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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39화 (14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39화

조한율은 약속을 지켰다.

꼭 일주일이 지난 후에 연락이 온 것이다.

조한율이 지정한 장소는 경기도 외곽, 오이도 근처 국도에 있는 한 던전이었다.

단정히 정돈된 길에 있는 게 아니라, 야산 야트막한 곳에 길게 자란 풀 사이에 떠 있는 마름모꼴의 문양은 매우 으스스해 보였다.

꼭 공포 영화 인트로 즈음에 등장할 것처럼.

……어제 태원이가 추천하는 공포 영화 10선 중 하나를 보고 자서 이러는 건 아니다.

조한율은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 등급상으로는 F급. 공격성 없는 슬라임이나 몇 마리 처리하면 그만인 던전이에요.”

“그래서 혹시 실패해 던브가 터져도 괜찮다, 이건가.”

만일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게 된다면 슬라임이나 우글거리는 던전이 처리하기는 편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망치만 가지고 있어도 적당히 해결될 만한 몬스터니까.

게다가 이 야산 근처에 슬라임 몇 마리가 산다고 한들 고라니 발굽에 밟혀 죽을 것 같기도 하고.

조한율이 허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내게 답했다.

“네, 그리고 아직 정부에 등록 전이라 사람들 눈도 없고요.”

“수도권 근처에 용케도 이런 던전이 있었군.”

어지간한 등급 낮은 던전은 던전 부산물을 팔아 용돈 삼으려는 투잡러들로 들끓던데 말이다.

조한율이 별것 아닌 것처럼 대답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당분간은 정부에게 공표하지 말아 달라고 해 뒀거든요. 그런 던전이 꽤 있는데…….”

“잠깐만.”

나는 조한율의 말을 끊고 물어보았다.

“정부는 그쪽이 운영자라는 걸 알고 협력하는 거야?”

“설마. 제작자로만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대한민국 최대 포션 공급자라는 건 그 정도 위치는 된답니다.”

그러더니 조한율이 살풋 웃었다.

“물론 랭킹 1위께서도 그 정도 위치는 되겠지만요.”

내 실제 스펙을 알면서도 저런 소리를 다 하는군.

“강예나 씨도 정부에 필요하다고 말하면 던전 한두 개쯤이야 당연히 따로 내어 줄걸요. 포화도 관리도 되겠다, 오히려 이득이죠.”

“그거 그냥 무보수로 부려 먹는 거 아닌가? 뭐, 좋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 거야?”

“아, 잠시만요. 마지막으로 확인 몇 개만 할게요.”

조한율은 허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관찰하자 여자의 눈동자에 언뜻 무언가 푸른 글씨가 비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내 눈에 조한율이 옆구리에 찬 검이 띄었다. 평범한 롱소드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그냥 평범한 검은 아닐 테다.

내 옆구리에 있는 에이펙스의 광검이 아까 전부터 묘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분명한 적대감이었다.

“혹시 검사야?”

“운영자인데요.”

나는 그 대답에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인 것 같은데. 누가 들어도 적대감에 찬 삐뚤어진 대답이었다.

“아, 대외적으로는 마법사인 걸로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발언할 때는 주의해 주세요. 밖에서 봐도 놀라지 마시고요.”

“아니, 정말로 마법을 쓸 수 있다고? 그거 너무 사기 아니야?”

물론 포션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저 운영자로써 가진 능력일 줄 알았는데, 설마 진짜 마법도 쓸 수 있다니.

조한율은 내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했다.

“레벨 79의 플레이어에게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말 같네요.”

“나는…….”

“자, 잠시 집중 좀 하게 해 주실래요?”

조한율은 손을 휘휘 저어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얼마간 더 본인에게만 보이는 모니터에 집중하는가 싶더니, 곧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 참. 이걸 대체 나보고 어떻게 감당하라고…….”

허공을 노려보던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온 얼굴이 또 찰나에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태원이 또래나 되었을까 싶은, 고등학생의 얼굴이었다.

“쓸데없는 질문이긴 한데.”

나는 조한율의 손가락이 잠시 멈춘 틈을 타고 질문했다.

“그렇게 매번 얼굴을 바꾸는 이유가 뭐야?”

지난 10여 년간 별의별 꼴을 다 보긴 했는데, 저런 식으로 자신의 외관을 아무렇게나 바꾸는 건 처음 본다.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혹시 운영자 클래스가 아니라 카멜레온 같은 거 아닐까.

질문을 무시당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조한율은 선선히 답했다.

“업무는 과중하고, 특권은 몇 가지 없는데, 그래서 있는 권리 몇 가지를 열심히 써먹는 것뿐이에요. 여러 얼굴로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조한율이 윙크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또다시 얼굴 모양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30대 즈음으로 보이는, 입술이 도톰한 미인의 얼굴이었다. 변하지 않은 거라곤 머리카락의 색깔뿐이었다.

그렇지만 바뀐 얼굴의 조형에서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었기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한율은 그런 내 반응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끔찍해하는 표정을 보니까 기분이 좀 괜찮아지네요.”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

“아,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이 얼굴이니까 알아 두시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처음 만났을 때의 얼굴로 돌아왔다. 맑은 눈동자에 다부진 인상, 짧은 머리카락. 눈썹이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다른 얼굴에 비해서는 그리 눈에 띄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래 모습이 이쪽인가?”

그러자 조한율의 눈썹이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이쪽이 제일 잘 어울려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큰일 날 사람이네.”

“……?”

“사람을 꼬드기고 있잖아요.”

“누가 누굴, 뭐라고? 아니, 나는 그런…….”

“자, 준비는 끝났고 이제 출발하시면 됩니다.”

조한율이 대화의 끝을 알리듯 던전 입구를 터치했다. 마름모꼴의 문양이 빛났다.

나도 정말로 딱히 대화 따위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곧바로 던전 입구로 향했다.

조한율이 뒤에서 성의 없이 외쳤다.

“어쨌거나, 무운을 빌게요.”

누가 들어도 거짓말 같은 소리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것참 고맙군.”

*   *   *

조한율은 던전 너머로 사라지는 강예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예나가 곧 던전 입구를 통과해 던전으로 들어섰다.

사실 던전으로 입장하는 순간은 엄연히 말해 ‘다른 세계’ 로 트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조한율에게는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 운영자 모드

- 특별 관리 대상이 던전 test_24에 입장하였습니다.

- 운영자 전용 스킬 : 코드화를 사용 중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한율에게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보는 광경이 아니라,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코드화된 풍경이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조한율이 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0과 1로 된 숫자의 덩어리들이었다.

물론 스킬을 해제하면 시야는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만 조한율은 24시간 중 대부분을 코드화를 사용한 채 지내고 있었다.

그러는 게 심신에 여러모로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조한율은 자신이 어릴 때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아니었을까, 고민하곤 했다.

사실 자신은 5년 전 사고에 휘말려 다쳤고, 그래서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사회와 정부가 그런 자신을 죽지 않고 병상에 얽매어 두었고 그 이후로 이런 꿈을 꾸는 게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다.

아니, 정말로 그랬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평범한 사람인 자신의 손에 상상하지 못할 숫자의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테니.

솔직히 아직도 실감은 안 난다. 언제나 코드화를 사용하는 것도 그 ‘실감’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려는 몸부림이었고.

조한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히어로 영화도 아니고.’

물론 어느 영화의 히어로만큼 잔고가 풍부하기는 했는데, 그걸 쓸 만한 시간이 없는 지금은 그리 달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현실 도피를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강예나가 던전 안에서 검 위에 손을 올릴 때쯤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 test_24에 입장한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 가 전투를 시작합니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에 대한 상세 정보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 해당 던전의 사상자 수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 해당 던전의 난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 경고! 해당 플레이어의 레벨과 진입한 던전의 레벨의 차이가 극심합니다. 전투가 진행되더라도 플레이어는 경험치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난도를 조정하시겠습니까?

“아니, 내버려 두자.”

- 경고! 플레이어가 극단적으로 유리한 전투를 반복적으로 시행할 경우, 서버의 전체 밸런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저 망할 전체 밸런스라는 말이 끼어들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 관자놀이에 날카로운 두통이 느껴져서 조한율은 자신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어느 한쪽이 쉬우면 어느 한쪽은 어려워야 한다는 것이 이 시스템의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저울은 베니스의 상인만큼이나 공평하고, 또 불공정했다.

아마 부산 어디 즈음에서 어느 던전의 난도가 갑자기 올랐을지도 모른다.

‘공략 진행도 확인해야겠네.’

전체 서버 창을 열자 또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어쨌거나 이런 이유들 때문에 조한율은 강예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걸어 다니는 재난을 좋아할 만한 운영자는 없으니까.

조한율은 한동안 던전으로 들어간 살아 있는 재난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강예나는 던전 안에 들어가자마자 별다른 시간 낭비를 하지 않고 곧장 상황을 파악했으며, 주위를 돌아다니는 몇몇 슬라임들을 발견한 후 곧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마도 아이템을 사용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몸을 숨길 생각인 모양이었다.

‘좋아, 눈치가 빠르네.’

조한율은 속으로 강예나의 행동을 평가했다.

사실 자신은 강예나에게, ‘운명의 씨앗’이라는 이름의 아이템을 사용하기 전에 적절한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가령 그 아이템을 사용하게 되면 한국 서버에 있는 강예나의 신체 자체는 이쪽에 남아 있으니 안전을 충분히 확인하라든가…….

하지만 조한율은 그렇게 하는 대신, 그냥 힌트 하나만 흘려주었다.

백록담 던전과 비슷하다, 그 한마디만.

백록을 통해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도 강예나의 신체는 이쪽에 남아 있었고, 시간의 흐름은 명백히 다르게 적용되었다.

조한율은 자신이 그 힌트를 던져 준 것만으로도 할 일은 모두 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강예나가 그 힌트를 통해 자신의 안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인지, 혹은 그저 의심 많은 성격이라 저러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네, 정말.’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조한율은 곧 익숙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조한율은 지금 이러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예나를 도우려는 건지, 혹은 방해하려는 건지. 그 어느 쪽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죽일 거라면 진작 죽였어야 하겠지만.’

그렇지만 조한율은 그러지 않았다.

처음 강예나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찾아갔을 당시,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어떻게는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단, 강예나가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것 자체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점.

그저 다른 시스템으로 휘말릴 만큼 끔찍하게도 운이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현 한국의 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는 평균적인 레벨보다 한참 강해진 것뿐이다.

그저 그뿐인데 죽어야만 한다면, 분명히 불공평한 일이었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강예나 하나를 살리자고 불특정 다수의 위험을 방치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조한율은 또 다른 이유를 찾아 헤맸다.

어, 그리고…… 뭐, 미공략 던전을 몇 개쯤 공략한다든가, 혹은 너무 늘어나서 처치가 곤란해진 통장 잔고를 한번에 20억씩 날리는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겠지.

‘망할.’

그리고 역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이유가 아니었다.

그래, 지금 당장 강예나를 제거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일이었다.

이제껏 강예나의 행보에 따라 이 대한민국 서버가 얼마나 큰 격동을 맞이했는지를 본다면, 더더욱.

강예나가 한국에 돌아온 지 겨우 몇 개월 만에 강남에서는 돌발성 에러가 터졌고, 신촌의 던전은 변이를 일으켰으며, 아직 도전이 허가되지 않은 백록담의 던전은 클리어되었다.

그에 따라 던전 수십 개의 난도가 치솟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예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밸런스를 망가트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조한율 입장에서 볼 때 저 용사는 한국에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아직은.

그리고 동시에 조한율은 자신이 강예나를 살려야 할 이유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고, 운영자로서 생각하기에도 제거하는 게 훨씬 편한 변수를 아직 내버려 두고 있는 이유.

그 용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 운영자 전용 스킬 : 코드화를 사용 중입니다.

던전에 들어간 후, 이제 막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아이템 사용을 준비 중인 강예나는 스킬 덕분에 0과 1의 집합으로 보였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러나 단 하나, 다른 점.

조한율은 혀를 찼다.

“진짜 죽이게 눈부시네.”

코드화 스킬을 사용하는 한 조한율에게는 시스템하에 있는 모든 생물이 0과 1의 집합으로 보였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는 그 숫자가 구현하지 못하는 특정한 공백이 있었다.

프로그래머인 조한율은 습관적으로 ‘null’이라고 부르는, 지정할 수 없는 값.

그건 아마도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부분일 것이다.

조한율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시야를 만끽했다. 허공의 키보드에 놓은 손가락 사이로 강렬한 영혼의 빛깔이 보였다.

그리고 그게, 조한율이 강예나를 결코 싫어할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조한율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겨우 저것 때문에 장장 3개월 간 3시간도 못 자고 있다니…….”

물론, 슬슬 진짜 죽을 것 같긴 했다.

어쨌거나 이번까지는 지켜보고, 그다음은 좀 생각을…… 조한율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위이잉!!

주머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꽤 집중하고 있었던지라 진동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조한율은 딸꾹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놀랐다.

‘이 바이러스 자식이 무슨 일이지?’

별로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일로는 연락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피차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서.

혹시 위급한 상황인가?

결국 조한율은 전화를 받았다.

- 전화를 아주 빨리 받으시는군.

그저 알림음이 세 번 울렸을 뿐인데 전화 너머에서 짜증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뭐야. 왜 시비야?”

- 저번 주부터 내가 몇 번이나 전화한 줄 알아?

그 말을 듣고 확인해 보니 과연, 핸드폰에 부재중 메시지가 100건 정도 찍혀 있었다.

어쩐지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 같더라니.

‘그러고 보니 근 일주일 간 진짜 죽어라 일했네.’

그야말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일했다. 핸드폰 따위는 충전하는 게 고작이었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새삼 자신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이제 봤어. 그래서 무슨 일인데?”

어쨌든 100번씩 전화할 시간이 있었던 걸 보니 당장 지구가 멸망할 정도로 급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한율의 의견과는 달리 거센 항의가 돌아왔다.

-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내가 뭘?”

- 강예나한테 카드를 줬던데.

뜻밖의 용건이다.

조한율은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 그 카드를 쓸 때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전화 너머에서 이우연이 별것 아닌 것처럼 대꾸했다.

조한율은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 둘이 그렇게 친해졌어? 그 조합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데.”

그야 둘이 접촉한 것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해졌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간의 사정에 대해 좀 들어 봐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조한율이 대화를 이어 가기 전에 눈앞에 붉은색의 경고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 경고! 새로운 던전이 생성되는 중입니다.

- 새로운 던전 생성을 승인할 경우 해당 던전은 대한민국 서버의 던전 평균 레벨을 계산할 때 영향을 미칩니다.

- 이 영향은 즉각적입니다.

- 던전 생성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와…….

조한율은 순식간에 밀려온 일감에 절망했다.

그 이후로도 시스템은 쭉쭉 메시지를 뱉어 내고 있었다. 그사이 전화 너머로는 여전히 이우연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이봐, 듣고 있어?

“아니, 안 듣고 있어.”

조한율은 급하게 이 대화를 단절하기로 했다. 이우연까지 신경 쓰기에 조한율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 던전이 생성된다면 또 전체 서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봐야 했다.

아무래도 오늘도 야근각이었다.

“일단 끊어. 3일쯤 후에 다시 연락할게.”

물론 그때 자신이 살아 있다면, 말이겠지만.

- 뭐? 야!

전화 너머로 무례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조한율은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무수히 떠오른 메시지 너머에서 강렬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 던전 생성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조한율은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동의를 표시했다.

“그래, 한번 해 봐.”

- 운영자가 새로운 던전의 생성에 동의했습니다.

- 새로운 던전이 생성됩니다.

- 타 서버 소속 아이템 : ‘운명의 씨앗’이 시험을 준비합니다. 운영자의 동의 없이 진행됩니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가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분명히 이건 바람직하거나 효율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저 용사가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한 번은 보고 싶었다. 그래야 정말로 저걸 제거해야 할지 판단이 설 테니까.

조한율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진짜로 무운 정도는 빌어 줘야지.”

과연 용사가 제대로 된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지, 조한율은 정말이지 매우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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