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1화
그리고 대략 3시간 후.
마차는 천천히 멈추어 섰다. 나도, 알리시아도 거의 탈진한 상태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둘 다 꼴이 엉망이었다.
땅바닥에 대자로 뻗은 알리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뒤지는 줄.”
누가 아니래.
나는 말할 기운도 없이 동의했다.
냄새가 지독했다.
몸 전체가 녹색 진액에 뒤엉킨 건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마차 꼴은 도저히 볼 만한 꼴이 아니었다. 마차 전체에 녹색 진액이 굳어서 괴상한 젤리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아다만티움 특유의 광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특히나 신경 써서 파리지옥의 진액을 처바른 탓이다.
솔직히 누가 보면 진짜 몬스터보다도 우리가 몬스터에 더 가까운 몰골일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리시아가 바닥에 엎어진 채 힘없이 말했다.
“그래도 용케 몬스터들이 냄새 때문에 달려든다는 걸 깨달았네. 나 혼자였다면 끝까지 몰랐을 거야.”
아마 실제로도 그랬을 테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이건 알리시아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알리시아는 혼자였고, 적은 더욱 많았다. 홀로 싸우면서 왜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이 부자연스럽게 달려드는지 고민하라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봤더라도 혼자서 무언가를 시도해 볼 겨를도 없었을 테고.
당장 뭘 시도하기도 전에 수십, 수백의 몬스터들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여러모로 알리시아에게는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나도 파리지옥을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지는 못했겠지.’
그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몬스터들이 죽자 사자 우리를 쫓아온 것은 냄새가 원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차에 탄 아이들에게서 나는 냄새.
“도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군.”
“내 말이 그 말이야. 개새끼들 같으니.”
알리시아가 내뱉었다.
지금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아마도 감옥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할 때…… 아이들에게서 몬스터를 유인하는 냄새가 나도록 만든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리 만들었는지, 또 몬스터들을 냄새로 끌어들인다는 특이 사항을 가지게 된 것이 일시적인지 아닌지는 이후 이 숲에서 빠져나간 후 연금술사를 불러와 살펴봐야겠지만…….
‘쓸데없이 똑똑하기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냄새를 덮어씌울 발상을 했을까?
물론 용병으로 생활할 때 몬스터를 추적하거나, 사람을 추적할 때 대상에게 천리향(千里香) 따위의 아이템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냄새를 덧씌워 몬스터를 끌어들인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그야 어그로 스킬과 다르게 몬스터들의 후각을 자극시키는 건 컨트롤이 불가능한 일이니까.
무작위로 몬스터들에게 24시간 공격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플레이어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실험실 인간들이 한 짓은 그야말로 악의의 총집합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알리시아가 그 감옥을 무너트리고 애들을 데리고 탈출하더라도, 애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숲 속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는 것이니까.
만일 파리지옥을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냄새가 원인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루카스가 있었으면 욕 좀 먹었겠군.’
알리시아야 본인이 생각해 내지 못했으니 나한테 욕할 것도 없지만, 루카스는 달랐다.
걔라면 진작 생각해 냈을 테고, 이 이야기를 들어도 몬스터들에게 불가사의하게 추적당하고 있다면 당연히 소리와 냄새부터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아니냐며 잔소리를 해 댔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귀가 떨어질 것 같다.
‘솔직히 머리를 굴릴 틈 자체가 없었다고.’
나는 속으로 변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쳐 있는 상태인데 몇 시간 내내 몬스터들은 따라오지, 알리시아는 본인이 희생하겠다고 하지, 시스템은 페널티나 먹이지…… 내가 정상적으로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상황이냐고.
뭐, 언제나 그렇듯 답은 알아내고 나면 왜 몰랐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해 보일 뿐, 알아내기 전에는 불가해한 수수께끼이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진짜 실력이란 거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얄미운 잔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아, 그래. 나 멍청하다. 됐냐?
하여간, 파리지옥의 줄기에서 나온 진액으로 냄새를 덮어씌우자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던 몬스터들 중 반절은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왜 반절밖에 되지 않았느냐고?
일단 우리를 쫓던 몬스터들은 첫째로 후각을 자극당해 사냥을 시작했지만, 일단 우리를 인지한 이상 냄새가 사라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놈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급 몬스터들은 되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갔어도, A급 이상쯤 되는 놈들에게는 탐나는 먹이로 보였다는 말이다.
덕분에 그놈들까지 죄다 처리하고 나니 벌써 3시간이 흘렀다, 이거다.
정말 지독한 시간이었다.
이걸 알리시아가 혼자 견뎌야 했단 말이야? 둘로도 버겁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24:46:50
심지어 이러고도 하루가 꼬박 남았다는 게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아파 오는 머리를 꾹 눌렀다.
‘아니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숲을 빠져나가 알리시아와 아이들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줄 정도의 시간은 남은 거니까.
그 와중에 땅에 대자로 엎어져 있던 알리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누워 있었다고, 벌써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모양이었다.
나도 원래 저랬어야 했는데. 망할.
“그래도 다행이다. 그 와중에 열심히 달렸네. 숲 외곽까지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그 말에 나도 몸을 일으켰다. 물론 아직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뭐? 정말?”
“어, 이거 봐. 슬슬 흙이 부스러지잖아.”
그렇게 말하며 알리시아가 손에 잡히는 흙을 부스러트렸다.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리시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너 이전에 이 숲에는 온 적이 없었나? 같이 온 적 있지 않았어?”
“오기야 했겠지. 그런데 길은 몰라.”
알리시아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그놈의 길치는 낫지도 않냐.”
어지간한 왕국 수준으로 넓은 숲의 길을 모른다고 해서 길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알리시아가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숲 외곽 측에 가까워지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하루 정도?”
그런데, 알리시아가 말하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시스템상 남은 시간과 일치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시스템이 이대로 하루 동안 여유롭게 숲을 달리면 끝날 문제를 메인 퀘스트로 내걸었을 리도 없고.’
그야 시스템의 의도를…… 이제는 그저 악의에 가득 찼다고만 해석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퀘스트가 만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알리시아가 허공에 시선을 두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소지창을 훑고 있는 듯했다.
“일단 출발하기 전에 애들을 좀 살펴보자. 포션 있어?”
“물량이 많지는 않은데, 하급 포션은 좀 있어. 애들한테 다 돌릴 정도는 아니지만.”
“뭐, 내가 어느 정도 갖고 있으니까 괜찮아. 애초에 지금 아이들 몸 상태로는 하급 포션 이상은 독이야.”
그것도 그랬다.
결국 포션은 복용하는 사람의 생명력을 활성화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이 포션을 사용한들 완전히 회복되는 건 무리였다.
관건은 숲을 빠져나가서 충분한 영양과 안정된 환경 속에 놓일 수 있느냐, 였다.
알리시아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뭐라도 먹이고 휴식을 취하게 하면 좋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스템상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적절한 변명을 댔다.
“그래도 이 진액이 완전히 굳으면 냄새가 덜해져서 위장 효과가 떨어질 거야. 빨리 출발해야 해.”
변명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괜히 우물쭈물하다가 몬스터들이 또 냄새를 맡고 따라붙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다.
알리시아도 동의했다.
“젠장, 알았어. 그럼 각자 반씩 맡아서 포션부터 나눠 주자고.”
마차 문을 열고 살펴보니 아이들은 정말 못 볼 꼴을 하고 있었다.
마차 안의 아이들은 대다수가 거의 반쯤 기절해 있었고,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몇 명도 기절 직전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워낙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안에서 구토한 아이들은 별로 없다는 걸까.
그게 과연 다행인지는 모르겠다만.
잠깐이나마 멈춰 서서 애들 상태를 살펴보길 잘했다. 이대로 또 하루를 꼬박 달렸다간 아이들 중 절반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절한 아이들을 깨워 억지로 하급 포션을 하나씩 쥐여 주었다.
“자, 여기. 얼른 마셔.”
“…….”
내게 포션을 받아 가는 아이들의 눈은 모두 어두웠다. 다들 양순한 태도로 포션을 받아 가긴 했지만, 아무도 질문이 없었다.
배도 고플 테고, 내가 마차 밖으로 내리지도 못 하게 하고 있으니 지금 상황이 궁금할 텐데, 다들 무언가 묻기는커녕 주어지는 포션도 받기 꺼려 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 때문이겠지.
그렇다고 천천히 하나하나 설명해 줄 시간도 없는 터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숲에서 빠져나간 후 적절한 시간을 두고 회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용사님!”
그리고 나는 세 번째 마차에서 메이를 발견했다.
메이도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지만, 문이 열리고 내가 나타나자 금세 나를 알아보았다.
물론 ‘은의 장막’을 쓰고 있으니 내가 메이의 친구 몸을 빌렸다는 걸 알아본 건 아니지만.
“끝, 끝났나요? 이제 끝이에요?”
메이는 당찬 아이었지만 그래도 스물 몇 시간의 미친 질주는 이기기 힘겨웠는지, 거의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게 내가 받은 최초의 질문이었다.
동시에 대답하기 어렵기도 했고.
나는 포션병을 받아 든 메이의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 아직 조금 더 남았어. 많이 불편하지?”
“죽을 것 같아요.”
메이가 겉치레로라도 괜찮다고 말하지 못할 정도이니 말 다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포션 병을 다 들려 준 뒤 다음 마차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때 메이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힘없는 손가락이었다.
메이를 돌아보자 아이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간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녹빛 눈동자에 언뜻 눈물이 고인 듯했다.
“저, 용사님. 혹시…… 그…….”
말을 잇는 것을 망설였지만 메이가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메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찾아보니 한 명이 낙오되었더라고. 다른 마차에 타고 있어.”
“아, 세상에.”
메이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쉬어. 숲을 빠져나가면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차 문을 닫았다.
어쨌든,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대략 24시간 후에 메이는 자신의 친구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레나! 다 끝났어?”
“그래.”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포션을 돌리는 게 끝난 알리시아가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
얼른 알리시아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아야 한다.
우리가 마차 천장 위에 올라타자마자 말들이 곧장 내달리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따라붙지 않자 확실히 속력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하루를 꼬박 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 하루.
하루만 버티면 이 퀘스트는 성공할 테고, 하루가 지나면 나는 여기서 쫓겨나겠지.
여러모로 심정이 복잡했다.
……다른 생각이나 하자.
나는 마차 천장에 엎어진 채 알리시아에게 질문했다.
“알리시아, 숲을 나가면 이 애들은 어떻게 할 작정이야?”
내가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 한 걱정이었다. 여기서 아이들을 구해 낸다고 한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르토스 대륙은 어린아이들이 살아남기 좋은 세상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기에는 생존에 갈급한 세상이라.
알리시아도 내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곧 대답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신전에 연락해 놨어. 적어도 한동안은 보호해 주겠지.”
알리시아가 비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이 대륙의 평화를 위한다는 말을 증명할 기회잖아. 안 그래?”
신전에 가진 악감정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겉치레로라도 나서겠지. 하지만 어차피 임시방편일 거야.”
이 대륙에서 신전이 고아원을 겸하는 건 사실이지만, 시설이 그리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해 주는 곳도 드물고.
“아리아드네랑은 연락해 봤어?”
신전은 신전이지만, 그래도 아리아드네의 입김이 닿으면 좀 나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신관 중 한 명이니까.
“……아리?”
어?
나는 그 대답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어쩐지 기이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마치,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을 들은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몸을 일으켜 마주한 알리시아는 뜨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묘한 불안감이 가슴을 덮쳤다.
“뭐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당연히 연락했지.”
“…….”
나는 알리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알리시아는 이런 압박감을 잘 견디는 타입이 아니었다.
역시나, 곧 알리시아가 두 손을 들었다.
“정말로 연락했어…… 문제는 걔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