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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56화 (15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6화

도통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여간에 시간이 없었다. 던전이 터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 봐야 30분 남짓이었다.

나는 아직도 용병을 갈구고 있는 알리시아를 툭툭 쳤다.

알리시아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 왜?”

왜는 무슨, 저거 또 화나서 추궁한다고 당장 해야 할 것도 까먹었지.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럴 시간 없어.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아, 맞다. 그렇지. 얘들아, 모두 다 집 밖으로 나가!”

알리시아가 고함을 질렀다. 아이들은 내용은 둘째치고 그 고함에 주춤거렸다.

나는 알리시아의 등을 퍽 쳤다.

“왜, 왜 그래?”

물론 알리시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큰 눈을 껌벅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왜 본인이 얻어맞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면 겁먹잖아.”

“아차, 그런가?”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하고 알리시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여간에 저 둔한…… 됐다. 욕해 봐야 내 얼굴에 침 뱉기였다. 나는 겁먹은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곤봉을 잡고 있어 유독 튀는 메이에게 말했다.

“메이, 이제 우리는 여기서 탈출할 거야.”

“어떻게요?”

어린애답지 않은 배짱을 가진 아이답게 메이가 표정을 찌푸렸다.

“여기는 짧은 거리라서 어떻게든 걸었지만 제대로 못 걷는 애들이 더 많아요. 부축하는 애들도 사실 멀쩡한 상태는 아니고…….”

그건 나도 생각한 바이기는 했다.

나는 알리시아를 향해 눈짓했다. 내 시선을 알아차린 알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송 수단을 가지고 왔어. 이백 명 정도라고 했지? 좁긴 하겠지만 어떻게든 될 거야.”

“운송 수단이라고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방금 전까지 알리시아에게 한창 갈굼을 당하던 용병 여자가 물었다.

“네가 알 바 아니잖아.”

알리시아가 대번에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주변 아이들이 조그맣게 비명을 지르며 옹기종기 모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잘 몰라. 일단 믿고 나가 보자.”

“……네, 알겠어요.”

내가 메이와 대화를 나누고, 또 메이가 아이들에게 이 대화를 전달하는 사이 알리시아는 공간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아냈다.

부엌으로 사용하는 공간 사이에 나무 문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 다가가니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는 게 아마도 간수들이 밖으로 나갈 때 사용했던 문인 듯했다.

알리시아는 망설이지 않고 발로 문을 차 버렸다.

콰지직!

문짝이 단번에 튕겨나갔다.

알리시아가 혀를 찼다.

“하나같이 어설퍼. 이딴 놈들한테 당했다니…….”

속이야 시원했다만, 본인의 큰 동작이 여전히 주변 아이들을 겁준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뭐, 어쩔 수 없나.

나는 한숨을 쉬며 알리시아의 뒤를 따랐다.

문을 나가 보니 펼쳐진 공간은 역시 숲속이었다. 하지만 생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만큼 건물이 있는 주변은 제법 마당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마당 곳곳에 연금술사의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곧장 다가가 그 술식을 살펴보았다.

“몬스터 방지책으로 새긴 거야.”

알리시아가, 쭈그리고 앉아 술식을 살펴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지금은 몰라도 예전에는 여기에 강한 연금술사들이 아주 많았거든. 제대로 보수하기만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쓸 수 있어.”

연금술사의 술식이라…….

나는 납득했다.

그렇지 않아도 숲속 한가운데 이런 건물이 있는데 왜 아직까지 몬스터가 공격해 오지 않은 건지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역시 대비책이 있긴 했나 보다.

연금술사의 술식은 한번 새기기만 하면 술식 자체를 깨부수지 않는 이상 영원하니까. 물론 술식의 동력인 마력은 공급해야겠지만, 그건 알버트 혼자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초에 이런 곳에 이런 실험실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딴 술식도 필요 없지 않아?”

내 질문에 알리시아가 피식 웃었다.

“무서울 거 없는 인간들이었지만, 어쨌든 사람들 눈을 피해서 하는 실험이었으니까. 게다가 여기는 실험체 수급에는 그만이거든.”

“여기까지 아이들을 데려오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그쪽 문제가 아니라…… 이 주변은 몬스터 천지잖아.”

알리시아가 제 몬스터로 된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몬스터 쪽 신체가 오래 되면 결합이 되지 않거든. 그래서 던전 근처가 좋은 거야.”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괜한 걸 물었다. 들어 봤자 속이 역해질 뿐이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 술식이 있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버틸 수 있을까?”

“아닐걸. 이건 인기척을 지워 주는 술식일 뿐이고…… 애초에 건물 안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정도면 몬스터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 소용없을 것 같군.”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숲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길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희망을 걸었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기댈 데가 알리시아밖에 없다니.

솔직히 알리시아가 정말 준비성이 좋은 타입은 아니란 말이지. 대체 뭘 준비했길래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게다가 이 주변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알리시아가 말한 운송 수단이란 건 보이지 않았다.

아직 건물 안에 있는 메이가 외쳤다.

“지금 나가도 돼요?”

“아니, 잠시만 기다……!”

쾅!

콰쾅!

커다란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나조차 깜짝 놀랄 소리였으니, 아이들은 더했다. 아이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서로 꼭 껴안았다.

나는 검을 들고 빠르게 등을 돌렸다.

“대체 무슨……?”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뭐야, 저건?”

내가 묻자 알리시아가 낄낄 웃었다.

“뭘로 보여?”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적절히 정리되어서 제법 넓어 보이던 마당에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거대한 크기의 마차 여섯 대가 놓여 있었으니까.

사실 마차라고 하기보다는 천장이 달린 짐수레처럼 생기긴 했지만, 하여간 성인이라도 열댓 명 정도는 태울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였다.

그러니까, 알리시아는 방금 전 저 거대한 마차를 소지창에서 꺼낸 것이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물론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의 비율이 해당 물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할 경우 시스템상 아이템으로 취급되어 소지창에 넣을 수 있다. 그러니 이론상으로는 마차 같은 운송 수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미친 돈지랄이야.’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 못 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술로 제련할 수 있는 던전 부산물은 종류도 워낙 적고 구하기도 어렵다. 값어치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던전 부산물은 대부분 무구를 만드는 데 그쳤다.

그런데 그런 값비싼 던전 부산물을 단순히 운송 수단을 만드는 데 쓰다니.

이 정도 크기의 마차를 만드는 데 대체 어느 정도의 부산물이 쓰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그 거대한 돈지랄의 상징인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말이 아니었다.

히이이잉!

생명 없는 말이 고개를 쳐들며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다. 주위에는 요사스럽게 느껴지는 마력이 퍼지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이 여섯 대의 거대한 마차를 이끌고 있는 것은…… 해골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골로 된 말.

- 에이펙스의 광검이 의지를 피력합니다.

저건 아니야, 파트너.

알리시아가 팔짱을 끼고 웃었다.

“저건 좀 참아 줘. 이런 곳에서는 유용하니까.”

“유용하기야 하겠지.”

저게 뭔지는 알고 있다. 저건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언데드의 일종이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언데드들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여기까지 살아 있는 말을 데려올 방법은 없고, 이백 명 남짓한 아이들을 운반하려면 더 이상 나은 방법도 없었겠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린 문 사이로 마당을 내다보고 있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해골 말……?”

“저게 뭐야?”

“흐, 흑마법이다…….”

나는 속으로 신음했다.

그래, 아이들의 눈으로 봐도 확실히 일반적인 마법은 아니지.

시스템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들 흑마법, 특히나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는 여전히 누구나 꺼려 하는 존재였고,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대륙의 공적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알리시아도 자신이 네크로맨서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걸 드러내는 편은 아닌데.

‘큰마음 먹었군.’

혹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이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증거거나.

아이들을 입단속 시키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어쨌거나 보는 눈이 없지는 않으니.

나는 문틈 너머로 얼굴이 창백해진 용병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 기절해 있는 간수들 몇도 보였다.

“자, 다들 마차에 타!”

알리시아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메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고 있어? 다들 여기서 죽고 싶어?”

배짱 좋네.

메이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아이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하기야 알리시아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더 무섭기도 했을 거고.

나는 검을 든 채 현관문에 기대어 서 마지막 아이까지 마당으로 나와 마차에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솔직히 아무리 큰 마차라도 아이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공간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를 생각할 때도 아니고, 아이들이 워낙에 마른 상태라는 것도 지금은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의 부축을 도와주려다 비명만 들은 알리시아가 민망한 듯 중얼거렸다.

“열악하겠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이야.”

“그래, 이게 최선이지.”

솔직히 걸어가지 않고 무언가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었다.

문제는 숲길이 좁고 험해서 저렇게 큰 마차로 빠져나가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건 언데드를 활용하면 되려나? 하지만 그럴 경우 또 속도가…….

내가 이것저것 속으로 계산해 보고 있을 때였다.

“저, 용사님.”

아직 마차에 타지 않은 메이가 내 옷자락을 잡고 조심스럽게 당겼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감옥은…… 모두 부서졌나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서…….”

“아, 그래. 부서졌어…… 왜 그래?”

그렇게 대답하자 메이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나 싶더니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배짱 좋은 아이가 보일 법한 모습은 아니라 나는 깜짝 놀라 메이의 어깨를 붙들었다.

“무슨 일이야?”

“그, 저, 친구 한 명이…… 안 보여서…….”

아차.

그랬다. 내가 몸을 빌린 이 꼬마 아이는 메이와 같이 생활하고 있던 꼬맹이었다.

그리고 내가 ‘은의 장막’을 사용하고 있으니 메이는 당연히 그 77호라고 불렀던 꼬맹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그렇다고 가면을 벗고 메이에게 내가 그 ‘77호’라고 설명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대답을 피하는 것 자체야 아무 일도 아니다만 지금 시스템이 ‘해당 인물로서 행동하라’라고 하는 걸 보면 메이가 내 맨 얼굴을 보는 순간 행동에 더 제한이 생길 것 같단 말이지.

77호가 죽었다고 생각하게 놔두는 것도 안쓰럽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달랬다.

“괜찮아. 건물이 다 부서진 건 아니야. 어디에 잘 숨어 있었겠지.”

“그, 그럴까요……? 사라지기 전에 뭔가 모습이 이상해서…….”

“내가 좀 더 찾아볼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일단 마차부터 타. 정말 시간이 없어.”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메이는 계속해서 우물쭈물했는데, 마음은 기특하지만 기다려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메이를 번쩍 들어 올려 억지로 마차 하나에 구겨 넣었다.

“용사님!”

메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마차의 문을 쾅, 닫았다.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건 작은 창문뿐이었는데, 메이의 키로는 닿지 않을 터였다.

나는 메이를 밀어 넣고 알리시아를 돌아보았다.

“이제 애들은 다 탔어. 바로 출발하자.”

“있잖아. 방금 전 꼬맹이가 찾는 거 너 아니야?”

알리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가리켰다.

“계속 이상한 가면 쓰고 있잖아. 그거 인지 불가 아이템 맞지?”

그야 ‘은의 장막’을 알리시아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라 나는 놀라는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설명할 시간 없어. 저거 곧 터진다.”

30분은 지난 지 오래였다. 이제 슬슬 던전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알리시아가 혀를 찼다.

“너는 어디에 탈래?”

나는 곧장 님페의 바람을 사용해 마차 꼭대기에 올라탔다.

“여기.”

탑승감이 좋지는 않았지만 걸터앉을 만한 공간은 있었다. 어차피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니 마차 안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를 따라 마차에 타는 대신 등을 돌렸다.

“그럼 일단 먼저 출발해. 나는 뒤처리 좀 하고 곧바로 따라갈 테니까…….”

“잠시만!”

내가 불렀지만 알리시아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놀라지 않고 알리시아의 등 뒤에 아이템을 던졌다.

그제야 알리시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가져가.”

내가 꺼낸 것은 조한율의 카드로 샀던 각종 폭탄들이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아이템들을 본 알리시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게 뭐야?”

“폭발물들. 이거 적당히 던전 근처에 설치한 다음 곧장 따라와.”

던전 브레이크를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초반에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용도는 되겠지.

알리시아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곧 바닥에 쏟아부은 폭탄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별 희한한 것을 보는 듯한 눈길이었다.

“진짜 이상한 애네.”

“나도 알아.”

나는 언데드를 돌아보았다. 말들은 금방이라도 출발할 듯 발을 구르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바스타드 소드를 들며 소리쳤다.

“출발해!”

언데드들이 그 명령에 소리 없는 울음과 함께 힘차게 발을 굴렀다.

마차가 출발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조금 잃을 정도로 굉장한 힘이었다.

곧 알리시아가 서 있는 곳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멀어졌다. 높이 솟아 위용을 자랑하던 탑 또한 곧 나무 사이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괴물 같은 숲이 모든 것을 삼켰다.

덜컹.

좀 전에 좁은 길을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언데드들은 없는 길을 만들어 내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섭게 달려 나가는 마차 위에 앉아 뒤를 돌아보았다.

문득, 희미한 비명이 귀를 스쳤다.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숲속에서 폭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땅에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것이다.

‘제발, 알리시아.’

빨리 따라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가장 뒤를 달리고 있는 마차 하나가 크게 덜컹거렸다.

숲속에서 거대한 인영이 튀어나와 마차 위에 올라탄 것이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탄 것은 단 한 명이었다.

뒤를 따라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피가 묻은 바스타드 소드가 먼저 눈에 밟혔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리시아가 반사적으로 내게 웃어 보였다.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금방 왔지?”

“그래.”

네가 무사하면, 그거면 됐다.

나는 이제 슬슬 희미해지려는 어둠 속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비추는 아래, 숲속에서는 온통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땅이 진동했다.

몬스터들이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몬스터들의 세상에 잘못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이 숲속에 인간이 만들어 낸 지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알리시아가 겪어야 했던, 그리고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지옥 같은 시간은 이제 끝났다.

남겨진 죽음은 숲이 모두 집어삼킬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저 살아남는 것뿐이다.

나는 검을 쥐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44:50:48

긴 이틀이 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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