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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28화 (12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28화

따로 떨어져 있는 김성연 헌터에게도 이선 헌터가 이 상황을 전달했다.

텔레파시를 끝낸 이선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마석 광산을 보존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더니 바로 동의하던데요?”

“그럼 됐네요.”

“김하현 헌터와 류세연 헌터도 동의했어요. 마침 잘됐죠. 해안가에 있으니 그쪽에서 어그로라도 끌고 있으라고 할게요.”

그렇다면 이제 한 명 빼고 나머지 헌터들은 모두 제 2안에 동의한 셈이다.

이선이 실드를 구축하는 마법사들을 보며 몸을 푸는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만약 태원이가 실패한다면 곧바로 공략 들어갈 거예요. 그건 동의하시죠?”

“네, 압니다.”

그렇게 대답한 후, 나는 곧바로 절벽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슬슬 이우연 혼자 버티기에는 벅찰 때였다.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검에 마력을 주입하자 날이 크게 늘어났다.

다만, 성검으로 진화하지는 않았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투지를 잃은 상태입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주인의 의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내 파트너께서는 아까 전에 절벽을 뚫고 나올 때만 해도 의욕에 차올라 계시더니,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저렇게 나온다.

이것 좀 봐. 누가 성검 아니랄까 봐.

“너한테 베라는 소리 안 하잖아!”

대신 넓어진 검면으로 이우연에게 향하던 바다뱀의 머리를 가격했다. 내려친 검은 제대로 된 대미지조차 주지 못하고 튕겼다.

‘쯧.’

온몸에 힘을 실어 내리친 만큼 내 몸도 그대로 튕겨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했을 때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는 만큼 성검의 의지가 없을 때는 그만큼의 반동이 온다. 어지간한 목검보다도 못한 셈이었다.

물론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착용한 상태라면 그 목검으로도 충분하다만, 현재 내 상태는 아주 약간 속을 채운 허접 깡통 정도.

레벨이 오를 기미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어렵긴 해.’

양태원이 제사에 필요하다고 한 시간은 30분. 아까 그 절벽에 난 동굴에 시체를 가지러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오래 잡았을 때 40분 정도.

차라리 처치하라면 못 할 것도 없지만, 처치하지 않고 버티라고 한다면 너무 긴 시간이다.

그리고 더 문제인 것은, 그 몇십 분을 버티기 이전에 내게 검으로 얻어맞은 바다뱀의 머리가 당장 지금 쇄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수면으로 떨어져 내리는 내 몸을 향해 바다뱀이 돌진했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심연 같은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인식했다. 그 눈동자에 들어찬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가리가 벌어지고, 뱀의 독니에 푸른 독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와, 물리면 아픈 걸로는 안 끝나겠는데.

“강예나!”

그러나, 이우연이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콰쾅!

그가 바다뱀의 머리를 한 번 세게 날렸다.

뱀의 뒤통수에 커다란 불꽃이 피어오르고, 은색의 비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타격받은 머리가 기우뚱 기울었다.

새삼스럽지만 근접 공격이 가능하면서도 공중전까지 할 수 있다는 거, 정말 사기 아니냐?

그러나 외피가 단단한 만큼 이우연의 마법 또한 약간 방향을 트는 것 이상의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바다뱀은 곧장 정신을 차리고 아가리를 쩍 벌리고, 무서운 기세로 밑으로 떨어지는 나를 집어 삼키려 쇄도해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잡아!”

뱀의 입안에 거의 반쯤 들어간 내 손을 잡아챈 이우연이 빠른 속도로 날았다. 나를 사냥감처럼 채어 입 사이를 치고 나오는 비행은 거의 묘기 수준이었다.

바다뱀이 찰나의 틈 사이 놓쳐 버린 나 대신 허공을 물었다.

내 손을 잡고 날아오른 이우연의 모습이 보이자 절벽 위에서 소심한 환호가 터지는 것이 들렸다.

설마 이것도 녹화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바다뱀의 입 사이에서 나를 구출한 이우연은 적당한 곳에서 내 손을 놓고 바다 위로 던져 버렸다.

필드가 바다이기는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다뱀의 몸체가 워낙에 컸기에 밟을 만한 곳은 무척이나 많았다. 나는 금방 바다뱀의 몸체 위에 안착했고, 이우연이 그 위를 맴돌았다.

한쪽 손에는 마력구가, 다른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더불어 얼굴에는 아주 드물게도 짜증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불신감과 의아함도.

“방금 당신, 공격 타이밍이었던 거 알지? 왜 멍하니 있었던 건데?”

하기야 이우연이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금 전 뱀의 아가리 사이로 검을 휘둘렀다면 제법 타격을 먹일 수 있었을 것이다. 외피라면 모를까, 입속까지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다만, 그건 이 보스 몬스터의 처치를 우선으로 할 때의 이야기다.

“사정이 좀 바뀌었어.”

“무슨 사정?”

“시스템 메시지 좀 봐. 클리어 조건 추가됐으니까.”

이제껏 혼자서 저 바다뱀의 주의를 돌리느라 시스템 메시지도 채 확인하지 못한 이우연은 뒤늦게야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우연이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분노를 해소하라? 애매하게 들리는데.”

“양태원 말로는 예를 다해서 제사를 치르면 될 것 같다는데.”

“그러니까 당신 이야기는…… 양태원 말을 믿고 시간을 끌면서 제사가 끝나기까지 버티자는 말이군. 그게 먹히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포화도 관리가 가능하니까.”

“그래, 훨씬 평화적인 방법 아니냐?”

역시 말이 빠르게 통해서 좋다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바다뱀의 몸체를 길처럼 달리고 있었던지라, 시야에는 이미 성큼 다가온 고래의 떼들이 보였다. 그들은 해안가로 더 이상 접근하지는 않았으나 흉흉한 기세만큼은 피부로 와닿을 정도였다.

그리고.

“1팀!”

절벽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공격 마법이 화려하게 터졌다.

아아아아―

높은 음역대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기괴하게 퍼졌다. 온갖 불꽃과 번쩍이는 빛이 검은 바다 위를 날아가 레비아탄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 공격에 열 받은 레비아탄이 다시금 정신을 차려 절벽으로 향하려던 그때.

“여기다!”

거대한 바다뱀의 눈앞을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휙 지나갔다.

신경 쓰지 않을 만큼의 크기인데도 레비아탄의 시선을 붙잡듯 끌어 가, 절벽으로 향하던 머리가 주르륵 돌아갔다.

백사현이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는 게 보였다. 절벽 위의 마법사들이 백사현에게 부유 마법을 걸어 움직이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광역 도발 스킬, 그러니까 배우로서의 스킬을 사용한 것일 테다.

다만 이번에는 저번에 고블린에게 먹혔던 것처럼 확연한 효과는 볼 수 없었다. 그야 저런 도발 스킬도 몬스터의 급이 높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아주 잠깐, 바다뱀의 시선을 붙잡는 것에는 성공했다. 아주 작고 귀찮은 것이 눈가를 맴돌며 귀찮게 하니, 그 귀찮게 구는 날파리를 치우려 뱀의 꼬리가 움직이려 할 때.

“어림도 없다!”

아까 전부터 꼬리 부분에 달라붙어 있던 김성연 헌터 쪽이 근성을 발휘했다.

물론 공격이 외피를 뚫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가해지는 연격에, 이번에는 바다뱀이 제 꼬리 쪽을 귀찮게 하는 적을 물어 없애기 위해 머리를 쉭 움직였다.

꿈틀,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며 파도를 일으켰고.

높이 날아오른 이우연이 내 몸을 붙잡고 날아 허공에서 나를 떨어트렸다.

깡!

마치 쇠가 맞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철썩!

내 검에 후려 맞은 바다뱀의 머리가 바다 속 깊이 처박혔다.

님페의 바람을 사용해 머리를 밟고 다시 뛰어오르자 이우연이 다시 내 손을 잡고 그 위를 날았다.

급조된 것치고는 제법 호흡이 맞는 연격이었다.

“됐어!”

“이대로만 가자고!”

절벽 위에서 헌터들의 환호성이 들렸고. 이선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2팀, 실드 준비!”

하지만 나름대로 호흡이 맞은 이 일련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우연은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반대야.”

“오, 그래?”

“굳이 제사를 하겠답시고 시간을 끌 이유가 없어. 이 공략대로 충분히 잡을 수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대신 마석 광산은 반파될걸. 그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아까 이선 헌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지만 과연 이우연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제사를 치를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며? 오히려 광산이 파괴될 위험만 늘어나는 꼴이야. 광산은 리젠이 안 된다고.”

이우연이 그렇게 말하며 고갯짓으로 해안선 근처의 고래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 고래들은 어떻게 할 건데? 지금은 제한이라도 있는 건지 당장 덮쳐 오지는 않지만…… 시간을 더 끌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몰라. 정답이 있는데 왜 굳이 돌아가자는 거야?”

무엇 하나 틀린 말이 없어서 반박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역시 이상하게 사고방식이 잘 맞는다니까.

하지만 나도 내 의견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이우연과 말이 잘 통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와 나는 다른 점이 하나 있으니까.

“나도 네 말이 틀린 건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뭔가 걸리는 거라도?”

이우연이 눈치 빠르게 반문했다.

그래, 걸리는 게 있었다.

시스템이 제시한 ‘보스 몬스터의 처치’라는 조건이.

“진입하기 전부터 생각한 건데…… 이 던전 자체가 인간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다른 헌터들은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이유로 설득했다. 하지만 내가 양태원이 제시한 방안을 밀어 보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마석은 자유롭게 캘 수 있었고, 몬스터와 조우하더라도 굳이 처치하지 않아도 됐었어.”

하지만 마석을 자유롭게 캘 수 있다 보니 욕심이 생겨 길드들 간에 충돌이 일어났고, 업적치 욕심에 몬스터를 처치했다.

“그 결과가 저 보스 몬스터의 분노라는 거지.”

나는 이제껏 시스템에게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 그래서 정확하게 수치로 매기거나 결과값을 도출해 낼 수는 없어도, 경험적으로 확실해진 게 있다.

시스템이 인간의 본성을 시험한다는 것.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쪽이든 회피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어. 그런데도 결국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을 했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심연을 시험하려는 것 같은 저 시스템이…… 과연 당장 눈앞에 제시된 저 조건을 채우는 것만으로 클리어 판정을 해 줄까?

무엇보다도 헌터 측이 몬스터의 새끼를 죽인 만큼 저 몬스터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보스 몬스터까지 처치했다간 아무래도 거하게 엿 먹게 될 것 같단 말…… 이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바다뱀은 제 몸 위를 달려가는 인간 둘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날뛰고 있었다.

거센 물보라에 몇 번이고 몸이 쓸려 나갈 뻔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한편 물에 젖지 않도록 요령 좋게 비행하는 중인 이우연은 명백하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내 말이 과연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지를 점쳐 보는 듯했다.

나는 이우연이 내 판단을 믿을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뭐, 이것도 반반이겠군. 이우연이 의심 많은 성격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던전 공략에 집착하는 녀석이니 더더욱.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 위를 낮게 날던 이우연의 입에서 문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우리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처음 만났을 때?”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내가 처리하려다 망했던 거.”

“……그랬지.”

딱히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이 작게 몸서리를 쳤다.

“그때는 진짜 끔찍했었는데. 당신이 없었더라면 희생자가 더 늘어났을 거야. 어쩌면 클리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그랬을 수도 있겠지.”

휙, 이우연이 날갯짓을 한 번 했다. 금빛의 깃털이 거친 바다 위로 떨어져 물결에 녹아 사라졌다.

딱 한 번의 날갯짓 후에 이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신 감을 믿어 보자.”

승낙이 떨어졌다.

내심 긴장하고 있었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번만큼은 이우연이 동의하지 않으면 나도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가 힘들었다.

이제부터는 양태원이 제사를 무사히 치르기 전까지 보스 몹에게 최대한 상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이건 마법이 불가능한 나 혼자서는 버거운 일이니까.

이선을 비롯해 이우연처럼 진언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사는 필수적이었다.

내 옆을 날아가는 이우연이 윙크하는 것이 보였다.

“그럼 나한테 빚 하나 진 거다?”

“네가 진 빚을 하나 차감해 줄 순 있다.”

“와, 한마디도 안 져 주네.”

이우연의 날개가 크게 퍼덕였다.

“방금 내가 당신에게 뭘 건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한 이우연이 빠르게 위로 날아올랐다.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리게 했다.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점처럼 멀어졌다.

펑! 퍼펑!

동시에 마법이 바다뱀의 머리 주위에서 터져 나갔다. 이번에는 타격을 줄 의도라기보다는 명백하게 시선 돌리기 용의 화려한 불꽃이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축포처럼 불꽃이 터졌다.

불꽃이 마치 그를 위해 준비된 조명처럼 창공을 날아다니는 이우연의 얼굴을 비추었다. 황금빛의 날개는 그림으로 그린 배경처럼 보였다.

지금도 촬영을 지속하고 있다면 저게 분명히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비주얼 한번 대단하군.

‘나도 질 수는 없지.’

나는 님페의 바람을 발동시키며 힘껏 뱀의 몸통을 박차고 위로 날아올랐다. 검에 마력을 불어넣자 검날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길어졌다.

물론, 그래 봤자 이번 던전의 주인공은 따로 있지만 말이다.

‘잘 해 봐라, 양태원.’

그 제사인지 뭔지,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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