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2화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그, 그게 무슨…… 설마…….”
알리시아가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얼굴에는 약간의 민망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아, 미안. 내가 말하는 방법이 나빴다. 죽었다는 건 아니야.”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무섭게 해?!”
나는 더 기겁했다. 죽었다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뭔데, 왜 아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야?”
나처럼 차원이 갈린 것도 아니고, 알리시아와 아리아드네는 같은 대륙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문득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그 이름 모를 용병 여자가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최후의 던전에 대해서 신전이 거짓말을 했다고 했었지.
혹시 아리아드네가 그 후폭풍에 휘말리기라도 한 걸까?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신전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세간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다면?
아리아드네는 결국 신전 소속의 신관이었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좋지 않게 볼 가능성이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신전의 거짓말을 파헤친 셈이 되는 거니까.
끔찍할 정도로 불합리하게 들리지만 세상은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일이 드물다.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수많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무엇 하나 불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으스스한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신전 측에서 아리아드네를 감금하기라도 한 건…….”
“아냐, 진정해. 그런 건 아니야. 괜찮아. 아리는 무사해.”
알리시아는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안심시키려고 한 거겠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행위였다.
반면에 내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왜 아리아드네가 있는 곳조차 모른다는 건데? 그냥 말해 줘, 알리시아. 아리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난…….”
“레나.”
알리시아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아리는 괜찮아. 정말이야. 조금 진정하고…….”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서!”
“……그게…….”
“그냥 말해, 알리시아! 걔 어디 있어?!”
“……어휴.”
알리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 둘은 진짜 변하지도 않는다. 서로 엄청 유난 떠는 거 알지?”
“알리시아, 나 장난할 기분 아니야. 대체 무슨 일인데?”
알리시아는 원래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입이지, 이렇게 뱅뱅 돌려 말하지 않는다.
대체 아리아드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곧 알리시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시작했다.
“그, 최후의 던전 운운이 거짓말이었다는 게 밝혀졌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이틀 전쯤 알게 된 사실이긴 했다만.
생각해 보니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 무척 충격적인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로 일어난 일이 워낙 많아서 거의 1년 정도 지난 일처럼 느껴진다.
내 인생이지만 정말 밀도가 높아서 질식할 지경이로군.
“신전의 거짓말이 밝혀진 후에 교황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거든.”
나는 알리시아의 이어지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 그 욕심 많은 늙은이가?”
“뭐, 그럴 만도 하잖아. 워낙 큰 거짓말이었으니까.”
하기야 그것도 그런가.
내가 타르토스에서 지낸 것만 해도 10년이었다. 그리고 타르토스에 시스템이 나타난 건 20년 된 일이니, 대륙 단위로 20년도 넘게 거짓말을 한 셈이다. 어마어마한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물론 알리시아야 그런 혼란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타입은 아니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간단히 정리했지만.
“그래서 새로운 교황을 뽑게 되었는데…… 후보 중 하나가 아리아드네야.”
그리고 이후 설명도 무척이나 간단했다.
그러니까, 너무 간단했다.
나는 알리시아의 말을 듣고 눈을 껌벅였다.
“뭐, 뭐라고? 교황 후보? 아리아드네가?”
내 경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알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어울리지?”
사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타르토스 대륙에서 교황이라는 자리는, 뭐랄까…… 지금은 전 교황이 된 늙은이 때문에 생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자리였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아리아드네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물론, 아리아드네는 전 대륙을 통틀어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신관이다.
게다가 인망도 높았다.
지난 10년간 대륙을 돌아다니며 어디서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성녀로 추대되기까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신전에서는 아리아드네가 나설 때마다 신전의 정치적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며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뭐, 정치적 입장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사람 봐 가면서 구하라는 거였지만. 결국은 아리아드네더러 신전에 기부금을 많이 냈든가, 신분이 높든가…… 그런 사람들을 우선시하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겉으로는 네, 네 하며 순종하는 척을 하고 실제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걸 신경 쓸 성격이라면 애초에 우리와 어울려 다니지도 않았을 거고.
덕분에 아리아드네는 사사건건 징계를 받아야 한다며 신전에 불려 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아리아드네가 교황 후보라고?
“걔가 뽑힐 가능성이 있긴 해?”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물론 교황이란 걸 세상에서 제일 멋진 신관을 뽑는 공개 콘테스트로 정하는 거라면 주저 없이 아리아드네에게 한 표 넣을 테고, 필요하다면 다른 심사위원을 매수할 의사도 있다만…… 대부분의 조직에서 장을 뽑는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신전이라고 한들 그런 큰 조직이 그저 신관 본연의 신실함으로만 돌아가리라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다.
일단 교황쯤 되는 자리를 해먹으려면 조직 내 기반이 있어야 할 테고 그건 즉, 지지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리아드네의 경우 그 지지자를 신전 내부 세력에서 만들어야 할 텐데, 아리아드네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알리시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니, 누가 말리지도 않았어? 솔직히 그냥 시간 낭비 아니야?”
“와, 차갑다. 그새 콩깍지가 많이 벗겨졌네, 레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인 알리시아는 내 눈길에 금세 꼬리를 말았다.
“뭐, 루카도 그런 소릴 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말릴 틈도 없었어. 어느 날 그냥 통보받았거든.”
“통보를 받아?”
“어우, 무섭게 굴지 좀 말아 줄래? 이래서 이야기하기 싫었던 거야. 나 말고 아리한테 가서 따지라고.”
알리시아가 몸을 떨며 두 팔로 몸을 감싸는 시늉을 했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여전히 노려보자 알리시아는 그제야 장난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솔직히 나도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 제대로 알아보려고 했더니 추대 과정은 외부에는 비공개라고 해서.”
“그럼 설마 연락이 안 된다는 게……?”
“그래, 맞아. 거짓말이라는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벌어진 일이니까…… 벌써 2년도 넘었네.”
“뭐? 그런데 그걸 그냥 내버려 뒀어?!”
말도 안 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신전 그 새끼들을 어떻게 믿어?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뒤에서 무슨 짓을 했을지 어떻게 알아!”
외부적으로는 교황 추대니 뭐니 해 놓고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곳에 아리아드네가 혼자 있다고?
“당장 쫓아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어야지!”
“믿어 봐. 나도 나름대로 파 보려고 했어! 그런데 신전 자체가 외부 활동을 안 하는 데 어떻게 해?”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나도 정말 바빴어. 내 몸은 두 개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며 알리시아가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어쨌든 나한테는 널 찾는 게 먼저였어, 레나.”
내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는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알리시아답지 않은 부드러운 어조였다.
“그나마 아리아드네는 살아 있는 게 확실하지만, 너는 아예 감도 안 잡혔으니…… 난 어떻게든 알아야 했어.”
아니, 사실 그 말보다도 나를 누그러트린 것은 그 눈빛에 담긴 애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알리시아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내 생사도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실 애초에 아리아드네 건은 알리시아에게 열을 낼 일도 아니었다.
그 멍청이가 혼자 가망도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는데, 본인한테 화를 내야지.
“그럼…… 일리아스는?”
아리아드네의 전례가 있어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알리시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빠는 한동안 나랑 같이 돌아다니다가 얼마 전부터 은의 산맥에 처박혀 있어. 거기서 화석이 대량 발견되었다나, 뭐라나. 연락은 했는데 시간에 맞출 수 있는지 모르겠네.”
은의 산맥.
타르토스 대륙 극동 쪽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일리아스는 보통 은신처에 숨어서 지내는 편이었다. 함께 던전 공략을 다닐 때도 아주 위험한 등급의 던전이 아니라면 참여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그래도 설마 그렇게 구석에까지 처박힐 줄은 몰랐지만.
“그럼 루카스는?”
“아, 루카는 올 거야.”
이건 또 뜻밖이었다. 당연히 왕국으로 돌아가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온다고? 여기로?”
“응, 여기는 걔네 나라랑 가깝기도 하고, 마침 근처에 있다더군.”
알리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숲에 들어오기 직전에 전서구를 받았어. 너도 볼래?”
알리시아가 꺼낸 양피지는 테두리가 금박으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루카스가 자주 사용하는 왕가의 양피지였다. 중앙에는 푸른 잉크로 쓰인 글씨가 있었다.
겉포장이 화려한 것에 비해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갈 테니 혼자 허튼 짓할 생각은 하지 말고 기다려. 나는 분명히, 기다리라고, 했다.
그 문장을 본 나는 저도 모르게 픽 웃어 버렸다.
“겉멋 든 거 봐라. 꼴에 왕자다, 이거지?”
“내 말이! 뭐, 언제는 쫓겨나서 거렁뱅이로 사느니, 어쩌니 하더니만.”
알리시아도 나를 따라 부드럽게 웃었다.
양피지에 쓰인 글씨를 손가락으로 훑어보니 얼마나 꾹꾹 눌러쓴 건지, 요철이 그대로 느껴졌다. 깃펜 몇 개는 우습게 부러트렸겠는걸.
아마 쓰면서도 알리시아가 기다릴 거란 생각은 안 했겠지. 지금쯤 눈썹 휘날리게 달려오고 있겠군.
“기다리랬는데 안 기다렸지? 넌 죽었다.”
“말도 마. 벌써 귀에서 피날 것 같으니까.”
알리시아가 투덜거리며 제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루카스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웃고 있으니 잠시나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곧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제껏 알리시아가 이야기해 준 근황을 취합해 보자면, 결국…….
“……다들 뿔뿔이 흩어진 거네.”
내 중얼거림에 알리시아가 씩 웃었다.
“왜, 섭섭해?”
“…….”
“말해 두겠는데, 한동안은 우리 다 널 찾아다니느라 뭉쳐 있었어. 그랬던 게 사정이 꼬이면서 흩어진 거지.”
“딱히 그런 걸로 섭섭하다는 게 아니라…….”
나는 말을 줄였다.
그냥, 다들 흩어졌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
아리아드네는 신전, 일리아스는 연구, 그리고 루카스는 자신의 왕국에 돌아갔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연히 ‘최후의 던전’을 공략한다는 목적 아래 모이게 되었을 뿐이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다들 각자의 신분이나 입장이 있으니 언제까지고 함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만 해도 적당히 꿀이나 빨면서 살려고 했다.
루카스의 주머니를 털어서 적당한 곳에 집을 구하고 비싼 술이나 마시면서 방탕한 삶을 보내며…….
하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을 줄이야.
알리시아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좀 봐줘. 우리도 여러 일이 있었거든. 3년이나 흘렀잖아.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어?”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아니, 아니지. 3년이 흘렀으니 자연스러운 변화인 건지도 몰랐다.
이제껏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눈앞의 알리시아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3년이라는 세월을 더 겪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시간이었고, 놓치고 싶지도 않았던 시간이.
절로 한숨이 나왔다.
“따라잡으려면 한참 걸리겠군.”
“괜찮아. 그래도 시간이 있는 거잖아? 네 말대로, 여기서 살아나가면.”
아까 전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읊은 알리시아가 웃으면서 내 가면 위를 톡톡 두드렸다.
“나도 들을 말이 많을 거야. 그렇지? 여기서 나가면 각오해 둬라.”
분명, 나보다도 듣고 싶은 말이 더 많을 텐데, 알리시아는 그냥 그렇게만 말할 뿐이었다.
“……그래.”
나는 목이 메이는 것을 참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23:16:20
거짓말을 하는 건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조용히 숲을 달려가기를 다시 두 시간 즈음.
일단 더 이상 쫓아오는 몬스터 무리가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 우리는, 번갈아 가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또 언제 비상 상황이 터질지 모르니까 이 틈에 회복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둬야지.”
아무리 능력치를 올렸다고는 해도 이틀을 꼬박 버티려면 틈틈이 쉬어 줘야 한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휴식이 필요했다.
게다가 알리시아가 상당히 우호적인 신호를 발견했다는 것도 이 결정에 한몫을 했다.
“봐. 여기부터는 길을 사용한 흔적이 있지?”
알리시아의 말대로 자세히 보니 슬슬 나무 사이의 긁힌 자국, 그리고 야영하고 흔적을 지운 자리 등이 언뜻 발견되기 시작했다.
“용병들이 토벌 때 쓰는 길이야. 그래서 이 경계 너머로는 몬스터들도 잘 내려오지 않아. 이쯤이면 한숨 놔도 돼.”
알리시아의 말대로였다.
몬스터 무리를 발견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또 마주치더라도 냄새를 덮은 덕분인지 아까처럼 따라붙지도 않았다.
확실히, 이 정도면 대규모 몬스터 습격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그래도 방심은 못 하지만.’
어쨌든 메인 퀘스트가 끝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또 벌어지기 전에 휴식이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알리시아는 내게 먼저 쉬라고 권했다.
“너 지금 능력치도 정상 아니잖아. 엄청 피곤하지?”
나라고 좋아서 허접 깡통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더 지쳤다는 건 사실이었다.
알버트와 싸우는 도중 능력치를 회복하긴 했다만 그것도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내 몸이 아니라 꼬맹이 몸이라는 게 피로도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깨워.”
“당연하지. 나 혼자 독박 쓰는 건 사양이야.”
알리시아가 웃으며 내 몸을 밀어냈다.
뭐, 휴식이라고 해 봐야 마차 안에는 자리가 없기 때문에 마부석에 옆으로 누워 쪽잠을 자는 정도였다.
마차가 엄청나게 덜컹거리는 열악한 환경이긴 했지만 노숙에는 이미 익숙했고, 그나마 엉덩이를 붙일 공간이 있다는 게 감지덕지할 판이었다.
나는 포션을 들이켠 후 팔짱을 끼고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물론 잔다고 해도 선잠이었다.
사방이 뚫려 있는데 완전히 잠들 정도로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살기가 느껴지면 곧장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또 알리시아가 있으니까…….
그렇게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고, 얼마나 흘렀을까.
딱히 신경에 거슬리는 기척도 없고, 덜컹거리는 움직임조차 자장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의식을 비행하고 있을 때였다.
파지직!
- 일어나.
스파크가 튀었다.
나는 깜짝 놀라 번쩍 눈을 떴다.
‘바, 방금 그게 뭐였지?’
무슨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게 떴던 것 같은데……?
하지만 착각이었던 건지, 아무리 눈을 비비고 쳐다보아도 허공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뭐지, 꿈이었나?
그나저나 얼마나 잔 거야? 눈을 뜨자마자 몸이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오래 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마부석에서 몸을 일으켜 마차 천장에 앉아 있을 알리시아를 돌아보았다.
“알리시아, 왜 안 깨웠…….”
분명히, 알리시아가 있어야 할 곳.
하지만 내가 쳐다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