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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73화 (17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73화

Chapter 14. 이러면 안 되는데

“와, 진짜 답 없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이선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커피를 들이마시는 것을 보며, 양태원 또한 이선이 내 준 커피를 쭉 들이켰다가 헛기침을 했다.

너무 썼던 것이다.

“우왁, 이거 왜 이렇게 써요?”

“아, 미안. 잘못 줬다.”

이선이 금방 양태원의 손에서 커피를 빼앗아 가며 혀를 찼다.

“이건 내 거야. 샷 추가 3번 해서 그래. 다른 거 마셔, 다른 거. 아이스 초코 어때?”

괜찮다고 사양하긴 했지만, 결국 양태원은 생크림 휘핑까지 잔뜩 올린 아이스 초코 한 잔을 받았다.

“이런 거 비싸지 않아요?”

“어차피 정부 지원받은 커피 차에서 받아 온 거야. 더 비싼 거 마셔도 돼. 배는 안 고파? 저쪽에 밥차도 있어.”

그건 의외였다.

양태원은 도로 저 건너편에 있는 밥차를 발견하고 눈을 껌벅였다.

“이런 거 해 주는 건 처음 봐요. 나름대로 복지가 좋네요.”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다들 며칠째 이 지…… 난리인데.”

그건 그랬다. 욕이 나오려다 만 것 같긴 하지만 양태원은 못 들은 척하고, 당을 충전했음에도 여전히 감기는 눈을 마구 비볐다.

“진짜 피곤하긴 해요. 그냥 어디 들어가서 자고 싶다.”

“저쪽에 임시 숙소 설치되어 있으니까 한숨 자고 와도 돼.”

“어떻게 그래요.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며 양태원은 손가락을 들어 두 사람 앞의 건물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지금 있는 곳은 지하철 홍대입구역.

평소라면 사람들로 무척이나 북적일 거리였지만, 지금은 오가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잠도 안 올걸요.”

주변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웬 거대한 뱀이 칭칭 휘감고 있었으니.

S급 몬스터, ‘용이 되지 못한 뱀’이 출현하였습니다.

건물 하나를 완전히 뒤덮을 만큼 거대한 뱀.

그러니까, 이무기였다.

반투명한 녹빛의 몸체가 스르륵 움직일 때마다 콘크리트 조각이 바닥으로 부스스 떨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주위에 둘러서 있는 헌터들의 긴장된 신음과 그들을 독려하는 감독관의 목소리가 커졌다.

“동요하지 마!”

“결계 계속 유지해! 여기서 놓치면 끝장이야!”

“…….”

양태원의 말이 맞았다. 이선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 모든 일이 터진 건 대략 4일 전 일이었다.

4일 전, 오전.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던전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평소 던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몬스터들이 대거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선이 간단하게나마 원격으로 상황 브리핑을 받은 것은 사태 시작 시점에서 대략 30분 후였다.

그렇게 모처럼의 휴일이었지만 비상소집이 걸리자마자 어쩔 수 없이 뛰어나온 이선은, 4일이 지난 오늘까지 한숨도 쉬지 못하고 수도권 전역을 누벼야 했다.

그러니 샷을 3번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을 법했다.

또 지금 이선 옆에서 생크림 휘핑을 잔뜩 올린 초코 라떼를 마시고 있는 양태원만 해도 혹독하게 굴렀다.

아무래도 특수 클래스 헌터이다 보니 그런 특성을 살린다면 공략이 쉬워지는 던전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정부에서 굴리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선은 텀블러에 가득 담은 커피를 들이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야지…….’

대한민국의 현 제도상, 등록된 헌터는 공식적으로 나누어진 등급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던전을 공략하도록 되어 있다.

가령 B급 헌터라면 솔로로는 C급, 3명 이상의 파티를 꾸릴 경우 B급 던전까지 공략 가능하다는 식이다. 이런 기준은 있어야 던전 내에서 돌발 사태가 터지더라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이번에 빛을 발했다.

설령 C급 던전에서 B급 몬스터가 출현하더라도 헌터들이 침착하게 대응하기만 한다면 공략하지 못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던전 대부분은 당시 공략 중이던 파티들이 평소처럼 공략 완료를 할 수 있었으며, 혹시 힘에 부쳤던 경우도 이 사태를 빠르게 파악한 바깥의 헌터들이 곧장 지원을 나갔기에, 부상자는 속출했지만 아직까지 사망자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즉, 브레이크가 일어난 던전은 극소수였다는 말.

그러니 여기까지만 보면 기적적인 해피 엔딩일 법도 했는데…….

‘그런데 왜 하필 여기가 터지냐고.’

그랬다.

하필 그 극소수의 브레이크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서울의 번화가 중 하나인 홍대입구역 부근이었던 것.

본래도 연남동 쪽에 A급 던전이 있기는 했다만, 워낙 번화가 쪽에 던전 입구가 생겨났다 보니 정부 입장에서도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있는 던전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 사태가 터지자마자 가장 먼저 진입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뭔가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곧장 포화도가 넘쳐 버렸다.

그리고, 이 꼴이 되었다.

A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던 ‘이무기’가 튀어나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영상은 현재 SNS에서 미친 듯이 공유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소위 말하는 연트럴 파크 주변의 건물이 이무기의 콧김에 간판이 모두 떨어져 나가 지금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본래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자칫하면 커다란 인명 피해를 볼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근처에 적절한 대처를 한 헌터가 있어 급한 불은 껐으나…… 뭐, 지금도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기는 했다.

당장은 마법사 클래스들이 결계를 형성해 몬스터를 가둬 두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상태로 놔둘 수는 없었다.

이선은 결계 안에서 몸부림치는 이무기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판국에 건물주가 저렇게 길길이 날뛰고 있으니…….”

어쩌다 이무기가 달라붙어 버린 건물의 주인이 지금 당장 결계를 해제하지 않으면 정부를 상대로 고소를 한다, 언론에 알리겠다며 날뛰고 있다는 것도 이 소란에 한몫했다.

아무리 정부에서 보상을 약속해도 막무가내였다.

“아, 저 사람이 그……?”

“맞아.”

양태원은 도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위험을 무릅쓰고 이무기에게 다가가 공략법을 궁리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다가와 당장 해결해 놓으라며 양태원을 상대로 다짜고짜 윽박을 질렀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가 건물주였던 모양이었다.

“아니, 손해는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아요? 저 결계 풀면 보스 몬스터가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데. 인명 피해도 장난 아닐 거라고요.”

“그거야 자기 알 바 아니고, 지금 이무기가 휘감고 있는 자기 건물 망가진다, 이거지.”

양태원이 눈썹을 찌푸렸다.

“우, 너무해.”

정말로 너무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째 강행군이라 피곤한 차에, 정부 소속이라는 죄로 한 시간은 족히 저 대거리를 받아 줘야 했던 이선에게는 더더욱.

솔직히 이선도 마음 같아서는 몇 마디 쏘아 주고 싶었다.

할 말은 많았다.

여기에 건물이 있을 정도면 어차피 죽을 때까지 써도 못 쓸 만큼 돈도 많을 텐데 그게 다른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고.

사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당신 말대로 결계 해제해서 저거 도시 한복판에 풀어놓고 사람들 떼죽음당하는 거 구경할까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하지만 상상으로만 그칠 뿐, 성인이자 조직에 얽매인 직장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선은 화를 내는 대신 어린 후배를 친절하게 가르쳤다.

“던브가 터졌을 때 의외로 몬스터보다 이런 재산 피해를 처리해야 한다는 게 제일 짜증 나. 그러니까 헌터 보험은 꼭 들어 둬. 자칫했다간 헌터 생활로 번 돈, 피해 보상으로 다 까먹는 수가 있어.”

“와, 유용한 충고다. 어쨌든 그럼 저는 저 사람 때문에 불려온 거예요?”

“그런 셈이지.”

정부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다 보니 막 던전 공략차 지방을 돌고 있던 양태원에게까지 연락이 간 것이다.

아무래도 특수 클래스이다 보니 새로운 공략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양태원은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청룡을 올려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결국 헛걸음이었지만요.”

청룡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못내 이상하게 여겨져 양태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청룡에게 저 이무기를 해치울 방법이 없냐고 물었을 때, 청룡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건 즉, 양태원 자신이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런 번화가에 저런 S급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인간의 선의를 수호하는 청룡, 그리고 그 청룡의 가호를 받는 자신이 어떻게 관여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양태원은 언제나, 자신에겐 인간을 지키고 몬스터를 해치워야 하는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청룡 또한 그 의지를 지지해 주고 있다고 느꼈다.

‘혹시 저 이무기, 청룡 님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설마…… 아야.’

불경한 생각을 한 게 들켰는지 그 와중에 꼬리로 얻어맞았다.

양태원은 제 이마를 문지르며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평소랑 다르게 이상한 건 맞잖아요. 왜 아무 대답도 안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나 이번에도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청룡은 양태원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나 손을 뻗어 주는 존재였다. 이렇게 질문을 아예 무시하는 건 굉장히 드물었다.

그때 양태원은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빈도수가 늘어나긴 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대개…….

‘예나 누나 관련도 대답을 피하시지.’

양태원은 얼마 전 새롭게 사귄 지인을 떠올렸다.

그 이름은 강예나.

현 대한민국의 랭킹 1위이자, 그 이름이 떠오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화제성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방랑하는 구도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양태원은 그 플레이어명도, 그리고 그런 이름을 지은 본인도 제법 좋아했다. 만난 지 별로 되지는 않았지만 만일 친누나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뭐랄까, 무언가 본능적인 영역에서 호감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무당인 만큼 양태원은 자신의 감을 전적으로 믿었다. 게다가 사실 클래스가 용사인 사람을 싫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양태원은 가끔 강예나의 안부나 운세에 관련된 질문을 하곤 했다. 그런데 청룡은 그럴 때마다 양태원의 질문을 무시했다.

이것도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예나 누나는 뭐 하고 있지?’

문득 양태원은 핸드폰을 꺼내 살펴보았다.

강예나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4일 전.

갑작스런 사태가 발생해 공략 나간다며 이쪽이 안부차 보낸 메시지가 끝이었다.

심지어 읽었다는 표시도 뜨지 않았다.

그걸 본 양태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바빠도 예나 누나가 이렇게까지 내 연락을 무시할 리가 없는데?

에이, 그래도 예나 누난데…… 설마.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양태원이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휩싸인 동안, 이선은 피곤한 눈가를 꽉꽉 눌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야 시스템이란 건 아직 정체도 그 목적도 파악하지 못한 정체불명의 무언가이긴 했지만, 최근 몇 달 사이 이런 식으로 아무 맥락 없이 사건 사고가 터지는 게 잦아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랭킹 발표부터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신촌의 던전 등급 변경, 그리고 이번의 전국적인 던전 등급 널뛰기까지.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낙천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더 큰일이 터지려는 전조는 아니겠지.’

사실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게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김숙자 교수와도 한차례 상담이 끝난 터였다. 그러나 단순한 감일 뿐, 근거가 없다 보니 대안을 짤 수도 없어서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어쨌든 상황이 이상하긴 해. 랭커들을 모아서 한번 의견을 물어보기는 해야…….’

“그, 이선 헌터. 예나 누나 말인데요.”

“어?”

생각에 골몰해 있던 이선은 양태원의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불안해하는 눈동자가 보였다.

이선은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예나 씨가 왜?”

“혹시 최근 연락해 본 적 있…….”

“뭐야. 넌 또 왜 여기에 있어?”

그때, 불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선과 양태원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론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기 전부터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저 하늘 위쪽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럴 수 있는 인간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우스울 정도로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 드넓은 푸른 창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늘을 등지고 비행하는 한 쌍의 거대한 흰 날개였다.

깃털이 환상처럼 떨어져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런 광경 속에서, 날개를 단 청년이 땅으로 천천히 착지했다.

훤칠한 키에,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얼굴, 또 등 뒤에 달린 커다랗고 하얀 날개가 주는 인상은 대단했다.

거기다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검은색 검까지…… 마치 한 쌍의 조화로운 장식품처럼 여겨질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런 등장은 누구의 눈에나 띄었다.

“우, 우와아…….”

역 근처에 있던 모든 헌터들의 이목이 쏠렸다.

순식간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와, 나 실물은 처음 봐.”

“미쳤다…….”

“저 날개 진짜야?”

주로 경탄에 찬 그 속삭임들을 들으며 양태원은 속으로 입을 삐죽였다.

그리고 그런 주목을 아무렇게나 받아넘기며, 청년은 양태원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

천사 같은 외모와는 대비되는, 누가 들어도 성질이 더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너 왜 여기 있냐고. 대답 안 해?”

그 남자는 물론, 이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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