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7화
폭발음이 잦아들고 머지않아 숲 건너편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폭발물들이 제 값어치를 다 한 듯했다.
하기야 순식간에 몇억 치를 태웠으니…… 조한율을 다시 보게 되면 공치사라도 한마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본인이 그걸 좋아할지는 모르겠다만.
게다가 알리시아가 부리는 해골 말들이 얼마나 빠르게 길을 만들어 내면서 달려가는지 세찬 바람에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 속도라면 이틀 안에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일단 언데드라 말들이 지치지 않는다는 게 한몫할 것이다. 뭐, 길이 워낙 험해서 마차는 연신 덜컹대긴 했지만.
“흑, 흐흑…….”
“나 멀미 나…….”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숨죽인 채 서로의 손을 꼭 부여잡고서 버티고 있었다. 불안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마차 안으로 들어가 달래 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해 준답시고 고생만 시키는 것 같은데.’
상황이 상황이긴 했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이거라도 좀 마셔 둬.”
그때 다른 마차 지붕 위에 앉은 알리시아가 내게로 무언가를 던졌다. 잡아채고 나니 포션이었다.
나는 그 포션을 받아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포션병이었지만, 나는 익숙한 무언가의 그림자를 찾아냈다.
‘아리아드네가 만든 것 같은데.’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포션병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알리시아를 포함해 일리시온, 그리고 루카스도 절친한 친구였지만, 아리아드네는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내가 맨 처음 타르토스에 와서 정처 없이 낯선 길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 손을 내밀어 준 게 아리아드네였으니까.
솔직히 아리아드네가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살아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고.
물론 걔랑 같이 다니다 보니 용사 같은 이상한 클래스를 열어 버렸다만…… 뭐,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이건 킵해 두자.’
결국 나는 포션을 마시는 대신 그냥 소지창에 넣어 버렸다. 알리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디 팔려고? 돈 주고도 못 사는 포션이긴 한데.”
“안 팔아.”
내가 미쳤냐.
“그럼 지금 마셔 두는 게 나을 텐데. 피곤하지 않아?”
“아니, 딱 좋아.”
적당히 긴장돼서 좋은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은 몬스터들과 거리를 어느 정도 벌려 둔 상태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저 던전에서 주로 서식하는 몬스터는 뭐야?”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묻자 알리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했다시피 C급부터 A급까지 다양한 편이라서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 고블린부터 와이번까지 사는 넓은 던전이거든.”
“망할.”
“뭐, 운에 맡길 수밖에 없군. 처음에야 C급 몇백 마리 정도겠지만 자칫하면…….”
알리시아는 말을 삼켰지만 그 뒷말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 고정형 던전이 터지고, 게다가 초반에 막지 못할 경우 몇 차례에 걸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며 등급도 올라간다. 그래서 초반에 막지 않으면 위험한 거고.
그러니 숲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A급 몬스터가 몰아닥칠 경우도 배제할 수 없긴 했다.
나는 던전 쪽을 돌아보며 소지창에서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그럼 한번 확인해 보지.”
쌔액!
마력으로 형성된 화살이 숲 위를 길게 날았다. 달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마력의 화살이 날아가며 주변을 비추었다.
‘근력이 올라간 보람이 톡톡히 있군.’
오랜만에 힘쓰는 보람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긴 샷이었다.
그리고 화살이 어지간히 날아갔다 싶을 때쯤, 마력을 주위로 산산이 흐트러지게 했다.
알리시아가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컨트롤 좋네.”
마력의 빛무리가 비산하며 주위를 아주 잠깐 비추었다. 그리고 나와 알리시아는 동시에 신음했다.
“아, 징그러워.”
“귀찮게.”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두꺼비 한 무더기였다. 아마 C급 몬스터일 것이다. 다만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아 보였다.
알리시아가 짜증을 냈다.
“늪지대에 사는 두꺼비들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무더기로 보니까 소름 돋는다.”
“그래도 저것만 있다면 나쁘지는 않은데…….”
아마 원샷 원킬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파트너가 호전적으로 웅웅대며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는 그다음에 2차로 쏟아져 나올 녀석들이지.’
그러다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어?”
마력으로 잠시 어둠을 밝힌 만큼 내가 몬스터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순간이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이상한 게 언뜻 비친 것 같았는데…… 나는 알리시아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봤어?”
“어? 뭘?”
“두꺼비들 뒤에 있던 거 말이야. 뭔가 이상한 게…….”
그때였다.
말이 울부짖으며 서서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뭐야?”
알리시아가 순식간에 마차에서 뛰어올라 맨 앞쪽 마차 위로 이동했다.
어지간한 나무들조차 꺾어 버리며 돌진하던 기세가 느려지면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도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경계하며 알리시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알리시아가 혀를 찼다.
“이 녀석들은 나보다 똑똑해. 아마 주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감지한 모양이야.”
그렇게 말한 알리시아는 말의 속도를 천천히 떨어트렸다.
숲속에서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서자 아이들의 불안한 숨소리가 마차 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위로 기감을 퍼트려 보았다.
그리고 곧 알리시아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할.”
확실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을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직은 살기가 섞이지 않았다만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몬스터들이 이렇게 군침 도는 사냥감을 놓칠 리 없으니.
겨울왕의 숲에 몬스터들의 야생 군락지가 있다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다만, 이렇게 빨리 마주칠 줄이야.
나는 알리시아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까?”
알리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크기의 마차로 길도 없는 좁은 숲속을 지나가면서?”
“……그래, 불가능하지.”
지금도 해골 말과 여섯 대의 마차가 억지로 길을 뚫은 흔적이 선명했다. 딱히 길이 없어 숲을 미친 듯이 뚫고 지나가고 있는 만큼 소음이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신음했다.
진퇴양난이로군.
뒤에서는 몬스터들이 쫓아오고, 이대로 나아갔다간 몬스터 무리들과 맞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앞뒤로 공격당했다간 이겨 낼 재간이 없었다.
만일 나와 알리시아 둘뿐이라면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숲을 통과하겠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도 없다. 조용히 걷기는커녕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이런 요란한 이동 수단을 가지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거고.
결국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알리시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뭐가?”
“이 마차, 튼튼한 거 맞지?”
나와 알리시아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몬스터들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있을 리는 없다. 적어도 몬스터의 공격 몇 번은 버텨 줘야 했다.
“아다만티움을 때려 넣었는데 어지간하면 버티지 않을까?”
방금 쟤가 뭐라고 했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알리시아를 돌아보았다.
“뭘 넣어?”
“하여튼 실전에서 써 보는 건 처음이야. 나도 잘 모르겠네. 충격 방지 술식을 새겨 넣긴 했다만.”
나는 옆에 선 6대의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마차에 튼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고, 비싸기로는 미스릴 만한 아다만티움 금속을 때려 넣은 데다, 심지어 술식까지 새겨 넣으셨다?
이렇게 호사스러울 데가 있나. 전 차원에서 제일 비싼 마차일 것이다.
혹시 이 마차에 전 재산을 털어 넣은 건 아니겠지?
“어쩌다 이런 걸 만든 거야?”
별 필요 없는 물음이다만 묻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유용하기는 했다만…… 설마, 이백 명 남짓한 어린애들을 도망시켜야만 하는 상황을 예측하고 이런 마차를 만든 것도 아닐 테고.
내가 그렇게 묻자 알리시아가 씩 웃었다.
“글쎄,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대륙 여행을 할 계획이었거든.”
“마차를 6대나 거느리고?”
“나 혼자서는 아니고, 친구들마다 한 대씩. 나는 돈 냈으니까 두 대 쓰고.”
“뭐?”
“여행 길게 다니다 보면 개인 공간은 필수거든. 뭐, 도시에 들어갈 때 뽐내는 용도로 쓸 수도 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러니까, 알리시아 말은 이게…….
“……바보 아냐?”
“어,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감상에 빠지려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행복한 은퇴 후 설계를 들을 때가 아니다.
“하여간 튼튼하단 말이로군.”
그래도 목이 잠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이어 말했다.
“그럼 됐어. 이대로 뚫고 지나가자.”
그러자 알리시아가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그거 진짜 힘들 텐데.”
“알아.”
“아니, 진짜 힘들다니까. 자칫하면 죽어.”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잖아.”
“아니, 네가. 진짜 죽는다고.”
알리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알버트와 싸울 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어. 몬스터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완전히 난장판이 될 테니까.”
“그런데?”
“내가 너를 지켜 줄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올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다른 방법 있어?”
그렇게 묻자 알리시아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알리시아로서도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죽었겠지. 망할.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마차 튼튼하다며. 이대로는 시간만 끌 뿐이야. 괜히 앞뒤로 몬스터들 사이에 끼이느니 시도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샌드위치처럼 납작해지는 건 사양하고 싶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알리시아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하지만 알리시아도 마냥 멍청이는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처참해 보이는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 시도해 보자.”
알리시아가 나직한 휘파람을 불자 말들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덜컹!
그리고 다시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시선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말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던 그때…….
“오른쪽!”
알리시아가 크게 외치며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는 어둠을 베어 내며 일렁였다. 눈부신 빛의 검기가 쏘아져 나가면서 커다란 나무 하나를 통째로 베었다.
우지끈.
잘린 나무가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성인 머리통만 한 몸채에 시뻘건 눈알이 박힌 박쥐 수백 마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나무를 피하더니 일제히 날아올랐다.
형형한 안광의 박쥐들이 무리를 지어 우리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 B급 몬스터, 큰 숲 박쥐가 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박쥐는 문제도 아니었다. 검을 든 알리시아가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왜 하필 저거야!”
그리고 나도 그것을 보았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바스락.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듣기만 해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그건 수백 개의 발이 땅을 기는 소리였다. 빠른 속도로 기어 오는 그것이 온갖 나무를 흔들며 접근했다.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A급 몬스터, 왕지네가 출현하였습니다.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몸에 수백…… 아니, 수천 개쯤 되어 보이는 다리를 가진 거대한 지네. 3미터 정도는 너끈히 될 법한 길이었다.
심지어는, 그런 지네가 수십 마리였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땅을 기어 오던 지네가 목표물, 그러니까 우리를 포착하고 서서히 딸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대가리를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나 대신 알리시아가 소리를 질렀다.
“X발. 너무 징그러워!”
내 말이!
하지만 말을 할 틈은 없었다.
- 에이펙스의 광검이 당신의 의지를 수호합니다.
평범한 롱소드만 한 길이의 검이 마력을 불어넣자 순식간에 길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막 마차를 덮쳐 오려던 지네를 베었다.
흰 검날이 지네의 껍데기 사이의 살을 파고들며 단숨에 두 동강을 냈다.
키에에에엑!
동강난 지네가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절단 난 채로 쓰러졌다. 그리고 옆에서도 알리시아가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로 검기를 쏘아 내며 여기로 달려드는 지네 두어 마리를 후려쳐 갈겨 버렸다.
순식간에 동강 나 버린 지네들의 시퍼런 피가 제 동료들에게 흩뿌려지자 나머지 몬스터들이 분노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에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박쥐들의 날갯짓이 더욱 거세졌다.
숲이 요동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난전의 시작이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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