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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49화 (15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49화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일이 쉽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메이와 함께 통로를 나선 순간부터 이미 무언가가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뭔가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다시 두꺼운 나무 문을 열고 감옥으로 돌아간 순간부터 선명해졌다.

1층은 아주 시끄러웠다. 족히 이백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들다가, 내 모습을 본 다음에는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고 메이를 발견한 다음에는 도로 시끌벅적해졌다.

“42호, 괜찮아?”

“무슨 일이야? 반장들이 갑자기 우릴 깨웠어!”

“아직 6층 애들이 다 안 내려온 것 같아!”

메이가 그 애들한테 달려갔고,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을 때였다.

나는 감시탑 위에서 돌아가고 있던 조명을 향해 누군가가 무엇을 던지는 것을 발견했다.

와장창!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조명이 깨지고, 깨진 조각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으아아아악!”

“무, 무서워!”

순식간에 감옥 안은 어둠으로 돌변했고, 아이들의 비명이 터졌다. 공포에 질린 고함이 둥그런 탑을 타고 올라갔다.

나는 팔을 들었다.

- 아이템, ‘날개 아래의 보호’를 사용하였습니다.

- 날개 아래의 보호 활성화 시간 00:20:00

- 해당 아이템은 외부의 공격에 따라 활성화 시간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펼쳐진 바람의 벽 위로 무너진 조각들이 후두둑 쏟아졌다.

지금 이곳을 비추는 것은 통로 속의 미약한 촛불 빛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 탑의 가장 위층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등골에는 서늘한 긴장이 달렸다.

적어도 이제껏 상대한 간수들처럼 허접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하지만 아이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움직여야 할 것 같구나.”

메이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이는 곧장 호통을 쳤다.

“다들 조용히 해!”

그 으름장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나는 무슨 군대를 보는 줄 알았다. 순식간에 일변한 상황이 당황스러울 만도 한데, 다들 메이의 목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조용해졌다.

자신을 생명줄처럼 여기는 시선 앞에서 압도당하지도 않고, 메이가 다시 한번 외쳤다.

“모두 여기로 들어와! 멍청하게 밀지 말고! 충분히 다 올 수 있어, 알았지?”

옳지, 잘한다. 정말 20년 후에는 볼만해지겠어.

나는 아이들이 메이의 지도 아래 속속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어둠에 차차 눈을 익혀 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기감을 돋워서, 다른 층에 혹시 인기척은 없는지 확인했다.

혹시 남겨진 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고 고맙게도, 나는 이윽고 모든 층에서 숨소리 따위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다리로 걷고 있는 아이들조차 대부분 비틀거렸지만 그들 대부분이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들을 부축하거나 심지어는 업고, 혹은 수레에 싣고 낑낑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어른 따위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메이가 마지막이었다.

메이가 문 앞에 서서 나를 돌아보았다.

“빨리요, 용사님!”

“아니야.”

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너는 이제 문을 닫아야 해.”

메이가 입을 벌렸지만, 나는 그 전에 아이템 하나를 소지창에서 꺼내어 던졌다.

“문을 닫고, 그걸 문 앞에 설치해.”

마력 없이도 설치만으로 작동하는 방어구였다. 그래서 그리 큰 효용은 없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건 말도 안……!”

“어서.”

메이의 뒤로 너울거리는 촛불의 빛이 보였고, 뒤로는 아직도 아이들이 낑낑대며 복도를 통과하고 있었다. 메이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렇지만……!”

“몇 가지만 당부할게.”

- 날개 아래의 보호 활성화 시간

- 00:00:31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내가 묶은 놈들이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풀어 주지 말고. 특히 그 용병 여자. 헛소리에 넘어갈 것 같으면, 그냥 그 철퇴로라도 때려서 기절시켜.”

“제,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그래, 있어.”

도저히 혼자서는 들어갈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템 시간에 주의하며 메이에게 다가가 아이의 어깨를 밀었다.

미안하게도 메이가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빠르게 문을 닫았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무사하렴.”

문이 닫혔다.

불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 아이템, ‘봉인의 사슬’을 사용하였습니다.

- 봉인의 사슬 활성화 시간

- 01:00:00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나무문 위로 투명한 사슬이 휘감겼다.

동시에, 날개 아래의 보호가 비활성화되었다.

바람의 벽이 막고 있던 조각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쏟아졌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터라 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야에 비친 것은 탑 끝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였다.

푸른빛을 머금은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미리 말해 두겠지만.”

감옥 복도 난간에 걸터앉은 존재가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깊고 낮았지만, 성별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에게 관대하게 굴 정도로 여유 있는 주인이 아니야.”

“이런 곳에 초대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그 말에 우습게도, 복도에 걸터앉은 그것이 코웃음을 쳤다.

“물론, 내가 원하는 손님이 있긴 하지. 그렇지만 넌 아니야.”

“나도 미리 말해 두겠지만, 이런 곳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릴 생각은 없었어.”

나는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검이 발하는 흰빛이 주변을 밝혔다.

그게 저 꼭대기에 앉아 있는 존재를 밝혀 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발치는 볼 수 있었다. 내가 기절시킨 간수들이 묶인 채 끙끙대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걸 발견한 존재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내 사람들을 모두 기절시켰군. 너무하지 않아?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인데.”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여기서 발견한 건 학대당하고 있던 아이들뿐이야. 그 외의 사람들은 보지 못했는데.”

“오, 아이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갑작스럽게 그 목소리에는 일종의 즐거움이 섞인 것처럼 들렸다.

“그런 말을 듣는 건 오랜만이야. 그래,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지.”

장난처럼 하는 그 말에 역겨움이 치솟아 올랐다. 저런 우스갯소리처럼 취급할 말은 아닐 텐데.

“뭐, 그게 개소리라는 것만 빼고.”

그리고 그것은 난간에서 뛰어서 조명이 사라진 감시탑 위로 이동했다. 겨우 한 발짝 걷는 것처럼 가볍게 이루어진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이어 갈 틈은 없었다.

감시탑 위에서 그 존재가 뛰어내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떨어졌다. 마치 표면에 충돌하는 소행성처럼.

콰콰쾅!

바닥이 부서졌다.

나는 이제,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빛에 비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으로 보인 것은 팔이었다.

몬스터의 것이었다.

오우거처럼 보이는, 아마도 정말 오우거의 것일 팔이 높게 쳐들어졌다. 코뿔소를 닮은 다리 밑에는 내가 제압했던 간수 몇이 깔렸다.

그 자체로 무기인 팔이 휘둘러졌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서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문제는, 발을 디딜 바닥이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망할!’

발이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실수는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빠각!

다행히 검을 들지 않은 팔로 보호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강철 보호대도 공격을 막아 주지는 못했다.

팔에 금이 가는 감각, 그리고 갈비뼈까지 가해지는 충격을 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나는 벽에 처박혔다.

“커헉!”

제대로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통이 몸을 덮쳤다. 몇 톤 트럭에 치이기라도 한 것 같은 무게감이었다.

그리고 벽에 처박힌 내가 충격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윽!”

아마도, 그건 꼬리였던 것 같다.

도마뱀의 꼬리 같은 것이 내 얼굴을 제대로 강타했고, 덕분에 나는 꼬리와 함께 바닥으로 처박혔다.

거의 반쯤 무너지기 시작한 바닥으로.

최소한의 노력과 본능으로 그 꼬리를 껴안고 아직 놓지 않은 검을 들어 휘둘렀다.

그리고 검으로 꼬리를 잘라 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잘린 꼬리를 끌어안고 무너지기 시작한 바닥과 함께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가 바닥 밑으로 꺼지는 순간 마지막으로 어둠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형태는, 그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향해 점프했다는 것뿐이었다.

‘X발.’

아슬아슬한 정신으로, 나는 욕설을 내뱉었다.

코뿔소의 다리에, 오우거의 팔?

저건 이 상태로 맞으면 진짜 죽는다.

조커를 숨겨 둘 여유 따위는 완전히, 절대로 없었다.

- 아이템,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장비합니다.

- 해당 아이템을 사용할 시 사용자의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최대 능력치를 구현합니다.

- 활성화 시간

- 00:10:00

어깨에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그것이 덮쳐 왔다.

발끝이 닿는 순간 피하려 했지만, 정말 믿을 수 없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망토를 장비했음에도 나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변함없이 내 몸을 그대로 더 밑으로 처박았다.

쿠콰콰쾅!

이대로 맨틀까지 처박히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흙이 입안으로 쳐들어왔고 돌 조각들은 사정없이 나를 때렸다.

엄청나게 아팠다.

“죽었나?”

한가로운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지만, 대답해 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핏물이 울컥 올라왔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장비해서 내 능력치가 본연의 것 그대로였는데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너무 큰 고통이 찾아오면 이상하게도 허튼 생각이나 하게 되는데, 그래서일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였다.

‘간수 놈들이 하나같이 허접한 이유가 있었군.’

대장이란 놈이 이런 괴물이니까, 정말로 아이들을 감시할 정도의 용도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던 것이다.

나는 뼈아픈 고통 후에 인정했다.

‘레벨 70대는 되겠다.’

능력치 너프를 먹은 다음 상대한 적들 중에서 꼽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들겠고, 공격력과 파괴력은 1번째다.

물론 다른 두 녀석, 그러니까 유령의 성 보스 몬스터와 릴리스가 결국 S급으로 너프를 먹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이 새낀 몬스터도 아니라서 시스템상 너프 따위의 보조는 못 받겠고.’

그래, 저건 인간이다.

어둠 속에서도 홀로 빛나는 눈동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지만, 저 악의도, 사냥의 희열을 익힌 잔인함도 분명 인간의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런 짓을 한다.

나는 곁으로 떨어지는 부스스한 먼지를 의식하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적은 강대했지만, 다행히도 내 능력치가 빠르게 회복을 돕고 있었다.

아주 잠깐 후에,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해?”

“이런 짓이라면?”

목소리에는 아직 즐거움이 남아 있었다.

“왜 저런 짓을 했냐고. 너도…….”

나는 다음 말을 망설였으나, 다른 단어를 골라낼 수 없었다.

“너도, 같은 짓을 당한 거 아니야?”

- 해당 던전의 포화도는 ‘위험’ 상태입니다.

저 녀석이 나를 처박은 것은 지하였고, 지하에는 아이들의 말대로 던전이 있었으며, 마름모꼴의 익숙한 형태는 이 지하의 유일한 광원체였다.

푸르스름한 빛이 몸체를 비추었다. 그래서 상대의 모습은 이제 내 시야에 완전히 드러나 있었다.

아까 전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으로 비추었을 때 잠시 확인했던 오우거의 두 팔과, 코뿔소를 닮은 다리, 그리고 어느샌가 다시 돋아난 도마뱀의 꼬리까지.

그리고, 나를 향한 인간의 얼굴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회색 눈동자, 흰색 머리카락…… 그 모든 게 부조리하게 보였다.

“아, 지겨운 설교라도 할 셈이야? 들어 줄 순 있지만…….”

꼬리가 휘둘러졌다.

꼬리가 세차게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 정체부터 밝혀야지.”

- 아이템, ‘은의 장막’이 장비 해제되었습니다.

은으로 세공된 섬세한 가면이 저 멀리로 날아갔다. 그가 드러난 내 얼굴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오, 나는 최소한 레나일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군.”

“……뭐?”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이 대륙에서 이런 헛짓거리는 그 녀석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지. 무너진 건물은 아깝지만…….”

쿵, 하고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박차는 소리였다.

그리고 휙,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마어마한 압도감이었다.

“이만 죽어!”

카캉!

그러나 이번에는 내게도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용사 클래스 보정을 받아 성검으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분노도.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성검이 강렬한 흰빛을 뿜었다.

비록 팔을 베어 내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타격을 준 것은 분명했다.

한두 걸음 느릿하게 물러난 녀석이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너, 대체……!”

“방금…….”

숨이 바늘처럼 변해 폐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고통이 정신을 일깨웠다. 검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흰빛이 더욱더 강렬해지고, 나는 인간의 얼굴에 아주 미약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공포의 빛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레나라고 했어?”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뒤져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보아도, 저런 인간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동시에 나는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감옥은 무언가 이상했었다.

이 감옥의 구조도, 그저 잔혹함만이 남은 실험 행위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사방에는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다. 게다가 지하에는 던전까지 있다.

그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그저 건물을 무너트린다는 협박만으로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곳은 그런 누군가를 위한 함정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건…….

이 모든 게…….

하하,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웃음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이거 진짜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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