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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60화 (161/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0화

내가 옆으로 다가가자 알리시아가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충분해.”

나는 알리시아의 검을 피해 마차를 기어오르려는 몬스터의 손을 발로 꽉꽉 짓누르면서 대꾸했다. 알리시아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몬스터의 머리를 걷어찼다.

쾅!

곧장 나가떨어진 몬스터를 보면서 알리시아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웃기지 마. 내가 너를 한두 번 봐?”

“지적할 부분이 아주 많네. 일단 너는 나를 처음 보는 게 맞잖아. 내가 언제 이런 비쩍 마른 꼬맹이었다고 그래?”

알리시아는 상당히 키가 큰 편이긴 하다만, 막상 옆에 서니 지금의 내 신장은 어깨에도 채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팔도 짧고 다리도 짧고. 괜히 능력치를 반쯤 복구시켜 놓고도 고전한 것이 아니다. 에이펙스의 광검이 날을 내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지.

코웃음이 들렸다.

“언제는 비쩍 마른 꼬맹이였던 적이 없던 것처럼 말한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 대충 이만하지 않았어?”

“헛소리 하고 있네. 꿈꿨냐?”

“나 장난하는 거 아니야, 레나.”

아주 공격적인 어조였다.

알리시아는 몬스터를 쳐 내는 와중에도 화가 난 것이 분명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미 죽은 알리시아의 운명을 바꿔야 했고, 더 나아가서 멸망한 세계를 다시 살려야 하고…… 하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에게조차.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 모든 기회가 날아가 버릴 테니까.

따져 보면 미치지 않는 게 다행인 거지.

나는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에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힘들었다.

실패할 가능성이 목을 조일 때는 더더욱.

하지만 어찌 됐건 이 모든 걸 알리시아에게 말할 수 없다는 건 확실했다.

‘일단 알리시아가 자체적으로 뭘 알아내는 것까지 페널티를 먹이지 않는 건 확실해졌지만…….’

하지만 시스템은 이미 내게 메인 퀘스트를 강제로 종료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만일 내가 무언가 정보를 암시해 알리려는 시도를 한다고 치자. 그랬다가 정말로 이 퀘스트가 도중에 중단되기라도 한다면?

깃털만큼의 가벼운 가능성도 허용할 수 없다.

나는 알리시아에게 무언의 암시를 해서 추측을 유도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차피 알리시아 상대라면 정보를 아주 명확하게 말하는 게 아닌 이상, 얘가 내가 던지는 애매모호한 암시만으로 적절한 결론에 다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럼 지금 내가 알리시아에게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지금이 대화하기 좋은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알리시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물론 알리시아는 그 대답에 납득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그렇게 넘어갈 생각하지 마. 나 지금 화났으니까!”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너 진짜 나랑 장난하냐?!”

알리시아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바스타드 소드에 몬스터들이 거의 갈려 나갔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무슨 전기톱 수준이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3년 만에 나타나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알리시아의 저 분노를 내가 아니라 몬스터들이 받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걸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설명도 제대로 안 하고!”

퍽!

알리시아가 발차기로 몬스터 하나의 대가리를 부쉈다.

솔직히 무섭다.

휙!

그리고 날아들던 와이번 하나를 향해 뛰어들어 몬스터 형태의 팔로 시원하게 후려쳤다.

키에엑!

목이 부러진 와이번이 구슬픈 목소리를 내며 낙하해 푸른 숲속으로 굴러떨어져 사라졌다. 거의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분노에 찬 알리시아가 나를 돌아보았다.

“피는 토하고!”

방금 전 소리가 가장 컸다.

시선이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방금 칼에 맞아 죽었다.

“그러는 너는? 너도 혼자 몬스터를 상대할 테니까 나보고 도망치라며.”

일단, 나는 소심하게 반항해 보기로 했다. 실제로 그 말에 속이 뒤집힌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반항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알리시아는 거의 포효했다.

“닥치지 못해, 멍청아!”

세상에, 쟤한테 저런 소리를 듣다니.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울분에 찬 성토는 계속 이어졌지만.

“내가 그간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기나 해? 3년이었어, 3년!”

나는 그 기간을 멍하니 들었다.

그래, 3년.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는 친구들과 떨어져 지구에 돌아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알리시아는 나를 잃어버린 채 3년을 보냈다.

쾅!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가 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어 해자 수준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달리던 몬스터들이 엎어졌다.

“그 멍청하고 큰 도마뱀을 쓰러트려서 겨우 끝났나, 싶었는데 아무것도 안 끝났어. X발, 내가 그러게 뭐랬어? 도마뱀 하나 쓰러트린다고 뭐가 끝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지?”

그래, 놀랍게도 우리 중 알리시아가 가장 현명했다. 물론 그렇게 말해 놓고 방금 전, 자신도 실은 믿고 있었다고 고백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높은 놈들이 찾아와서 책임을 지라고 난리를 치질 않나!”

뭐가 어쩌고 저째?

“뭐, 책임? 무슨 책임?”

어이없는 나머지 그렇게 반문했으나 알리시아는 본인의 분노에 빠져서,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말만 계속했다.

사실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거의 넋두리에 가까웠다.

“그 와중에 몬스터들은 계속 날뛰어서 일거리는 끊이질 않고, 정작 거짓말한 신전 놈들은 발이나 빼고!”

“야, 너 내가 물은 말에 대답이나 하고…….”

“그래도 그래…… 뭐, 원래 세상 사는 게 다 개 같지. 그런데 내가 제일 열 받는 게 뭐였는지 알아?”

“알리…….”

“아무리 찾아도 네가 없었다는 거!”

콰쾅!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알리시아는 충분히 검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도 직접 주먹으로 몬스터 하나를 갈겨 날려 버렸다.

쿠당탕!

멀리 날아간 몬스터가 바닥을 뒹굴었다.

“지난 3년간 내가 얼마나 너를 찾아다녔는지 알면 너는 진짜, 평생 내 수발이나 들면서 살아야 해. 알겠어? 물 떠오라면 떠오고, 갑옷 닦으라면 닦고!”

저건 진심일 것이 분명했다.

알리시아는 나를 부려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루에 서른 번도 넘게 물을 떠 오라고 시킬 테고, 진창에 갑옷을 빠트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내게 심부름을 시키고 히죽대는 알리시아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벌써 한 대 치고 싶어지는 걸.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이었다.

“넌 그래도 싸. 알겠냐?”

지금 내 앞에 선 알리시아는 그냥, 지독하게 지쳐 보였다. 동시에 그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도 어딘가 안도의 기색이 엿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찾았던 것을 마침내 찾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제발 좀…….”

알리시아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나랑 있어.”

“…….”

나는 침묵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알리시아는 키가 대략 175센티쯤 되고, 한쪽 팔은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의 것을 달고 있다. 덕분에 바스타드 소드를 한 손으로도 다룰 수 있을 만큼 근력이 세고, 성질도 있고, 그래서 전체적인 인상이 결코 부드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분명 그렇게 위협적인 모습인데, 나를 향해 말하는 지금의 알리시아는 무척이나 연약해 보였다.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알리시아의 그런 모습을 보는 동시에, 이제껏 일부러 잊으려고 했던 생각 하나가 수면 위로 치고 올라왔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28:21:18

설령 이 모든 장애물을 뚫고 메인 퀘스트에 성공하더라도, 나는 여기에 머무를 수 없다.

내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운명을 바꾸어 살아남는다고 한들 알리시아는 또다시 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괴로운 만큼 알리시아도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더욱.

또, 설령 내가 모든 퀘스트에 성공해 멸망한 타르토스를 복구시킨다고 한들, 혹시 내가 여기에 존재할 수 없다면…….

‘그만하자.’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기 시작했다간 곧 머리 전체를 점령당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애써 그 생각을 떨쳐 내고 알리시아에게 말했다.

“……일단 이 상황부터 해결하자.”

“아니, 레나 너……!”

“살아남는 게 먼저야. 지금 이러다 다 죽을 판이라고.”

냉정한 말에 알리시아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알리시아의 표정에 상처받은 듯한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건…… 정말이지, 도저히 볼 만한 모습이 못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어조가 다시 누그러졌다.

“우린 나중에……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어, 알지?”

“…….”

알리시아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보였고, 또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말로 남을 달래는 건 정말이지 할 짓이 못 되었다.

하여간, 지금은 뭐든 수를 짜내야 했다. 그리고 머리 굴리기는 알리시아가 할 수 없는 특기였다.

‘내가 뭐든 생각해 내야 해.’

물론 나도 머리 쓰는 걸 선호하지는 않고, 루카스나 일리아스가 있다면 기꺼이 떠맡기겠지만, 불행히도 여기엔 둘 다 없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결한다.’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은 너무 길고 몬스터들의 숫자는 너무 많다.

시간 쪽은 시스템상의 문제니 이건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럼,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나?

답은 간단했다.

아니오.

쓸 만한 폭발 아이템은 이미 다 털어 넣었고 용사를 기리는 망토도 아웃.

그럼 여기서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뭐지?

‘몬스터들을 따돌린다거나?’

하지만 그게 쉬우면 진작 그렇게 했다.

나는 우리 마차를 미친 듯이 덮쳐 오는 몬스터들을 살펴보았다.

저 몬스터 무리는 상당히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오래된 놈들은 거의 하루 내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알리시아의 말대로 몬스터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형태는 확실히 아니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놈들은 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몬스터들이 알리시아를 따라가게 한 거지?’

그때였다.

히이이잉!

가장 앞을 달리고 있던 말 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나와 알리시아가 전방으로 주의를 기울였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A급 몬스터, 파리지옥이 출현했습니다.

집채만 한 크기의 식물 형태 몬스터가 조용히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맨 앞에서 마차를 끄는 말은 막 그 식물의 아가리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알리시아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 파리지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치이익!

말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파리지옥의 몸이 단칼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하마터면 파리지옥의 입에서 부서질 뻔한 첫 번째 말은 아슬아슬하게 식물의 입 사이를 통과했고, 그다음 말들도 그랬다.

하지만 운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알리시아가 벤 식물의 진액이 뿜어져 나와 분수처럼 온 사방으로 튀었던 것이다.

후두둑

“욱!”

그리고 나는 그 흩뿌려지는 진액이 풍기는 냄새에 반사적으로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겨우겨우 참았다. 아무리 빨리 달리고 있다지만 바람결에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였다.

파리지옥은 기본적으로 달콤한 냄새를 풍겨 먹이를 유인하지만, 인간인 내가 느끼기엔 그렇지도 않았다.

심지어 주위를 살펴보니 주위는 이미 온통 파리지옥 천지였다. 아무래도 그들이 번식하는 구역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앞을 맡을게!”

이미 가장 첫 마차에 올라타고 있던 알리시아가 외쳤다.

“여길 빠져나가려면 섬세한 운전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손에는 흑요석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군데군데 널려 있는 파리지옥을 피할 수 있도록 본인이 말들을 조종할 셈인 듯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에서 말들을 지키는 건 중요했다.

“알았어!”

알리시아가 전방에서 운전을 맡은 이상 나도 내 몫을 해야 했다. 내가 검을 뽑아 들고 뒤에서 닥쳐오는 몬스터를 향해 휘두르려던 순간…….

‘어?’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끼긱?

작은 고블린들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고블린들은 숲을 지나치는 도중에 마주친 무리였는데, 내가 거의 무리의 절반을 넘게 베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나절 넘게 쫓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고블린 무리 하나가 믿을 수 없게도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들은 명백하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발견하고 눈을 깜박였다.

‘어, 이거 혹시……?’

그리고 나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지체하지 않았다.

콰직!

마력이 빠져나가는 감각과 동시에 성검의 날이 미친 듯이 길어졌다. 나는 길어진 검을 휘둘러, 막 알리시아가 지나치려던 파리지옥 하나를 찔렀다.

푸슉!

그리고 내가 찌른 자리에서 녹빛의 진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 진액은 나와 내가 타고 있던 마차 전체에 흩뿌려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몬스터들 사이에 혼란스러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지만, 하급 몬스터일수록 동요가 더욱 심하게 엿보였다.

그리고 내가 한 짓을 본 알리시아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왜 그런 걸 일부러 뒤집어쓰는데?”

“너도 똑같이 해!”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해답은 간단했다.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는 알리시아를 향해 고함쳤다.

“냄새를 지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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