’

장비를 바꿨나? 방금 절벽을 뚫고 나왔을 때는 분명히 망토 같은 게…….

“이선 헌터!”

“아, 네. 알겠습니다.”

저 둘 외에도 몸체에 물리적으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검사가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이선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여기서 최대한 많은 부위를 타격할 테니,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알리겠습니다.”

“알았네. 그럼 가지!”

김성연은 마음이 급한 듯 곧바로 영원 길드 소속의 검사 하나와 마법사 둘을 이끌고 전열에서 빠졌다.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모습이 조금 불안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검을 든 두 헌터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보스 몬스터의 몸 위로 안착했다.

그걸 지켜본 이선이 손을 들었다.

“공격!”

캐스팅 준비가 끝난 갖가지의 마법이 거대한 괴물의 온갖 부위로 날아갔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소리가 산발적으로 퍼졌다.

그걸 보며 이선은 혀를 내둘렀다.

“와, 꿈쩍도 안 하네.”

이우연이 우는 소리를 한 이유가 있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리게 짜인 견고한 비늘에는 항마력 속성이라도 있는 건지, 어떤 마법도 약간의 타격감 외에는 조금의 충격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유 마법의 힘을 빌어 보스 몬스터의 몸체에 접근한 김성연과 다른 헌터의 공격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거대한 몸체를 누비며 조금이라도 틈이 있을 법한 부분을 검으로 내리치고 있었지만, 그 요령 좋음과 별개로 눈곱만큼도 먹히는 것 같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라 무슨 스톤 골렘 같네.”

그때 강예나가 커다란 바다뱀의 머리를 검으로 후려치는 것이 보였다.

그냥 보기에는 롱소드와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검이었으나, 검이 뱀의 머리를 후려치자 뱀의 머리는 그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 기울었다.

“이우연!”

“그래그래, 알았어!”

그리고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이우연이 왼손에 마력구를 만든 채, 제 몸을 가지고 하늘에서 바다까지 일직선으로 메다꽂았다.

쿠와앙!

그 모습을 본 순간 이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게 방금 유일하게 터진 유효타라는 것을.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입이 먼저 외쳤다.

“모두, 지금 머리로 내다 꽂아!”

퍼펑! 펑!

지시에 따라 각종 색깔의 마력들로 이루어진 마법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이선 또한 마법을 쉴 새 없이 꽂아 넣었다. 집중적으로 쏟아진 공격의 고통 때문인지 거대한 몸체가 꼬리부터 머리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먹혔나?”

“아니, 아니에요!”

그렇게 소리 지르며 앞으로 나선 것은 양태원이었다.

“저길 봐요.”

“어디? 보스 몹은…….”

“아니, 저 수평선 너머!”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니, 물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해일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보스 몬스터가 최초로 출현했을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고래……?”

그랬다. 고래 떼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기이한 소리가 해안가를 가득 메웠다. 고래들이 내뿜는 분노의 울음소리였다.

본래 인간이 듣기 어려운 음역대의 소리를, 헌터들은 강화된 신체 덕분에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공격이었다.

- A급 몬스터, 심해의 지배자가 출현하였습니다.

떠오른 메시지에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보스 몹만 해도 벅찬데. 심지어 A급?”

그것도 A급 몬스터가 수십, 아니, 수백 마리에 달하다니. 정부 기준으로는 이미 A급 몬스터가 저렇게 많은 것만으로도 S급 던전으로 지정해야 했다.

한편으로 양태원은 그 드넓은 바다를 꽉 채운 몬스터를 노려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에게는 온몸을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바다의 수호신들이 노여워하고 있어요.”

부정을 탄다는 게 이거였구나. 이제야 납득이 갔다.

이선이 반문했다.

“설마 아까 그 새끼 몬스터를 죽여서? 하지만 그건 고래들의 새끼는 아니잖아.”

“인간의 기준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요. 그들에게 저 바다뱀은 동족이고, 그 새끼 뱀은 자신들의 새끼였던 거죠…….”

만일 그 새끼 몬스터가 제대로 유체를 탈피한 상태였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렇게 되면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우리가 불리해요. 분노한 신령들이 저쪽 편을 들고 있으니까.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다른 방법?”

잠깐 고민하던 양태원은 부적을 꺼내 들고 허공으로 날렸다.

부적 몇 장 사이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는가 싶더니, 마치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각자 강예나와 이우연에게로 휙 날아가 반투명한 실드를 형성했다.

강예나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쐐애액!

강예나가 몇 번 발을 구르더니 순식간에 절벽 위로 올라왔다. 여전히 가면을 쓴 채였지만 그럼에도 던전 진입 초반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무언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헌터들이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섰다.

강예나의 입이 열렸다.

“왜?”

허, 참.

이선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별것 아닌 말도 임팩트 있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저걸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는 건가?

그걸 느낀 것은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다들 어깨가 굳어 있는 게 느껴졌다.

하기야 그저 카리스마만으로 모두를 압도한 것도 아니었다. 방금 전 눈앞에서 아무도 이빨 하나 박지 못한 보스 몬스터에게 유일하게 유효타를 먹인 사람이 아니던가.

랭킹 1위가 스킬 빨이네, 어쩌네 의심하던 헌터들에게 시원하게 어퍼컷을 먹인 셈이었다.

“누나, 제 말 믿지 못하실 수도 있는데요…… 이거, 저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걸로는 클리어 안 될 것 같아요.”

그때 강예나를 이리로 부른 양태원이 우물쭈물하며 나섰다. 의식하지 않아도 아까 전의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아까 전에 우리가 처치한 새끼 몬스터가 저 바다 생물들의 동족이자 새끼라서 노여움을 산 거예요. 그 노여움을 풀어 줘야 해요.”

방금 전에도 양태원은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부정을 탄다고 말하며 새끼 몬스터를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하던 모습.

김성연은 그걸 헛소리로 치부했었다.

그렇기에 같은 상황에 처한 강예나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강예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그건 현재 상황에서 가능성이 너무…….”

어떤 헌터가 나서려다 주춤하고 입을 다물었다. 양태원의 앞에 선 강예나가 시선을 흘끗 던진 탓이었다. 아이템 때문에 얼굴은커녕 모습조차 제대로 인지되지 않는데도 강렬한 압박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 헌터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현재 시스템이 제시한 클리어 조건은 ‘보스 몬스터의 처치’.

물론 공략을 진행하다 보면 클리어 조건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거대한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오는 마당에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자는 것은 도박이다.

괜히 힘을 분산시켰다간 전멸할 수도 있다.

정면에서 부딪혀 볼 것인가, 혹은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인가.

난제였다.

그리고 이미 이 분위기를 장악해 버린 강예나의 대답이 이번 공략대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긴장해서 다음 말을 기다리던 그때.

“믿어.”

대답은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떨어졌다.

강예나는 그렇게 짧게 대답한 후 등을 돌려 바다 위로 몰려오고 있는 고래 떼를 살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말해 줘. 아, 네 목숨을 바쳐서 제를 올린다든가, 그런 건 사양할게.”

“어, 네? 그러니까 그게…….”

“아, 이우연 처맞았다.”

강예나가 손가락으로 마침 레비아탄의 꼬리에 맞아 바다에 처박힌 이우연을 가리켰다. 가면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올라간 입꼬리는 분명히 보였다.

“어휴, 꼴좋다.”

……둘이 친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이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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