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84화 (185/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4화

그렇게 드디어 제대로 된 회의가 시작되나 싶었는데…….

나는 눈을 껌벅였다.

“그럼 참여 인원은 이렇게 확정된 걸로 하지. 이의 있나? 음, ……없나 보군. 그럼 남은 건…… 공략 일정인가. 이선 헌터?”

“아, 예, 예!”

나와 마찬가지로 반쯤 멍하니 회의를 흘려듣고 있었던 듯한 이선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헛기침을 했다.

저번에 김숙자 교수가 말하길 이선 헌터가 본인의 제자였다던데, 아무래도 그때 단련된 사회생활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던전이 터지기 전에는 대학원생이었고, 지금은 헌터 공무원인 건가.

제대로 잠이나 자는 건지 모르겠다.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이선 헌터가 비실비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리 개인별로 공략 가능한 날짜를 받아 두었는데, 이번 주 금요일과 일요일 중 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참여 의사를 밝힌 헌터 중 일정이 변경된 분 계십니까?”

“…….”

“그럼 없는 걸로 알고 공략 날짜는 거수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선호하는 날짜에 손을 들어 주세요.”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렇게 공략 인원부터 날짜까지, 모든 게 정해진 것은 김숙자 교수가 나선 후 겨우 3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건…… 뭐지?’

물론 이 회의에서 정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운영자조차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던전인 터라, 사실상 공략 인원 라인업과 돌입 일자 정도?

조한율이 운영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타 미공략 던전과 다를 바 없을 테니 더더욱 그러할 테고.

그저 해당 던전 위치가 평소 중소 길드들이 공략하던 던전 근처인지라 약간의 마찰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전까지 개판이었던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스무스하게 돌아갔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중소 길드 헌터들은 물론이고, 본인이 이번 공략을 이끌겠다며 나섰던 김성연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누구의 눈치를 보는지는 명백했다.

내가 황당하게 테이블에 앉은 면면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한율 : 그러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조한율 : 교수님이 오시면 다 이렇다니까.

조한율 : 만약 지금 정해진 라인업에 불만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ㅇㅇ 제가 대신 이의 신청할게요.

방랑하는 구도자 : 그런 건 없어

조한율 :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심?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이 회의에 참여한 헌터들의 라인업은 지난 마석 던전 때와 별다를 바 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저 김숙자 교수가 참여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김성연은 입을 떼지 않고, 김성연 영향권 아래에 있는 헌터들 도한 아무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정부 소속 헌터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방랑하는 구도자 : 다들 왜 이렇게 교수님 말을 잘 듣는 거지?

조한율 : 그거야 교수님이니까.

방랑하는 구도자 : ?

조한율 : 한국인들이 원래 강의 시간에 발표 잘 못하잖아요.

방랑하는 구도자 : 뭐라는 거야?

조한율 : ㅎㅎ 아주 농담만은 아닌데…… 어쨌든 카리스마 있는 분이니까요. 아니, 강의력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다른 질문이 있는 헌터들은 없나?”

그건 그랬다.

회의 테이블 상석에서 일어난 채로 헌터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는 김숙자 교수는 누가 봐도 ‘윗사람’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류세연조차 애매하게 시선을 피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야 조한율의 말마따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수업 시간에 교사의 눈길을 피하는 학생에 더 가까운 것 같기는 하다만.

방랑하는 구도자 : 김성연 길드장 쪽이 더 영향력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럴 게, 김숙자 교수는 내가 알기로…… 정확히 따지자면 정부 소속이 아니었다. 그저 정부 고문을 맡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길드장을 맡아 헌터 협회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성연과는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김숙자 교수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었다.

조한율 : 두 분은 입지가 좀 다르죠. 솔직히 김성연 길드장이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 해요. 어떻게 보면 헌터 일을 제대로 된 사업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김숙자 교수님은…… 헌터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느낌이라서요.

방랑하는 구도자 : 정신적 지주?

조한율 : 네, 진짜 공명심 하나로 이 5년간 앞장섰던 분인지라…… 까놓고 말해서 헌터 일로 돈을 버는 분도 아니에요. 최소한의 비용 빼고는 다 기부하실걸요?

조한율 : 아, 던전 내에서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 나이 따지다가 죽을 일 있냐면서, 공략 중에는 무조건 헌터로 호칭 통일하고 상호 존대하자고 한 것도 교수님이 주도한 거예요. 이런 초반의 행보 하나하나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그렇군.

나는 납득했다.

김성연 쪽이 철저하게 실리를 챙긴다면, 김숙자 교수 쪽은 도덕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간의 눈이나 체면을 신경 쓰는 이상 이런 회의에서의 주도권은 김숙자 교수가 가져갈 수밖에.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헌터들이 가져갈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이 주가 되는 회의였으니 더더욱.

‘물론 실제로 이권 다툼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문득 김성연 길드장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조한율의 말을 들어서인지, 김숙자 교수가 주도하는 이 분위기가 불편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나는 김숙자 교수를 흘끗 바라보았다.

마법사 클래스인데도 기감이 예민한 건지, 당장에 눈길이 마주쳤지만 김숙자는 태연하게 다른 헌터들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지.”

하여간, 김숙자 교수도 이번 공략에 참여한다면 아무래도 그 전에 한 번쯤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단 따라붙어 볼까.’

어차피 김숙자 교수 쪽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

자리에서 일어난 김숙자 교수가 빠르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김숙자를 향해 다들 허겁지겁 인사를 건네는 와중에, 나도 따라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김성연, 류세연 등의 시선이 와닿았다.

아무래도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헌터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더.

여전히 한가롭게 자리에 앉아서 빈둥대고 있던 이우연이 팔을 잡았다.

“어디 가? 나는?”

이 회의장에 올 때 어차피 우리 집에 와 있었던 거, 이우연을 차 셔틀로 부려 먹었던지라 당연히 같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우연이 내게 친근하게 굴어서인지, 김성연의 눈길이 어쩐지 한층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김성연 길드장 입장에서야 본인 길드의 간판이, 자기 배를 걷어차기까지 한 건방진 헌터에게 간도 쓸개도 빼 줄 것처럼 굴고 있으니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날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던 류세연은 반대로, 황당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둥글어져 있었다.

약간 이우연을 대하는 태원이 같은 반응이다.

“같이 가야지.”

그리고 그 불편한 심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으면서도 제 할 말이나 하는 걸 보니, 이우연은 그딴 건 신경 쓰지도 않는 모양이다.

물론 나도 이우연과 함께 돌아가는 게 편하기는 하다만……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잠깐 교수님하고 할 말이 있어서. 바쁘면 먼저 가.”

“흠, 그래? 그럼 기다리지 뭐.”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이 테이블 저쪽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있는 조한율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어차피 나도 저거랑 할 이야기가 좀 있으니까. 끝나면 전화해.”

‘저거’라는 말을 들은 모양인지 그렇지 않아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조한율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확 짜증이 치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조한율 : 아, 저게 진짜 죽으려고;;

“……이야기만 하는 거 확실해?”

지금 서로 바라보는 눈길만 보면 칼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거의 전투 중인 것 같은데.

그렇게 묻자 이우연이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지. 아, 그리고 교수님이랑 이야기할 거면 옥상으로 가면 될 거야.”

“옥상?”

그냥 기척을 밟아 쫓아갈 생각이었던 내게 고마운 팁이긴 했다만, 그 확신에 찬 어조가 의아하기는 했다.

“왜 하필 옥상이야?”

“이 건물 흡연 구역이 옥상 하늘 정원이라서.”

“…….”

어쩐지 김숙자 교수가 남들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자리를 빨리 뜬다, 싶더니 납득 가는 사유였다.

*   *   *

그리고 나는 이우연의 조언을 따라 곧장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연, 옥상 문을 열자마자 한구석, 길게 늘어진 가죽 코트 자락이 보였다.

김숙자 교수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이거 돗댄데.”

“제가 언제 달라고 했습니까?”

“그냥 감이야. 아닌가?”

뒤도 안 돌아보고 있는데 귀신같군.

솔직히 이틀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두통과 악몽 때문에라도 한 대 빌리고 싶기는 했지만, 아리아드네의 등짝 내려치기를 떠올리며 참았다.

“괜찮습니다. 끊은 지 오래되어서.”

“오, 금연이라니. 대단한데.”

우습게도 내가 랭킹 1위의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보다도 감탄한 것 같다.

김숙자 교수가 한 번 더 길게 필터를 빨아들였는지 희뿌연 연기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는 옥상 문에 기댄 채 조금 멀리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김숙자 교수가 천천히 담배를 태우며 말했다.

“사실 나도 금연해야 하는데. 건강검진 결과가 별로 안 좋거든. 검진 갈 때마다 혼나기 일쑤야.”

“그럼 끊어야죠.”

“그게 말이 쉽지. 처음부터 시작을 말았어야 했어.”

“그건 동감이네요.”

“은퇴하면 꼭 끊을 생각이야.”

“은퇴는 언제 하실 건가요? 정년퇴직?”

“정년은 무슨. 배움엔 끝이 없으니 죽어야 끝나는 거지.”

순간 멋있는 말인가 했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안 끊겠다는 얘기잖아, 저거.

발로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끄고 휴대용 재떨이 케이스에 넣은 다음에야 김숙자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오랜만이네, 강예나 헌터.”

가면을 벗은 얼굴에 김숙자의 시선이 와닿았다.

마주친 눈매가 사람의 속을 파고들 정도로 날카로워서, 슬슬 더워지고 있는 공기 속에서도 유독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방금 전 회의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항이라도 있었나?”

“아뇨, 그런 건 딱히.”

“그래? 그건 또 의외군. 사실 김성연 헌터 참여 관련으로 이의가 있을 줄 알았어. 자네 입장이 제일 난처해진 거니 말이야.”

무슨 소리지?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요?”

“그래, 저번 던전의 일은 나도 들었네. 물론 내가 중재할 테지만…… 던전 공략을 함께하는 건 역시 불편할 테니까. 아닌가?”

역시, 왜 갑자기 직접 나서나 했더니.

김숙자 교수는 나와 김성연 길드장 간에 일어날지 모르는 불상사 때문에 던전 공략을 자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략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겠죠.”

어쨌든 나는 여전히 시스템이 지정하는 4개의 던전을 더 공략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번 던전도 아직 불확실하긴 하지만, 운영자조차 그 정체를 모르는 미지수의 던전인 만큼, 시스템의 서브 퀘스트를 충족시킬 가능성도 높았다.

“다만 시비를 걸어오면 받아칠 겁니다. 그게 아니라도 자꾸 거슬리면 제대로 붙을 거고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김성연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혹시 던전 내에서 괜히 나에게 적개심을 불태우다 저번처럼 방해하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거슬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그런 짓을 장난으로 넘겨줄 여유가 전혀 없고.

만일 저번처럼 뻘짓을 하다가 걸리면, 이번엔 다시는 검을 못 쓰게 만들어 줄 작정이다.

김숙자 교수가 내 말을 듣더니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곧 평온해졌다.

“이런 것도 닮아 가나? 이우연 헌터 같은 소리를 하는군. 하여간 자네 의사는 알았네. 이후에 김성연 헌터에게도 전달해 두지.”

“네, 감사합니다.”

사실상 이 말을 하러 온 것이나 다름없다.

김성연 헌터에게 경고를 해 두고 싶은데, 내 말을 중립적인 입장으로 전해 줄 메신저가 교수님을 제외하면 딱히 없어서.

물론 이우연이 있긴 하지만 대놓고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 보니 오히려 역효과일 것 같았고.

내 말을 들은 김숙자 교수는 콧잔등에 미끄러진 안경을 치켜 올렸다.

“그나저나, 지난번 내 충고와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고 있군.”

“충고요?”

그렇게 반사적으로 물었다가, 나는 깨달았다.

저번에 만났을 때 김숙자 교수는 어디에도 소속될 의사가 없는 내게 정부, 그리고 여러 길드의 간을 보며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협력을 받아 내는 게 유리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성연 헌터와 완전히 척을 졌고, 자연스럽게 영원 길드 소속 헌터들과는 틀어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그중 최강의 전력일 이우연이 내 옆에 달라붙어 있긴 하다만.

김숙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내 충고를 다 따를 필요는 없지. 하기야 지금 자네를 보니 내가 판단 착오를 했던 것 같아. 길드들이 자네를 영입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자네가 길드를 세울 만한 입지인 거지. 애초에 어디 적당히 묻어갈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거야.”

“……그거 칭찬인가요?”

“칭찬이긴 하지만 자네 본인에게는 그리 좋은 일도 아니야. 그렇게 눈에 띄니 앞으로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테니까.”

“귀찮은 일이라면…….”

“이제 슬슬 김성연 길드장도 자네 신상 정보를 알아냈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완전히 척을 지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공개적으로 제 신상을 까발리겠죠.”

직접 드러내 놓고는 아니더라도, 인터넷 어딘가에 흘리는 식으로 하면 충분했다.

지난번에는 의도치 않게 생방송으로 ‘방랑하는 구도자’의 공략 현장이 방송되기까지 했지만…… 아직 강예나라는 이름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강예나의 신상이 알려진다는 것은 곧 내가 지난 5년간 병원에 누워 있었다는 정보도 퍼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거야 김숙자 교수에게 했듯, 내가 실제로는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고 해명할 수 있는 문제기는 했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랭킹에 대한 구설수가 많아질 거란 건 확실했다.

쉽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우스운 일이었다. 애초에 이런 랭킹 1위 따위를 누가 원했다고.

게다가, 그 외에도……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흔적이 낱낱이 까발려지겠지.

딱히 밝혀지면 안 될 과거 따위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김숙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일단…… 김성연 헌터를 구슬릴 생각이 없다면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미리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나을 테고. 신상이 알려지면 주변 사람들도 피해를 볼 테니까.”

나는 침묵했다.

가족이라…….

하기야, 그렇겠지.

내 신상이 공개된다는 건 즉 내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한국에 있는 내 가족의 신상도 노출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랭킹 1위 헌터’와 연관이 있다는 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을 상황일 테고,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사실 김숙자 교수의 ‘가족’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모님의 얼굴이 아니라, 타르토스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내 기준으로 타르토스에서 지낸 기간이 10년, 한국에서 지낼 때도 부모님과 떨어져 산 게 5년 정도.

그러니까 거의 15년 정도 얼굴을 못 본 셈이다.

마치 존재조차 잊고 있던 해묵은 흉터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김숙자 교수님의 말이 옳았다.

나야 타르토스에 돌아가면 그만이라 한국의 언론 따위가 무어라 떠들어 대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내 부모님은 한국에서 살고 있을 테니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적어도, 도의적으로 미리 경고를 해 두어야 할 문제라는 건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원했던 5년간 병원비는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냈을까? 이번에 연락이 닿는다면 그 김에 병원비도 갚아 버려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찜찜했던 차였으니까.

딱 그 정도의 기분으로, 나는 김숙자 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네, 그러죠. 충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던전 공략 전까지 이틀.

아무래도 해야 할 일이 생긴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