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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79화 (180/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79화

곧 나타난 펜트하우스의 모습은 과연 조한율이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물질적인 화려함에 무덤덤한 나조차 순간적으로 눈이 환해졌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통유리로 되어 한강과 도시를 한꺼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시야였다.

대한민국에 돌아온 건 이미 몇 개월 전의 일이었지만, 이제껏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도시를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타르토스에 가기 전까진 이런 풍경이 익숙했을 텐데, 이제는 아주 낯설게 보였다.

조한율이 거실 한구석에 놓인 커다란 소파로 나를 안내하며 웃었다.

“역시 한강 뷰가 좋긴 좋죠? 아, 물론 게스트 룸에서도 보이는데 언제든…….”

이우연은 조한율이 안내하기도 전에 이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한껏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적당히 해라, 조한율. 됐고, 용건이나 빨리 말해.”

그건 나도 동감이었다. 유혹적인 제안이라는 건 부정하진 않겠다만 피곤하기는 했으니까.

“네, 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러더니 조한율은 갑자기 허공에서 병을 낚아채 나에게로 훌쩍 던졌다.

나는 한 손으로 날아온 유리병을 받아 챘다.

“뭐야?”

“제가 직접 만든 포션이에요. 헌터 스토어에 들어가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되지만, 영양제 대용으로 쓰시라고.”

아까 영양제가 어쩌고 하더니 정말로 포션을 쥐여 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굳이 시스템창을 열어 확인해 보지 않아도 병 속에서 황금색 액체가 잔잔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스템 운영자가 직접 제작한 포션이라니, 아마 가격을 매길 수도 없을 테지.

막상 조한율은 심드렁한 얼굴로 이우연을 건너다보았다.

“이우연, 너는 커피라도?”

“됐어.”

“두 번은 안 권해.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두 사람 다 이 화면을 봐 주세요.”

조한율이 나와 이우연이 앉은 소파 맞은편, 거실 한편에 커다랗게 설치되어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 화면에 떠올라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지도였다.

그리고, 그 지도 위에서 수십 개의 붉은 점이 무작위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딜 보나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거 설마…….”

“네, 현재 대한민국 서버에 존재하는 모든 미공략 던전들을 표시한 거예요.”

“뭐? 말도 안 돼.”

이우연이 당장 끼어들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많아진 건데? 일주일 전만 해도 10개 이하로 관리하고 있지 않았나?”

“맞아. 그런데 이번 사태…… 가 끝나고 나서, 전국적으로 던전 상태 점검을 진행했거든. 그때 새롭게 발견된 거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도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본래는 10개 미만이었던 게 타르토스의 관리자가 대한민국 서버를 공격한 후 몇십 개로 늘어났다, 이건가?

‘완전히 뒤집어 놨군.’

그렇지 않아도 전국 던전에서 본래 등급과 맞지 않는 몬스터들이 쏟아져서 그 뒷감당을 막 하고 온 참이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수십 개의 미공략 던전까지 튀어나왔다.

‘진짜 뭐 하는 놈이지?’

심지어 조한율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의 권한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당장 나만 해도 얼마 전에 시스템을 거역하려다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런데 오직 남이 엿 먹는 꼴을 보겠다고 그런 고통을 감수한다고? 어지간한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이우연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의문을 끄집어냈다.

이우연은 팔짱을 낀 채 붉은 점이 깜박이는 지도와 조한율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난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들을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내가 자리에 없었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어? 하마터면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 사고가 터질 뻔했잖아.”

눈치를 보아하니 조한율은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대한민국 서버를 공격한 순간 일단 이우연을 동원해 급한 불, 그러니까 홍대입구역에 나타난 이무기부터 틀어막은 모양이다.

게다가 이우연의 말을 들어 보니 조한율과 협력해 미공략 던전 숫자를 관리했던 모양인데, 저 녀석 입장에서 보면 잘 관리되던 게 갑자기 이유도 없이 개판이 된 셈이다.

조한율이 드물게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입이 백 개라도 할 말 없다. 전적으로 내 실수였어.”

“그냥 실수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 잠깐만.”

그리고 거기서 내가 끼어들었다.

“강예나?”

이우연이 흠칫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조한율의 책임만은 아니야. 나도 책임이 있어.”

“뭐라고?”

“아뇨, 예나 씨. 그건…….”

조한율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더라도, 조한율은 나를 도우려다가 괜한 불똥을 맞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우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당신한테 대체 무슨 책임이 있다는 건데? 혹시 나 모르게 시스템 부운영자 같은 직책이라도 맡고 있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사실은……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차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침묵에 빠졌다.

“…….”

“강예나?”

이우연의 얼굴이 의문으로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당황했다.

본래는 이참에 이우연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내게는 돌아가고 싶은 세계가 있고, 구하고 싶은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구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거고, 그게 내 궁극적인 목표라고.

그리고 누가 묻든 간에 저렇게 대답할 자신이 있었는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이우연에게 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될까?

그런 기묘한 꺼려짐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제까지도 몇 번이고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우연은 묻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으니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왜…… 말을 못 하겠지?’

나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왜 이렇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거지?

내 목적을 들으면 이우연이 방해할까 봐?’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이우연 입장에서 볼 때,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앞으로도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저쪽은 대한민국 서버의 안정을 우선시할 테고, 그렇다면 내가 계속해서 타르토스의 운영자와 접촉해야만 하는 상황을 싫어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이우연이 방해한다고 한들 내 바람을 꺾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일등 공신인 만큼 이우연은 들을 자격이 있다.

내게 책임을 물을 자격도 있고.

그리고 나도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서브 퀘스트 때문에라도 나는 대한민국의 미공략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처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대한 협력할 생각이다.

그러니 말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사실은 내가…….”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거지?

“대체 무슨……?”

심지어 대답을 기다리던 이우연의 의아하던 표정조차 슬슬 걱정으로 변해 가고 있을 때였다.

“아, 그냥 내가 간단히 말할게. 예나 씨 던전 공략 중에 내가 난이도 조절을 하려고 했어.”

조한율이 끼어들었다.

설명이 떨어지자마자 이우연의 시선이 휙 저쪽으로 돌아갔다.

이상하게도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뭐? 왜? 위험해서?”

“그렇지, 아무리 봐도 예나 씨 숨이 꼴딱 넘어가게 생겼더라고. 그래서 나답지 않게 개입 좀 해 보려고 했다가 시스템한테 한 방 먹은 거야.”

실제로는 시스템이 아니라 타르토스 운영자에게 공격받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물론 숨이 꼴딱 넘어간다는 건 사실과 약간 달랐지만.

“아, 정말 너답지 않은 짓이기는 했군. 일단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겠다만. 그건 그렇고…… 강예나.”

설명을 들은 이우연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왜 그러는 거야? 사람 겁먹게. 난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아니, 그건…….”

글쎄,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우연이 나와 반목할 가능성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건 이우연이 강력한 플레이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 혹시 나한테 솔직히 말하려고 하니 자존심 상해서?”

이우연의 표정이 갑작스럽게 장난스러워졌다.

“방금 나한테 실력 운운했는데, 운영자 도움을 받아서 겨우겨우 공략 성공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그리고 그 추측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절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니,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놈이 나를 놀려?

“말해 두겠는데, 그건 사실도 아니고, 조한율 도움도 안 받았다.”

나는 정체 모를 거리낌도 잊고 곧장 반박했다.

“맞아, 맞아. 예나 씨가 알아서 공략했다고.”

“조한율, 너는 뭘 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건데? 그럼 강예나에게 제대로 도움도 안 된 주제에 전국적으로 오류를 일으켰다는 말밖에 더 돼?”

나를 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에 조한율이 곧장 두 손을 들었다.

어쨌든 지금의 조한율은 약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내 실수라고 했잖아. 다시는 안 한다고, 다시는.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다시 일어나면 이번에야말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 주지.”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이우연이 살해 협박을 했다.

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조한율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여간,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 어쨌든,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 생긴 미공략 던전 대부분이 하급 던전이라는 거예요. 내일부터 정부와 길드에 협력을 요청해서 공략을 시작할 겁니다. 다들 다소 바빠지긴 하겠지만, 제 계산으로 두 달 정도면 정리될 거예요. 사실 어떻게 보면 하급 던전이 늘어나는 건 파밍 가능해지는 영역이 넓어지는 거니까 그리 나쁜 일만도 아니죠.”

이우연이 코웃음을 쳤다.

“말은 잘하는군. 김숙자 교수님과 이선 헌터 앞에서 말해 보지 그래? 당장에라도 머리가 뽑힐걸.”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조한율이 이우연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며 레이저 포인터로 경기도 외곽 즈음을 짚었다.

여기서부터 정말로 본론인 모양이다.

굳이 나와 이우연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

“운영자 권한으로 살펴보았는데, 던전 중 하나가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 구체적으로 말해 봐.”

“미공략 던전이라도 제 운영자 권한으로는 보스 몬스터 등급이 보여야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이 던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럼…….”

“극단적으로 말해 D급 몬스터가 나올지, 혹은 S급 보스 몬스터가 나올지 모르는 깜깜히 던전이라는 거예요.”

나는 그 설명에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그렇다면 보스 몬스터로 SS급이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사실 S급까지라면 현재 내 능력치로는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SS급 이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아니에요. 저번에 말씀드렸지만, 시스템상 헌터들의 레벨과 던전의 위험도는 연동되는 경향성이 있거든요.”

하지만 다행히도 조한율은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 들었던 설명이다. 내가 현 상태에서 레벨을 올리게 되면 한국의 던전 레벨이 급작스럽게 올라가기에 제한을 걸었다고 했었지.

“아직 대한민국 서버의 헌터들 레벨로는 SS급 보스 몹이 나올 환경은 아니거든요. 추이를 보면 5년에서 7년 정도는 지나야 SS급이 등장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저 깜깜히 던전의 최대 위험 등급은 S급 몬스터라는 거죠.”

설마 이런 식으로 몬스터 레벨이 조정되는지는 몰랐는데.

제법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그 충격에 정신을 사로잡힐 때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이란 게…… 우리한테 저 미지수 던전을 공략해 달라는 건가?”

이우연이 곧장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

조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반적으로 생긴 던전이 아닌 만큼, 솔직히 등급이 낮을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는 힘들지. 괜히 어중간한 수준의 공략대를 보냈다가 전멸시키고 던브를 터트리느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 생각은 어때요?”

나와 이우연은 잠시 서로의 눈길을 마주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나는 참가할게.”

조한율의 의견이 옳다.

어차피 위험한 던전이라면 이 사태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데다, 가장 강한 내가 가는 게 이치에 맞다.

게다가 어차피 서브 퀘스트를 통해 ‘운명의 씨앗’을 얻으려면, 대한민국 서버의 미공략 던전을 공략해야 하기도 하고.

“물론 나도 참가할 거야.”

하지만 이우연의 입장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단박에 답을 내놓았다.

솔직히 이우연은 이 며칠간 억울하게 시달린 데다, 조한율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한 만큼 이번에는 공략에 참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저 녀석은 던전 공략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이우연.”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던전 공략 못 하면 죽는 병에라도 걸린 거야?”

이우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농담이긴 했다만, 사실 이상하긴 했다.

업적치나 랭킹에 집착한다고 보기에는 현 랭킹 1위인 나에게 딱히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템 욕심은 있어 보이지만, 그것조차 효율적인 던전 공략에 필요하니까 그런다는 느낌이고.

그렇다면 도대체 던전 공략에 미쳐 있는 진짜 이유는 뭐란 말인가.

내 말에 이우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로 그런 병이 있어? 듣기만 해도 너어무 무서운데.”

“너 한 대 맞을래?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말을 빙빙 돌리는 걸 보니 제대로 털어놓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어쩌면 저쪽도 나처럼 솔직해지기 어려운, 왠지 모를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두 사람 다 던전 공략 참여에 동의하신 거죠?”

조한율의 물음에 나와 이우연은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

“새삼스럽네. 그래서, 언제 시작하지?”

“아직은 유예 기간이 있으니 충분히 휴식 기간을 두고 다시 모이죠. 3일 후 모여서 자세한 공략 회의를 하는 게 어때요?”

적절한 기간으로 보였다.

어쨌든 우리 세 사람 다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모두가 동의한 듯 보이자 조한율이 박수를 한 번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자, 그럼 일단 오늘은 이걸로 해산합시다. 두 분 다 수고 많으셨고, 3일 후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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