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34화
조한율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여성치고도 높은 소프라노에 속했다.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어투였다.
“번호는 진작 드렸는데 이제야 연락을 주시다니.”
그 일부러 천진한 것처럼 꾸미는 어투가 더 짜증이 치솟도록 만들었다.
나는 당장에 검부터 뽑아 들었다. 에이펙스의 광검이 내 불쾌함을 대변하듯 부드럽게 검집에서 뽑혔다.
조한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로,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뽑힌 검을 바라보았다.
“와, 저게 ‘에이펙스의 광검’이로군요. 그땐 검집에 든 것만 봤는데, 이렇게 실물을 보다니.”
더 대화를 이어 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 정도로 눈앞의 인물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분명 인간인데도 인간이 아니라 마치 시스템처럼, 무언가 인간을 관조하는 정체불명인 상대로 보였다.
“……뭐하는 작자지?”
“조한율입니다. 저번에 뵈었는데요.”
“저번에 본 거랑 얼굴이 다른데.”
인지를 흐리는 아이템을 착용했을 거란 예상과도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내 ‘은의 장막’은 상대방이 내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게 할 뿐이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조한율은 그때 본 것과 명백하게 너무도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조한율이 고개를 기울였다.
“아, 그때 사용한 스킨이 마음에 드시나요?”
그 말과 동시에 조한율이 제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손이 떨어진 순간, 얼굴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화려하게 염색한 머리뿐, 저번에 보았던 얼굴이다. 서른 중반 즈음으로 보이는, 맑은 눈망울 외에는 특기할 것이 없는 얼굴.
별다른 마력의 흐름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이 아니야. 그럼 아이템?’
변신 마법을 주로 쓰는 마법사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마법 시전은 어려울 텐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지 않았더라면 소름이 돋아 검을 놓쳤을 것이다.
대체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벌써 이따위 잡기에 기세로 압도당해서야 할 말이 없다.
“헛소리 집어치워. 마음에 들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생각보다 더 과격한 성격이시네요. 하긴 그쯤 되어야 ‘특별 관리 대상’의 이름값을 하죠.”
더 말을 들을 것도 없다. 나는 뽑아 든 검을 조한율을 향해 겨누었다.
한참 떨어진 거리였으나 내 검은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뻔히 안다는 듯 조한율이 웃음을 베어 물었다.
“용사의 검에 베여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듯싶긴 한데.”
내 클래스를 아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릴리스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역시나 적이다.
소원대로 검날을 늘려 단숨에 조한율의 목에 갖다 대었다. 서늘한 검날에서는 인간의 촉감이 느껴졌다. 검날이 파고든 피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흰 셔츠에 피가 배였다.
명백하게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태평하게, 조한율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차라리 의아해졌다.
“혹시 목숨이 9개쯤 더 있나?”
“놀랍게도 제 목숨은 하나밖에 없어요. 인간이 으레 그런 것처럼. 저도 아쉬워하는 부분이죠.”
“그럼 내가 베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베지 않는 게 더 나을 테니까요.”
조한율은 겁도 없이 검날을 검지로 밀어내려 하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나는 검을 거두지 않았고, 조한율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하시네. 저는 처음 만났을 때 꽤 호의적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그랬다. 그게 의도를 품은 만남이었다는 사실을 배제하면 말이겠지만.
나는 질문했다.
“왜 내가 널 베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단서다운 단서를 얻지 못했는데도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를 죽이면, 과연 시스템이 다음 팁을 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스템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거, 아시잖아요?”
우스울 정도로 유들한 답변이었다.
“반론을 하지. 첫 번째.”
나는 검을 쥔 손에 좀 더 힘을 주었다.
“나는 그쪽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저번에 만났을 때 왜 조한율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가 의아할 정도로 내가 질색하는 타입이다.
의뭉을 떨고, 자신은 이 상황의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관조적으로 구는 것. 게다가 평범한 알바생으로 위장해서 나타난 연출까지.
이우연도 마찬가지로 의뭉을 떠는 성격에 연출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는 적어도 제 목숨과 타인의 목숨이 걸린 일에는 놀라울 정도로 필사적이다.
그게 차이점이고.
“두 번째. 어차피 시스템도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 이런 식으로 구는 거겠지. 그러니 널 죽이더라도 다음이 있을 것 같은데. 충분히.”
“시스템의 특성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뭐, 이해는 해요. 강예나 씨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죠.”
뭘 이해한다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이해해? 나를? 대체 너 따위가 뭘 안다고?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조한율의 목이 좀 더 깊숙이 베였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잘릴 것 같았다.
하지만 조한율은 여전히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죽이지 않는 걸 추천드려요. 다음에 올 GM…… 운영자도 강예나 씨에게 호의적일지는 모를 일이니까.”
“뭐?”
방금 뭐라고 했지? 이상한 단어가 들린 것 같은데.
내 물음에 조한율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운영자요. 저는 이 시스템상에서 대한민국 서버의 운영자거든요.”
“무슨 개소리를…….”
“그래서 제가 죽으면 다음 운영자도 인간 플레이어 중 무작위로 지정되긴 할 건데, 그야말로 무작위라서요. 지금 밸런싱 작업을 가장 크게 해치고 있는 강예나 씨에게 호의적일 운영자는 별로 없을걸요.”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쏟아지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했다.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였다.
‘운영자?’
방금 조한율은 본인을 운영자라고 불렀다. 저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다가 가장 귀에 거슬리는 부분을 질문했다.
“내가 밸런싱 작업을 해친다고?”
그렇게 묻자 조한율의 낯에 언뜻 피로한 기색이 스쳤다.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난다는 어투였다.
“네,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주범이시죠. 덕분에 제가 아주 곤란해요. 처음에 뵈었을 때는 이 정도로 빠르게 회복하실 줄은 몰랐는데.”
“내가 대체 무슨 밸런스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건데?”
“그야 물론 대한민국 서버의 밸런스죠. 플레이어와 던전의 레벨이 적절하게 맞아야 하는데, 당신이 플레이어 측의 레벨 평균값을 한없이 올려놓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조한율이 허공에 손가락을 뱅뱅 돌렸다.
“최근 던전에 출현하는 몬스터 레벨이 갑자기 높아진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으세요?”
“…….”
짚이는 구석이 많아 나는 침묵했다.
그야, 그런 생각을 했다.
만나는 족족 S급, 심지어 SS급도 있었으니까. 내가 돌아오기 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던전의 평균적인 난이도와 비교해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난도였다.
그런데 그게 나 때문이었다고?
“그럼 네가 플레이어의 레벨에 맞추어서 던전 난도를 올리고 있다는 거야?”
“음, 그건 좀 적절하지 않은 표현 같네요. 저는 그냥 힘없는 단말기에 불과한 존재거든요.”
“단말기라고?”
“네, 제 권한은 아주 적어요. 말했잖아요. 저는 그냥 인간이라니까. 제가 하는 건 플레이어의 진행 편의 작업 정도예요.”
“운영자라면서.”
“그러니까,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즉…… 나는 이제껏 조한율이 한 말을 정리했다.
“그럼 너는 지금…… 그냥 시스템과 인간 사이의 조정자라는 거야? 그것도 무작위로 선택된?”
“드디어 이해하셨군요. 바로 그거예요.”
조한율이 한숨을 쉬었고, 나는 망연히 물었다.
“그럼 대체 시스템은 뭔데?”
운영자라고 하기에 나는 조한율이 이제껏 내가 느꼈던 시스템 뒤의 무언가…… 어떤 정체 모를 인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한율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도 그냥 운영자일 뿐. 강예나 씨랑 딱히 다를 것 없는 입장이라니까.”
심지어 나처럼, 시스템의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은 듯했고.
나는 쉽사리 믿지 못했다.
그게 조한율의 눈에도 보였는지 검을 겨누었을 때도 보지 못한 짜증이 서렸다. 아주 지긋지긋해 보이는 기색으로 조한율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올랐을 법한 위치였다.
“강예나 씨도 딱히 선택을 받아서 던전 안으로 끌려간 건 아니잖아요. 그냥 우연히 그 자리로 끌려갔고,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뿐이지.”
“그건…….”
“그러니까 저나 강예나 씨나, 딱히 다를 거 없이 비슷한 입장이라는 거예요. 시스템에 휘둘리고 있을 뿐인, 그냥 살아남으려고 발악 중인…… 그냥 인간.”
저걸, 믿어도 될까.
그런 확신은 아직 들지 않았다. 다만…….
“……거짓말 같지는 않네.”
진실 여부와 별개로 적어도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 정도 감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조한율의 목에 댔던 검을 회수했다. 그러나 검집에 넣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도록 준비한 채였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지 조한율이 씩 웃었다.
“납득하셨다니 다행이에요. 통각 설정을 꺼 놓기는 했지만.”
“그런 것도 조절할 수 있다고?”
물으면서도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야 시스템이 인간을 ‘플레이어’라고 부른다거나, 상태창과 스킬, 혹은 던전이나 몬스터 출현 방식, 그리고 서버 등의 단어를 보면 마치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조한율이 언급하는 ‘운영자’라는 존재 자체는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인 이상, 조한율이 입에 올리는 ‘설정’ 등의 단어에는 거부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한율은 여전히 태연한 어투로 말했다.
“GM…… 저는 편한 대로 그렇게 부르는데, 하여튼 운영자로서의 소소한 특혜죠. 일반 플레이어들이 임의로 끌 수는 없어요. 대신 특성 효과로 느끼는 고통이 감소되는 효과는 볼 수 있고…… 강예나 씨 특성이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내 특성도 알고 있다고?”
“네, 랭커들은 대부분 꿰고 있죠. 예나 씨는 ‘관철하는 아귀’였던가? 상당히 고집이 세신가 봐요. 한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한 번 보는 데 만 원 정도 들 것 같은 타로 점처럼 들리기는 하는데, 저건 진짜 내 상태창을 보고 말하는 거라 소름이 돋았다.
태원아, 너 폐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증명할 수 있나?”
“강예나 씨가 처음 대한민국 서버에 돌아왔을 때 일어난 서버 간 마찰 안정화 작업을 누가 했다고 생각하세요?”
마찰 안정화 작업.
그 단어는 무척이나 익숙했고, 조한율의 말을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안정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와 서버 : 대한민국의 마찰이 안정화되었습니다.
그건 정말로…… 시스템 메시지에서만 떠올랐던 것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어쩐지 모를 허탈함이 어깨에서 힘을 빼게 만들었다.
“……진짜 운영자인지 뭔지, 그게 맞나 보네.”
저건 나와 같은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죽어도 알 수 없는 정보였으니까.
조한율이 피가 배인 제 옷자락을 엄지와 검지로 문지르는 것이 보였다.
“믿어 주셔서 다행이네요. 그래야 다음 단계의 대화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다음 단계?”
“그럼 설마 제가 심심해서 강예나 씨를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저도 나름대로 바쁜 사람입니다. 강예나 씨가 저지르는 일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말하는 어투가 연기로도 숨길 수 없을 만큼 뾰족했다. 거기에는 이제껏 조한율이 애써 내비치지 않으려 했던 적의가 삐죽하니 솟아 있었다.
“날 싫어하는군.”
“제 입장에서 강예나 씨를 좋아하기는 어렵죠.”
조한율은 딱히 부정하지도 않고 선선히 인정했다.
“이 몇 달간 강예나 씨 때문에 저는 비상사태였다고요. 다른 서버 시스템의 간섭을 받고 있는 상태라서 사사건건 마찰이 일어나서 던브는 터지지, 그거 안정화 시켜 놨더니 그쪽 때문에 플레이어 능력 평균값 수치는 오르지…… 근래에는 제대로 잔 날이 드물어요.”
“잠깐만. 다른 서버 시스템…… 타르토스를 말하는 거야?”
깜짝 놀라 묻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한율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부터 물으시네요. 서버 이름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강예나 씨가 다녀온 세계의 이름이라면 아마 맞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조한율이 손을 내밀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손짓 같았다.
내가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자 여자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이 있으시죠? 그거, 제가 살펴보게 주세요.”
“내가 뭘 믿고…….”
“시스템상으로도 저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하지 않던가요? 시스템은 절 NPC 취급하던데.”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소지창에서 운명의 씨앗을 꺼내 들었다. 시스템상으로 조한율과 대화를 나누어 보라는 조언이 뜬 건 사실이었으니까.
운명의 씨앗은 손바닥 하나를 빠듯이 채울 만큼의 크기였고, 정말 그 이름대로 아직 발아하지 못한 씨앗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갈색 빛의 씨앗을 받아 든 조한율이 무심한 기색으로 그것을 살폈다.
“이런 형태군요.”
“운영자라면서 왜 처음 보는 것처럼 구는 거지?”
“실물은 처음 봐요. 제게 보이는 운영자 전용 창을 보여 주고 싶을 정도네요. 저한텐 그냥 아이템 이름만 뜬다고요. 제대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하나도…… 아,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조한율이 혀를 찼다. 조한율의 시선이 허공을 빠르게 훑는 것을 보니 아마도 시스템 메시지가 뜬 모양이었다.
“이거 또 일을 몰고 왔네. 이게 구현될 만한 던전을 새로 짜라고? 사람을 진짜 NPC로 아는 거야, 뭐야. 개 같은 시스템 놈…….”
그렇게 말하는 조한율의 양손이 허공을 이상하게 두드리는 것이 보였다.
저건 또 뭘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이제껏 조한율이 했던 그 어떤 말보다도 욕설에서 가장 진실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는 조한율을 찬찬히 살폈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완전한 적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판단을 내리려면 좀 더 정보가 필요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힐링 계열 마법사라던데…… 그건 사실인가?”
“아뇨.”
조한율이 당연한 것처럼 부정했다.
“포션을 대량 생산해도 그럴 듯하게 봐 줄 만한 직업이 마법사였을 뿐이에요. 플레이어들이 너무 빠르게 ‘생각보다 많은 직업군이 있구나,’라고 인식해 버리면 시스템이 ‘득’이라고 판단해 버리니 어쩔 수 없었죠. 물론 워낙 아이템 개발에 치중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별명이 붙긴 했는데…….”
“그래서, 실제로는 무슨 클래스라는 거야?”
그렇게 묻자 조한율이 픽,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운영자가 될 만한 플레이어가 대체 무슨 클래스일 것 같아요? 너무 뻔하지 않나?”
“…….”
다시 검을 뽑을까, 고민하는 찰나에 흉흉한 기색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조한율이 빠르게 대답했다.
“운영자가 되면 전용 스킬이 생겨요. 시스템의 코드화죠.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에 어느 정도 간섭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기본 체계를 뜯어고칠 수는 없지만.”
“코드?”
“아, 한국에 오래 안 계셨었지. 그래도 알지 않아요? 코드. 컴퓨터의 기호 체계 말이에요.”
그 말에 나는 조한율의 손가락이 어떤 의미를 갖고 움직이는지 깨달았다.
조한율은 내게 보이지 않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가 별로 개운하지 않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제 클래스는 프로그래머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