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30화
“뭐, 뭐……?”
“이게 무슨…….”
절벽 위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눈알을 굴리며 웅성댔다.
그리고 나도 혼란스러웠다.
어느새 동굴을 벗어난 양태원이 곧장 김성연을 찾아가서 냅다 주먹을 내지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맞은 김성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성연의 얼굴이 노기로 차올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어!”
“당신이!”
양태원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김성연에 비해 그 목소리가 감정에 짓눌려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 새끼 몬스터를 죽이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굴러가지는 않았잖아요!”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반사적으로 다시 검을 뽑아 들려던 순간, 내 옆에 날아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우연이 한숨을 뱉었다.
“쟤가 또 저러네.”
“또?”
예전에도 저런 적이 있었다는 건가? 그야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막 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 평소에는 까불긴 해도 나름대로 다루기 쉬운 편인데…….”
나로서는 이우연이 양태원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더 놀랄 노 자였다. 내 생각보다는 친한가?
“가끔 저렇게 진혼제를 지내고 난 직후에 저러더라고.”
“진혼제라면…… 그 새끼 몬스터의 제사를 치러서 저렇게 됐다는 거야?”
“맞아. 본인 말로는 무당 클래스 특유의 과몰입이라나.”
“과몰입……? 그게 뭐야?”
익숙지 않은 용례에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이우연이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잠깐 웃었다.
“제사를 치른 대상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고.”
나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 준 이우연이 양태원을 가리켰다.
“제사란 것 자체가 영혼을 위하는 작업이라서 그 분노와 슬픔에 공감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직후에는 그 감정이 가라앉지 않고 유지된대.”
그러고 보니 그 말대로였다. 지금의 양태원의 상태는 멀리서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눈에는 눈물마저 고여 있는 듯했다.
“그래도 저 정도까지는 아닌데 오늘은 좀 심한걸? 뭐, 보나마나 저 아저씨가 또 꼰대 짓을 했든가 그랬겠지. 그래서 펑, 하고 터진 거고.”
즉, 태원이가 저러는 건…… 새끼를 잃은 부모의 분노와 슬픔에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건가.
……하긴, 깊게 공감할 수밖에 없겠네.
“아까 그 새끼 몬스터를 죽인 걸 말하는 건가 본데…….”
대응하는 김성연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래, 이번 클리어에 자네 공이 큰 건 인정하지. 그렇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어쩔 건데? 그대로 성장하게 두었어야 하나? 인간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데?”
양태원에 비해 그를 마주하는 김성연은 냉정했다.
“정신 차리게. 무슨 환상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이야.”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이우연이 제 팔을 주무르며 나섰다. 나는 이우연을 흘깃 눈짓하며 물었다.
“뭘 하려고?”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김성연은 헌터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제법 커. 양태원이 어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아직 입지도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괜히 찍혀도 골치 아프지. 내가 김성연을 진정시킬게.”
결국은 태원이가 걱정되니 저 상황에서 빼내겠다는 말이었다.
이거 웃기네. 사이가 나쁜가 했더니 묘하게 챙기려 드는 게.
“아니, 그런 이유라면 나서지 마.”
하지만 재밌는 것과 별개로 나서려는 이우연을 팔을 들어 막았다.
멈칫한 이우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양태원의 말에 틀린 점이 있어?”
“뭐?”
“감정에 휩쓸렸다고는 하지만, 태원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김성연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몬스터는 결국 몬스터고,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몬스터를 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보아하니 양태원이 새끼 몬스터를 죽이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김성연이 새끼를 죽여 버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 상황에서는 김성연의 잘못이 맞다.
클리어 조건이 무조건 처치였다면 모를까, 상대가 공격 의사가 없는 새끼 몬스터인 데다, 양태원 같은 특수 클래스의 헌터가 있었다면 다른 클리어 루트는 없는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니.
“그렇지만 네가 나서면 태원이를 입 다물게 하고, 김성연은 가라앉혀서 중재하겠지.”
물론 이우연이 나선다면 상황은 좀 더 원만하게 굴러갈지도 모른다.
영원 길드의 간판인 이우연의 말이라면 김성연도 들을 수밖에 없고, 양태원은 불만을 가지겠지만 저 애도 감정이 가라앉으면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양태원은 제 힘과 김성연의 힘을 저울질할 거고, 자신이 약자라는 판단 끝에 속으로만 분을 삭이게 될 것이다.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이 던전의 최대 업적자가 양태원인 만큼 태원이의 의견도 존중받아야 할 점이 분명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이우연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건데?”
“본인이 정말로 공익을 위해 행동한 것처럼 말을 하시네요!”
그때였다.
나와 이우연이 대화하는 동안에 해안가에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언쟁이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특히나 양태원 쪽이.
“그렇게 말해 봤자 결국은 자기 업적치를 챙기려고 제 말을 무시한 거면서!”
참으로 바른 말이었다.
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감탄했다.
정곡이지 않은가.
그래, 아무리 말이 이리저리 길어져도 핵심은 저거였다. 정말이지, 바른 말을 하는 재주가 있구만.
다만 그 입바른 소리에 김성연의 얼굴이 더욱더 붉으락푸르락하게 달아올랐다.
본래 사람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정곡을 찔리면 그런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리고 보통, 저런 류의 인간은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이런 상황일 때 자신을 책하는 대신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 어린놈이……!”
분노에 찬 김성연의 팔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주먹이 쥐어졌다.
“이 나를 대체 뭘로 보고……!”
그래서,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탓!
나는 뛰어가고 있었다. 뒤에서 이우연이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내가 어딜 향해서 뛰어가고 있었냐면, 물론 김성연을 향해서였다.
님페의 바람을 사용하니 절벽을 몇 번 밟는 것만으로도 금방 해변에 도착했다. 고운 모래의 질감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퍽.
공중에서 뛰어내린 내 하중 때문에 발이 깊숙하게 모래 속에 묻혔다.
모래가 사방으로 튀었다.
한 번 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기 전, 김성연과 양태원 곁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김하현과 애매한 표정의 류세연이 보였다.
그리고, 양태원의 앞에서 김성연이 주먹을 들어 올리고, 허리를 뒤트는 것이 보였다.
그래, 주먹으로 맞은 것을 주먹으로 갚는다, 라. 꽤 마음에 드는 앙갚음이었다. 헌터쯤 됐으면 그 정도 성깔머리는 있어야겠지.
겨우 그 정도 수준이라면 고맙다.
나는 님페의 바람을 사용해 다시 한번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퍽!
“으아아아악!”
주먹을 들어 올리고 막 양태원을 치려고 했던 김성연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주먹에는 주먹으로?
미안하지만, 주먹보다는 다리가 세다.
내 발차기에 복부를 얻어맞은 김성연은 나가떨어진 채 좀처럼 바닥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양태원의 솜털 같은 주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위력이었을 것이다.
“함부로 손 올리지 마.”
나는 다리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면서 나동그라진 김성연을 향해 경고했다.
“누, 누나?”
양태원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리는 것이 등 뒤에서 들렸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며 낮게 속삭였다.
“너는 빠져 있어.”
저 애가 왜 저렇게 분노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이우연의 말처럼 양태원이 저런 놈을 상대로 괜히 엮일 필요는 없다는 것만큼은 찬성이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분노를 해소하고 상대방을 책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 뭐야. 김성연을 패려고 간 거야? 그럼 일만 더 커질 텐데.
이우연의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치워 버렸다.
내 말은, 태원이라면 모를까 김성연을 어를 필요는 없단 거지. 애도 아닌데 잘못한 놈을 뭐 하러 어르냐?
“우, 우와아……! 대박!”
“쩔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김하현과 류세연이 한 발짝 늦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마법사 클래스라는 게 여기서 티가 난다.
김성연이 엎어진 꼴을 본 김하현이 손으로 제 입을 가리는 게 보였다.
“솔직히 개사이다…… 읍!”
“조용히 해, 인마!”
류세연이 김하현의 입을 막는 게 보였다.
한편 방심하고 있었던 탓인지, 혹은 복부에 제대로 맞은 탓인지 내 발에 얻어맞은 김성연은 나동그라진 채로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복부를 부여잡은 채 뒹굴고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것 같은데, 그냥 한 번 더 밟아 버려?
“협회장님!”
“괘, 괜찮으십니까?”
“이런, 회장님!”
그때 절벽 위에 있던 헌터들도 해안가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헌터 하나가 겨우 바닥에 쓰러져 있던 김성연을 부축해 일으켰다. 김성연이 그 부축을 받고 그제야 겨우 비틀거리며 배를 움켜잡고 일어섰다.
얼굴이 아주 찌그러져 있었다.
엄살 부리고 있네, 그렇게 세게 안 찼는데.
“이게 무슨 짓이지?”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 전 양태원과 언성을 높일 때도 화가 나 있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픽 웃었다.
“무슨 짓이긴. 당하고도 몰라? 나한테 발로 까였잖아.”
옆에서 김하현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더불어 김성연과 나를 옹기종기 둘러싸고 있었던 헌터들 사이에서도 제각기 괴성이 터졌다.
“뭐, 뭐, 뭐라는 거야?”
“미쳤나 봐!”
그런 반응이 터지라고 일부러 지른 말이다만 너무 생각대로라서 외려 김이 빠질 정도였다. 대놓고 해 댄 도발에 김성연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일단은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할 셈인 건지, 그가 목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아무리 그쪽이 랭킹 1위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것 아닌가?”
“선?”
“그래, 나도 위치가 있는 사람이야! 다짜고짜 저 어린놈한테 얻어맞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갑자기 나를 폭행하기까지!”
오호라, 그렇게 나오시겠다.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저 수작을 모를 줄 알고.
“폭행?”
그거야 발로 깠으니 폭행이야 폭행이다만, 웃기고 자빠졌지. 내가 너 같은 놈을 타르토스에서 백 명도 더 넘게 만났단다.
그래서 지금 김성연이 하는 수작이 뻔히 보였다.
한국도 타르토스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다를 건 없었다.
한국에서 던전이 열린 지 겨우 5년. 이제야 슬슬 기반을 다져 가고 있는 시기이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을 테고, 이때 권력을 잡는 놈은 매우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다.
그게 돈이든, 지배력이든…… 혹은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그런 위치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 눈앞의 김성연이다.
그런데 막 제 위치를 밟아 다져 나가려고 하는데 시스템상으로 랭킹이 발표됐고, 심지어 그런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자가 9명은 존재한다.
아무리 랭킹이 업적순이라 강함을 증명하는 척도가 아니라고 해도, 보이는 순위가 낮은 이상 체면도 영향력도 구겨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구겨진 체면을 살려내려면 업적치를 올려 랭킹을 뒤집어야 하는데, 이 몇 달간 랭킹 순위는 변동된 적이 없었다.
어지간한 정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랭킹 순위를 바꿀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헌터에게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한다.
즉, 나다.
‘그 영향력이 꼭 좋은 관계일 필요는 없지.’
헌터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척대는 김성연을 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저런 식으로 피해자인 척하겠다, 그건가.
‘저쪽에서 녹화 중이고.’
김성연 옆에 선 헌터의 소매 안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인지를 흐리는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초점이 따라오고 있었다.
‘여론 싸움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여론으로 나를 압박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속셈이 너무 투명하게 들여다보였다. 겸사겸사 자신의 잘못도 덮고.
차라리 내게 부당하게 얻어맞은 것에 열이 받아 곧바로 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면 솔직함이라도 엿보였을 텐데.
그 와중에 김성연의 눈물겨운 호소는 계속되었다.
“아무리 내가 실수를 했더라도 그렇지, 그건 밖에서 제대로 절차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야. 자네 인터뷰 말마따나 법치 국가 아닌가?”
내게 원하는 반응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온다. 뒤에서 양태원의 불안해하는 숨소리가 들렸고, 숨을 헐떡대며 뒤늦게 도착한 이선과도 시선이 마주쳤다.
이선은 곧바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선이 멈칫하고서 입만 움직였다.
‘괜찮겠어요?’
나는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이번 김성연의 트롤링은 이선이 해결할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그건 이 던전을 나가 정부 차원에서 하게 될 일이고, 지금의 이 상황은 내가 해결하는 게 낫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시비를 걸어 시작된 싸움이기도 했으니까.
뭐, 이런 타입의 인간과는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이상하게 꼭 얽히게 되더라니까.
그래서 상대하는 법도 잘 안다.
“법치 국가라…….”
스릉.
나는 잠시 넣어 두었던 검을 뽑았다. 날카로운 소리에 주위 사람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고 나는 김성연의 목을 겨누었다.
길어진 검의 날이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고 김성연의 목에 가 닿았다.
폭거라면 폭거였다. 경악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사자인 김성연 또한 흠칫 놀랐다.
“이게 뭐 하는 짓……!”
“움직이지 마. 이보다 더 거슬리게 하면 진짜로 벨 생각이니까.”
“당장 협회장님에게서 그 검 치워!”
물론 김성연 근처에 있던 다른 헌터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김성연을 부축했던 헌터가 소매에서 빠르게 짧은 단도를 빼 들고 내 검을 쳐 내려 했다.
펑!
“으아아악!”
하지만 그는 내가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날려 보낸 마력구에 얼굴을 정면으로 처맞고 저 멀리 모래사장으로 날려 가 처박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나는 소지창에서 단검을 소환해 반대쪽 손으로 들어 주위를 겨냥했다.
“다음에는 이게 날아갈 거야. 나서려거든 잘 생각하는 게 좋을걸.”
마력구는 조절을 했으니 맞아도 조금 아플 뿐이지만, 단검의 날은 내가 조정할 수 없으니까.
“와…….”
“진짜 미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욕하고 경악할수록 좋다.
그게 내가 노린 바였다.
저런 놈이 내게 손을 떼게 하는 법?
저쪽에서 다시는 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날뛰어 주면 그만이다.
주위를 제압한 후 천천히 김성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당황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하, 베다니? 그게 무슨 헛소리…….”
“내가 못 할 것 같아?”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나 본데.
나는 아주 조금 더 검의 날을 늘렸다.
목의 살갗은 얇다. 목에 드밀어진 날카로운 날에 금세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난리가 났던 주변 헌터들이 더욱 경악하고 있었다.
“헉…… 저건 좀.”
“누, 누가 좀 말려…….”
“김성연 헌터,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 공략은 뒷전이고 마석을 몰래 빼돌리려고 했지.”
상황은 이선과 텔레파시로 연결된 이우연을 통해 이미 대충 전달받았었다. 베헤모스의 시체를 발견한 것보다도 기가 찬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공략대의 규칙을 어긴 것도 모자라서…….”
모두가 긴장해 숨소리를 죽이고 있는 와중에 내 목소리가 유독 뚜렷하게 퍼졌다.
“다른 클리어 방식을 제안한 헌터의 말을 그저 자신의 업적치를 챙기겠다는 이유로 묵살했고.”
이번 던전에서 확실히 알았다.
김성연은 완전한 악인은 아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정해진 규칙을 무시하고 타인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인간일 뿐이다.
흔하다면 너무도 흔한 사람.
인간들의 사회에서 많은 것을 쟁취하는 데 적합한 인간상.
이런 미친 세상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회였더라면 조금 욕먹고 말, 그런 흔하디흔한 사람.
하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헌터들 한 명 한 명, 모두와 시선을 맞추었다.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시선을 맞추는 사람도, 그저 눈을 내리까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당신들이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알아. 그래도 충고 정도는 해 두지.”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들의 귀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던전 안에서 의견이 틀어지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이익을 추구하는 것? 그것도 당연해. 목숨을 걸고 들어왔으니까.”
“…….”
“하지만 저렇게 제 이득만 추구하는 인간이…… 본인 외의 인간을 버리지 말라는 법은 없어.”
그러나 완전한 악인은 아니고, 아무리 흔하게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이라고 한들, 저런 인간과 동료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이 전장에서.
나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그러니까 조심해. 다음으로 무시하는 것이 당신의 목숨이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