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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66화 (167/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6화

수배령?

“전 대륙 수배령? 누가?”

“내가.”

“뭐가 어째?”

내 귀를 믿을 수 없어 한 번 더 물었더니 알리시아가 한숨을 쉬었다.

“이럴 것 같아서 말하기 싫었던 건데.”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내가 밀어붙이자 알리시아의 얼굴에 피곤함이 드리웠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았을 때 번뜩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서였나.’

내가 레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직전, 알리시아는 아이들과 나를 보내고 자신이 남아서 몬스터를 막겠다고 했다.

솔직히 그때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알리시아는 그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이건, 혹은 아이들의 목숨이건.

그런데 이제 보니 알리시아의 신변 자체에도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헉,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럼 그 감옥에 있던 간수 놈들의 목적이란 것도…….”

“복수 반, 현상금 목적 반이었겠지.”

알리시아가 무심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에게 최강의 살인자라는 칭호를 줬던 그 복수극 때 처단당한 놈들 가족이 반, 나머지 반은 돈에 눈이 멀었을 거고…… 알버트 같은 놈은 그냥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거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도통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물론 알리시아가 성인군자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건 나도 잘 안다. 알리시아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자신의 원한을 청산한 후로는 용병으로서 의뢰를 받아 던전과 몬스터 소탕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최후의 던전을 목표로 한다고 공언한 이후로는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용병이자 용병들의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그대로 계속되어야만 했다.

아무리 최후의 던전이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알리시아는 옵타티오를 쓰러트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알리시아가 존경을 받기는커녕 왜 수배령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왜,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진작 이야기 안 했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렇게 토해 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알리시아는 완고했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도 나한테 다 이야기한 건 아니잖아.”

“난 사정이 달라!”

“나야 모르는 일이지.”

진짜로 한 대 패고 싶다!

나는 주먹을 쥐었지만 장난스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알리시아의 입술은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었다.

이 모든 게 너무 답답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내가 흥분한 것과 다르게 알리시아는 그냥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진정 좀 해라. 지금 상황에서 내가 왜 수배령을 받았는지는 솔직히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마을에 못 들어간다는 거지.”

망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보아하니 알리시아는 이 화제에 대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수배령 이야기도 원래 할 생각이 없었군.’

시간은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지금 본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야기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정말로 최후의 최후까지 설명을 미뤘다.

그리고 지금의 나로서는 알리시아가 저렇게 나오면 이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내가 타르토스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소외감과 무력감이 한꺼번에 덮쳐 왔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리시아는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뭐, 수배령이라고 해도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야. 어차피 일반인들은 나한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적당히 다닐 만해. 용병들도 대부분 나한테 호의적이고. 그냥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 돼. 별거 아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니, 그럼 왜 마을로 못 간다는 거야?”

“저 애들이 나랑 엮였다는 게 알려지면 귀찮아질 테니까.”

알리시아의 표정은 단호했다. 도저히 협상의 여지가 없어 보일 정도로.

“더 이상 짐을 안겨 줄 필요는 없지.”

“너…….”

“레나, 나는 어릴 때 이런 일을 겪어 봤잖아.”

알리시아가 자신의 한쪽 팔, 몬스터의 형태를 한 부분을 건드리며 말했다.

“아주 끔찍했어. 그래서 난 다른 누군가가 이런 일을 겪지 않길 바랐는데…….”

“…….”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야.”

“뭐가?”

“저 애들은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결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단호했다.

“그냥…… 저 애들한테는 이 모든 게, 살아가다 잊어버릴 수도 있는…… 앞으로의 삶에서 악몽을 꿀 가치도 없는 사건이 되었으면 좋겠어. 실제로도 그래.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더 가치 있는 고민일 거야.”

“알리시아…….”

“그러니까, 이런 일로 인생을 망쳐 버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알리시아의 목표는 처음부터 저거 하나였다.

이번 사건에 휘말린 아이들을 구출하는 것. 그리고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는 것.

더 나아가자면, 자신처럼 이런 시시한 비극에 사로잡혀 인생을 내던지지 않는 것.

다만 그 과정에서 본인의 안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메인 퀘스트라고 해서 쉽지 않을 줄은 알았다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복잡함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대략 3시간.

남은 시간 동안 몬스터의 습격에서 도망쳐 안전한 마을까지 도달하면 내 퀘스트는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들어 보니 현재 알리시아는 설령 마을로 가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 대체 난 뭘 해야 하지?’

타르토스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저 막연히 강대한 적을 쓰러트리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상상했을 뿐이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옵타티오를 쓰러트려도 여전히 던전이 있었고, 몬스터들이 있었으며, 내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건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해진 적도, 보장된 해피 엔딩 따위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알리시아, 나는…….”

“쉿!”

그때, 알리시아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며 주위를 경계했다.

“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등골에 무언가 소름이 끼치는 감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경직되는 순간, 이미 알리시아는 검을 뽑았다.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가 드러나고, 알리시아가 마차 밑으로 조용히 소리도 없이 뛰어내려 착지했다.

알리시아의 눈은 빽빽한 깊은 숲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온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살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빠르게 이쪽을 향해 접근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거리가 멀었지만, 숲 저편에서는 분명 거대한 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이 까맣게 물들었다. 무언가를 감지한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라 내리쬐는 빛까지 가려 버린 것이다.

“저건…….”

콰쾅!

나무들이 우지끈 꺾이는 소리…… 나뭇잎들이 세찬 바람에 휘말리고, 땅이 진동했다.

거대한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에 ‘보스 몬스터’가 출현합니다.

- SS급 몬스터 : 눈이 먼 외눈박이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이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스 몬스터 알람이 뜬다고?

망할, 이 메인 퀘스트에 보스 몬스터라는 것도 있는 거였냐!

심지어 등급이 SS급이야?

‘퀘스트라 보스 몹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은 했는데.’

하지만 알버트라는 이름의 괴물이 거의 S급에 필적하는 적이었기에 그게 끝일 줄 알았는데…… 설마 보스 몬스터가 여기서 튀어나올 줄이야.

그래도 그렇지, SS급이라니.

SS급 몬스터는 S급과는 격 자체가 달랐다.

저번 유령의 성에서 내가 SS급 몬스터를 쓰러트리긴 했지만, 그건 사실상 요행이었다.

그때는 내 본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용사를 기리는 망토’ 아이템을 사용한 데다, 또 ‘기사회생’ 스킬로 방심을 노리지 않았더라면 결코 해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막판에는 결국 히든 루트를 뚫어서 S급으로 랭크를 떨어트리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 ‘용사를 기리는 망토’는 쿨 타임에 들어가 있고, 저번처럼 내 잔재주가 통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시간이 없어, 레나.”

그때 옆에서 알리시아가 검을 든 채 내게 말했다.

“가. 여긴 내가 상대할 테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꼈다.

아, 이거였구나.

그건 논리적인 깨달음이 아니었다.

알리시아의 등을 보면서, 그리고 내 등 뒤에 있는 아이들의 불안한 숨소리를 듣는 순간에 그냥,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나는 지금 선택을 해야만 했다.

- ‘운명의 씨앗’이 반응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황금빛의 글씨가 눈부시게 시야를 수놓았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게 갈림길이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마지막 선택지.

이것이야말로 시스템이, 혹은 시스템에게 무작위로 선택받은 운영자가 내게 묻고자 하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알리시아의 목숨과 아이들의 목숨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이 퀘스트를 시작한 순간부터 내게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다.

알리시아의 생존인가, 혹은 아이들의 생존인가.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여기가 타르토스라는 걸 안 순간, 친구들을 찾는 걸 우선시할 수도 있었다.

괜히 시간을 낭비해 가며 아이들을 지키느니, 그냥 탑을 무너트리고 빠져나오면 될 일이었다.

애초에 이백 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숲을 탈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일은 훨씬 쉬워졌을 것이다.

생각하자면 끝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알리시아의 말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도망치는 대신…… 여기에 남아 SS급 몬스터와 싸울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래야만 한다.

- 메인 퀘스트 : 운명의 씨앗을 수집하여 운명을 변화시키십시오.

- 보상 : 멸망한 세계의 복구

메인 퀘스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이 세계는 여기서 끝장이다. 타르토스는 멸망할 것이고, 나는 그걸 복구시킬 기회를 놓칠 것이다.

이백 명 남짓한 아이들의 목숨과 전 세계의 목숨이 저울에 달려 있다.

인명을 숫자로 계산할 수는 없다지만, 그럼에도 그 차이는…… 나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컸다.

아니, 애초에 여기서 퀘스트에 실패하면 아이들의 목숨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

어차피 이 세계는 멸망했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난…….’

게다가,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내게 소중한 누군가를 구하는 것과 낯모를 누군가를 구하는 것을 동등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알리시아가 더 소중했다.

알리시아를 살리고 싶었다.

세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외치고 싶었다.

죽어 버린 내 친구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그들을 구성하지 않는 나머지 세계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알리시아와 함께 여기에 남고 싶었다.

그게 어딜 보나 합리적이었다.

아니,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알리시아를 안다.

내가 여기서 알리시아의 말을 무시하고, 저 신념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버리고, 그저 알리시아의 목숨을 지킨다면…… 그러고도 내 친구를 볼 낯이 있는 건가?

세계를 구한다고 한들 그때 내가 알리시아를 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내가…….

“자, 이거 받아.”

알리시아가 어쩌지도 못하고 굳어 있는 내 손에 흑요석을 쥐여 주었다. 해골 말들을 조정할 수 있는 마석이었다.

“가.”

알리시아는 내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으로 이쪽을 보았다.

몬스터의 기척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닥쳐오는 해일을 뻔히 보면서도 피하지 않는 것과 같은 감각이 덮쳤다.

그걸 뻔히 느끼면서, 알리시아는 내게 미소했다.

“그럼, 또 보자.”

나는 그런 알리시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죽음을 각오한 얼굴이었다.

어쩌면, 본래 운명에서도 이랬을지 모르겠다. 내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한 시간 속에서.

“알리시아, 나는…….”

쾅!

그때, 갑자기 일어난 소음에 나와 알리시아는 동시에 움찔했다.

내가 검을 뽑아 들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마차 문을 박차고 나온 꼬맹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굳은 결심을 한 녹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메이가 입을 열었다.

“용사님, 그거 저한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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