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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85화 (18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5화

그래서, 드디어 가족에게 연락하기로 마음먹은 건 좋은데…… 문제는 핸드폰 번호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핸드폰부터 사긴 했지만 이전 전화번호부 따위는 다 날아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건 곧장 해결되었다.

내가 5년간 입원해 있던 병원에 연락하니, 곧장 보호자의 번호를 알려 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보호자에게 계속해서 연락이 왔다는 말을 덧붙이며.

정말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타르토스는 연락할 마음을 먹어 봤자 몇 주에서 몇 달은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는 전화 한 통이면 끝이라니.

어쨌거나 편리한 한국 세상 덕에 일사천리로 연락이 되어 금방 약속을 잡기는 잡았는데…….

“나가기 싫다…….”

나는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가 봐도 나가기 싫어서 죽상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열이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판에…… 무거운 짐이 하나 더해진 느낌이랄까.

‘당장 내일이 공략인데.’

이우연에게는 당연히 회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만, 솔직히 이래서야 제대로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부모님과 만나는 걸 공략 후로 미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거야말로 공략 내내 마음이 쓰일 것 같고, 차라리 빨리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곧장 날짜를 잡았다.

사실 날짜고 뭐고, 부모님 쪽도 갑자기 병원에서 혼자 퇴원했던 내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었던 모양이라, 연락하자마자 깜짝 놀라며 대체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묻기는 했는데…….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었다.

딱히 부모님에 관해서 아주 나쁜 기억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기억이 흐릿하다고 하는 게 맞다.

물론 당시에 방황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10살 즈음인가, 부모님의 이혼이 결정되었을 때는 그 나이에 혼자 한강으로 가출해서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다가 누가 미아로 신고해서 겨우 집에 들어갔던 적도 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방황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두 사람 다 이혼 후 각자 새 가정을 꾸려서 살고 있다 보니 더더욱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고 느낀 것도 있었다.

중학교 때는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고등학교 때는 입시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혼자 살았고.

그때만 해도 입시가 끝나고 미성년자 신분에서 벗어나면 그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 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우습게도 곧장 타르토스로 떨어졌다.

그쯤 되면 한국의 가정 문제고 뭐고, 당장 살아남는 게 급선무였다.

당장 먹을 게 없어서 며칠을 굶고, 살아남기 위해 검을 잡고 몬스터를 향해 휘두르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고민 따윈 사치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타르토스에서 친구들을 만난 이후에는 한국보다 이쪽이 훨씬 더 내가 있을 자리라고 느꼈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십 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넘은 지금은 더더욱.

그래도 어떤 상처든 살아 있는 이상 결국엔 무뎌지는 법이다.

예전에는 사무치게 힘들었더라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과거의 흔적으로 취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없었던 것처럼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굳이 헤집지 않는다면 무시하고 살 수 있게.

그나저나, 이렇게 새삼 떠올려 보니…….

‘거지같네.’

그때는 자존심이었던 건지 뭔지, 나 혼자서도 나름대로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돌아보니 그랬다.

한국 호적상으로는 스물다섯이지만, 내 정신 연령은 이미 서른을 넘겼단 말이다.

따져 보면 이혼했던 당시 부모님과 내 연령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겨우 열 살 먹은 어린애를 그렇게 방치해 두다니.

상황이 불가피했다면 모를까, 이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그야 경제적으로는 충분히 지원을 받긴 했지만 어린애라는 게 어디 혼자 크는 거냐고.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거울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진정하자. 진정.’

이제 다 잊은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긴장되는 걸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러다가 부모님을 만나면 상부터 뒤집어엎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헌터업과 관계없는 일반인으로 살고 있는 듯하니, 이렇게 은은히 짜증이 난 상태로 나갔다간 겁을 먹게 하기 십상일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스스로를 가라앉혔다.

어쨌거나, 얼른 해치우는 게 나았다. 할 말만 하고 돌아와서 내일 공략을 위해서라도 푹 쉬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는데…….

쿵!

“아야.”

막 문 건너편에서 벨을 누르려던 이우연의 이마에 문이 부딪혔다.

나는 주저앉은 이우연을 멀뚱하게 바라보았다.

“뭐 하냐?”

“아니, 괜찮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야?”

“누가 여기 서 있으래?”

“와, 진짜 나빴다. 아침에 답장이 없길래 혹시 또 쓰러진 건가 싶어서 보러 와 준 건데.”

그러고 보니 아침에 서로 상태를 체크할 겸 잠깐 연락했었지. 그 이후로 나갈 준비를 하느라 핸드폰을 보지 않았었다.

“혹시 지금 이마에 혹 나지 않았어? 진짜 아파.”

웃기고 있네.

별로 아프지도 않을 텐데 바닥에 주저앉아서 낑낑대는 척을 하길래, 적당히 한 번 더 쥐어박아 준 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우연이 얼른 다가와 옆에 섰다.

“그런데 어디 가? 드디어 병원? 잘 생각했어.”

“그게 아니라, 약속이 좀 있어서. 그런데 오자마자 바로 가게? 이 앞에 잠깐 나갔다 오는 거니까 그냥 집에 있든가.”

“아니, 집주인도 없는데 그건 좀…… 그나저나 약속이라고? 그런데 그런 얼굴로 나가?”

“내 얼굴이 어떤데.”

“죽상이야. 별로 내키지 않는 약속인가 봐?”

하여간 눈치 빠른 자식.

이우연은 의아한 눈치로 물었다.

“그렇게 싫은 약속이면 그냥 취소를 해. 뭐 하러 나가? 그것도 공략 전날에.”

“나도 나가기 싫은데, 취소할 수가 없는 약속이라서.”

“그럼 내가 같이 가 줄까?”

“어?”

생각지도 못 한 말에 나는 이우연을 돌아보았다.

마침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이우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타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오늘은 공략 스케줄도 없고 한가하니까 필요하면 말해. 그야 내가 워낙 유명인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잠깐만. 너 지금 내가 어디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동창회?”

듣고 보니 꽤 상식적인 추측이었다. 하기야 평소와 다르게 옷도 차려입었으니.

이우연이 잘난 척을 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어디에 데리고 나가기에는 나만 한 게 없지.”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거야?”

“맞잖아. 맨날 구박만 하는데, 어디 이런 얼굴이 흔한 줄 알아?”

“웃기고 있네…….”

얼굴을 들이밀며 하는 쓸데없는 헛소리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다가, 나는 생각에 잠겼다.

“……괜찮나?”

“뭐가. 내 얼굴이?”

아니, 얼굴이 아니라.

정말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차피 이제 와서 부모님과 만나 봤자 할 말도 없었다. 내 사정을 구태여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어쩌다 보니 랭킹 1위가 되었고, 내 신상이 까발려질 것 같으니 그 점은 미리 알아서 대비하시라는 것 정도만 말할 생각인데…… 그 이후로는 그래 봤자 어떻게 지냈냐, 헌터 일은 위험하니 그만두라는 말이나 들을 것 아닌가.

상상만 해도 위가 조여들 정도로 불편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친구…… 비슷한 거라도 데리고 나가면 이쪽으로 주의가 분산되지 않을까?

게다가 이래 보여도 나름 얼굴이 알려진 랭커이니, 부모님께 내가 랭킹 1위 헌터라는 걸 납득시키는 것도 쉬울 듯하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가 헌터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니까.

또 내가 기세를 억누르지 못하거나 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이 녀석이라면 눈치 빠르게 어떻게든 알아서 해 줄 테고.

적어도 이 녀석을 데려가면 일반인 사상자가 나올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금방 마음이 정해졌다.

“좋아, 같이 가자.”

“어? 진짜로?”

“그래.”

“그럼 빚 하나 진 걸로?”

“그런 셈 쳐.”

“진짜 나가기 싫은 자리인가 보네. 마침 차도 가져왔으니 잘됐다…….”

*   *   *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농담이나 하던 이우연은, 그로서는 아주 드물게도 긴장하고 있었다.

몬스터 공략을 할 때도 흐르지 않던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냥 가기 싫은 동창회나 억지로 가는 줄 알았더니 강예나가 자신을 데려온 자리라는 게…….

“진작 연락을 줬어야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병원에서 갑자기 퇴원했다길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설마 본인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였다니.

만나기 싫은 동창이나 만나는 가벼운 자리일 줄 알았던 이우연은 매우 당황했다.

또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리 그래도 다짜고짜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에 데려오는 건 진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며 농담을 걸 상황조차 아니었다.

“게다가 헌터라니? 대체 언제부터 그런 걸 한 거야?”

“그래, 너는 몸도 약한 애가.”

심지어 부모님 쪽은 강예나가 헌터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듯했다.

몸이 약해?

이우연은 슬쩍, 대답도 없이 부모님의 잔소리 폭격을 묵묵히 받아 내고 있는 강예나를 바라보았다.

‘의외네.’

몬스터를 상대로 가차 없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워낙 인상 깊어서 그런가, 몸이 약한 강예나는 별로 상상이 가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검을 잡고 있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데.

하기야 의외인 점은 그 밖에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니? 거처는?”

“……후.”

강예나가 한숨을 푹 쉬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그 한숨에, 건너편에 앉은 부모님이 언뜻 움찔하는 모습도.

하기야 그럴 법도 했다.

강예나의 부모님은 딸과는 다르게 완전히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일반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강한 헌터의 기세에 눌리기 마련이고. 그래서 강예나 본인도 병원조차 가기 싫어하던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강예나는 제대로 기세를 누르고 있지도 않았다. 은은하게 위압감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식당의 종업원만 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메뉴판만 놓자마자 줄행랑을 쳤을 정도다.

아무리 몸이 좋지 않아 컨트롤이 힘든 상태라고는 해도 여러모로 강예나다운 일은 아니었다.

‘일부러인지, 무의식중에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창회라는 예상은 틀렸지만 나오기 싫어하던 자리라는 건 맞는 듯했다. 강예나의 표정에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사실 지금 이우연이 자신의 기세로 은연중에 강예나의 위압감을 중화시키고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부모님 쪽은 기절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용도로 데려온 것 같긴 한데.’

어쩐지 흔쾌하게 데리고 나온다, 했다.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짚은 강예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간 연락 못 한 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안부나 묻자고 만나자고 한 건 아니고…… 진지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럴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우연은 잠시 놀랐다.

이제껏 강예나에게서 찾아보지 못한 예의 바른 태도였다.

나이가 엇비슷하다 싶으면 바로 반말부터 하고, 대충 부모뻘 나이인 김성연 길드장은 냅다 발로 차 버렸으면서.

물론 부모님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어색함에서 나오는 것이 더 커 보였다.

심지어 거처를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분명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투였다.

강예나의 단호한 말에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혹시…….”

그리고 어머니 쪽이 어색한 눈길로 강예나와 자신 쪽을 훑는 것을 보며, 이우연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말을 예상했다.

“두 사람…….”

“아뇨, 어머님. 그건 아닙니다.”

이우연은 헛기침을 하며 간신히 뒷말을 막았다.

가족이 만나는 자리에 끼어든 만큼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건 말하게 내버려 뒀다간 안 그래도 짜증이 난 강예나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건너편에 앉은 부모님이 눈길을 교환한다 싶더니, 이번에는 아버지 쪽이 물었다.

“그럼 그, 이쪽 분은 왜 이 자리에……?”

그거야말로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이우연은 상황을 묻는 눈길에 그답지 않게 할 말을 잃고 눈만 굴렸다.

‘그냥 가는 길에 중화제로 쓸 겸 잡아채 온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그걸 자신이 설명하기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이 상황 자체가 여러모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다행히도 강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얘는 헌터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예요. 이름은 이우연. 소개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죠? 아시다시피 랭킹 2위인 데다 유명하니까.”

친구라고 소개한 것에 감동해야 할지, 겨우 그거냐며 항의를 해야 할지, 혹은 이제야 소개를 한 것에 한소리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는지라 이우연도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예, 안녕하세요. 이우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예나 엄마 되는 사람이에요. 명함이 있는데 드려도 될지…….”

“아, 그럼 저도…….”

이우연이 부모님 두 명과 명함을 교환하는 동안, 강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우연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라 슬슬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감을 잡고 있었다.

‘두 분이 끼고 있는 결혼반지도 다르네.’

어느 정도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마도 저 두 사람은 이혼 후 각자 재혼한 상태인 모양이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의 딸인 강예나와는 교류가 끊긴 지 오래라 굳이 나오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헌터와 아는 사이라니…… 진짜 헌터가 된 거구나.”

유명하다, 라.

물론 이우연이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헌터이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 간 가장 화제를 끌었던 것은 역시 갑작스럽게 부상한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였다.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강예나의 부모님은 딸이 바로 그 유명한 랭킹 1위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그것만 보아도 강예나와 부모님의 거리감을 알 만했다.

“그래도 그렇지 헌터라니, 너무 위험한 일이야. 왜 그런 일을 시작한 거니? 한마디 상의라도 하지 않고서.”

“연락했으면 저한테 신경이라도 쓰셨겠어요?”

아마도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온 말인 듯했지만, 누가 들어도 가시가 돋친 말투.

심지어 그렇게 말한 강예나 본인조차 놀란 얼굴이었다.

그 말에 자리의 분위기가 확 경직되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아버지 쪽도 고개를 떨궜다.

“그, 예나야. 그간 섭섭했다면 우리가 정말 미안…….”

“……아뇨, 그런 말 들으려고 나온 게 아닌데.”

강예나가 팔짱을 낀 채 한 번 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하려고 만나자고 한 건 아니에요. 두 분 다 할 만큼은 하셨으니까. 아, 병원비는 감사합니다. 계좌 알려 주시면 바로 갚을게요.”

“예나야, 우린 부모로서 당연한 일을 한 거야. 무슨 병원비를 갚아…….”

“하여튼, 할 말이 있어요. 아마 제가 두 분께 폐를 좀 끼칠 것 같아서요.”

“뭐?”

“곧 언론에 제가 랭킹 1위의 헌터라는 게 밝혀질 것 같거든요.”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이었다.

대강 강예나의 사정을 알고 있던 이우연조차 놀랐을 정도니, 아무런 기본 정보도 모르고 있던 부모님은 더했다.

단번에 새파랗게 질려 버린 부모님의 얼굴에 비해 강예나의 어투는 담담했다.

“그렇게 되면 두 분 신상에도 피해가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심지어 강예나는 그렇게 폭탄을 떨어트리고 나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게 끝이에요.”

“자, 잠깐만. 예나야! 랭킹 1위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어떻게 그런…….”

“그리고…… 이걸로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 찬물을 끼얹는 마지막 말이었다.

강예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 굳어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일별했다.

SS급 몬스터 앞에서 죽기 직전까지 몰려도 당당하던 강예나의 시선이 일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나오는 말만큼은 단호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말한 강예나가 이우연의 팔을 잡아끌었다.

따라서 굳어 있던 이우연은 흠칫 놀랐다.

“야, 일어나.”

“어? 어, 그래…….”

인사조차 제대로 할 겨를도 없이 강예나가 빠르게 이우연을 잡아끌며 자리에서 걸어 나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누군가 쫓아 나오는 기색은 없었다.

그렇게 가게를 벗어나 주차장으로 갈 때까지 강예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장 차로 직행하나 싶더니, 이번에는 또 갑자기 멈춰 섰다.

팔을 잡혀 질질 끌려가던 이우연은 하마터면 그 등에 부딪힐 뻔했다.

“아, X발.”

고개를 푹 숙인 강예나 입에서 낮은 욕설이 들렸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강예나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안 괜찮네.”

누가 봐도 그래 보였다.

이우연도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망한 것 같은데.’

모든 게 미지수인 던전 공략 하루 전.

공략대에서 가장 큰 전력인 강예나의 멘탈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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