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70화
쿠콰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 울리는 묵직한 타격감.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부족해!’
분명히 검이 머리에 적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베었다는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텅!
마치 속이 빈 공을 금속 배트로 처 버린 것 같은 감각이었다. 손목에 거센 반동이 왔다.
흙먼지가 걷힌 후, 내 검에 두드려 맞아 무릎까지 땅에 박혀 버린 괴물의 모습을 보았다.
나름대로 타격을 준 것 자체는 확실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충분히 유효하지는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내 검에 베어 두 동강이 나야 했던 알버트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망할……!’
결국 지금 이 능력치로는 안 되는 건가.
아니,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운명의 씨앗’이 반응합니다.
조금 전 떠오른 메시지가 여전히 내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일단 저 메시지가 떠오른 이후로 시스템 메시지에 변화는 없었지만,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01:42:11
나는 이전에…… ‘운명의 씨앗이 발아할 가능성을 입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본래는 죽을 운명이었던 정소현은 나에게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게 정소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정소현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방금 전 알리시아는…… 대체 무슨 결정을 내리려고 했던 거지?
나는 검을 든 채 괴물을 경계하며 등 뒤의 알리시아를 향해 소리쳤다.
“알리시아, 괜찮아?”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이후, 알리시아가 대답했다.
“……응.”
목소리는 작았고, 짧은 한마디였지만, 어딘가 단호함이 서려 있는 말투였다.
“이제 괜찮아졌어.”
정말로 그런 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문제는 한가하게 알리시아를 추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검을 겨눈 채로, 알리시아를 등 뒤에 두고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내가 땅에 못처럼 박아 버렸다고는 해도 제대로 타격을 준 것도 아닐뿐더러, 힘의 차이를 생각하면 언제 덮쳐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저 보스 몬스터를 해치우고 알리시아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뿐이었다.
“…….”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적은 조용했다.
당장 덮쳐 오리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이상하게도 괴물은 한동안 땅에 처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의 괴물을 관찰했다.
땅에 반쯤 처박힌 괴물은 어쩐지 망연자실해 보였다.
딱히 육체적 상처를 입어서라기보다는, 무언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생긴 공백으로 보였다.
내게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어라.’
그리고 그런 알버트를 관찰하면서,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보았을 때 외관상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보니 이전과의 차이점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거, 진짜 무슨 깡통처럼 변했네.’
본래 알버트의 신체는 부위별로 완전히 제각각이었다.
코뿔소의 다리, 도마뱀 같은 꼬리, 그리고 오우거의 팔과 거대한 몸통까지.
물론 강력한 힘을 갖추고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인간이었던 몸에 몬스터의 시체를 억지로 이어 놓은 것이라, 당연하게도 연결 부위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감옥에서 싸울 때도 일부러 그 부분을 노려 타격했다. 이건 알리시아도 동일하게 갖고 있는 약점이었다.
그런데 완전한 몬스터가 된 지금은 달랐다.
신체 부위 하나하나의 연결이 자연스러웠고, 관절 부위도 자신의 것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심지어 그 관절 부위가 강철처럼 금속성을 띠고 있다는 것까지 합하면…… 정말이지, 약점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기야 첫 전투 때만 해도 꼬리를 한 번 정도는 잘랐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빨도 안 들어가니 말이다.
젠장, 가까이서 보니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생각해, 강예나.’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려운 상대인 건 맞지만,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시스템은 언제나 가혹한 퀘스트를 내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과제를 내려 주지는 않는다. 머리를 굴리고, 한두 번쯤 죽을 각오를 하고 부딪치면 어떻게든 돌파구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주어진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면, 분명히 어딘가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 약점이 있을 거야.’
하지만, 역시 쉽게 생각나지는 않았다.
상대는 이제 엄청나게 견고한 외피를 두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무거워져서 한 번 제대로 맞았다간 뼈가 분쇄될 정도의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즉, 나는 지금 엄청나게 강한 깡통 괴물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X발, 나도 허접하고 속 빈 깡통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일인가? 억울한데.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간 발상에 눈을 깜박였다.
아니, 잠깐만.
무겁고 속 빈 깡통이라?
“……웃기고 있군.”
그때, 이제껏 조용히 머리를 처박고 있던 괴물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용사라고?”
이글이글 빛나는 녹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동자는 살기를 띠고 있었다.
쿠쿵!
괴물이 팔을 뻗어 제 몸이 처박혀 있었던 땅에서 천천히 벗어나려고 했다.
“어딜!”
카캉!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한 번 더 괴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목을 노리고 향한 검은 괴물의 한 손에 잡히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 뜻밖이었다.
괴물의 손아귀에 잡힌 성검의 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웃기지 마!”
그리고, 검을 맨손으로 잡은 괴물이 노호를 터트렸다.
그 외침에 주변의 나무들마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일종의 절망마저 느껴지는 거대한 분노였다.
아마 내가 던졌던 말 중 몇몇이 알버트가 가지고 있는 어떤 마지노선을 건드렸으리라.
“저건 나와 같은 괴물일 뿐이야!”
그렇지만 그 개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를 설득할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 님페의 바람을 사용합니다.
두 발에 강렬한 바람이 맴돌았다. 나는 괴물의 손에 날을 내준 채로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순식간에 성검의 날이 짧아지며 이제 괴물의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뭐, 뭐야!”
빈손이 되어 버린 알버트의 얼굴에 당황이 스치는 것을 보며 하늘에 높이 떠오른 채 웃었다.
“내 검을 네가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애초에 이 성검의 검날은 내 의지로 생성되는 것이다. 길이 정도야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괴물의 손아귀에서 손쉽게 벗어난 성검은 다시 한번 길고 넓게 뻗어 나갔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당신의 투지를 격려합니다!
쾅!
나는 중력의 힘을 빌어 한 번 더 검을 괴물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명쾌한 타격음과 함께, 아직도 땅에 반쯤 처박혀 있던 괴물의 몸이 한 번 더 깊숙이 처박혔다.
‘먹혔다!’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내 성검으로 저 괴물의 외피를 베는 건 불가능했지만, 못을 박는 망치처럼 활용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알버트의 몸체가 무척이나 무겁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저 녀석이 나무를 워낙에 뽑아 대서 지반도 불안정해졌고.’
그러다 보니 내가 괴물의 머리를 내려칠 때마다 알버트의 발은 땅속으로 푹, 푹 꺼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잡은 나는 절대로 팔을 쉬지 않았다.
쾅! 콰쾅! 쾅!
나는 미친 것처럼 괴물의 머리통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망치로 못을 박는 것과 별다를 바 없는 동작이었다.
검을 몰아치듯 휘두를 때마다 주위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이, 이게 무슨……!”
당황한 알버트가 팔을 뻗어, 제 머리를 미친 듯한 빠르기로 내려치는 내 검을 잡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상대는 내 에이펙스의 성검이었다.
내 의지대로 검날을 만들 수 있는, 용사 클래스 고유의 사기템!
“이 새끼가!”
알버트가 손을 뻗어 검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나는 요령 좋게 긴 검날을 회수했다.
알버트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그리고, 헛손질을 한 손이 땅을 짚으려고 할 때 다시 검날을 길게 늘려 대가리를 후려쳤다.
콰쾅!
“크아악!”
성검의 빛이 정신 나간 형광등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내 의지만으로 날을 조종할 수 있는 에이펙스의 성검만이 해낼 수 있는 재주였다.
물론 마력이 크게 소모되긴 하지만,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었다.
- 에이펙스의 성검이 당신의 능숙함을 좋아합니다!
고맙다, 치사한 게 아니라 능숙하다고 해 줘서!
어쨌든 내 파트너의 신출귀몰함 덕분에, 알버트는 속절없이 계속해서 땅속으로 처박혀야만 했다.
“이 새끼가!”
열 받은 게 역력히 보이는 머리를 대놓고 내리치는 게 재미있기는 했다만, 내가 요령을 터득해 몇십 번 연속으로 알버트의 대가리를 내리치고 있다고 한들 그가 만만한 상대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 번을 넘게 아무리 검으로 내리쳐 봐도 검 끝에 무언가가 베이는 감촉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이렇게까지 해도 털끝 하나 못 베는 거야?’
게다가 무엇보다도, 내 팔로 전해져 오는 반동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무쇠로 된 북을 금속 배트로 두드리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내 팔이 먼저 부러지겠어!’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 끝장이었다.
“그만하라고!”
물론 알버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막 어깨까지 땅으로 처박히기 전, 알버트가 겨우겨우 팔을 뻗어 탈출 시도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괴물의 눈동자에서 핏줄이 터질 듯 크게 경련하는 것을 보았다.
어지간히 열이 받은 듯했다.
“이, 망할 새끼가 잔재주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쿠콰쾅!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나무둥치가 알버트의 머리 위로 박혔다.
그대로 알버트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려던 찰나에, 나는 커다란 그림자가 알버트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도, 알버트도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하, 하하…….”
하늘을 올려다본 알버트가 실성한 것처럼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허공에 떠오른 알리시아가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리시아는, 곧장 알버트를 향해 똑바로 자신의 몸을 내리꽂았다.
“이, 개자식아!”
쿠콰콰콰쾅!
호탕한 욕설과 함께, 내가 검으로 내리쳤을 때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게, 알리시아의 몸이야말로 흉기 자체였으니까.
거의 운석 충돌이나 다름없는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자욱한 흙먼지가 사라졌을 때, 나는 알버트가 흙 속에 거의 눈만 내놓고 묻혀 있는 꼴을 보았다.
우스운 광경이었다.
머리만 빼고 산 채로 묻힌 괴물과, 그 머리 위를 밟고 선 알리시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을 만큼 인상 깊은 일이긴 했지만, 역시 아직 방심하기에는 일렀다.
“알리시아!”
그리고 내가 부르자 알리시아는 곧장 내 곁으로 훌쩍 뛰어 빠르게 물러섰다.
“그래, 나도 알아.”
통쾌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긴장한 목소리였다.
역시나.
나도, 알리시아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하, 하하하…… 알리시아. 정말로?”
땅속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알버트는, 흙이 입에 들어가는 것도 상관치 않으며 우리를 비웃어 대고 있었다.
“이게 네 전부냐?”
꼴이 우스워진 것과 별개로, 이번에도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것이다.
나와 알리시아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끈질기다.”
“이 정도면 죽어야 예의인데 말이야.”
정말이지, 방어력 하나는 장난 아니었다.
이 상태로 만들어도 결국 목을 딸 수 없다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쯤 되면 외부에서 가하는 물리적 타격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남은 방법은…… 역시 그건가.’
한편 알버트의 눈동자에 선 핏발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흙이 들썩이고 있는 것이, 아마도 무거운 몸이 땅에 전부 처박힌지라 움직이기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너희들이 내 손에 죽는 건 변하지 않아!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지!”
육체적으로는 별 타격이 없었겠지만, 아무래도 자존심에 지대한 타격을 입은 듯했다.
나는 그 저주에 찬 울림을 들으며 코웃음을 쳤다.
“흙 처먹으면서 별소릴 다 하네. 알리시아!”
“어, 작전 세웠어?”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나한테 작전이 있을 거라고 믿는 걸 고마워해야 할지, 혹은 본인에게 생각할 의지가 없단 점에 열 받아야 할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작전을 떠올려 보았다.
음, 솔직히 잘될지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번 해 보는 수밖에.
나는 한 번 깊은 한숨을 쉰 후, 알리시아를 돌아보았다.
“알리시아, 너 나 믿어?”
그리고 알리시아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자신보다 더.”
내가 들으리라고 기대했던 대답이 그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대답에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게 먹힐까?’
만약 먹히지 않는다면 정말로 끝장이었다. 혹시 이게 판단 착오라서 알리시아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하지만, 고민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후두둑, 알버트가 파묻혀 있는 땅 주위로 흙먼지가 슬슬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죽, 여 버리겠어……!”
알버트가 흙 속에서 천천히 몸을 빼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메인 퀘스트 클리어 조건 : ‘알리시아’의 생존
- 남은 시간 01:07:21
남은 시간은 이제 한 시간 남짓.
즉, 이번에야말로 마지막 기회였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기회, 타르토스를 구할 수 있는 기회.
알리시아를 살릴 수 있는 기회.
실패하면 정말로 끝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차갑게 식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만일 여기서 판단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레나.”
그때, 손가락이 얽히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때야 나는 내 손이 무척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마주 잡은 알리시아의 붉은 눈동자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괜찮아. 뭐든지 말해. 나는 널 믿어.”
“……정말 괜찮겠어? 내가 실수하면 우리 둘 다 죽을 텐데.”
“뭐, 그야 나도 네 작전이 그리 뛰어날 거란 기대는 안 하긴 하지만…….”
“죽고 싶냐?”
“그래도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알리시아가 몬스터의 형태를 한 손을 내 얼굴로 뻗었다.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나를 해칠 리가 없으니까.
거대한 몬스터의 손가락이 다가와 식은땀으로 젖어 내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산들바람처럼 넘겼다.
“레나, 너는 언제나 내 용사야.”
그런 알리시아의 눈동자에도 결연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알리시아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모두 알리시아의 눈 속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애정. 혹은 믿음.
다시 한번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모든 것.
“그리고, 나도 언제나 너를 구할 거야.”
- 메인 퀘스트 : ‘운명의 씨앗’이 발아할 가능성을 입수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황금빛의 메시지가 알리시아를 비추며 떠올랐다.
이제야.
망할 자식.
“…….”
내 얼굴을 본 알리시아가 코끝을 찡그렸다.
“너 울어?”
“아니거든.”
나는 알리시아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아마 익숙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나를 본 알리시아가 반사적으로 따라서 미소 짓는 것이 보였다.
정말 바보 같아 보였다.
진짜로, 멍청이 같으니라고.
“그럼, 좋아.”
감만 좋은 바보를 향해 나는 두 팔을 벌렸다.
“나 좀 안아 주라, 알리시아.”
“뭐?”
나는 한 번 더 똑똑히 말해 주었다.
“나 안고 튀라고, 멍청아.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