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78화
그렇게 이래저래 점심인지 저녁인지 애매한 식사를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이우연과 조한율에게 각각 팔을 붙잡혔다.
거의 동시였다.
“잠깐만.”
“잠시만요!”
그리고 서로가 내 팔을 붙잡았다는 것을 알아챈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오가는 눈빛에 불꽃이라도 튈 기세였다.
“뭐지?”
“너야말로 뭔데?”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뭐냐…… 내 양육권을 놓고 싸우기라도 하는 건가? 난 독립하고 싶은데.
반면에 여기에 전혀 끼지 않은 양태원은 홀로 평화롭게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조한율을 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누나!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예나 누나, 나중에 봬여!”
“아니, 그, 잠깐…….”
청룡이 잽싸게 빠져나가는 양태원의 등 뒤로 나를 놀리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무래도 장어 취급당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반신쯤 되는 주제에 엄청나게 속이 좁은 녀석이다.
나는 양태원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의 팔을 뿌리쳤다.
“두 사람 다 나한테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그럴 거면 그냥 셋이 같이 자리 옮기지? 그게 효율적일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그랬다. 어차피 이우연도 조한율이 운영자라는 걸 알고 있다면 따로 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이우연이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난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닌데.”
“그럼 왜 붙잡은 거야?”
“그냥, 당신이 피곤해 보여서. 이대로 집에 가지 말고 병원에 들러서 수액이라도 맞고 가라고 할 참이었어.”
“와, 저거 수작 부리는 것 좀 봐. 믿지 마세요, 예나 씨. 분명히 할 말 있는데 점수 따려고 저러는 거니까.”
내가 뭐라고 할 겨를도 없이 조한율이 튀어나왔다.
“수작?”
이우연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조한율을 쏘아보았지만, 막상 본인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기색으로 다시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어쨌든 저 바…… 이우연은 할 말도 없다고 하니 내버려 두고 자리나 옮기죠. 저는 할 말 있거든요.”
“조한율, 너…….”
“잠깐, 잠깐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두 손을 들어,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인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둘이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건데? 보증이라도 서 줬어?”
“아니,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내 눈앞에서 개싸움을 벌여 놓고 막상 원인을 물으니 둘 다 말꼬리를 흐린다. 아무래도 나한테 깊은 속사정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나 지금 엄청 피곤하거든. 남의 싸움에 낄 기분 아니야.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하자고.”
사실이었다.
던전 내에서도 며칠 밤을 샌 상태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곧바로 S급 몬스터를 공략하느라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적이 없다.
오죽하면 아직 던전 공략 후 보상창도 까 보지 않은 상태였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내가 빙의했던 ‘77호’ 아이의 기억 파편이라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저번 유령의 성에서 페트라의 기억을 봤을 땐 과거 같은 장면이 보였지.’
물론 그때는 딱히 도움이 되는 기억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 77호라는 아이는 알리시아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고 타르토스에서 살던 아이였다.
어쩌면 그 아이의 기억에서 알리시아나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힌트를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알리시아는 왜 수배령을 받았는지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
‘대체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건지…….’
그래서 당장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 심력을 소모하게 될 일인 것도 확실했다.
솔직히 이렇게 피곤한 상태에서 볼 자신은 없다.
그래서 일단 휴식을 취한 후, 혼자 있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천천히 확인해 볼 작정이었다.
“……뭐, 그러네요. 그럼 일단 자리부터 옮길까요? 저는 셋이 같이 이야기해도 상관없으니까.”
조한율은 내 제안을 금세 받아들였다.
이우연은 약간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수락했다.
“둘만 놔두는 것보단 나을 것 같네. 그래, 가지. 그런데 어디로 가려고?”
“일단 노출된 곳은 안 되지. 아무래도 이우연 네 얼굴은 너무 유명해서 괜히 같이 있는 사람들까지 주목받는다고.”
그러고 보니 조한율이 우리를 데리고 온 식당도 개인실이 있는 곳이었다. 아마 내가 아직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거냐고.”
“여기서 가깝고 사적인 대화가 보장되는 곳. 더불어 예나 씨 영양제도 좀 맞히고.”
조한율의 말에 이우연이 불만스럽게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그래. 예나 씨, 혹시 선율 공방 본사에 와 본 적 있어요?”
선율 공방.
대한민국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름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헌터 스토어의 전 지점에서 ‘선율 공방’ 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물론 포션 코너지만, 헌터 스토어의 각종 아이템 코너 설명에서도 ‘선율 공방 제작’ 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만큼 현 대한민국 헌터계에서 선율 공방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조한율이 운전을 하며 설명을 해 주었다.
“주력으로 생산하는 건 포션과 저렙용 장비, 그리고 일반인들이 쉽게 착용할 만한 방어구들이에요. 일반적인 헌터 스토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비들이죠.”
하긴, 헌터 스토어 VIP관에 가서 제작템을 구입할 때 보아하니, 그런 고급 아이템으로 분류되는 것들은 선율 공방 생산이 아니라 개인 제작자가 만든 것이었다.
이런 면만 봐도 조한율이 시스템 운영자로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는 확실했다.
하급 포션을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안정화시킨 것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고레벨 헌터용 장비보다는 하위 레벨, 그리고 일반인들용 장비를 만드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명백하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이우연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 방어구라고 할 수 있나? 일반 의류 브랜드나 다름없던데.”
“의류 브랜드라고 하지 마! 힘없는 일반인들이 쓰라고 만든 아이템이라고.”
“막상 던브가 터졌을 때 그런 방어 마법 새겨진 피어싱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방어구 가격을 내리니까 보급률도 올랐고, 덕분에 일반인 사상자 수가 얼마나 줄었는데. 하급 헌터들 층도 점점 두꺼워지는 추세고…….”
“누누이 말하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 때문에라도 고렙 플레이어 육성에 집중해야지.”
이우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애초에 일반인 사상자가 나온다는 건 그동안 헌터들이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 읍!”
나는 듣다못해 손을 뻗어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조한율과 내 옆에 앉아 있던 이우연은 각각 입이 틀어막힌 채 눈을 굴렸다.
“둘이 왜 사이가 나쁜지 알았으니까 그만.”
즉 조한율은 시스템 운영자로서 절대 다수일 수밖에 없는 일반인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반대로 이우연은 오히려 고레벨 플레이어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생기는 불화인 것이다.
결국은 선택과 효율의 문제다.
물론 그게 두 사람이 다투는 원인 전부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이 문제가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 쪽 의견에 가까운데?”
“뭐?”
핸들에 두 손이 묶여 내 손을 떼어 낼 수 없었던 조한율과 달리 이우연은 금방 내 손을 떼어 내고 물었다.
“당신이야말로 조한율 스탠스로 제일 손해 보는 입장이잖아.”
“내가?”
“그래, 당신한테 맞춤 제작된 아이템을 쓰면 던전 공략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어?”
그거야…… 나는 내 허리춤에 매달린 에이펙스의 광검을 바라보았다.
물론 이 광검은 내 클래스에 딱 맞는 안성맞춤의 아이템이다. 애초에 이런 아이템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꼬박 한 달을 던전에 투자해 얻어 낸 아이템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앙겔루스의 가호는…… 흠, 이쪽은 개선의 여지가 있긴 했다.
내 정신력이 약해서 환시 마법에 잘 걸린다는 점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긴 하지만, 그래도 마법에 능통한 릴리스 같은 걸 상대로 만나는 경우에는 정말이지 치명적이다.
물론 그 외에도 독기나 마기를 어느 정도 정화해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물리적 방어력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능하면 따로 물리 방어 장비 하나 정도는 갖추는 게 좋기는 한…….’
“아니,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누가 고렙들 육성에 신경을 전혀 안 쓴대?”
그때 조한율이 끼어들었다.
“나라고 고등급 던전 공략에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시스템 운영자란 말이야. 지금도 아슬아슬한데, 여기서 더 직접적으로 끼어들면 일반 플레이어들이 테크트리를 완전히 잘못 탈 가능성도 있다고. 그렇지 않아도 검사 클래스 선택하는 플레이어가 적어서 얼마나 골치인데, 제작자 클래스까지 희귀해지면 우린 정말 망하는 거야.”
그러니까 조한율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조한율이라는 압도적인 제작자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제작자 클래스를 선택하지 않아서 수준이 뒤처지는 것인 모양이다.
하기야 현재 한국의 검사 플레이어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걸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선두 그룹을 보고 클래스를 선택하기 마련이니까.
이우연도 그런 면에서는 조한율의 입장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육성이란 게 너무 오래 걸리니까 문제잖아.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건데?”
“아, 3년만 더 기다려 보라고. 뭔가 보여 준다니까?”
“그리고 그 3년간 나는 맨몸으로 구르고?”
“그래도 레바테인은 얻게 해 줬잖아. 그것도 엄청 무리한 거라고. 그러니까 어떻게든 버텨 봐. 파이팅!”
“지금 남의 일이라고 진짜…….”
음, 솔직히 말해서 이우연과 누가 싸울 때 내가 이우연의 편을 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는데…… 이건 그런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조한율이 얄밉기는 했다.
어쨌거나 이우연과는 같이 던전에서 구른 정도 있고.
나는 힘내라는 의미에서 대충 이우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이우연이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뭐, 왜……?”
별것도 아닌데 너무 놀라는 걸 보니 괜히 내가 못할 짓을 한 것 같았다.
머쓱해진 나는 금방 손을 거두었다.
“아니, 그냥…… 힘내라고.”
“다 왔다. 자, 자. 예나 씨. 제 본진을 소개할게요.”
하마터면 어색해질 뻔한 와중에 차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비스듬히 한강이 보이는 지역, 높다란 건물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아니, 왜 여의도야?”
아무래도 헌터 스토어 본점이 강남에 있다 보니 막연하게 선율 공방 본점도 강남에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도착한 곳은 여의도였다.
차를 댄 조한율이 어깨를 으쓱했다.
“간단해요. 마석 던전 근처니까. 의뢰와 제작이 빨리 이루어져야 효율적이잖아요. 그래서 건물이 나오자마자 바로 샀죠. 그리고 한강 보이니까 풍경도 좋고. 저는 우리 사원들의 정신 건강도 생각한답니다.”
“사원?”
“네, 선율 공방 사원이요. 설마 그 많은 포션과 아이템을 저 혼자 생산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
“솔직히 말하자면 시스템 운영자니까 대충 어떻게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조한율이 노골적으로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것까지야.
“사실 제작자 클래스에 대해서는 잘 몰라.”
10년 정도 용병으로 일했지만, 제작자 클래스와는 별로 친숙하게 지낼 일이 없었다.
고렙 제작자가 생산해 내는 고급 장비란 돈이 있어도 손에 넣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고, 심지어 나는 용사라는 특수 클래스였다. 그래서 딱히 연이 닿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또 타르토스에서는 포션도 아리아드네가 제공해 주는 것 위주로 썼고.
그렇게 말하자 조한율이 씩 웃었다.
“그럼 이제 알아 가면 되겠네요. 어서 오세요. 선율 공방은 언제나 강예나 씨를 환영할 거예요.”
* * *
엄청나게 높은 건물이길래 그중 몇 층을 쓰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한율은 망설임 없이 지하 주차장에서 내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버튼 위의 공간에 손가락을 대는가 싶더니, 곧장 문이 열렸다.
“여긴 제 전용 엘리베이터예요. 이 엘리베이터만 곧장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연결되는데…… 나중에 예나 씨도 사용 가능 인원으로 추가해 둘 테니까 편할 때 사용하세요.”
“편할 때?”
“네, 사실 아예 여기 살아도 되고요.”
“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의도면 교통도 편리한 편이고, 던전 접근성도 나쁘지 않잖아요. 심지어 지하철역에서도 지하 도보로 이어지고요.”
“그건…….”
“아, 근데 대중교통으로는 던전 공략 다니기 불편하시죠. 원하시는 차종 있으면 말씀하세요. 몇 대 정도는 내어 드릴 수 있어요.”
“…….”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작자 클래스의 자연 육성을 노리고 있어서 맞춤 장비가 척척 나오진 않지만, 하급 소모품이나 포션 정도는 언제든 제공할 수 있어요. 보니까 제 카드로 소비한 것도 대부분 소모성 아이템 같던데.”
“아니, 그…….”
“잠깐만.”
이우연이 짜증을 내며 끝도 없이 늘어지고 있는 조한율의 제안을 잘라 냈다.
“조한율,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게, 무슨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재벌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왜, 뭐, 왜? 자, 일단 탑시다, 예나 씨.”
조한율이 코웃음을 치며 내 팔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딱히 강한 힘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박력이 만발이라 나는 얼결에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우연이 따라 들어오자마자 조한율이 문을 닫고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새겨지지 않은 버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며 조한율이 설명을 이어 갔다.
“선율 공방에서는 모든 방면의 제작자 클래스 플레이어를 고용하고 있어요. 특히 제작자 중에서도 장인 정도로 레벨이 올라가면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하고 있죠. 몇 년만 지나면 체계가 잡힐 거예요. 물론 선두 플레이어들에게 미안한 감은 있지만…….”
그렇게 말하며 조한율이 어딜 보나 불만스러워 보이는 이우연을 흘깃 쳐다본 후, 나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지키고 싶은 거라서.”
이상하게도, 어쩐지 간절하게 이해를 구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딱히 내가 이해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네?”
“그게 운영자로서 본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인 거잖아. 그럼 누군가의 이해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이우연의 입장도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확실히, S급 이상 몬스터를 공략할 때는 맞춤 아이템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나는 높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점점 작아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구하고 싶으면 구하는 거고, 지키고 싶으면 지키는 거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그런 건 딱히 상관없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은 져야겠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지키고 싶은 신념이자 운영자로서의 방향성이라면 나는 납득할 수 있었다.
“예, 예나 씨…….”
감동해 눈동자가 올망거리기 시작한 조한율과는 반대로, 이우연은 팔짱을 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당신은 그럴 것 같았어…… 무슨 동화 속 용사라도 돼? 마음씨도 좋지. 나만 무슨 속물로 만드네.”
“그리고 아이템 하니 말인데.”
나는 이우연을 보고 씩 웃어 주었다.
“던전 공략에 아이템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없어도 어떻게든 해내는 게 바로 실력이지. 안 그래?”
“……뭐?”
노골적인 도발을 들어서일까? 평온하던 이우연의 눈에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제껏 볼 일이 드물었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쪽이 훨씬 나았다.
내숭을 한 꺼풀 벗겨 낸 얼굴이 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곧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 도발해?”
“내가 한 방에 쓰러트린 S급 몬스터 하나에 절절매던 놈을 도발해서 뭐에 쓰지?”
“하하, 절절매? 강예나,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러면 어쩔 건데.”
“하긴 우리도 한번 붙어 봐야…….”
“잠시만요. 제가 휘말려서 죽으면 어쩌려고요! 적어도 던전 안에 들어가서 싸워요!”
조한율이 급하게 외쳤다.
조금 전만 해도 언제든 들어와서 살라더니, 참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