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47화
“알 거 없잖아.”
“누구에게 고용된 거야? 용병치곤 어려 보이는데, 어?”
“고용된 거 아닌데.”
“말도 안 돼. 고용된 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목적이 있길래 여기까지 온 건데?”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내 손목 보호대와 단검 사이에는 듣기 싫은 소리가 났고, 주먹을 막는 손에는 핏줄이 불거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자가 던진 질문은 아주 괴상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목적이라니, 그런 걸 왜 묻지?”
“뭐라고?”
“이런 짓을 하면서 누가 네놈들을 죽이러 올 거란 상상은 한 번도 안 해 봤나?”
“뭐?”
내 말을 들은 여자의 눈이 경악으로 홉떠졌다.
“우리는 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는 거야?”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솟았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애들을 납치하고, 가두고, 학대한 건?”
“웃기는 소리.”
여자가 이를 악물었다.
이 힘겨루기에서 나는 분명히 여자를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했고,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내 고용주는 실험체들에게 제대로 된 값을 지불했어. 다들 동의하고 여기에 온 거야!”
나는 그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어, 그래. 놀라운 일도 아니로군.”
혼란스럽고 가난한 거리에서 아주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값싼 비용을 받고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 나도 그런 일이 왜, 그리고 어떻게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설령 아이가 동의했다고 한들, 아이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만큼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여기에 오지 않았더라도 죽었을 애들이야! 그나마 여기에 와서 기회를 얻은 거라고!”
“역겨운 소리 그만하고, 이만 닥쳐.”
도저히 참고 들어 줄 수가 없는 수준이로군.
나는 바닥을 박찼다.
내 무릎이 접히는 걸 보고 여자가 눈가를 좁혔다.
“어딜!”
다리로 배를 찰 것이라고 예상했었다는 듯, 여자가 순간적으로 내 다리를 피하려 자세를 취했지만 이쪽이 노리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
빠각!
“억!”
바닥을 박찬 힘을 정면으로 턱 밑에 먹어 버린 여자가 뒤로 물러서며 비틀거렸다.
‘내가 똑같은 곳을 노리겠냐.’
어차피 다리가 짧아서 배에는 제대로 닿지도 않는다고. 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빌린 아이의 몸은 키가 작았고, 덕분에 여자의 턱을 머리로 박아 버리기에는 매우 적절했던 것이다.
아마 골이 제대로 흔들렸을 것이다.
나는 여자가 비틀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목을 쳐서 완전히 중심을 잃게 해 바닥에 넘어트렸다.
“큭!”
그리고 여자는 넘어지면서도 단검을 쥔 손을 바꾸어 곧장 주먹처럼 쥔 단검을 내 어깨로 내리쳤다.
다행히 칼날이 어깨에 닿기 전에 여자의 손목을 잡았지만, 덕분에 그 틈을 타 여자가 다른 손으로 땅을 짚고 무릎으로 내 배를 가격했다.
“윽!”
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고통 때문에 시야가 멀어졌다.
나는 이를 갈았다.
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고통에 대한 내성이 없는 듯했다.
‘버프는 못 줄망정 디버프냐?’
하지만 불평할 틈이 없었다. 여자는 내가 멈칫한 사이에 한 번 더 무릎을 차올리기 위해 몸을 떼어 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본능적으로, 저 무릎차기를 배에 한 번 더 맞으면 기절할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갈비뼈에 느껴지는 고통에 약간 시야가 희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기절하면 끝장이다.
그래서, 나는 혀를 깨물었다.
콰득, 하고 짜릿한 고통이 맴돌았고, 피 맛이 입안 전체에 퍼졌다.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서!”
빠직!
뼈가 부러지는 촉감이 닿았다.
“아악!”
여자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내가 여자의 손목을 반대 방향으로 꺾고, 다른 손으로는 여자의 오른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쳤기 때문이다. 한쪽 손목은 탈구, 한쪽 어깨도 부러졌다.
내 배를 차올리려던 여자의 무릎에는 이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고통에 눈을 까뒤집은 틈을 타서 여자의 팔을 잡고 바닥에 엎어트렸다.
그리고 손목을 꺾으며 발로 여자의 한쪽 다리를 밟았다.
긴장된 숨결이 느껴졌다.
하지만 싸움의 승부는 났다.
나는 여자를 완벽하게 제압했고, 조금만 힘을 주면 다리 한쪽까지 못 쓰게 만들 수 있었다.
“……후.”
짧은 격투였지만 진이 빠졌다.
혀를 깨문 탓에 입안에서는 피 맛이 났다. 하지만 여유는 없었기에, 나는 곧장 여자의 손을 뒤로 묶었다.
“알았어. 항복한다니까! 아파! 아프다고!”
여자가 소리를 높였지만 무시했다. 어쨌든 이 싸움으로 체력을 제법 소모했다.
나는 숨을 정돈한 후 곧장 질문했다.
“위에도 다른 사람이 있나?”
“내가 대답할 것 같아?”
“뭐, 없겠지. 있었다면 진작 소리라도 쳐서 사람을 불렀을 테니까.”
정답인지 여자의 얼굴에 잠시 파리한 빛이 스쳤다. 다만 어지간해서는 그 동요를 잡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확실히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임에 분명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질문했다.
“용병이지?”
싸우면서 느낀 건데, 고용주를 운운하는 것도 그렇지만 여자의 싸움 형태는 확실히 용병의 그것이었다. 타르토스에서 숱하게 부딪혔던 전투 특화 용병.
뭐, 결국 길바닥 드잡이식 격투였다는 뜻이지만.
그렇지만 그 악력도, 속도도 이제껏 쉽게 제압했던 다른 치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만일 간수들이 모두 이런 수준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제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나마 빠르게 이자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인 능력치 차이, 경험, 그리고 기습이라는 약간의 행운 덕이다.
왜 이런 실력자가 여기에 있지?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너 같은 용병을 고용하려면 꽤 비싼 값을 치러야 했을 텐데.”
적절히 훈련된 용병을 고용하는 데에는 꽤 큰 비용이 필요했다. 특히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더더욱.
“뭐, 그렇지.”
여자가 한숨을 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이미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몸이라도 챙기자는 결론을 내렸나? 이것도 확실히 용병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마침 나도 여기, 겨울 왕의 숲에 볼일이 좀 있었거든. 식량 배달이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겸사겸사 와 본 거지.”
“……잠깐만. 뭐라고? 겨울 왕의 숲?”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지명에 입을 벌렸다.
“여기가 겨울 왕의 숲이란 말이야?”
“……당연한 거 아니야?”
여자의 눈이 의심스럽다는 빛을 띠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쓸 기분이 아니었다.
겨울 왕의 숲이라고?
여기가 타르토스 대륙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감옥이 위치한 정확한 지명을 들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겨울 왕의 숲.
그건 타르토스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숲의 이름이었다.
말이 숲이지, 그 면적은 거의 작은 왕국에 필적할 정도라서 사람의 손길은 거의 닿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미공략 던전이 꽤 많이 산재해 있으며, 그래서 숲 곳곳에 몬스터의 자생지가 많았다. 나도 토벌 의뢰를 받고 몇 번 근처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리적인 문제 때문에 중앙 수도의 지배와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숨을 들이켰다.
‘루카스.’
그래, 루카스의 나라 한편에 위치한 숲이었다. 왕국의 이름은…… 오헤임이었던가?
‘그래서 저 기념주화가 여기까지 굴러 들어왔군.’
여기가 겨울 왕의 숲이라면 그것도 말이 된다.
애초에 왕국 안에서나 알음알음 유통된 데다, 화폐로서 가치가 거의 없으니 애들의 손까지 굴러왔던 거겠지. 덕분에 간수에게 빼앗기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던 거겠지만.
정확한 지명을 알고 나니 기껏 진정시켜 두었던 마음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루카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만일 자신의 왕국에서 이렇게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녀석과 연락이 닿기만 한다면, 여기에 있는 아이들을 보호해 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잠시만. 그 전에 확인을 해야지.’
나는 내 발밑에서 얌전히 누워 있는 여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봐, 하나 더 묻자.”
“대답하면 풀어 줄 건가?”
“죽이지는 않을게.”
“거래 성립이야. 뭐가 궁금한데?”
“올해는 대륙력 몇 년이지?”
이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루카스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물론 어느 때인지 대충 짐작이 가기는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대륙력은 894년도. 즉, 옵타티오를 공략했던 해다.
그리고 타르토스에는 신탁이 있었다.
‘최후의 던전.’
그 던전만 공략해 낸다면, 분명히 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했었고, 그리고 우리는 최후의 용을 공략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니 894년도 이후에는 타르토스 대륙에서 던전이 사라져야 이치에 맞았다.
하지만 이곳 지하에 던전이 있다는 것을 보면, 지금은 894년도 이전 시점이라는 말이 된다.
또, 여기에 888년도 즈음 발행된 기념주화가 있다.
그러니 지금은 루카스와 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지금 한창 대륙을 쏘다니며 던전 공략을 다니고 있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즉 연도만 특정된다면 나는 지금 내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91년 즈음에 분명히 북쪽 숲 근처에 왔었는데.’
제발 그 시점이어라. 그렇게만 되면 일이 한결 쉽게 풀릴지도 몰랐다!
내가 긴장하며 여자의 입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얼마나 흘렀을까…… 내게는 길게 느껴졌던 몇 초 후,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897년.”
“뭐?”
또각.
“악! 아프잖아!”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아마 나도 모르게 발에 힘이 실린 모양이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방금 뭘 잘못 말했지? 지금이 몇 년도라고?”
“아니, 귀가 먹었어? 897년이라니까!”
정말로 내 귀가 잘못된 건가? 나는 내 귀를 탁탁 털어 보았다.
딱히 문제는 없는데.
“그러니까, 뭐라고? 897년?”
“그래, 897년!”
밟힌 여자가 악을 썼다.
“도대체 뭐가 알고 싶은 거야? 정말이라니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어떻게 지금이 897년이야?”
이제 와서, 그리고 이런 거짓말을 해 봤자 무슨 득이 있다고 이러는 거지?
나는 바닥에 엎어진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도 지지 않고 나를 쏘아보았다.
“뭐가 말이 안 되는 건지 얘기해 보시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지?
“옵타티오가 공략됐잖아. 그런데 여기에는 아직도 던전이 있고…….”
그렇지 않은가? 옵타티오 공략 성공 이후로는 타르토스에 던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분명 옵타티오 공략에 성공했다.
그러니 그게 끝이어야 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던 여자는 갑자기 하,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 난 또.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 ‘최후의 던전’ 운운하는 헛소리를 아직까지 믿고 있는 놈이 있었어?”
여자가 명백히 깔보는 눈길로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한 5년쯤 어디 처박혀 사셨나 보지?”
그 태도에 두통이 일었다. 무언가가 등허리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감각이 들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헛소리……?”
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들렸다.
뭐야, 왜 내가 떨고 있는 거지?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그리고 나를 노려보던 여자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이걸 모르는 대륙인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나는 모욕당한 것 같은 기분으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단검을 어깨에 맞는 편이 덜 아팠을 것이다.
입안이 바짝 말라 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면, 내가 타르토스를 떠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 애들이 나 없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야만 한다.
마치 단두대 밑에 목을 내밀고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었다.
물어야만 했다.
“내가 뭘 모른다는 거지?”
그리고 여자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최후의 던전, 그건 신전이 거짓말을 한 거였어. 덕분에 한동안 난리였지.”
“……뭐?”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신전이 거짓말을 했단 말이야?”
“그래, 20년 전에 신탁이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었다고.”
이제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거짓말이라…….
이제는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여자가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었다.
“교황이 당시 대륙의 혼란을 막고 모두를 통합하기 위해서 신탁을 지어 낸 거라고 하더군. 생각해 보면 얼마나 웃겨? 전 대륙이 다 속았잖아.”
여자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머리가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하기야 뭐, 교단이라고 겨우 20년 만에 거짓말이 밝혀질 줄 알았겠어? 옵타티오 공략에 나선 일행 면면이 워낙 대단하기는 했다만. 다 불쌍하게 됐지…….”
여자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겨 들렸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식탁 끄트머리를 잡고 섰을 때에야 내가 비틀거렸다는 걸 알았다. 술병이 엎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져 챙그랑, 하는 소리를 냈고, 바닥이 엉망진창으로 젖어 들어갔다.
“하…….”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는 비로소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최후의 던전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타르토스를 구해 낸 적이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