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35화
나는 오래 침묵했다.
프로그래머…… 물론 대충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영 인연이 없는 단어였다.
대학교까지 갔더라면 조금 달랐을 수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겨우 마쳤던 몸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별반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내뱉는 말에는 자신감이 도통 없었다.
“……프로그래머라고?”
조한율이 혀를 찼다.
“와, 그래서 그게 뭔데? 하는 뜻인 거 잘 알겠어요. 강예나 씨가 오랫동안 계셨던 다른 서버에는 ‘프로그래머’가 없었나 보죠?”
“그거야…….”
애초에 프로그래머라는 것 자체가 컴퓨터라는 게 발명된 이후에 만들어진 직업 아닌가.
타르토스는 컴퓨터는커녕, 검과 마법이 발달했다 뿐이지 대체적으로 중세 시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프로그래머 따위의 직업이 있었을 리 없다.
잠깐만, 그렇다면 그쪽 세계에서는 조한율 같은 운영자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을 말로 꺼내기도 전에 조한율이 답했다.
“강예나 씨 반응을 보니 프로그래머는 없었던 것 같네요. 그러면 분명 다른 형태로 운영자가 존재했을 거예요.”
“방금 전에는 운영자가 될 만한 클래스라면 빤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야 우리 한국 기준이고요.”
돌아오는 대꾸는 아주 새침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조한율의 인상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조금 소탈하고, 남을 배려하고…… 그건 전부 꾸며 낸 모습이었나?
“저처럼 시스템을 코드화시키는 대신 다른 형태로 보고, 간섭하고, 인간과 인간이 대적하는 재앙의 수준을 조정하며 갈려 나갔겠죠.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 클래스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긴 하네요.”
“어떻게 운영자의 존재를 확신하는 건데?”
“그야, 시스템은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간섭하는 걸 피하는 것 같더라고요. 강예나 씨는 못 느꼈어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나도 느꼈던 점 중 하나였다. 시스템이 직접 간섭할 수 있다면 나를 ‘특별 관리 대상’으로 두고 안정화를 꾀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더 이상 할 말을 쉽사리 찾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는 동안, 조한율은 넉살도 좋게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어느새 챙긴, 텀블러에 담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함께였다.
아니, 저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맞긴 한가? 내가 아는 보통의 커피보다 훨씬 더 시꺼먼 색인 것 같은데. 대체 샷 추가를 몇 번이나 한 거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저 작업을 좀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작업?”
“말해도 모르실 것 같은데요. 보니까 이과 계통은 아니신 것 같은데.”
나도 어쩔 수 없이 조한율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조한율의 손가락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조한율의 시선은 여러 군데를 오갔다. 솔직히 허공에서 저러고 있으니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잘 안다는 듯, 조한율이 잠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강예나 씨 부탁을 들어주려고 이러는 건데, 그런 시선은 좀 실례가 아닌가 싶네요.”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내 부탁이라고?”
“그럼, 부탁이죠. 강예나 씨는 이 아이템을 활용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저는 이걸 활용할 수 있게끔 장소를 코딩해야 하겠죠.”
조한율이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운명의 씨앗을 건드렸다.
저걸 얻으려고 누구는 S급 몬스터까지 쓰러트렸는데 저리도 하찮게 취급하다니.
“짧게 설명할게요. 저는 제 이해 범위 안에서 모든 시스템 상의 아이템을 코드화하고 현실에 구현할 수 있어요. 포션 대량 생산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드디어 한국에서 어떻게 포션 대량 생산이 가능한지, 그리고 어찌하여 싼 가격에 유통이 가능한지 그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의아했다.
“그런 걸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고?”
“물론 아무렇게나, 는 아니죠.”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자못 단호했다.
“포션 대량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대신 미공략 상태 던전 세 개의 보스 몬스터가 S급으로 조정되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A급 몬스터 출현 최대 범위가 50마리 늘었어요.”
위험한 소리를 아무렇게나 한다. 저게 조한율이 말하는 밸런싱 작업이라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포션을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다고는 해도, S급 보스 몬스터 던전이 3개씩 늘어나고 A급 몬스터가 떼를 지어 나오는 걸 감수해야 하다니.
지금 대한민국의 헌터들 수준으로 그 정도 던전을 클리어하기란 그야말로 아슬아슬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깨달았다.
아주 불가능하다고도, 그렇다고 완벽히 해낼 수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정말이지 시스템이 할 법한 짓이었다.
정말 절묘한 밸런스였다.
그런데 그 밸런스를 조정한 게 조한율이라고.
내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보자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조한율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꼭 필요한 시설이었어요. 한국은 성직자 클래스 발현도 늦고, 힐러들이 너무 부족해서 포션이라도 공급하지 않으면 헌터들의 숫자 유지가 안 됐다고요. 자체적인 포션 개발을 기다렸다가는 한국의 3분지 1은 아작 난 후였을걸요. 그렇게 되면 접히는 핸드폰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겠어요.”
“본인 선택에 대해 굉장히 확신하는 것 같네.”
“저는 이게 최선이었다고 믿으니까.”
딱히 그렇게 확신하는 것 같지도 않은 말투로 조한율이 한 번 더 말했다.
“분명히, 이렇게 했어야 했다고요.”
그건…… 과연 어땠을까.
아마 그 답은 조한율 본인도 모를 것이다. 방금 전 자신이 말한 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도 몰랐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저건 마음속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수없이 의심하고 있는 듯한 표정과 어투였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억지로라도 확신이 있는 척 말하는 거겠지.
혹시라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지금 본인이 디디고 선 발밑이 무너질 테니까.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나는 조한율이 정말로 본인이 말한 것처럼 나와 같은, 그저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꾸몄던 의뭉스러운 태도, 과한 연출, 나에게 적대적인 태도, 넌더리를 내는 것 같은 표정…… 별로 필요 없는 말인데도 기어코 설정이니 NPC니 하는 단어를 들어 설명하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애써 잊고자 하는 방편이다. 혹시라도 뒤를 돌아보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할까, 싶은 마음에.
대체 시스템은 무슨 의도로 한 개인에게 이딴 일을 맡긴 건지…….
‘……아니, 쓸데없이 공감하지 말라고.’
나는 잠시 풀어지려 하는 마음을 추슬렀다.
뜻밖의 곳에서 비슷한 면을 찾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도 사선을 걷고 있는 몸이다. 적일지도 모를 상대방에게 동정심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조한율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허공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코웃음을 쳤다.
“하여튼 이것도 상당히 까다로운 작업이에요. 감사 인사라도 받고 싶을 정도인데.”
“정말 그런가?”
“뭐라고요?”
“운영자쯤 되는 인간이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일반 플레이어의 부탁 따위를 들어주려고 찾아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쪽에게도 무언가 이득이 있어서 하는 일 아닌가?”
나는 팔짱을 끼고 조한율을 노려보았다.
조한율은 질세라 그런 시선을 맞받았다.
“어째서 본인을 일반 플레이어라고만 생각하세요? 랭킹 1위에, ‘특별 관리 대상’ 인데.”
“그거야 시스템 기준이지. 너한테는 밸런싱 작업을 해치는 유해 인물인 거 아닌가?”
“와, 너라고요?”
조한율이 할 말 많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몇 살인 줄 알고 그렇게 반말을 턱턱 하시죠?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예의 바르고 귀여운 소녀였던 것 같은데.”
소녀는 개뿔, 지금 누가 할 소리를.
나도 처음 만났을 때는 친절한 배려가 있는,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랭커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른 중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이라면 모를까, 어느샌가 오늘 처음 본 어리고 예쁘장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저 얼굴에 대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 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가는 시선이 피차 적대감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시스템 운영자라는 인간에게 말을 높이고 싶지는 않아. 애초에 그 랭킹 1위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한 거지?”
만일 시스템에 정말로 인격이라는 게 있다면 가장 따져 묻고 싶은 점 중에 하나가 이거였다.
그야 업적치의 증명이기에 랭킹 1위라는 자리는 내가 타르토스에서 겪었던 일이 사실이라는 증거이기도 했으나, 그래도 이런 걸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일 랭킹 1위라는 허울 좋은 멍에가 없었더라면 한국에서의 내 거동이 좀 더 쉬워졌을 것이다. 그런 멍에를 씌운 조한율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
“운영자라면서. 그럼 그것도 네가 한 짓 아닌가?”
그런데 의외로 조한율이 제 가슴을 쳤다. 한껏 올린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와, 이거 진짜 억울하다. 그거 제가 조정한 거 아니거든요? 이쪽이야말로 억울하다고요.”
“……무슨 소리야?”
“저야말로 놀랄 노 자였어요. 밤샘하느라 뻗었다가 일어났더니 업적치 기준별로 랭킹이 생겨나 있고, 그것도 운영자인 제가 한 것도 아닌데 전체 공지가 떴다고요. 확실하게 말해 두는데, 그거 제가 한 거 아닙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한율이 운영자라고 하기에 당연히 저 녀석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럼 누가 한 건데.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한 짓이란 말이야?”
“그것까진 저도 잘 몰라요.”
이제껏 유용한 정보를 수도 없이 뱉어 낸 것과 다르게 이번 대답은 다소 맥이 빠진 감이 있었다.
“하여튼 외부의 개입이 있었던 건 확실해요. 제가 관리하는 시스템상에서는 이런 변수가 튀어나올 요소가 전혀 없었단 말이죠.”
“본인 능력 밖의 일이 생겼을 가능성은 없고?”
“되게 재수 없게 말하시네.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저는 외부 개입 건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어요. 왜냐하면 강예나 씨가 온 것과 비슷하게 벌어진 일이니까.”
이번에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과 무관해 보이는 동작으로 조한율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당신이야말로 현재 이 대한민국의 가장 커다란, 엄청난 변수라고요.”
대한민국의 그저 평범한 고3이었던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그게 날 싫어하는 이유고?”
“그렇죠. 시스템 간의 마찰을 일으킨 원인이니까.”
조한율이 대수롭지 않게 뱉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깜박였다.
사실은, 아까 전부터 이것을 가장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너무 헛된 희망일까 봐 일부러 뜸을 들이고 있기도 했다.
섣부르게 물어봤다가 실망을 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가 타르토스 세계의 시스템에 간섭을 받은 존재라서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러니까, 전 서버 이름까지는 제가 모른다고…….”
“그건 즉, 다른 시스템이……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그거야 당연하죠. 던전이란 게 애초에 다른 세계의 편린을 구현한…….”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던 조한율이 문득 내 얼굴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조한율의 낯에 당혹이 어렸다.
“혹시, 울어요?”
“…….”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눈가에 가져다댄 채로 침묵했다.
딱히 우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마 고개를 들기는 힘들었다. 목소리를 내어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야, 그도 그럴 것이…….
‘……현실에 존재하던 세계가 맞았어.’
그저 단순한 던전이 아니라, 타르토스 또한 정말로 존재하던 세계였던 거라고.
물론 릴리스 때문에 내가 겪어 온 시간이 허상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다녀온 타르토스가 단순히 어떤 세계의 과거만을 조명한 세계였다면, 내 친구들은 그저 과거에만 존재하는 유령이었다는 뜻이 된다.
릴리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악마이니, 그를 증명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건 내 마음속 한가운데에 박혀서 도저히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던, 가장 커다란 가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타르토스의 시스템이 존재했고, 그 시스템이 내게 간섭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시스템에 마찰을 발생시킨 거라면…….
‘구할 수 있어.’
이제야 정말로, 확실하게…….
너희들은 정말로 실존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나는 정말로, 너희들을 구하러 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