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45화
눈에 보이는 모든 간수들이 바닥으로 쓰러진 후 나는 잠시 감옥 내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비상사태를 알아차리고 달려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활을 들고 있었던 팔을 늘어트렸다.
일이야 잘 풀린 셈이다만, 이건 이것대로 이상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감옥 내 인원이 너무 적었다.
내가 방금 기절시킨 인원은 정확히 열두 명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기절시킨 사람들이 셋 있으니 이제까지 마주친 사람은 열다섯.
7층 실험실에 대장이 있다고 했고, 식당에 오늘 번을 서지 않는 놈들이 있다고도 했지만 그 인원이 썩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감시탑 위에서 가만히 기감을 사방으로 퍼트려 보았지만, 역시나 결론은 비슷했다.
최대한 잡아 보아야 서른 명 남짓이 아닐까.
‘그에 비해 아이들은 너무 많고.’
감시탑에서 보니 감옥의 구조가 더욱 잘 보였다.
판옵티콘 형태의 이 감옥은 7층까지 있었고, 층마다 감옥은 스무 개씩 존재했으며, 감옥 하나마다 적게는 몇 명, 많게는 스무 명까지도 아이들이 갇혀 있었다.
아마도 실험을 당한 후 몸의 변화 상태에 따라 나누어 가둬 놓은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실험체를 대하는 태도, 그 자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관점에서 봐도 이상하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어딜 봐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실험에는 정확성이 요구된다. 실험체의 건강 관리도 그중 일부고.
그리고 딱히 높이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만, 어쨌거나 타르토스에서 일어났던 인체 실험이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연금술사’ 클래스의 플레이어들이 하는 짓거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실험에 들어가는 청동 한 조각, 사금 한 톨에도 예민한 작자들이다. 실험의 정확성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편집증 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감옥에 갇힌 아이들은 죄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초췌했고, 실험체로 이용된 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고, 이후 경과를 관찰하고 있지도 않다.
이건 차라리…… 방치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도 간수들이 나누는 대화, 하는 행동, 그 어디에서도 나는 연금술사의 특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냥 길거리 술집에 들어가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간들 같았다.
‘그렇다면 실험은 그 대장이라는 인간이 혼자서 주도하고 있는 건가?’
몇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혼자서?
혹시 몰라 떠오르는 기억이 있지 않을까, 머릿속을 뒤져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도 정보가 상당히 제한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시스템 놈, 남의 몸을 빌리게 한 주제에 기억만큼은 사생활 보호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도대체 어쩌다 이런 곳에서 타르토스의 멸망이 시작된다는 건지…….
그때였다.
“헙……!”
적을 찾아 고개를 돌리던 나는 방금 눈이 마주쳤던 철창 너머의 아이와 한 번 더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제 입을 막는 게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감옥 내의 아이들은 거의 다 잠들어 있었고, 지금 일어나 있는 사람은 저 아이를 제외하곤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엄청나게 겁을 먹었다.
하기야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더니 화살을 쏘질 않나, 쏠 때마다 간수들은 죄다 픽픽 쓰러지고, 하필 눈은 마주치고…… 무서울 만도 했다.
‘선행 조건도 딱히 뜨지 않고, 더 몰려오는 놈들도 없고.’
그렇다면 잠깐 정보가 있는지 캐 봐도 좋을 듯했다.
겁에 질린 아이도 달랠 겸.
나는 빠르게 바닥에 기절한 간수 한 쌍의 손발을 묶고 재갈까지 물린 뒤, 감시탑에서 감옥 복도로 다시 뛰었다. 단지 이번엔 님페의 바람을 사용했기에 가뿐했다.
나는 약간의 바람과 함께 철창 바로 앞에 안착했다.
“안녕, 꼬맹아.”
아이는 이제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입이 한동안 어버버하며 소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겁먹지 않아도 돼.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야.”
“어, 어……!”
“소리 지르지 말아 줄래? 동의하면 고개만 끄덕여. 그래, 잘했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는 빠르게 허리의 검을 빼 들었다. 검의 흰빛이 나타나자 아이가 겁먹은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조금만 참아.”
미안하지만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이건 어쩔 수 없다.
검이 철창에 닿는 순간 아주 약간, 초록빛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탈출 방지’ 마법 파훼에 성공하였습니다.
역시 철창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군.
나는 단번에 검으로 철창을 잘라 내어 버렸다. 끽,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철창이 잘려 나갔다.
철창이 사라지자, 겁먹은 아이의 얼굴이 한층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 살려 주세요…….”
입술이 파랗게 질려 떨리고 있었다.
굶어서 그런 건지, 목숨을 구걸하는 목소리조차 작게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의 한쪽 무릎 부분은 완전히…… 망할.
그 작은 등 뒤에도 열서넛 명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당연하지만, 깊게 잠든 게 아니라 사실상 까무러친 상태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다른 아이들의 안색을 살폈다.
이 방 아이들은 죄다 신체 일부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리시아처럼 몬스터 신체 일부가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상처의 절단면을 보니,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분명했다.
“……괜찮아.”
나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시선의 높이를 맞추었다. 내가 빙의한 것도 열 살쯤 된 꼬맹이어서 그런지, 사실 무릎을 꿇으니 오히려 내 시선의 높이가 더 낮아졌다.
“혹시 이것 좀 마셔 볼 수 있겠니?”
나는 소지창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어 아이의 손에 조심스럽게 쥐여 주었다.
닿은 피부는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아이는 여전히 겁을 먹은 표정이었고, 무척이나 망설였지만, 나와 검을 번갈아 보더니 곧 내 손에서 포션 병을 가져갔다.
“흐, 흑…….”
그리고 독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입에 들이켰다.
아마도 명령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듯싶었다.
……이거, 진짜 기분이 X같아.
그래도 다행히 포션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했다. 포션을 비운 아이의 얼굴에 자그맣게 혈색이 돌았다.
‘포션은 잘 듣는 것 같고.’
눈에 생기가 맴도는 게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호의를 살 만한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물었다.
“꼬맹아, 이름이 뭐야?”
아이가 대답했다.
“1, 129호…….”
이런 망할 새끼들. 진짜 페널티를 감수하더라도 죽여야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딴 건 이름이 아니야. 음, 이건 나중에 더 생각해 보자. 하여튼 나는 여기서 너희들을 모두 꺼내 주고 싶어.”
“꺼, 꺼낸다고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날 좀 도와줄래?”
“네?”
“여기에 갇힌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해?”
아이가 생각에 잠겼다.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해님을 못 봐서…… 그렇지만, 머리가 자란 걸 보면…… 두세 달?”
굉장히 똑똑한 대답이로군.
나는 곧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만약 내가 이 감옥 문을 열고 너희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면 돌아갈 곳이 남아 있을까?”
“지, 집을 말하는 거예요? 저는 원래 집이 없어요.”
그리고 아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등 뒤에 누워 자고 있는 아이들을 눈짓했다.
“쟤들도 거의 다 고아들이거나, 고아인 게 차라리 나은 애들이고요.”
그 대답에 새삼스럽게도, 이곳이 정말 타르토스라는 실감이 났다.
타르토스에는 던전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더랬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고통받는 것은 이렇게 힘없는 아이들이고.
나는 씁쓸함을 집어삼키며 다시 물었다.
“……그래, 그럼 혹시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어, 어…….”
솔직히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우물쭈물하던 아이의 눈에 필사적인 빛이 잠시 스쳤다.
내가 한 질문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걸까. 마주 잡은 손에 아주 약간 힘이 돌아왔다.
“가, 간수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드, 들은 적이 있어요.”
“뭔데?”
“시, 실험하는 도중에 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아이가 잠시 제 발목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흘렀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리자 아이가 곧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숲이라고 했어요.”
“숲?”
“네. 이름은 듣지 못했지만, 아주 깊숙한 숲속에 있으니…… 그래서 유리하다고.”
“유리해? 도대체 어떤 점에서?”
“자,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 문장이로군.
나는 표정을 구길 뻔했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를 생각하며 애써 근육을 풀었다.
“그렇구나. 그 외에 또 들은 건 없어?”
“어, 어떤 게 필요하신 거예요? 최대한…… 기억해 볼게요.”
아이는 너무도 간절한 표정이었다.
아이가 왜 저런 태도인지 잘 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고, 학습된 비굴함이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었지만 이런 일시적인 온기는 분명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만 하겠지만.
“아니야, 다른 질문은 없어. 이제 그냥…….”
“저, 제가,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어요!”
그 외침은 거의 발작적으로 뛰쳐나왔다. 소리가 순간적으로 울려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고함이었는지 순식간에 아이의 표정이 퍼렇게 질렸다.
“어, 아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발, 잘못했……!”
“쉿, 조용히!”
내가 입을 손가락으로 막자 숨이 턱 막히기라도 했는지, 아이는 이제 딸꾹질을 시작했다.
“미안, 미안해. 너한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야. 알지? 이제 그냥 괜찮다고 말해 주려고 했어.”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신뢰가 아니라 공포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음, 그냥 나가 죽을까?
나도 알리시아만큼이나 위로에는 소질이 없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제 입을 틀어막고 딸꾹질을 가라앉히려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가 들은 게 맞다면, 이 감옥이 타르토스 대륙 어느 깊숙한 숲속에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거, 정황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었다.
타르토스 대륙에서 ‘깊숙한 숲’이란, 한국과 달리 그리 평온한 지명은 아니다. 한국이라면 커다란 공원 같은 이미지겠지만, 타르토스 대륙의 경우…… 십중팔구 몬스터의 자생지가 형성되어 있을 거라는 의미니까.
‘그러니 보급품이 한 달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거로군.’
외부에서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도 힘들다면, 상처 입은 아이들이 자력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바깥에 도달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아니, 그런데 대체 어떤 미친 새끼가 몬스터 자생지가 있는 숲속에 이런 감옥, 그러니까 실험실을 짓는단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 장소를 택한 이유를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이렇게까지 깊숙한 숲속으로 숨어드는 이유라고 한다면……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몬스터 자생지 한복판에 이런 건물을 짓는다고? 대체 어떤 존재의 침입을 상정했길래?
게다가 이곳은 기본적으로 인체 실험을 하는 곳이었다.
역겹긴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이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갈 것이다. 인체 실험을 견딜 수 있는 아이는 몇 되지 않으니까.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체가 공급돼야…… 이렇게 말하니 역겹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들어와야 목적 달성이 더욱 쉬워진다.
그러나 이곳은 몬스터 자생지 한복판이다. 보급품도 한 달에 한 번 겨우 들여오는 판에 아이들을 어떻게 데려온단 말인가.
악당들의 목적성이 점점 더 불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가둬 두고 실험을 한다는 점까지는 알리시아와 일리아스가 겪은 일과 같은데…… 마치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다 다시 올린 연극 무대 같았다.
그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역겨워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선행 조건이 뜨지 않는 것까지, 전부 다.
대체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란 말인가?
나는 손을 뚜둑, 꺾었다.
‘대장은 7층에 있다고 했지.’
X발, 목적이고 나발이고 내가 어떻게 이런 미친놈들의 생각을 이해하겠나. 혼자 머리를 굴려 보았자 답이 나올 일은 없다. 그러니 악당을 찾아가서 내 질문에 뭐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게 답이었다.
‘슬슬 다시 움직여야겠네.’
아이들을 먼저 따로 탈출시킨다는 선택지가 사라진 이상, 이 실험실 내의 모든 적을 빠르게 없애야 한다.
나는 이제 겨우 딸꾹질을 멈춘 아이의 머리에 손을 뻗어 쓰다듬어 주었다.
“그만 울고. 고마워, 충분히 도움이 됐어. 지금 내가 가장 필요로 하던 정보야.”
그제야 아이의 울음이 서서히 멈추었다. 그래도 여전히 목소리는 다 기어 들어가고, 공포심을 숨길 수 없었다. 계속 잡아 주었던 아이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저, 정말요? 그, 그러면…… 절 구해 주실 거예요?”
이 아이는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내가 구해 주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가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다.
나는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씩 웃어 주었다.
“그럼, 당연하지.”
그러자 아이가 긴장이 풀린 듯 웃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그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느라 기력을 소모한 아이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어, 왜, 왜 이러는…….”
“괜찮아. 정상적인 거야. 많이 졸리지?”
나는 깜짝 놀라 제 눈을 억지로 비비기 시작한 아이를 달랬다. 오랫동안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몸에 포션이 영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없어진 신체 부위를 재생시켜 주진 못하겠지만, 자고 일어나면 체력이 훨씬 더 회복되어 있을 것이다.
“저, 저는…….”
졸음에 저항하려 했지만 아이의 눈은 곧 감겼다.
나는 축 늘어진 아이의 몸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 푹 자고 있으렴.”
자고 일어나면 이 악몽은 끝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여기에 있는 자식들은 진짜로 다 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