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4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운영자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 네?
“운영자 말이야. 내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냐고.”
솔직히 운영자 클래스의 존재 자체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조한율이 저렇게 말해도 사실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한율은 망설이는가 싶더니, 곧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 기본적으로 뭐든지요.
“뭐든지?”
순간적으로 오싹한 느낌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내 동의 없이 무언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은, 글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신이라고 해도 그런 짓은 하지 못하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아챘는지 조한율이 잠시 멈칫했지만, 그래도 설명은 이어졌다.
- 이론적으로는 그래요. 소속 서버 플레이어의 행동 제어부터 능력치 간섭, 클래스 개화. 여차하면 타 서버 공격까지.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도 너무 넓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권한을 주는데 시스템 측에서 랜덤으로 운영자를 선택한다는 건가?
조한율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운영자가 권한을 남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운영자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영역에 제한이 있을 줄 알았는데.”
- 그것도 맞아요. 저는 못 하니까.
“왜?”
- 말했잖아요. 그런 짓을 했다간 차라리 죽는 게 나은 페널티를 받는다고.
빛나는 마리모가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시스템 페널티 받아 봤어요? 그거 진짜 아프거든요? 전 절대 못 해요. 기합 넣어서 버틸 수준이 아니라고요. 예전에 한 번 던브 취소시켰다가 한 달 내내 침대에 누워서 지냈어요.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하다는 거지, 실제로는 불가능한 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그런데 타르토스 쪽 운영자는 그걸 했다는 거 아냐?”
- 그러니까 미친 새끼죠! 그냥 자살행위라니까요?
시스템 페널티라.
나는 몇 시간 전 시스템 경고를 어겼다가 받았던 페널티를 떠올렸다. 내장이 온통 뒤틀리는 것 같던 고통.
‘……죽을 것 같긴 했지.’
확실히 조한율의 말대로 뭐,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경고를 어기기 직전에 멈췄으니까, 정말로 실행하게 되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왔을 테고.
까딱하면 진짜 죽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설마 운영자 권한이 그렇게까지 클 줄이야.
‘그럼, 운영자 쪽에서 수틀리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조한율도 그렇고, 타르토스의 운영자 쪽도 그렇고.
결국 이렇게 되면 내 목적과 운영자의 목적이 달라질 경우…… 문제가 커지겠는걸.
조한율이야 당장은 한국 서버의 안정화를 추구하니까 운명의 씨앗을 모아야 하는 나와 당분간은 목적이 들어맞겠지만, 타르토스의 운영자 쪽은 정체도 모를뿐더러 그 목적도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메인 퀘스트 보상이 ‘멸망한 세계의 복구’고, 이게 운영자가 내건 퀘스트라면 나와 목적이 일치하니 상관없겠지만…….
‘단정하기엔 이르지.’
또 사실 조한율의 말대로 고통도 감수해 가며 다른 서버를 공격하는 운영자가 안정적인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생긴 셈이다. 상정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위험 요소였다.
나는 내친 김에 질문을 이었다.
“그럼 행동 제어란 건 뭔데?”
- 제가 지금 강예나 씨에게 레벨 업 제한을 건 것도 제어 중 하나예요. 혹은, 던전 공략 중 플레이어에게 동작 과부하를 걸 수도 있고.
“과부하?”
- 쉽게 말해서 움직임에 제한을 거는 거죠. 그런 걸 몬스터 앞에서 당한다고 생각해 봐요.
조한율의 설명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익숙한 이야기기도 했다.
왜냐하면 유령의 성 던전에서 SS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 내가 받았던 제한이었으니까.
당시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사용해 보스 몬스터의 목을 따기 직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행동에 제한이 걸렸었다. 그 덕분에 다 잡았던 몬스터도 놓치고 죽을 뻔했었지.
만일 이우연이 타이밍 좋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때는 마냥 시스템만을 욕했는데 조한율의 말을 들어 보면…… 그게 시스템상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자가 내게 건 제한일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 세계도 단순히 시스템이 구현한 던전이 아니라, 누군가가 살아가는 진짜 세계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나?
당시에는 그저 던전 중 하나고,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자연스럽게 성벽 위에 서 있던 기사들의 마지막 경례가 떠올랐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들.
- 강예나 씨? 연결되어 있는 거 맞아요?
내 침묵이 너무 길었는지 조한율이 약간 두려움을 띤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감상에 젖어 있을 때는 아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맞아. 듣고 있어. 하여간, 정보는 고맙다.”
아직 의문점은 남아 있었지만, 조한율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로서는 절대 알아낼 수 없었던 정보였다.
“그렇지만…….”
-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제가 강예나 씨를 강제 소환하면 어떨까 하는데.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나는 당황했다.
강제 소환이라고?
“그런 것까지 가능해?”
- 아, 물론 동의는 받아야 해요. 던전에서 일시적인 로그아웃 조치를 시킨다고 보면 됩니다. 플레이어 측에 별다른 피해는 없을 거고요.
그나마 내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저런 제안을 받은 것 자체가 당황스러워 급히 말을 꺼냈다.
“아니, 잠시만. 나는 퀘스트를 계속해야 해.”
- 그럴 일이 아니라니까요?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예요!
조한율이 앞에 있는 무언가를 쳤는지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
- 제가 이렇게까지 다 말해 줬는데 왜 아직도 퀘스트를 계속하겠다는 거예요? 정말로 운영자가 마음을 잘못 먹으면 죽는다니까!
어쩐지 정보를 많이 준다, 싶더니 내가 퀘스트를 포기할 만한 이유를 주려고 했던 건가.
솔직히 의외였다.
‘내가 죽든 말든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사실 조한율 입장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계륵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목표가 한국의 안정화라는 것만 생각하면 나는 제법 쓸모 있는 존재였다. 강하고, 또 던전 공략 경험이 풍부하니까. 그거야 조한율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의 던전 레벨이 올라간 상황이다. 내 존재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험 부담이 있고, 심지어 그런 리스크는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또 지금 한국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도 나와 관련된 상황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비록 이 문제의 어느 쪽에도 내 의지는 개입되지 않았다만, 사실 남이 이런 소소한 사연을 헤아려 줄 이유도 없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조한율이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건 이미 느낀 바였다.
솔직히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내게 호의를 갖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조한율이 내 목숨을 걱정하는 것 같은 말을 하는 게…… 정말 의외였다.
하긴, 애초에 이 연락 자체가 조한율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방법을 찾아 가며 내게 연락했고…….
내가 다시 침묵하자 빛나는 마리모에서 짜증이 난 게 역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왜 거기서 입을 다무는 건데요? 이상한 소리 한 것 같진 않은데.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의외라서……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 이건 제 개인적인 호불호와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조한율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대한민국 서버 운영자고, 강예나 씨는 현재 우리 서버 소속이죠. 그리고 운영자의 기본적인 목표는 서버 소속의 플레이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거예요.”
운영자로서 일종의 지침인 모양이었다.
과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감이 될 만한 자세였다.
“인상적인 발언이야.”
- 지금 농담이나 할 때가…….
“하지만 난 퀘스트를 관둘 생각은 없어.”
- 뭐라고요?
조한율이 재차 흥분했다.
- 타르타르인지 뭔지, 거기가 위험하다는 설명은 충분히 한 줄 알았는데!
“타르토스라니까.”
-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의외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타르타르라고 부르면 그냥 맛있게 들리잖아.
나는 격해진 조한율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정보도, 걱정도 고맙게 생각해. 그렇지만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 그게 목숨보다 중요해욧?!
“그래.”
- …….
곧바로 대답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리모처럼 둥둥 떠다니는 빛 덩어리가 할 말을 잃고 어둠 속을 유영했다.
- 이…… 이해가 안 가요. 그야…… 강예나 씨가 용사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제 설명이 부족했어요?
“설명은 충분했고, 내 클래스랑은 관계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런 거야.”
- 그게 뭔데요?
“여기에 구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단지 그뿐이었다.
아무리 정체불명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뻔히 길이 있는데, 방법이 있는데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리고 그때였다.
- 아으으…….
마리모 속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알겠어요. 그렇단 말이죠. 네, 구하고 싶은…… 으으…….
나는 눈가를 좁혔다.
“지금 뭐 하냐?”
- 신경 쓰지 마세요. 부정기를 겪는 중이니까.
부정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물어보려는 순간 다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 뭐, 그럼 또 제가 헛짓을 했네요. 강제 소환은 어차피 동의 없으면 못 하니까, 이제 그만 채팅방 종료할게요.
“잠깐만.”
- 왜요?
“헛짓이라곤 말 안 해. 고마워.”
솔직한 심정이었다.
물론 타르토스로 돌아갔을 때가 걱정이 되긴 한다만, 어쨌든 날 진심으로 걱정해서 찾아왔다는 것만큼은 느껴졌다.
게다가 이 상황을 틈타 본래라면 조한율이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을 정보도 얻었고.
하지만 돌아온 건 또 앓는 것 같은 소리였다.
- 우…….
“그러니까 뭐냐고.”
- 좀 싫다. 진짜…….
“뭔 소리야?”
- 주변 사람 되게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네요. 아, 참. 주변 사람 하니까 생각났다.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 바…… 이우연이 당신을 찾더라고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름에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갑자기 걔가 왜 튀어나와?
“그쪽한테 내 행방을 물어봤다고? 그럼 이우연도 그쪽이 운영자란 걸 알아?”
그렇게 묻자 조한율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 걔가 강예나 씨 전까지는 우리 서버 최강의 패였는데 모르는 게 비효율적이지 않아요?
“……그건 그렇군.”
조한율의 말을 듣고 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였다. 나는 빠르게 납득했다.
“그래서, 이우연이 난 왜 찾는데?”
-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강예나 씨는 할 일이 있다고 말해 두긴 했는데, 하여튼 간에…… 뭐 전달할 말 있어요? 전해 줄게요.
정말 쓸데없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없어.”
- 어, 진짜요? 의외네. 저는 둘이 무슨 사이라도 되는 줄.
이거야말로 헛짓거리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 어차피 하루 후면 퀘스트도 끝나잖아. 필요 없어.
내가 원하든, 그러지 않든 말이다.
어쨌든 이제 더 이상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퀘스트에나 복귀시켜 줬으면 좋겠다.
무언의 짜증이 느껴졌는지 저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 알겠어요. 그럼 정말 통신 끊습니다. 바로 그 자리로 복귀할 거예요. 시간도…… 최대한 조정해 볼게요.
“그래, 그래 주면 고맙겠군.”
- 그럼, 꼭 살아서 돌아오길 빕니다.
그 목소리에서는 확실히 진심이 느껴졌다.
팟!
희미한 키보드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희게 물들었다.
허공에 부유하는 것 같은 감각이 사라지고, 단단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왔다.
어둠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빛깔이 시야에 들어왔다.
뭘 따질 겨를도 없이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파악하며, 알리시아를 확인하는 데만 집중했다.
“알리시……!”
그때, 갑작스럽게 뒤에서 손이 덮쳐 와 내 입을 막았다.
반사적으로 곧장 검에 손을 가져갔지만, 그전에 귓가로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쉿!”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익숙한 목소리와 체온이었다.
‘알리시아다.’
입을 다문 채 곁눈질로 돌아보니, 과연 내 입을 손으로 막고 있는 건 알리시아였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어쨌든, 알리시아는 무사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러나 안도하는 것도 잠시,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알리시아의 손에 입이 막힌 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아직도 숲속이었다.
그런데, 사방이 조용했다.
‘왜 조용하지?’
조용하면 안 되는데. 내가 갑자기 소환당하기 전까지 우리는 무지하게 시끄러운 마차로 숲속을 달려 나가고 있지 않았나?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차들은 멈춰 있었고, 내 입을 막은 알리시아는 긴장한 채로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알리시아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시야 한구석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발견했다.
이미 지난 메시지라 이제 막 회색이 되어 소멸하기 직전이었다.
- 경고! 당신의 생명력이 극도로 저하되어 있습니다. 안정을 취하십시오.
- 일정 생명력이 회복될 때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 최소 안정화까지 00:00:00
뭐야, 어쩌고 어째?
그리고 심지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진행형의 메시지가 흰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03:38:58
……이거 미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