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32화
제목 : [너튜브 방랑하는 구도자 전투 영상 뜬 거 본 사람?]
내용 : 주소는 여기 > nutube.be/qkdFkD
나는 오늘부터 써방명을 빙자한 놀림을 멈추기로 했음
방랑하는 구도자를 다시는 방구라고 부르지 마라
- 이 게시글은 1097319820번째 중복입니다.
- 어제부터 너튜브 인기 급상승 영상 들어서 내려오질 않네
- 저기 검 들고 몬스터 대가리 치는 게 방구라고 영상 도는 것 같긴 한데…… 루머 아님? 얼굴 보이지도 않던데 모자이크한 것 같아 개 신기
- 모자이크라기보다는 불투명도 올려놓은 것 같은 느낌
- 얼굴을 인지 불가하게 만드는 템이라니 진심 비현실적인 세계관이다
└ 스킬일 수도 있지
└ 몬스터가 나오는 세계에서 새삼스러운 말씀이시네요 선생님
- 뭐야, 이 영상 출처가 어디야?
└ ㅁㄹ어제부터 카톡으로 돌기 시작함
- 저 영상 찐임? 혹시 저 검이 ‘천부인’인 거임? ㄷㄷ
└ 다른 사람들 얼굴 다 찍힌 거 보면 영상은 찐인 듯 천부인인지는 모름
- 그 와중에 백사현 얼굴 개창백한 거 봐 ㅋㅋㅋㅋ근데 진심 무섭긴 하다
- 이 와중에 모나미 엔젤설 급부상중……
- 떨어지는 애는 누구야? 애기 같은디ㅠㅠ괜찮을라나
└ 저기 찍힌 사람들 다 헌터임 ㄱㅊ
- S급 몬스터 개무서워
- S급 몬스터 대가리를 검으로 후려치는 방랑하는 구도자님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헌터는 못 하겠다
- 니들 어제부터 방구 욕했던 헌터들 SNS 다 자물쇠 거는 거 봄?ㅋㅋㅋ역풍 오짐 ㅅㅂ 스킬빨은 무슨…… 실력 인증 오짐
└ 어허 방구라니 어디서 건방지게! 제대로 풀네임을 불러라
- 미친놈들 태세 전환 오져ㅋㅋㅋㅋㅋㅋㅋㅋ =3라고 부를 땐 언제고
└ 방랑하는 구도자님 이 새낍니다
- 우리나라 랭1이 이 정도였다니…… 미국 캡틴이나 러시아 홍차랑 붙여도 안 뒤질 듯
- 검사가 저렇게 세질 수도 있구나 대체 렙이 몇일까
└ 0원 길드장이 공식적으로 38이라고 했음 적어도 10렙은 차이날 듯
└ 10렙이 장난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차이 난다고?
└ 영상 보면 알겠지만 둘이 들어가는 딜량 차이 나는 거 장난 아니야
└ 35렙 이상부터는 1렙 올리기도 힘들다던데…… 10렙까진 아닐듯
└ 아니면 렙 차이가 아니라 방랑하는 구도자님 클래스가 검사가 아니라 특수 클래스일 수도 있지
└ 아니 이제 방구가 아니라 방랑하는 구도자 ‘님’ 됐어?
└ 렙이 비슷한데 클래스가 다른 것만으로 저 정도 딜량이 차이날 순 없음 기본 렙 차이가 있다는 거ㅇㅇ
- 이것이 우리나라 랭 1의 위엄이다……
- 보스몹 후려칠 때 손맛 느껴 보고 싶다 5초만 빌려줬으면
- 아 개궁금해 랭1은 그래서 얼마나 센 건데? 랭커전 함 열어 줘 국가배 열어 줘
- 현 1위 2위 3위가 검사, 마검사. 마법사네 진짜 재밌겠다
└ 적어도 모나미랑 붙어도 질 것 같진 않음 ㅇㅇ 장비빨은 좀 타겠지만
└ (이하 랭킹 1위와 2위의 화력을 비교하며 개쌈이 날 댓글입니다)
└ 어제부터 존나 싸워 진짜…… vs로 그만 싸워라 이것들아 다 인간편이야 ㅠㅠ 쟤네 적 몬스터라고~~
- 그렇게 단정할 순 없지 던전 안에서 헌터들끼리 업적치나 아이템 가지고 엄청 싸운다며
- ㅇㅇ맞아 모나미도 템욕심 많다는 소문 있던데 붙을 수도 있지
- 근데 다들 태세 전환 웃긴 거 나뿐임?ㅋㅋ실력만 증명된 거지 이상하다고 의문 제기된 건 아무것도 증명 안됨.
- 이 영상 보니 왜 국가적으로 검사 클래스 키워야 한다고 했는지 알겠다…… 저 S급 몬스터 자체가 마법공격이 잘 안 먹히네…… 물공타입 반드시 필요
- ㅁㅈ마법사 화력으로 안 먹힐 때 개 곤란하네
- 원래 파티 짤 때는 근딜 원딜 법사 보조 다 필요하지…… 고른 클래스 육성이 나라를 살린다……
└ 이거 조한율이 5년 전부터 외치던 거 아니냐?
└ ㅇㅇ검사 클래스 육성한다고 국가 아카데미에서 검사 과정 수료하면 헌터 생활 12개월간 포션 무료 지원이라고 했지
└ 이거 아직도 함?
└ ㅇㅇ하긴 함…… 개꿀 ㅇㅈ
└ ㅁㅊ이런 걸 왜 몰랐지
└ 천사는 모나미가 아니라 갓한율이샷다 역시 갓발자
- 근데 보면 볼수록 전투 영상 진짜 멋있다…… 역시 검사는 저런 맛인 것 같음
└ 보통 검사는 아닌 것 같은디……
- 그래서 1위님은 대체 뭐하시는 분이냐고요~ㅋ 정체는 결국 안밝힘 뭐가 찔리길래?
- 실력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정체를 숨기시는지 ㅋㅋㅋ정부 인사들이랑 무슨 커넥션이 있는지 궁금~
- 이미 증권가 찌라시로는 한차례 돌았다 카더라~ 숨길만해서 숨긴다던데 ㅋ
└ 네, 헌터들 사이 알력다툼 안 궁금해요~
- 사람들이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님 하면서 찬양하니까 난리치는 거 어느 쪽인지 너무 뻔하달까 ㅎㅎ
- 어제부터 지랄났네 어디서 단체로 몰려왔는지는 몰라도 댓글관리 ㅅㄱ
- 아무리 날뛰어도 어차피 이 영상은 전설이 된다~
* * *
“뭐야, 이거.”
나는 어디서 붕어빵을 파는 곳은 없나, 하며 무심코 켰던 사이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냐, 이 영상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아서 일단 클릭해 봤는데 정말이지 놀랄 노 자였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주소를 통해 동영상 사이트로 가 보니, 정말로 내가 레비아탄을 때려눕히는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던전 내에서 다른 헌터들이 찍었던 영상이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유출이 된 모양이었다.
그것도 한참 지지부진했던 전투 부분은 빼고, 처음에 내가 레비아탄의 머리를 후려쳤던 전투 장면만 편집되어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다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망토가 언뜻 찍혔네.’
바로 장비 해제하기는 했지만 영상이다 보니 몇 번이고 돌려 볼 수 있어 눈치채는 녀석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빨리 망토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도록 수단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나.
망토 없어도 질 생각은 없지만.
그나저나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 영상을 올린 건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촬영하는 건 분명 김성연 측 헌터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설마 김성연이 나를 엿 먹일 작정으로 올린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커뮤니티 반응이 모두 제법 긍정적이다. 오히려 그 전까지 부정적이던 여론이 거의 돌아서 있었다.
그 와중에도 공격적인 여론이 없지는 않았다만.
사실 전부 부정적이라고 해도 별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뭐……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내가 김성연을 발로 까 버리는 부분은 올라오지도 않았다는 부분은 여러모로 정황이 수상했다.
김성연이 올린 거라면 여론을 장악하려는 목적이었을 테니 본인이 억울하게 맞은 부분을 강조해서 편집해 올렸을 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내게 호의적인 편집이었다.
도대체 누가 올린 거지?
“뭐 재밌는 거라도 올라왔어요?”
소파에 산책이 끝난 강아지처럼 얌전히 앉아 있던 양태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런 양태원에게 대답해 주기도 전에, 부엌에서 막 끓인 떡볶이를 담은 냄비를 가지고 오던 이우연이 타박을 해 댔다.
“너는 그런 거 참견할 시간에 미리 테이블에 매트라도 좀 깔든가, 해야지. 이대로 냄비 놓으면 테이블이 눌어붙잖아. 왜 이렇게 주변머리가 없어?”
잔소리가 아주 대단했다.
양태원이 뻘쭘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알았다고. 못 봐서 그래!”
“수저랑 앞접시도 가져와.”
“그게 어디 있는데?”
“부엌에 가면 어련히 있겠지. 아무거나 골라 와.”
그리고 양태원이 시킨 대로 앞접시와 수저를 가져오자마자 이우연이 대번에 쌍심지를 켜고 바라보았다.
“물도 떠 와야지. 냉장고 안에 보리차 있어.”
“이씨. 한번에 말하면 한꺼번에 가져올 거 아니야!”
“네 손이 세 개나 되는지는 몰랐네. 그랬으면 로프를 좀 더 잘 잡았을 텐데 말이다.”
“악! 이우연 짜증 나!”
그러니까 사이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참고로, 여기는 내 집이다.
왜 나도 가만히 있는데 저 녀석이 주인 행세를 하며 양태원을 부려 먹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야 떡볶이를 본인이 하기는 했다만.
이우연이 나무 주걱으로 냄비를 한 번 더 휘저어 내 앞접시에 떡볶이를 덜어 주었다.
“수고했으니까 많이 먹어. 오늘 하루 종일 힘들었지?”
“딱히. 그냥 앉아서 이야기만 했는데.”
오늘 나는 일명 마석 던전에서 3일 전에 일어났던 김성연과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조사차 검찰청 헌터 관리 특수부에 다녀왔다.
검찰청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는데, 헌터 직업군의 경우 그 특수성을 감안해서 다툼이 일어났을 때는 검찰이 직접 수사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기 전까지는 조금 긴장하긴 했다. 나 같은 일반인이 검찰청에 갈 일이 있었을 리가.
그런데 의외로 검사의 심문이 그리 혹독하지가 않았다.
아니, 혹독하지 않았다기보다도…… 어떻게든 내 행동을 포장하고 좋은 부분을 과대 해석해서 기록할 생각이 만만이었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신원 보호 차원에서 심문할 때 일체의 기기를 꺼 둔 상태로 진행했다.
내 접시에 라면 사리를 덜어 주던 이우연이 코웃음을 쳤다.
“하기야 정부 소속이 될지도 모르는 1위인데 귀하게 모셔야지. 검찰 쪽은 특히나. 헌터 협회랑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
“왜? 세금이라도 떼먹었나?”
“그것도 그렇지만, 상장한 후 기업으로서 사업을 하려고 하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독점 사업이나 다름없으니 국가 기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견제를 해야…… 물 흘렸잖아.”
“닦으면 될 거 아냐!”
진지한 대화를 하다가도 태원이가 컵에 담은 물을 바닥에 좀 흘렸다고 야단이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이우연은 부르지 말 걸 그랬나.
내 집에 이 둘이 모이게 된 경위는 이랬다.
3일 전, 던전에서 있었던 일로 양태원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너무 시무룩해하기에 네 탓이 아니라고 설명도 해 줄 겸, 제주도에 다시 내려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일 겸 부르기는 불렀는데, 막상 부르고 나니 내가 말재주가 별로 없는 터라 아무래도 원군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만만한 게 이우연이었다.
이렇게 잔소리하는 걸 보면 아주 애를 잡지 못해 안달이긴 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던전에서 양태원을 챙기는 걸 보기도 했고.
어쨌든 이우연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김숙자 교수님 말대로, 내가 아직 어떤 소속도 아니라는 점 때문에 저쪽에서 호의적으로 나온다는 말이 된다.
더불어 아마 김성연이 이렇게 물을 먹어 놓고도 영원 길드를 비롯해 헌터 협회가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내놓지 않는 것 또한 추측하건대, 아마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김성연과 틀어지기는 했으되, 다른 길드들이 나와 척을 지는 걸 바라지는 않기 때문에.
또한…….
나는 양태원의 앞접시에 떡볶이를 퍼 담고 있는 이우연을 곁눈질했다.
현재 헌협이 가만히 있는 건 영원 길드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이우연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있겠지. 빤한 일이었다.
만일 내가 김성연을 패러 달려들었을 때 이우연이 나를 막아섰다면 판도는 꽤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현재 아이템의 힘을 빌지 않은 내 능력치로는 이우연을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이우연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저 녀석은 그 싸움에 참견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내 편을 들었고, 그게 결국 헌협의 침묵을 이끌어 냈다.
결국 어느 정도 이우연의 도움도 받은 셈이다.
다만 영 찝찝했다.
‘저 녀석의 진짜 목적이 뭘까.’
단순한 호의? 아니면, 김성연을 견제하려는 의도였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김성연의 입지가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길드 내에서의 본인 입지는 더 올라갈 테니까.
이우연과 제법 친해진 것도 사실이고, 그가 내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상하게 언제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친밀감과 별개로 속내를 알기 힘든 건 여전했다.
“진짜 죄송해요, 누나.”
상념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양태원이 말을 거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양태원은 젓가락도 들지 못하고 상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검찰청까지 갔다 오시고…… 제가 조금만 더 신중했어도…….”
“아니, 네 탓 아니라니까. 내가 짜증 나서 지른 거지.”
3일 전부터 계속 저 소리였다.
던전에서 빠져나온 후에는 내내 화가 나서 씩씩대더니, 한 3시간쯤 흐르니까 죽을 것처럼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날에는 좀 진정하고 피곤할 테니 쉬라며 바로 묵고 있는 숙소에 집어넣었는데, 그 후로도 내내 저런 식이었다. 아무리 네 탓이 아니라고 말을 해도 먹히질 않았다.
이우연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그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양태원, 네가 그런 사고를 안 쳤어도 빠르든 늦든 강예나가 검찰청에 불려 갈 만한 일은 한 번 터졌을 거야. 저 성격을 봐.”
“사, 사고…….”
“물론 네가 사고 친 건 맞지. 강예나가 더 큰 사고를 쳐서 묻힌 것뿐이고…… 아파! 사실은 사실인데 왜 그래?”
그러니까 애를 달래라고 불렀더니 왜 팩트 폭격을 하고 있냐고. 이우연이 쥐어박힌 옆구리를 문지르며 내키지 않는 기색이나마 입을 열었다.
“김성연이 잘못한 게 맞아. 던전 내에서, 특히 너 같은 특수 클래스의 헌터 의견을 무시한 시점에서 비판받아야 마땅한 일이었어. 어리다고 마냥 무시하면 안 되지. 던전 내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클리어와 생존이니까.”
“그럼…….”
“그렇지만 이번에 한 것처럼 무작정 들이받으면 안 돼. 네 의견은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게 과연 효율적이었을까? 다른 헌터들의 반발도 샀을 텐데, 그걸 너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
“…….”
아직 사회의 쓴맛을 보지 못한 꼬맹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고개를 끄덕일 만큼의 대담함은 없었는지 양태원은 불쌍할 만큼 졸아붙었다.
냄비 바닥에 붙은 라면사리 같았다.
나는 일단 끼어들어 보았다.
“일단 밥이나 먹고 이야기…….”
“당신도 가만히 있어. 언제나 얘 옆에 붙어서 뒤치다꺼리를 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끼어들려고 하다가 나도 혼났다. 심지어 맞는 말이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나는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우연이 팔짱을 꼈다.
“강예나 이야기가 정론이긴 해도 현실은 실전이지. 헌터 일을 할 거라면 너 나름대로 보호 수단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어. 그게 힘이든, 입지든 간에.”
“……네에.”
양태원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래서야 눈물 젖은 떡볶이를 먹겠는데…… 라면 사리가 불었다는 걸 언제 지적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우연이 한 번 더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이제껏 맺혀 있던 짜증이 한결 풀어진 숨이었다.
“……물론 김성연 같은 놈들을 빨리 쳐 내야 하는 게 네 선배들의 몫이긴 하지. 그런 면에서는 이번 사태에 내 책임도 있어. 좀 유용하다고 방치했으니.”
저건 좀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우연이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김성연을 저 자리에서 언제든지 쳐 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패기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본인 잘못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저런 말을?
내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자 이우연이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렇게 봐? 내가 이 얼간이보다 헌터 업계에서 선배인 건 사실이고, 제법 입김이 통하는 위치란 것도 사실이지.”
“본인 얼굴에 금칠을 하네. 안 그래도 번쩍번쩍한 편인데.”
“랭킹 2위가 된 이상 내가 가진 영향력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사라지는 게 아니어서 말이야. 이런 게 바로 자리가 가지는 무게라는 거랄까.”
“……그거 나 들으라고 소린가?”
“어이쿠, 설마요~ 제가 설마 그러겠어요?”
“…….”
애 좀 어르라고 불렀더니 잔소리를 하지 않나, 심지어 나한테까지 충고를 하려고 들다니. 태원이만 없었어도 주먹다짐을 해서 저 건방진 녀석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 주는 건데.
하지만 주먹을 들기도 전에 이우연이 실실 웃으면서 먼저 라면 사리가 불었다고 지적했다.
“자, 이제 됐지? 나한테 한번 대차게 혼났으니까 이제 털어 버려. 괜히 질질 짜지 마라. 그 꼴 봐 주는 것도 짜증 난다, 진짜.”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양태원이 고개를 확 쳐들었다.
“내가 언제 울었다고! 운 적 없거든?”
나는 이우연을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둘이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도통 모를 일이었는데 이제 좀 알겠다.
이우연이 양태원을 챙겨 주는 건 사실인데, 챙겨 주다가도 이렇게 꼭 한두 마디씩 애가 듣기에 성질 돋우는 소리를 해서 태원이가 대들곤 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저것조차 이우연의 배려라는 걸 깨닫기에는 양태원이 아직 어렸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너 나한테 혼날 때마다 콧물 흘리면서 울잖아.”
“안 그랬다고!”
“안 그랬다고~.”
“아, 좀! 따라 하지 말라고!”
“…….”
더불어 이우연이 약 올리는 솜씨가 탁월하기도 했고.
유치하지만 아주 효율적으로 짜증 나게 하는군.
어쨌든, 내가 없어도 양태원을 챙겨 줄 만한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 이후로는 별일 없이 두 사람이 아옹다옹하는 것을 보면서 식사를 마쳤다.
참고로 떡볶이는 아주 맛있었다.
쓸데없이 요리까지 잘하는군. 심지어 식후에는 미리 사 온 딸기 라떼까지 입에 물려 주었다.
이 자식, 혹시 전생에 프로 집사였던 건 아닐까?
“그러니까 게임할 시간에 근력 운동이나 좀 더 하라고. 팔 근육이 없으니까 겨우 그깟 절벽도 못 타는 거 아니야.”
“아, 알았다고. 헬스장 끊는다니까?”
“겨우 그런 걸로 되겠어? 강남에 헌터 전용 체육관이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배는 부르고, 입에는 단 것도 물고 있고, 딱히 덥지도 춥지도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안심할 수 있고.
하지만, 결코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우연의 머리 너머로 떠올라 있는 시스템창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
-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운명의 씨앗(상태 : 발아 전)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창이야 마석 던전을 나온 다음 진작 확인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다만 그 마석 던전이 시스템이 지정한 미공략 던전이라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보상인 ‘운명의 씨앗’의 상태가 문제였다.
발아 전이라니? 정소현 때만 해도 이런 말은 없지 않았나.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이어지는 상세 설명이었다.
- 운명의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던전의 프로그래밍이 필요합니다.
- 시스템이 ‘특별 관리 대상’에게 조언을 제공합니다.
- TIP : 플레이어, ‘조한율’과 대화
조한율.
내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알게 된 랭킹 5위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