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0화
싫어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던져졌던 모든 증거들이 이어져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여기는 아이들을 미끼로 삼아, 특정한 누군가를 끌어들여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대체 누구인가.
“네가 노리는 건…….”
괴물은 최소한 레나, 라고 했다.
그러니 나도 포함되기는 했겠지만, 주된 목표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끼긱.
검이 몬스터의 피부를 베어 내지 못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육체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육체를 가졌던 전사와 겨뤄 본 적이 있다.
나는 조용히 그 이름을 뱉었다.
“알리시아냐?”
괴물의 눈이 잠깐 커졌다가, 곧 즐겁다는 듯이 가늘어졌다.
“용병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돼, 아가야.”
“……역시 알리시아였군.”
검 자루를 꽉 쥐면서 나는 이를 갈았다.
여기가 타르토스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나와 내 친구들을 노리고 함정을 팠다…… 라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명성이라는 것에는 마땅히 대가가 따른다.
그간 우리는 타르토스 대륙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규칙을 제법 많이 깨부쉈고, 그건 고착된 규칙에서 이득을 얻는 인간들의 불쾌함을 사기 쉬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함정을 판 것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분명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알리시아를 죽이고 싶었다면 그냥 찾아가서 검을 들이대면 됐을 텐데!”
알리시아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한 적이 없었다. 물론 죽는 건 저쪽이었겠지만.
그러자 괴물이 코웃음을 쳤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녀석과 나는 거의 비등한 수준이지.”
비등하다니, 웃기는 희망 사항이었다. 알리시아가 훨씬 강할 테니까.
“그러니까 이 정도 장치는 해 둬야 내가 확실하게 이기지 않겠어? 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강구했을 뿐이야.”
“뭐라고? 무슨 수단?”
“그래, 효율적인 수단.”
도마뱀의 꼬리가 바닥에서 낮게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미친 재생 속도였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중에서는 이게 제일 값이 쌌거든. 용병을 고용하는 데는 백 개의 금화가 필요하지만, 아무 힘없는 아이를 사는 데는 은화 다섯 개면 충분하지.”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세상에, 은화 다섯 개면 네 식구가 2주일은 먹을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어?”
괴물은 그렇게 말하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은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분명 일종의 고통이었고, 공감이었고, 어쩌면 비아냥 같기도 했다.
결국에는, 슬픔이었다.
그 감정을 읽어 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 망할.
“그 새끼들이 제 자식을 팔아치우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한테 감사하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며 서서히,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빠른 속도로 괴물이 검을 맞대지 않은 다른 쪽 팔을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제일 끔찍한 건, 그 움직임을 뻔히 보면서도 현재의 대치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기에 도저히 대처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망할.’
나는 혀를 찼다.
‘한 방 맞겠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다.
‘용사를 기리는 망토’조차 제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빌린 몸이 말 그대로 10대 초반의 꼬마이기 때문이었다.
나와 신체적 조건이 비슷했던 페트라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근력은 시스템 덕에 비등하다 치더라도, 일단 물리적인 손발의 길이부터 차이가 심했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내 ‘에이펙스의 광검’도 도저히 도움이 되질 않았다.
성검은 이 눈앞의 괴물을 ‘악’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디버프를 죽이게 처먹이네!’
내 클래스의 특성상 마족이나 악이 아닌 자를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불리했다. 특히나 그 상대가 전신을 몬스터로 개조한 레벨 70대의 인간이라면.
‘그런데 심지어 선행 조건도 안 떴고!’
나는 필사적으로 시스템 메시지란을 훑었지만 선행 조건은 여전히 공백이었다.
즉, 이 괴물을 쓰러트려도 이 메인 퀘스트란 게 클리어가 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대체 이 던전은 내게 뭘 바라는 거지?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타르토스가 멸망했다는 거야?
“흡!”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불평을 해 봐도 변하는 건 없었다.
마지막까지 버텨 보았지만, 나는 결국 검을 거두고 날아오는 팔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늦었다.
결국 괴물의 휘두른 팔이 몸통을 직격했다.
쾅!
나는 그대로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8:13
그래도 다행인 건 본래 능력치의 내구성은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죽지는 않았다.
내가 벽에서 비척비척 기어 나오는 것을 본 괴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기하네. 넌 따로 개량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괴물이 도마뱀의 꼬리를 휘둘러 내 다리를 치려고 했다.
- 아이템,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땅을 박차고 오르며 꼬리가 휘둘러지는 것은 피했지만, 괴물의 팔이 내 몸을 낚아채려 빠르게 다가왔다.
몸으로 다가온 팔을 검으로 쳐 내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더 높이 뛰어오르자, 상대의 얼굴에 이번에야말로 감탄이 어렸다.
“감명 깊군!”
“닥쳐!”
괴물의 머리 위를 뛰어넘고서 나는 곧장 바닥으로 검을 내리 찔렀다. 두꺼운 꼬리가 검에 찔린 채 바닥에 표본처럼 고정되었다.
괴물이 숨소리를 거칠게 내뱉었다.
“아프잖아!”
하지만 그게 큰 타격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괴물이 내 몸을 잡아채기 위해 두 팔을 뻗었고, 나는 검을 바닥에 꽂아 둔 채 그대로 몸을 굴려 뒤로 빠졌다.
울퉁불퉁한 바닥이 전신을 자극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딜!”
괴물이 한 걸음 더 내디디며, 몸을 뒤로 뺀 내 쪽으로 손을 뻗어 봤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야, 몸에 달린 두꺼운 꼬리를 검이 고정하고 있었으니까!
“짜증 나게!”
괴물이 꼬리를 휘둘러 검을 빼 보려 했지만 바닥에 단단히 꽂힌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괴물이 검에 손을 뻗어 그걸 뽑아내려 한순간이었다.
콰쾅!
두 손이 성검에 닿으려 할 때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허공에서 짧은 폭발이 일어났다.
격렬한 거부 의사였다.
“잘했어, 파트너!”
그렇게 외치며 나는 무명의 활을 꺼내 들었다. 괴물은 예상치 못한 공격 덕분에 잠시 멈칫했고, 그게 내 기회였다.
- 무명의 활이 당신의 의지를 수행합니다.
- 당신의 마력이 화살을 대체합니다.
강렬한 마력이 활로 모여들며 화살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었다. 자신을 겨냥한 활의 모습을 보며 괴물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아니.”
나는 당겼던 활시위를 놓았다.
변명은 들을 필요가 없다.
화살은 곧장 날아갔다.
충분한 장력을 줄 여유와 거리조차 짧았음에도, 타격력은 내 의지에 달린 만큼 부족하지 않은 위력을 보여 주었다.
“컥!”
괴물의 오른쪽 어깨를 노린 화살이 몸을 강타했다.
검으로도 타격을 주기 힘든 신체여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도 관통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대신 강렬하게 괴물의 뼈를 타격했다.
쾅!
화살을 쏜 소리라기보다는 마치 주먹으로 철을 친 것 같은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렇게 가까이서 한 방을 먹였는데도 괴물은 쓰러지지 않았다. 화살을 맞은 괴물은 잠시 비틀거렸고,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 했지만…….
- 당신의 마력이 화살을 대체합니다.
나도 멈추지 않았다.
- 아이템, ‘용사를 기리는 망토’ 활성화 시간 00:05:21
남은 활성화 시간은 겨우 5분이었다. 그리고 저 괴물은 지금 나와 거의 동급의 스펙이다. 성검이 소용이 없다면 나는 저 피부를 뚫지 못한다. 근력으로는 가망이 없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수단은 순수한 마력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앞으로 5분 안에 무조건 다운시켜야 한다.
같은 메시지가 미친 듯이 중복되어 떠올랐다. 마치 에러 메시지처럼 시야가 ‘당신의 마력이 화살을 대체합니다.’로 가득 찼다. 마력이 미친 듯이 빠져나갔다.
“X발.”
하지만 나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진짜 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으헉!”
복부에 다섯 발째 화살을 맞은 괴물이 주춤했다. 그걸 보며 나는 절로 목구멍에 고여 버린 침을 바닥에 뱉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붉었으니까…… 뭐, 침은 아니었겠다만.
“효율적인 수단?”
목적을 알고 나니…… 그래, 이건 인정해야 했다.
이건 분명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전 대륙에 퍼져 있는 용병들은 전서구처럼 정보를 전해 나른다. 그리고 아까 전 내가 쓰러트렸던 ‘실력 있는 용병’ 자식은 여기에 식량을 나르러 왔다고 했다.
그야 본인은 애들을 구해 주기는커녕 관심도 없어 보였다만, 임무를 완수하고 도시의 길드로 돌아가면 이상한 걸 보았다고 한두 마디 정도는 했을 것이다.
겨울 왕의 숲에 이상한 건물이 있다. 거기에 애들이 가둬 놓고 무슨 괴상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더라.
그 소식이 친애하는 용병왕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그리고 알리시아가 예전의 자신처럼 감옥에 갇혀 고문당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눈이 뒤집히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도대체 누가 버려진 생면부지의 아이들이 감옥에 갇혀 실험을 당한다는 소식만 듣고 이런 깊숙한 숲까지 달려오겠어?
우리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래, 만약 왔다면 죽이는 건 참 쉬웠겠어.”
알리시아가 이곳에 오면, 이 괴물은 아이들을 인질로 삼아 그 애를 협박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알리시아를 안에 가두고 건물을 무너트릴 수도 있었고, 던전을 터트려도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걸 뚫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여기는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깊은 숲속이다. 도움의 손길도 없을 테고, 알리시아는 손발이 묶인 상태로 아이들을 지키기에 급급했을 테니까…… 아, 젠장.
생각만 해도 개 같았다.
- 당신의 마력이 화살을 대체합니다.
빠각!
화살을 맞은 괴물의 근육 밑으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랑 알리시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아.”
모든 인간은 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행동을 한다. 인간은 그런 생물이다. 우습게도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어서 아주 쉽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곤 한다.
그러니 저 괴물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게 뻔했다.
뭐, 어릴 때 겪은 비극적인 스토리가 있겠지.
“너한테 무슨 이유가 있든 간에, 나는 상관 안 해.”
하지만, 그래서 뭐?
“네 이유 따윈 궁금하지 않고, 들어 주지도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건 냉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저 괴물이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 왔는지 모르니까.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어쩌면 부당하고 불합리한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르고, 그런 고통은 사람을 통째로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세상에는 극복할 수 없는 고통도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재난도 있다.
물론 불합리한 일이지만,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나곤 한다.
알리시아가, 이 감옥에 갇혔던 아이들이, 어쩌면 눈앞의 괴물이 겪었던 것처럼.
“넌 결국 알리시아 하나 죽여 보겠다고 이런 짓까지 벌인 괴물이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자신이 벌인 일에는 책임을 져야만 했다. 억울할지라도 그렇다.
내가 겪은 고통이 타인을 해쳐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네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기나 해? 저 애들은 그냥 힘없는 애들이야. 어린애들이라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
휙!
아마도 백 번째쯤 되었을 마력의 화살이 마지막으로 괴물의 머리를 강타했다.
쿵!
드디어, 괴물의 몸이 뒤로 넘어졌다.
나는 천천히 활을 내려놓았다.
-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 경고! 마력이 회복되기 전까지 휴식을 권고합니다.
괴물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수도 없이 맞은 마력의 화살 때문에 전신에 피멍이 난자했고, 뼈는 부러져서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그러나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 아이템, ‘용사를 기리는 망토’의 활성화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즉, 내 패배를 의미했다.
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
조커마저 먹히지 않은 지금, 이제 내게는 정말 남은 수단이 없다.
마력 화살을 맨몸으로 몇백 대 맞고서도 살아남은 괴물이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니야.”
“…….”
“힘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죄야.”
우둑, 부러진 뼈가 도로 붙는 소리가 났다. 괴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팔을 들어 올렸다.
“그게 죄라서, 내가 이런 꼴이 된 거고.”
콰직!
제 꼬리를 끊어 내 구속에서 풀려난 괴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물의 시선이 나를 찬찬히 훑고 있었다.
아까 전과 다르게 그 눈에는 경탄 따위는 없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두려움, 그리고 질시뿐이었다.
“아니.”
나는 조용히 답했다.
“네가 틀렸어.”
힘이 없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그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외면한 작자가 죄책감마저 외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변명일 뿐이다.
“알리시아는 너와 다른 선택을 했으니까.”
그 말에 괴물의 얼굴이 콰득, 구겨졌다. 아마 알리시아와의 비교가 그의 자존심에 제대로 타격을 먹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너를 그렇게 만든 건 너야.”
그야 인간은 빌어먹을 생물이고, 때로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며, 그래서 실수를 하고 망가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걸 겪었는데도 여전히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알리시아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죽기 전에 할 말은 그게 다냐?”
잘렸던 꼬리마저 슬슬 자라나기 시작한 괴물이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사정없이 구겨진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씩 웃었다.
“그쪽이야말로.”
물론 허세였다.
이제 남은 수단이라곤, 글쎄. 소지창에 남아 있는 폭탄을 죄다 던져서 괴물과 같이 이 건물 아래 매장되는 정도랄까.
그나마 그쪽이 애들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마지막 방법을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콰콰쾅!
폭음이 터졌다.
나와 괴물이 있었던 지하의 너머, 머리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고막이 울렸다. 숱한 돌 조각들이 머리 위로 날았고, 건물 전체가 우르릉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감옥의 벽 한쪽이 완전히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감옥 안에, 벼락같은 외침이 울렸다.
“나와, 이 개새끼야!”
실로 우렁찬 목소리였고,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괴물도, 나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선 여자의 뒤로, 감옥의 한쪽 벽면이 완전히 날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이 보였다.
빛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 사이로 용케 새어 들어온 창백한 달빛이 은발에 음울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 빛이 던전 안으로 비쳐 들어와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익숙한 낯이었다.
드러난 피부 전체에는 흰 실 같은 흉터가 마구 얽혀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여자의 한쪽 팔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상이 다소 험상궂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주 깊은 빛을 지닌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가 주는 어떤 감동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알리시……!”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다리고 있었던, 하지만 이 타이밍에 떠오르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메시지가.
- 던전 클리어를 위한 선행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 선행 조건 : ‘알리시아’와 조우
그리고, 메세지는 한 번 더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남은 시간 4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