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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67화 (16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67화

나도, 알리시아도 깜짝 놀라 메이를 돌아보았다. 나는 거의 말을 더듬거렸다.

“뭐, 뭘 달라고?”

“그거요!”

메이는 내 손에 들려 있는 흑요석을 정확하게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게 뭔 줄 알고……?”

“마차 안이라고 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니거든요?”

짐짓 당당해 보이는 자세였지만 실제로 메이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포션을 먹였다고는 하나 약빨이 떨어져도 한참 전에 떨어졌을 시간이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렇지만 메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엄청 강한 몬스터가 덮쳐 온다는 거 맞죠? 두 사람이 함께 막아도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어어…….”

“그리고 우리는 방해물이고.”

“아니, 그런 게…….”

“용사님, 저는 여기서 죽기 싫어요.”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는데, 막상 들으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저렇게 스스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그리고 동시에…… 메이가 말하는 가능성.

나는 내게로 내밀어진 빈손을 보았다.

“그러니까, 저한테 주세요.”

작은 손을 내민 아이는 불빛은커녕 달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았던 감옥 속에서 보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보였다.

묘한 빛이 도는 흰 머리카락이며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숲 속에 스며드는 황금빛 햇빛 속에서도 선명히 비쳐 보였다. 개중 가장 강렬한 것은, 강한 의지로 맹렬하게 빛나는 녹색의 눈동자였다.

이 숲의 빛깔을 담은, 그 영혼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은 눈동자.

어디선가…….

“들었지, 레나.”

찰나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무언가를 고심해 볼 겨를도 없이,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상념을 방해했다.

“애도 죽기 싫다고 말하잖아. 얼른 애들 데리고 떠…….”

“아뇨, 그게 아니라요.”

아이가 보기에 알리시아의 모습이 무서울 법도 한데, 메이는 당돌하게 맞섰다.

“저희끼리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에요.”

“뭐라고?”

아무래도 알리시아는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설마 이런 상황에서 마차 안에 얌전히 있던 꼬맹이가 스스로 나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게다가 알리시아에게 마차 안의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지켜야 할 대상이었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는 그런 알리시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그게 있으면 말을 몰 수 있는 거죠? 제가 할게요. 저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내 손에 쥐어진 흑요석을 달라고 했을 때부터 알았지만, 정말로 메이는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둘째치고, 그 알리시아가 동의할 리 없었다.

“이게 뭔 줄은 알아, 꼬맹이?”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위압적인 모습일 텐데, 알리시아는 정말 화가 났는지 사나운 눈길로 메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 목숨까지 버려 가며 꼬맹이를 지키겠다는 와중에 두려움이나 사다니, 잘하는 짓이다. 하기야 목숨은 지켜 줄 수 있어도 애한테 다정하게 구는 법은 모르는 게 알리시아였다.

“너 같은 어린애가 뭘 어떻게 한다고?”

“나이 외의 조건이 필요한 거라면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메이가 마차 안을 가리켰다.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그 조건에 들어맞을 테니까.”

메이의 말이 맞았다.

네크로맨서의 마력이 담긴 흑요석은 마력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지만…… 거꾸로 말해서,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누구나 다룰 수 있었다.

즉, 시스템창을 열고 마력 수치만 일정 이상 찍었다면 다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섬세하게 조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오래 버틸 수 있냐는 건 다른 문제겠지만…… 그간 감옥에서 별별 일을 다 겪은 이백 명 남짓한 아이들 중 상당히 많은 숫자가 그 조건에 들어맞을 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몬스터를 상대로 최소한의 저항은 해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가능…… 한가?’

게다가 알리시아의 말대로라면 마을까지 남은 거리는 두 시간 남짓.

나와 알리시아가 뒤에 남는다면 아이들이 몬스터와 마주칠 부담은 줄어든다.

생각해 볼수록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야, 레나. 너 무슨 생각해?”

나는 그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알리시아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설마 저 애새끼한테 설득당하고 있냐?”

생각하기도 전에 대꾸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애한테 애새끼가 뭐냐, 애새끼가.”

“이게 무슨 어린애 장난이야? 레나, 애들 데리고 지금 당장 떠……!”

“저도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용병왕.”

메이는 이제 알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리시아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은 모습이었지만, 메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도 제 나이 때 던전에 들어갔잖아요. 그것도 어린애 장난이었어요?”

“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어!”

“전 아니에요.”

저 멀리에서 다시 쿵, 하고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압도적인 기세에 눌린 동물들이 울부짖으며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연쇄적인 폭음에 아이의 조그만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게 당연했다.

나조차도 죽음을 예감할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이었으니까.

“제가 하고 싶어요. 저도 살고 싶고, 다른 애들도 살리고 싶다고요.”

그러나 메이의 말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비록 그 손이 떨리고 있을지라도.

“그러니까 저한테 주세요.”

“이번에야말로 내가 모두를 구해 줄 거야!”

“…….”

알리시아조차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몬스터의 기척은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고,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내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갈림길.

그리고 나는 결정했다.

“……미안하다, 꼬맹아.”

나더러 알리시아의 목숨과 애들의 목숨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그런 운명 따위는 엿이나 처먹으라지.

“너한테 이런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건데.”

나는 작디작은 아이의 손에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아뇨, 제가 할 일이에요.”

메이는 넘겨받은 흑요석을 꽉 쥐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흑요석 안에서 미약하지만 휘몰아치는 마력의 소용돌이를 볼 수 있었다.

적합 판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제껏 잠잠했던 몸속 어딘가에서 자랑스러움이 피어올랐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친구는 끼리끼리 논다더니.

“레나, 너 뭐 하는 거야?!”

알리시아가 경악하며 메이의 손에서 흑요석을 다시 잡아채 가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알리시아를 막았다.

“이 꼬맹이 말이 맞아. 다 살아남으려면 그나마 이 방법밖에 없어. 너랑 난 여기 남아서 몬스터를 해치우고, 그사이 애들은 마을까지 도망치면 돼.”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메이가 투덜거렸다.

“왜 진작 이 생각을 안 한 거예요? 마차 안에서 듣다가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요.”

“아니,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래도 애들끼리 숲을 빠져나가라고 시키지는 않…….”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알리시아가 고함쳤다.

“레나, 너 미쳤어? 어떻게 쟤들끼리 보내? 몬스터가 습격이라도 하면……!”

“우리끼리도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메이가 끼어들었다.

“잊으셨나 본데, 우리도 이제껏 정기적으로 던전을 공략했었다고요. 게다가 이 해골 말들은 엄청 빠르고, 마차도 튼튼하잖아요? 그리고 제일 강한 몬스터는 용사님들이 막으신다면서요. 그사이에 그냥 도망치면 되는 건데 대체 뭐가 문제예요?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을 거라면 시도라도 해 봐야지!”

다소 건방지다 싶은 어투였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면에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알리시아의 턱이 굳어졌다.

“이게 진짜 못하는 말이 없……!”

“알리시아.”

내 제지하는 말에 알리시아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알리시아에게 내 뜻이 전달되었다는 건 분명했다. 붉은 눈동자에 번개가 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으니까.

“레나, 너 지금 진심이냐?”

“그래.”

솔직히 말해서 다른 방법이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시도해 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수가 없었다.

“인정해라, 알리시아.”

그리고 나 자신 또한 인정해야만 했다.

“너 혼자서는 이거 해결 못 해. 이대로라면 우린 다 죽어.”

알리시아 혼자서는 SS급 몬스터를 막을 수 없다. 죽을 게 뻔했고, 실제로도 죽었다. 그리고 알리시아가 죽으면 이 애들도 죽는다.

“나도 혼자서는 못 하고.”

또, 한심하지만 나도 그랬다.

현재 상황에서 그나마 승산을 노릴 수 있는 건 나와 알리시아가 합세해 몬스터를 해치우고, 그 틈을 노려 아이들이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나 혼자서 알리시아와 아이들, 두 쪽 모두를 지킬 수는 없었다.

나 혼자서는 주어진 선택지를 뒤집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만 메이가 도와주면 우리 다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여기에 왔다.

애초에 지금 내게 몸을 빌려주고 있는 이 꼬맹이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여기에 오지도 못 했을 몸이니까.

저번 백록담에서도 그랬다.

나 혼자서 해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릴리스가 나를 죽이기 직전에 정소현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여지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때도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정소현이 도와주었기에 해냈다.

무엇 하나 혼자서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제 누군가가 죽어야만 하는 운명은 사양하고 싶다.

‘그딴 건 한 번 겪었으면 됐어.’

그러니 지금의 내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었다.

내게 몸을 빌려준 이 꼬맹이가, 메이가…… 그리고 정소현도 내 도움을 필요로 했듯이.

나 혼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을지라도,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선택지에서 벗어나 이 빌어먹을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니까, 메이.”

“네, 용사님.”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의 높이를 맞추자, 녹음의 빛깔을 담은 눈동자가 햇빛에 비쳐 조약돌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앞에 주어졌던 선택지를 통째로 뒤집어엎어 버린 건, 다름 아닌 이 작은 용사였다.

“날 좀 도와줄래?”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눈동자에 담긴 용기와 의지를 믿는 것뿐이었다.

“이상한 소리네요, 용사님.”

메이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저는 그냥 제가 살려고 하는 건데. 용사님이 절 돕는 거죠.”

이 나이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객관적인 사실 관계 파악이 가능하다니. 정말 20년쯤 후에는 어떻게 자라 있을지 기대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틀렸다.

“아니, 네가 우릴 돕는 거야.”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알아 갈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걱정 마세요.”

내 손을 마주 잡은 메이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보일 테니까.”

“응, 바로 그거야.”

나는 웃었다.

그거야말로 알리시아를, 그리고 나를 돕는 일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입을 다물고 있는 알리시아가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이제 진짜 가까워!”

그 말대로였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슬슬 이 근처의 나무마저 휩쓸기 시작하고 있었다.

“으악!”

갑작스럽게 내게 안아 올려진 메이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빠르게 메이를 가장 앞에 있는 마차 위로 태우고, 소지창에서 남은 포션과 쓸 만한 무기류 몇 가지를 급하게 건네주었다.

“생각해 봤는데.”

그리고 마차가 달려 나가기 직전, 메이가 마부석에 앉아 크게 외쳤다.

“이름을 너무 급하게 정한 것 같아요. 이거 바꿔도 돼요?”

“네 마음대로 해.”

그렇게 말한 후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잘 어울려!”

긴장을 감추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하면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해골 말이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고, 곧이어 마차가 과격한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차는 굉음과 함께 금세 빽빽이 우거진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스템창을 흘깃 쳐다보았다.

시야 한구석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던 글씨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 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이제 모 아니면 도였다.

다 얻거나, 혹은 다 잃거나.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알리시아.”

그 부름에 마차가 떠나기 직전부터 침묵하고 있던 알리시아가 불퉁하게 대꾸했다.

“왜 불러? 내 의견은 필요 없는 거 아니었어?”

“비꼬지 마. 너도 내 말이 맞다는 걸 아니까 보낸 거잖아.”

“웃기고 있네.”

알리시아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내 말을 듣는 시늉이나 했어?”

생각보다 더 열 받은 상태인 것 같기는 했다. 내 앞을 지키고 선 등에서 분노의 기색이 느껴졌다.

뭐, 알리시아 입장에서야 열 받을 만하지. 나는 정말 쟤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알리시아가 지금 얼마나 열이 받았든 내 앞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여긴 내 자리가 아니다.

나는 검을 뽑은 채 걸어 나가 알리시아 옆에 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너랑 내가 여기서 죽고, 애들도 지나가던 몬스터한테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알지?”

“그게 아니라, 저 애들이 너처럼 될 거란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알리시아는 본인의 말대로 끔찍한 시절을 겪었다.

물론 나는 알리시아가 인생을 망쳤다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알리시아가 복수에 본인의 인생을 던져 넣은 것은 사실이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고,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알리시아는 저 아이들이 본인처럼 복수에 인생을 바칠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알버트의 사례 또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같은 비극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알리시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네가 있잖아, 알리시아.”

분명 끔찍한 경험을 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믿었다.

메이도, 지금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이름 없는 꼬마도 그런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 애들은 너를 보고 자랄 테니까.”

알리시아는 자신이 간절히 바랐던 도움을 그 아이들에게 이미 주었고, 앞으로도 줄 수 있을 테고, 그것이 모든 걸 바꿀 것이다.

그런 미래를 만들려면 반드시 알리시아를 살려 보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내게 몸을 빌려준 이 아이도.

나는 검을 바로 쥐었다.

휙.

바람이 일었다.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살기가 이제 칼날처럼 살갗을 스치고 있었다.

나와 알리시아는 조용히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 현재 시스템상의 이름만으로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조심해.”

알리시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하는 동시에, 눈을 뜨기 힘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당도했다.

콰콰쾅!

아니, 바람이 아니라 거의 작은 태풍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우지끈!

우리의 시야 바로 앞을 가로막던 나무 몇 그루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이윽고, 무언가가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그것’을 인식한 것은 목소리였다.

두려울 정도로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안녕, 알리시아.”

알리시아의 눈동자가 서서히 경악으로 벌어졌고, 나는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발견했다.

- 보스 몬스터와 조우하였습니다.

- SS급 몬스터 : 눈이 먼 외눈박이

아니, SS급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래, 나야.”

나무 사이로 나타난 것은…… 알버트였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02: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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