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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82화 (18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2화

강예나는 정말로 냉장고에서 주스라도 꺼내 오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비척거리는 꼴을 보면 그렇게 놔두기도 힘들었다.

양태원이 깜짝 놀라며 강예나를 소파에 도로 앉혔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누나는 그냥 좀 앉아 있어요.”

평소 같으면 됐다고 사양할 것을, 양태원이 그렇게 말하니 망설이면서도 결국 거실에 다시 주저앉는 게 역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우연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 벽에 기댄 채, 소파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뻗어 버린 강예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뭔데? 부상이라도 입었어? 포션 부작용이라도 온 건가?”

던전 공략을 마친 헌터들이 많이 겪곤 하는 현상이다.

포션은 시스템이 나타난 이후 헌터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아이템이기는 하되, 만능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포션은 사용자의 생명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에,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쓰면 자연히 대상자의 기력을 지나치게 소모시킨다.

응급 처치로는 쓸 수 있어도 근본적인 회복까지 도와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럼 더더욱 병원 가서 수액이라도 맞는 게 나을 텐데. 응?”

“…….”

노선을 바꾸어 일단 달래 보았지만 이번에는 심지어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를 당했다.

이제껏 강예나 상대로는 본인의 성격을 누르며 나름대로 유하게 대했었고, 실제로도 진짜 짜증이 난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번에는 살짝 경우가 달랐다.

그럼에도 솟구쳐 올라오는 짜증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은 건…….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군.’

평소에는 이렇게 불합리한 고집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니,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하면 기절시켜서라도 데려가는 게 맞겠지만…….’

보아하니 아주 심한 부상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니다.

이우연은 그렇게 판단했다. 아마 심한 몸살이거나, 혹은 컨디션 난조 정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저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짜증을 억누르는 중인 이우연이 고집스럽게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에 서 있는 동안에도 양태원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 혼낸 보람이 있는 건지, 부엌에서 용케 주스를 찾아와 거실 테이블에 올려 두기까지 했다.

“누나, 열은 재 봤어요? 밥은요?”

“아니, 됐어. 생각 없어.”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낫죠.”

심지어 양태원이 옆에서 살살 구슬리고 있는데도 대답이 없다.

그럼 정말 움직이지 않을 거란 뜻이다.

이우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제가…….”

“양태원.”

갑자기 이우연이 대화에 끼어들자 화들짝 놀란 양태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현관에 서 있던 이우연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던져 주었다.

양태원은 얼떨결에 지갑을 받아 들었다.

“어, 어?”

“이 앞에 마트 있으니까 좀 다녀와. 이 집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적당히.”

“어어…….”

“그리고 다녀오는 김에 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오고. 아직 점심 안 먹었잖아.”

점심 식사 약속을 깬 누구 덕분에, 그렇게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알아들었을 것이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강예나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양태원은 우물쭈물했다.

“그건 그런데…….”

“빨리 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지갑을 받아 든 채 한동안 강예나와 이우연을 번갈아 바라보던 양태원은, 결국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둘 사이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난 몰라……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현관에서 이우연을 스쳐 지나가며 양태원이 조용히 속삭였다.

“싸우지 마. 알았지?”

이우연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후에야 강예나가 눈을 감은 채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하다니까. 그런데 정말로 몸이 안 좋았어.”

“내가 겨우 그런 걸로 화를 내겠어?”

물론 다른 사람 상대라면 화를 냈겠지만, 어쨌든 지금 짜증이 난 건 그 이유가 아니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랬어? 병원을 안 가겠다는 이유가 뭔데?”

이제껏 이우연이 강예나라는 사람에게 관대했던 건, 자신에게 굉장히 도움이 되어서다.

도움이 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 사람이 엄청 합리적이며, 전투에서는 그 누구보다 믿을 수 있고, 자신보다 강하기까지 하다.

던전 공략 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합리적이고 동등한 위치의 파트너.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이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며 비합리적으로 구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현재 이상할 정도로 화가 난 이유라고, 이우연은 스스로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다.

강예나는 여전히 눈도 뜨지 않고 대답했다.

“그야 별거 아니니까. 며칠간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좀 나쁜 것뿐이야.”

“잠을 못 잤다고?”

“그래,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한숨 자면 나을 텐데 굳이 먼 병원까지 가는 거 싫어.”

그 말을 듣고 보니 눈 밑에 내려온 다크서클이 눈에 띄었다.

이우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눈치를 보아하니, 이틀 전 공략이 끝난 시점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듯했다.

‘멘탈 문제라도 있는 건가?’

물론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이 잦은 헌터들에게 악몽이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친구이기는 했다.

하지만 던전 안에서 예상치 못하게 S급 몬스터를 만났을 때조차 무덤덤하게 제 할 일을 하던 강예나가, 대체 무슨 문제를 겪고 있길래 잠도 자지 못할 지경이 된 걸까?

“걱정할 필요 없어. 내일 공략 회의 때까지 회복할 수 있으니까. 오후 3시였지?”

분명히 해 두자면, 누가 보아도 저렇게 장담할 정도로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일 공략 회의에 모이는 면면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랬다.

“공략 회의에 다른 헌터들도 오는 건 들었지? 조한율이 연락했다던데.”

조한율이 강예나와 이우연을 불러서 미리 설명했던, 그 예측 불가한 던전 공략 회의가 내일 열린다.

그리고 그 회의에는 여러 소속의 다른 헌터들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예측 가능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 보니 최대한 다양한 클래스의 헌터를 공략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어서다.

즉, ‘방랑하는 구도자’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녀석들이 열 일 제쳐 놓고 올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현재 입장이 미묘해진 김성연 길드장을 포함해서.

그런 자리에, 그리고 현재 여러모로 역학 관계가 복잡한 상황에서 강예나가 이렇게 바짝 말린 미역 같은 상태로 나타나서야 본인의 입장만 불리해질 뿐이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강예나의 상태를 좀 체크해 볼 겸 충고도 해 줄 참이었는데, 정작 본인이 이런 시들한 꼴이라니.

강예나가 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 알아. 바짝 긴장하고 오라던데.”

“그런데 이럴 거야?”

“…….”

강예나는 대답이 없었다. 더불어 여전히 병원에 가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설마 제 상황을 모르고 저러는 거면 그냥 알려 주고 설득을 하면 될 일인데, 알고서도 저러는 걸 보니 더 어이가 없다.

“…….”

하지만 결국, 잠시 더 버티다 이우연은 두 손 들고 항복했다.

그러니까 현관에서 버티는 걸 그만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뭐라도 먹을래?”

어차피 여기서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갈 게 아니라면 이대로 서 있어 봤자 다리만 아플 뿐이었다. 어딜 봐도 본인 손해였다.

아까 양태원이 물어본 말이 스쳐 지나가듯 떠올랐다.

“형은 누구 편 들 거야?”

‘……딱히 이쪽 편을 들 생각은 없다고.’

여기서 더 생각하지 말자. 자존심만 상할 뿐이다.

이우연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는 강예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곁에 앉아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나 볼까.

잠시 그런 궁금증이 일기는 했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여기서 더 알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이 모양인데, 더 깊이 발을 들여놓아서 어쩌겠다고.

그래서 자세한 사정을 캐묻는 대신,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냈다.

“저번부터 궁금했는데.”

“…….”

“양태원이랑 무슨 사이야?”

그렇게 묻자 시래기처럼 소파 위에 널려 있었던 강예나가 눈을 번쩍 떴다.

아마 상당히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뭐라고?”

그리고 더불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강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그렇게까지 노려볼 일인가?

“무슨 사이냐니? 지금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야?”

“말 그대로인데. 왜 양태원만 그렇게 챙겨? 딱히 오래 안 사이도 아니잖아.”

제주도에서 백록담 던전도 사실상 혼자 공략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딱히 엮일 일도 없었을 텐데, 아무리 약자한테 무른 성격이라고 해도 양태원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정도가 과했다.

“아니면, 이것도 내가 알면 안 될 일인가?”

의도치 않게 약간 비뚤어진 투로 말하긴 했지만…… 뭐,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조금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고.

“……그렇게 티가 나?”

“응, 엄청.”

티를 낸 일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꼽자면 두 손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게 물으면서도 이우연은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피차 서로 개인적인 사정에 관심을 둘 만한 관계는 아니라는 건 이미 확실히 해 뒀으니까.

그냥 좀 심술이 나서 물어본 것일 뿐이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려던 때였다.

“그냥…… 태원이는…….”

의외로 대답이 돌아왔다.

강예나는 이제 눈을 뜬 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가까이 시선이 느껴질 텐데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걔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좀 있어. 그래서 그래.”

“누구?”

“그냥, 어쩌다 알게 된 다섯 살 꼬맹이.”

그렇게 말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마 기억 속의 모습을 떠올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천장을 노려보는 눈이 어딘가 공허했다.

“그래서 물러지나 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까 계속 조마조마한 걸 보니.”

그 목소리에서는 희미한 후회의 기색이 읽혔다.

아마 일상에서 만난 평범한 아이는 아닐 것이라고 이우연은 짐작했다.

사실 시스템이 나타난 이후, 이 한국에서 저런 씁쓸한 후회나 실패의 기억 하나 남기지 않고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우연도 그런 기억이 있었다.

5년 전, 시스템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일이다.

우연히 들렀던 일산 호수 공원에서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같이 휘말린 사람들과 협력해 모두 살아 나가자고 다짐했었지만…… 결국 공략에 성공하기는커녕, 얻어걸린 히든 클리어 조건을 달성해 도망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이 이 대한민국 기준 최초의 SS급 던전이며, 이우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략에 실패한 던전이기도 했다.

이성적으로는 초보가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던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쓰디쓰게만 느껴지는 실패였다.

심지어 아무리 그 당시를 복기하려고 해도 기억이 영 희미한 걸 보면, 그 유일한 실패가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했다.

“사실 이러면 안 되는데.”

잠시 떠올랐던 상념은 강예나의 목소리에 뚝 끊어졌다.

“내가 계속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지?”

이우연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물음이기라기보다는 본인에게 되뇌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옳은 말이기도 했다.

“그래, 당신 눈에야 약해 보이겠지만 양태원 쟤도 나름대로 강한 거 알지? 청동검까지 넘겨줬잖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얼마 전까지 미성년자였던지라 어지간한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못해 랭킹 순위권에 오르지 못했을 뿐, 양태원은 이미 한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헌터 중 하나였다.

적어도 30위권인 백사현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도 뭉개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강예나와 이우연을 포함한 여러 랭커들이 한국의 헌터 1세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지만, 곧 양태원도 그 주축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 나도 알아.”

무언가 반론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강예나는 순순히 긍정했다.

이번에도 뜻밖이었다.

이우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뭐야. 양태원이 물가에 내놓은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보인다고?”

그래서 무슨 사이냐고 물었을 때 불쾌감부터 느낀 모양이다.

‘난 또.’

정말로 그냥 다섯 살짜리 어린애를 보호하듯이 구는 것일 줄이야.

“걔가 어딜 봐서…….”

그렇게 귀엽냐, 라고 물으려던 이우연은 관두었다.

사람 취향이야 다 다른 법이지.

물론 자신은 키도 훌쩍 크고, 귀에 피어싱을 몇 개씩 한 형광 분홍 머리칼의 청소년에게서 귀여움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만.

“……본인은 좋아할 것 같네. 누나, 누나 하면서 따라다니는 걸 보면.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아서 그런지 애가 은근히 정에 굶주렸거든.”

그 말을 들은 강예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거 알면 좀 잘해 주든가.”

“어떻게 여기서 더 잘해 줘? 선배로서 해 줄 건 다 해 주고 있다고 보는데.”

서울에 오면 밥 먹여 줘, 재워 줘, 위험하면 모른 척하지는 않고, 적당한 던전이 있으면 경험 쌓으라고 불러 주기까지.

이우연이 하나하나 꼽자 강예나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들으니까 진짜 잘해 주는 것 같네. 아무래도 내가 아파서 제정신이 아닌가 봐.”

“오, 드디어 아프다는 걸 인정했네. 병원 갈래?”

“싫어.”

그리고 긴 한숨과 함께,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들리는 것은 강예나의 규칙적인 숨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강예나가 입을 열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드물게도 정말 약한 목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약한 일면이 있을 거라고는, 그리고 자신 앞에서 드러내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놀랐다.

“피곤해 미치겠는데 잠에 들면 악몽을 꿔. 신경이 미친 듯이 곤두서 있다고.”

그렇게 내뱉는 강예나의 눈동자는 시퍼런 날처럼 날카로웠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적을 응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런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있기 싫어. 그래서 안 가는 거야.”

“뭐?”

“너도 알잖아. 일반인들이 무의식중에 헌터 무서워하는 거.”

그랬다. 일반인들은 본능적으로 헌터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헌터의 능력치가 높을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생명체로서 당연한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의식하면 그 위압감을 어느 정도 죽일 수는 있지만…… 강예나의 뜻은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다는 뜻일 터다.

“안 그래도 머리가 아파서 죽겠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겁먹는 꼴까지 보면 더 아플 것 같다고. 그러느니 그냥 혼자 있는 게 낫지.”

이우연은 그렇게 말하는 강예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말이야 사납게 하지만 즉, 사람들을 겁주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훨씬 어이없는 이유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우연은 딱히 놀라지도 않고 납득했다.

강예나 성격은 겪을 만큼 겪었으니까.

‘뭐, 맞는 말이기는 하네.’

헌터 전용 병원에는 그런 위압감에 익숙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지만…… 익숙해져 봤자다.

이 시퍼런 시선 앞에서는 웬만한 능력치를 가진 헌터도 그 즉시 도망갈 터이니 일반인이라면…… 말을 말자.

이우연은 강예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갈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이우연은 이미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여기에 더 머물러 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차라리 빨리 사라져 주는 게 강예나가 편히 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우연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막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할 찰나, 강예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응?”

예상치 못한 말이 돌아왔다.

눈치 빠른 이우연으로서는 드물게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혼자 있고 싶다는 거 아니야? 내가 여기 있는 게 싫을 테니까…….”

“무슨 소리야?”

정말로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강예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코웃음을 쳤다.

“싫으면 애초에 문도 안 열어 줬지.”

시선이 마주쳤지만, 강예나의 눈에서 거짓이나 가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는 괜찮아. 나한테 겁먹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솔직히 혼자 있기도 싫고.”

“…….”

“그러니까 맨날 하는 그 쓸데없는 이야기나 좀 해 봐. 지루해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저게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

이우연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말 좀 해 보라니까?”

저 말을 굳이 과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저 말은, 자신에게 겁먹지 않고 쓸데없이 지루한 말이나 하는 녀석이니 괜찮다는 뜻이 아닌가.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후자는 욕이다.

아마 깊은 뜻은 없을 것이다. 그냥 싫지는 않다, 그 정도겠지.

“이우연?”

“…….”

정말이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건 딱 질색이다.

또 아무리 던전 공략에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지만 매번 자신이 굽히는 모양새가 되니 솔직히 말해 자존심도 상했고, 본인만 저쪽을 자꾸 신경 쓰는 모양이 꼴사납다고도 생각했는데…….

그런데…….

‘괜히 조한율까지 넘어간 게 아니라니까.’

전혀 곁을 내주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 게.

이우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진짜 별로다…….”

“갑자기 왜 시비야?”

“몰라. 왠지 그냥 그러고 싶네.”

여전히 마른 미역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던 강예나가 얼굴을 구겼다. 아마 힘이 있었다면 주먹으로 쥐어박혔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그럴 기력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됐다. 내가 미쳤지. 당장 내 집에서 나가. 그리고 돌아오지 마.”

“말이 너무 심하네. 그래서 강예나, 무슨 죽 좋아해? 양태원한테 전복이라도 사 오라고 할까?”

“나 전복 싫어해. 그리고 당근도.”

그 말을 들은 이우연은 곧장 양태원에게 전복과 당근을 한 상자씩 사 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그나마 부릴 수 있는 작은 심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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