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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59화 (16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59화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분노가 한순간에 사그라졌다.

알리시아가 제 멱살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인간의 손으로.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알리시아가 내가 쓰고 있는 ‘은의 장막’을 벗겨 낼 때,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알리시아의 눈에 낯선 꼬맹이의 얼굴이 비쳤다. 낯선 얼굴에 잠시간 실망이 스쳤지만, 여전히 내 흔적을 찾아보려 애쓰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나도 알리시아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꼬맹이의 모습을 보았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색 눈동자…… 어쩐지…… 내가 흐릿한 거울을 좀 더 들여다보려고 했을 때 알리시아가 내 얼굴을 덥석 잡았다.

“마, 맞지?”

눈동자에는 아직도 의혹이 서려 있었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곧이어 확신 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무어라 할 겨를도 없이 알리시아가 나를 거세게 껴안았다.

“너, 레나구나.”

반론도 필요 없을 정도로 확신에 찬 어조였다.

나는 도대체 이 꼬맹이의 얼굴 어디서 나를 발견한 것인지 물어보려다가 그만뒀다.

아, 그래. 어차피 상대는 알리시아였다.

알리시아는 보통 그냥 본인이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논리적인 고찰이 필요한 일을 싫어한다. 생각하는 대신 자신의 감을, 그리고 자신이 실제로 보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

그러니까, 알리시아는 그저 나를, 레나를 보았다. 내가 10살짜리 꼬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거나 그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고민하는 대신 그냥 내가 나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바보 같지만, 그래도 정말…….

나는 알리시아의 어깨를 한 번 세게 껴안고 놔주었다.

이제야 눈치챘냐, 혹은 대체 어떻게 알았냐, 하는 상반된 물음이 동시에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지금 해야 할 말은 그저…….

“보…….”

파지직!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스템 메시지가 붉은색 글씨로 떠올랐다.

- 경고! 해당 던전에서 플레이어의 모든 발언은 차단되지 않습니다.

- 단, 주변 인물에게는 대화가 제한되어 들립니다. 정체를 의심받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아까 전 해당 인물로서 행동하라는 경고와는 또 다른 메시지였다.

나는 황당해져서 눈을 껌벅였다.

“이게 뭐야?”

“왜 그래?”

알리시아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나야말로 알리시아의 반응이 의아했다. 알리시아도 플레이어인 만큼 당연히 방금 튄 스파크가 보여야 할 텐데?

“왜 그러냐니. 방금 시스템이……!”

파지직!

다시 한번 스파크가 튀었다.

그런데 알리시아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만큼 위험한 일에는 누구보다 빨리 반응하는 알리시아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분명 정말로 방금 그 스파크가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상해.’

이건 시험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알리시아의 손을 붙잡았다.

“알리시아, 사실 타르토스는…….”

파지직!

다시 한번 스파크가 튀었다. 그리고 같은 경고 메시지가 떴다.

반면에 알리시아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말에 반응했을 뿐이다.

“타르토스가 뭐 어쨌다고?”

알리시아에게는 저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윽.’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번에 일어난 스파크는 그저 시각적 효과로만 끝나지 않았다. 소매 밑의 팔목 부분에서 약간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나쁘진 않아.’

적어도 시스템의 경고하는 게 뭔지는 명확해졌다.

다행히도 알리시아가 내가 레나라는 걸 알아차린 것에는 별다른 페널티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나 스스로 알리시아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머리를 굴릴 때, 알리시아가 갑자기 내 손을 홱 잡아채며 헐렁한 셔츠의 팔목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살이 타는 냄새가…… 이게 뭐야?!”

망할 개코 같으니라고.

팔목 부분의 피부가 점점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뜨거운 기름에 덴 것처럼.

나는 고개를 저으며 셔츠를 내렸다. 적어도 그러려고 시도했다. 물론 알리시아의 힘에 비하면 택도 없는 일이어서 실패했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 게 아닌데? 이렇게 갑자기 상처가 생긴다고?”

알리시아는 지체하지 않고 곧장 포션을 찾아내 내 팔목에 그대로 부어 버렸다. 의혹이 사라진 눈동자에는 다시 수많은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옵타티오를 해치우고 나가더니 사라져 버렸잖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그동안 어디에 갔었어? 그리고 왜 여기에 이런 꼬맹이 모습으로 있는 건데?”

알리시아의 지적은 더럽게 옳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방금 떴던, ‘해당 인물로서 행동하라’는 게 아니라 ‘정체를 의심받지 않도록 주의하세요.’라는 경고 메시지.

이 메시지는 낯이 익었다. 분명, 예전 백록담 던전에서 보았던 메시지였다.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알리시아가 불만스럽게 눈을 굴리며 물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알리시아의 입을 막았다.

“잠깐만, 생각 좀 해 보고.”

뭔가 떠오를 것 같단 말이다.

‘내가 언제 저 메시지를 봤지?’

구체적인 상황을 더듬어 봐야 했다. 정확히 언제 저 메시지가 떠올랐는지.

‘내가 청룡한테 말하려고 했을 때였어.’

나는 미래에서 왔다, 그렇게 말하려고 시도했을 때.

이 메시지가 떠올랐던 건 그때였다.

당시에는 이게 나더러, 던전 내의 인물에게 이것이 던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지 말라는 시스템의 경고라고 생각했었다.

자신들이 시스템에 의해 재구성된 던전 속의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걸, 이 사람들이 알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시스템 메시지는 내게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건 던전이 아니었잖아.’

내가 그 던전 안에서, 과거에서 했던 일은 정말로 현재에 영향을 미쳤다. 그건 과거 시점을 재현했을 뿐인 단순한 던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저 메시지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잠시 생각을 거듭하던 내 뇌리에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이거 그럼 혹시…….’

결과를 보자.

내가 그 던전에 들어감으로써 본래 정해져 있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운명의 씨앗이 발아했고, 결국 운명이 바뀌었다. 청룡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고 정소현은 1년 더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미 멸망한 세계, 무언가를 고치러 타르토스의 과거 시점으로 왔다.

나는 과거로 갔고, 결론적으로 미래를 바꿨다.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어라.

“대체 왜 그러냐니까?”

알리시아가 다 나은 팔목을 찰싹 찰싹 때렸지만 나는 방금 깨달은 사실에 충격을 받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거 시간 여행 소설에서 나오는 단골 소재잖아!’

시간 여행을 할 때 주의 사항 : 시간 여행자라는 것을 밝히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한 건 정말로, 시간 여행 그 자체였다.

즉, 시스템이 금지하는 것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라는 걸 밝히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머릿속에서 종이 댕댕댕, 울렸다. 직감적으로 나는 내가 이번에야말로 정답을 맞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망할.

깨닫고 보니까 너무 명백한 힌트였다.

물론 소설에서 저런 주의 사항은 대개 시간 여행자라는 게 밝혀져서 X된다는 예고편이나 다름없긴 한데, 어쨌든.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지?’

나 자신이 아주 멍청하게 느껴졌다. 알리시아를 욕할 게 아니었다.

아, 내가 쟤랑 동급이었다니. 자존심 상하네.

그때 인내심이 다한 알리시아가 내 어깨를 잡고 탈탈 털기 시작했다.

“야, 레나! 무슨 일인데. 말을 좀 해 봐!”

“아, 알았으니까 그만 좀 흔들어! 혀 깨물겠다!”

“아, 미안.”

알리시아가 맥 빠진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흔드는 건 멈추었지만 놓지는 않았다. 내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의사 표시는 분명했다.

답답해하는 건 당연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도, 알리시아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3년 만에 나타났는데 심지어 처음 보는 꼬맹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런데 아무 설명도 못 하면 나도 검부터 뽑았을 테니까.

그리고 나도 정말 대답을 해 주고 싶었다.

나는 허공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직도 시스템 메시지가 흉흉하게 떠 있었다.

‘뭐, 근데 못 할 것도 없잖아.’

대개 시간 여행의 폭로가 금지되는 건 타임 패러독스가 생긴다거나, 혹은 과거를 너무 많이 바꾸었더니 미래가 더 나쁘게 변해 버린다는 문제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들에선 그랬다. 나비 효과, 타임 패러독스, 그 외 드라마와 영화 등등.

‘근데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 아니야?’

타임 패러독스고 나발이고 지금 내겐 망해 버릴 미래 자체가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대략 28시간 50분 이후 이 세계에서 쫓겨날 예정이었다.

즉 다음 운명의 씨앗을 얻을 때까진 넋 놓고, 알리시아가 죽든 타르토스가 망하든 아무 손도 못 쓰는 입장이란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 메인 퀘스트에서 내가 무언가를 바꾼다고 한들, 그게 충분하지 않다면?

그리고 정소현한테 그랬던 것처럼…… 아주 사소한 차이밖에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

상상만 해도 두려움이 치솟았다.

알리시아가 덜컥 내 손을 잡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왜 갑자기 떨고 그래? 추워?”

아니, 무서워서.

널 보는 게 마지막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는 깊게 숨을 쉬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결국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알리시아, 나는 괜찮아. 문제는…….”

만일 알리시아에게 모든 걸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쨌든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리시아는 이미 죽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혹시 내 친구들 모두가 죽지 않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시도해 볼 만했다.

아니, 해야 했다.

나는 작정하고 입을 열었다.

“타르토스는 이미…… 컥!”

눈앞에 순간적으로 흰 별이 보였다.

동시에 누군가 내 장기를 손으로 쥐어뜯는 것만 같은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허억……!”

투명한 손이 내 몸 전체를 틀어쥐고 쥐어짜는 것 같았다. 검으로 베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당장에 목구멍 안에서 핏물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경고!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생명력이 저하됩니다.

그런데 그게 뭐?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멸……!”

그러니까, 멈추지 않으려고 했다.

- 경고!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발언에 따라 메인 퀘스트가 즉시 종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 쪽이 훨씬 잔인했다.

내가 절대로 감수할 수 없는 것을 페널티로 내걸었으니까.

나는 순식간에 무력해졌다.

“커헉!”

말을 멈춘 순간 몸을 덮쳐 오는 어마어마한 고통 때문에 무릎이 절로 풀렸다. 알리시아가 깜짝 놀라며 쓰러지는 내 몸을 받아 들었다.

“레나!”

고통에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입에서 피가 줄줄 새는 것을 발견한 알리시아가 경악에 입을 벌렸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젠장! 이 새끼들이!”

잠시 떨쳐 냈던 몬스터들이 슬슬 기세를 회복하고 있었다.

알리시아는 욕설을 내뱉으며 내 몸을 안아 들지 않은 다른 쪽 팔, 그러니까 몬스터의 형태를 하고 있는 팔로 검을 휘둘러 덮쳐 오는 몬스터들을 베어 냈다.

하지만 알리시아의 얼굴에 비친 두려움은 결코 몬스터 때문이 아니었다.

“레나, 정신 좀 차려 봐! 대체 뭔데? 너 지금 또 혼자 무슨 헛짓거리 하는 거 아니지?”

정말 대단하군.

나는 목을 움켜쥐고 기침을 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지?

알리시아는 내가 토한 피를 보며 경악했다.

“너 지금 피 토하는 거야?!”

그래, 이게 물감은 아닐 거 아니냐. 진짜 돌대가리인 건지 아니면 엄청나게 똑똑한 건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네.

나는 한쪽 손으로 알리시아의 몸을 밀치고 마차 뒤를 따라오는 몬스터들을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알리시아는 금방 내 말을 알아들었다.

“넌 신경 쓰지 말고 몬스터나 해치우라고?”

그래.

“지금 나랑 장난하냐?”

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일단 장난 아니게 아프긴 했다.

알리시아는 내 뜻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와, 진짜 열 받게 하네!”

물론 내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몬스터들이 다시 따라붙고 있었다.

나는 전투 불능 상태니, 이대로라면 모두 다 개죽음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알리시아는 결국 내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일어섰다.

물론 이를 갈긴 했지만.

“너, 너, 너! 나중에 두고 보자!”

쿠어어엉!

알리시아가 내지르는 검에 다시금 몬스터들이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알리시아가 휘두르는 검격이 더 날카로워진 듯했다.

‘망할.’

어쨌거나 내 쪽에서 정보를 주는 건 시원하게 망했다.

X발, 페널티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알리시아가 내 말을 알아들은 것도 아닌데 너무한 거 아니냐?

그리고 솔직히 내가 ‘타르토스가 멸망했다는데 퀘스트를 마치면 복구해 준대. 그리고 네가 앞으로 하루 동안 살아 있는 게 내 첫 퀘스트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고 말한들 알리시아가 할 반응이라곤 ‘뭔 헛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정도였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잠깐이라면 몰라도 쟤 혼자 이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빠르게 포션을 복용하며 내상을 살폈다.

상태는 아주 심각했다.

상급 포션을 복용했는데도 회복이 느렸다.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사지를 움직이려고 해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엄살을 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전투로 복귀해야 했다.

검이 안 된다면 마력구라도 던져 보려고 손끝에 마력을 모아 보았더니, 피부 너머로 보이는 얇은 핏줄이 툭툭 터져 나가는 꼴이 보였다.

가관이군.

심지어 마력을 운용하는 바람에 한 번 더 피가 목구멍으로 역류했다.

검은 피가 마차 밖으로 쏟아졌다.

“좋은 말로 할 때 닥치고 포션이나 마셔라. 어?!”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등을 돌리고 있으면서도 용케 내가 피를 뱉은 걸 알아차린 알리시아가 소리를 질렀다.

“헛짓거리 하다가 걸리면 진짜 죽을 줄 알아!”

눈치 빠른 돌대가리 같으니라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최악이었다. 이 상황에서 행동 불능 상태라니. 최악의 페널티였다.

심지어 얻은 것도 없고. 정말 미친 짓거리 했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렇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잖아.’

시도해 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그만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두려웠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두려웠다.

알리시아는 나를 알아봤고, 걱정했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이 진짜 다 개 같았다.

정말로.

‘……그래도 해야지.’

몸이 성하지 않으면, 그게 뭐.

내 대가리는 아직 굴러가고 있다고. 별로 좋진 않은 머리다만 굴리면 뭐든 나오겠지.

최악의 경우라도 입은 움직이니까 몬스터를 이빨로 물어뜯기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좀 역겹긴 하겠다만.

할 수만 있다면, 기회만 주어진다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28: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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