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6화
Chapter 15. 도시의 괴물
조한율은 던전 앞에 설치된 간이 텐트에서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음료수를 마시며 홀로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물론 조한율이라는 거물이 등장한 만큼 정부 측 인사나 길드 쪽 간부들이 와서 인사를 하고 싶어 했지만 모두 적당한 핑계로 물린 상태였다.
오늘 공략이 예정되어 있는 일명 ‘미지수 던전’은 강원도 태화산 근처에 생성되었다.
어제 미리 이 근처에 와서 살펴본 결과, 던전 자체는 현재 안정화되어 있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운영자 권한으로도 상태를 살펴볼 수 없었다.
‘그래도 공략 불가능한 버그 상태는 아니야.’
얼마 전 이상한 운영자에게 한 대 얻어맞아 한국 서버가 난리가 났었을 때는 정말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때 일어난 오류는 거의 고쳤으니, 남아 있는 이 미지수 던전만 공략 후 데이터를 얻어 시스템에 추가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전혀 정보를 알 수 없어 문제기는 하지만…… 서버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을 대거 투입하는 데다, 무엇보다도 현재 조한율에게는 최강의 패가 있었다.
‘현재 예나 씨 능력치면…… S급 몬스터까지는 가볍게 상대할 텐데.’
마침 생각이 난 김에 조한율은 운영자 권한을 발휘해 강예나의 능력치를 열어보았다.
운영자 모드 : 특정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조회할 수 있습다.
플레이어명 : 방랑하는 구도자
LV.79
특성 : 관철하는 아귀
클래스 : 용사
체력 : 1490
근력 : 1085
민첩 : 965
마력 : 1050
스킬 : 멸혼의 불꽃 lv.7, 기사회생 lv.6, 불굴의 의지-on
‘다시 봐도 진짜 희귀한 케이스라니까.’
조한율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일반적인 검사 클래스가 아니라 히든 클래스인 용사를 연 것도 그렇지만, 타고난 특성과 스킬의 궁합도 좋을뿐더러…… 플레이어들이 대개 십여 가지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스킬 가짓수가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가 알짜배기였다.
솔직히 이 정도 스킬 구성이라면 숫자가 적은 게 밸런스상 맞기도 하고.
‘기사회생 스킬도 사기지만…… 멸혼의 불꽃 스킬은 진짜 저런 게 있어도 되나 싶은데.’
스킬이란 것도 결국 플레이어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발휘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강예나는 몬스터 상대는 물론 대인전에서도 최강의 패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발동 조건이 좀 까다로운 듯 하지만 이 정도야.
‘아쉬운 점이라면……역시 히든 클래스라 상성을 좀 탄다는 것 정도? 그리고 마력이 물공치고 높긴 하지만…… 이건 전용 무기가 마력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으니까 어쩔 수 없고.’
강예나가 쓰는 검 이름이 뭐였더라…… 레바테인만큼이나 거창한 이름이었는데…… 하여간 이 정도의 언밸런스함은 히든 클래스를 연 대가로 눈 감을 만했다.
‘서버 5년 차에 탑 랭커가 이 정도 수준이면…… 사실 감사합니다, 하고 절해야 할 판이지.’
아마 몇 달 전의 자신이 들었다면 스스로의 뺨이라도 갈겼을 만한 생각이었지만, 조한율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고, 유동스럽게 대처해야 살아남는 법이다.
그야 물론 처음에는 외부에서 버그를 달고 돌아온 만큼 강예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덕분에 눈물을 삼키며 몇 날 며칠을 밤샘해야 했는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5년 차 서버에 10년 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력직이 들어온 셈이다.
솔직히 이 정도면 복덩이나 다름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다가 조한율은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객관성을 잃으면 안 되지. 정신 차리자, 정신.’
강예나의 행보를 지켜보며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지게 된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중대한 책임을 짊어진 운영자였다.
자신의 그릇된 판단 한 번에 수백, 혹은 수천 명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몰랐다.
사감은 모두 빼고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계산해야 했다.
그때였다.
조한율이 앉아 있던 간이 천막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사람들이 조한율이 와 있다고 수군대길래 와 봤더니, 진짜였군.”
그리고 등장한 사람의 모습에 조한율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간이 천막의 천을 걷으며 나타난 것은 김숙자 교수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일찍 오셨네요. 저 보러 오신 거예요?”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라기는 했지만 조한율은 김숙자 교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김숙자 교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긴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풍겼다.
태양이 훤히 뜬 낮인데도 서늘한 산자락의 공기와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김숙자가 입구에 기대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올 만하지. 엉덩이가 무거운 거물이 여기 계신데.”
“그 정도는 아닌데. 제 얼굴에 금칠을 하시네요.”
대외적으로 조한율은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시스템과 아이템 연구를 하는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었고, 김숙자 또한 조한율이 운영자라는 사실은 모르는 상태.
그저 아이템 제작자로만 알고 있으니 왜 조한율이 굳이 공략 현장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할 법도 했다.
“전 새로운 아이템 보급차 온 것뿐이에요. 이 김에 바람도 좀 쐬고요.”
물론 현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버그를 처리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든 우아한 백조도 수면 밑에서는 발을 움직인다고 하지 않던가.
조한율은 혼자만 아는 울분을 몰래 삼키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교수님 혼자만 계세요? 다른 헌터들은요?”
김숙자 교수는 엄연히 말해 무소속 헌터이기는 했지만, 소속에 관계없이 언제나 주위를 따라다니는 헌터들이 많은 편이라 이렇게 혼자 있는 것은 드물었다.
“다들 밖에 있어.”
“밖에요? 왜요?”
“아마 누굴 보려고 기다리는 것 같던데.”
아하.
그 숨은 말뜻을 곧바로 알아들은 조한율은 설핏 웃었다.
“다들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랭킹 1위가 인기가 많긴 하네요.”
저번 마석 던전부터 이번 홍대입구역에 나타난 이무기까지.
일반인들이 ‘방랑하는 구도자’에 가진 관심도 대단했지만, 같은 전장에서 뛰고 있는 헌터들이야말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비교가 되는 만큼 더더욱.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강예나가 도착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밖에서 기다리고들 있다니.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그럼 교수님만 인기도 없는 절 보러 여기에 오신 거네요. 랭킹 1위 헌터가 궁금하지 않으신 건가요?”
“굳이 나가 볼 정도는 아니야. 이미 몇 번 보기도 했고. 그리고 자네도 인기가 많다네.”
“그건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미 만나 보셨다니, 혹시 인상이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그건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김숙자 교수 또한 한국 서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플레이어이자, 자신만의 확고한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인물이기도 했다.
조한율은 그런 김숙자가 강예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마침 빈 자리에 앉아 주머니에서 작은 포켓북을 꺼내고 있던 김숙자 교수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젊더군.”
“예?”
“본인의 목표가 아주 확고해. 목표 외의 다른 건 보지도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어떻게 보면 순진할 정도지.”
‘오…….’
일 년여 전쯤 김성연 길드장을 두고 ‘썩을 놈’이라고 간단히 평한 것에 비하면 후하다 못해 과하게까지 느껴지는 평이었다.
다만, 김숙자 교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 실패했을 때 타격도 클 거야. 그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그게 큰 과제가 될 것 같더군.”
“어…….”
“인간이란 무릇 성공했을 때보다는 실패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그게 인생을 결정하게 되는 법이거든.”
이건 또 뜻밖의 말이었다.
조한율은 강예나의 목표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저 운영자 권한으로, 시스템이 강예나에게 어떤 ‘서브 퀘스트’를 주었고, 그게 강예나가 다녀온 다른 세계와 관련되었다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본 만큼 은연중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기는 했다.
그래서 김숙자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시한 실패의 가능성이 약간 충격적이었다.
물론 김숙자 또한 딱히 무언가를 알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일반론이겠지만.
조한율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거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지. 인생이란 실패의 연속이라네. 누구나 언젠가는 실패하게 되어 있어.”
쉽게 넘길 수 없는 말을 하면서 김숙자는 태평하게 조그만 책을 넘겼다.
“나만 해도 매일 금연에 실패하고 있거든.”
……또 저러시네.
그렇게 아무런 뜻도 없는 듯하다가도 심오한 것 같기도 한 대화를 이어 나가던 도중, 바깥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김숙자 교수가 책을 보며 말했다.
“왔나 보군.”
“그러게요.”
이렇게 요란한 등장이어서야 모르기가 힘들다.
“인사라도 하러 가야겠어요.”
조한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일대일 채팅방으로 연락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던전 공략 전이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김숙자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책장을 넘겼다.
“그래,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게.”
“같이 안 가실래요?”
“굳이?”
하기야 초면도 아니고, 김숙자 정도 되는 사람이 굳이 일어서는 것도 그림이 이상한 터라, 조한율은 홀로 천막을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바깥에 나선 조한율은 깜짝 놀랐다.
‘어우, 뭐야.’
한적한 산자락에 꽤 많은 사람들이 바글대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들이야 공략차 왔으니 당연하다지만, 의외로 일반인들 비중도 제법 많았다.
아마 길드나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듯했다.
“저거 이우연 헌터 차 맞지?”
“맞아. 차 죽이네…….”
“그런데 둘은 왜 꼭 같이 다닌대?”
아무래도 다들 소문이 자자한 ‘랭킹 1위’를 구경하러 나온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몰려올 일인가?
어쨌든 그 모두의 시선이 쏠린 곳에는 예의 그, 쓸데없이 화려한 차가 서 있었다.
조한율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먼 지방에까지 굳이 저런 차로 오다니.
연비가 나쁜 것도 그렇고, 차 시트 자체도 불편하기 짝이 없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나 씨한테 차라도 한 대 뽑아 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물론 강예나와 이우연이었다.
강예나 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얼굴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가면을 쓴 상태였고, 이우연도 역시 그 번지르르한 얼굴이 햇빛에 빛나서…… 조한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얼굴이…… 안 빛난다?
웃긴 말이지만, 실제로 그랬다.
이우연은 언제나 그 얼굴만큼은 사흘 내내 던전을 혼자 공략해도 연예인 못지않게 빛났는데, 오늘의 이우연은 아무리 봐도 시들기 직전의 꽃…… 아니, 식물 같았다.
공략 전의 컨디션 조절은 어떻게든 완벽하게 하던 놈이 어쩐 일이지?
조한율이 의아해하며 다가가려던 때.
“저, 혹시 방랑하는 구도자님…….”
먼저 차에서 내린 강예나를 향해 말을 걸려던 사람이 있었다. 아마 참석 인원을 체크하려던 정부 측 공무원인 것 같았는데…….
“히, 히익!”
말을 이으려다 말고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가.
그와 함께, 근처를 얼쩡거리던 다른 사람들도 전부.
거의 모두가 일반인이었지만, 헌터들 몇도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뭐야?’
조한율은 뒷걸음질을 친 몇 명의 헌터들을 관찰하다가 문득 백사현을 발견했다.
왜인지 몰라도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그 밑으로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기가 죽은 백사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기세가 저렇게 살벌해?”
‘……아.’
조한율은 원인을 알아차렸다.
자신은 ‘운영자’라 플레이어들의 능력치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상황으로 짐작하건대, 아마 강예나가 본인의 기세를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발산해 사람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랭킹 상위권에 있는 헌터들은 오히려 도전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류세연.
“아, 진짜 한 번만 붙어 보고 싶다…….”
“조용히 해. 같은 편이거든?”
옆에서 김하현이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지만 딱히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버퍼계 플레이어이자 개인적으로도 아끼는 후배를 발견한 조한율은 김하현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김하현이 꾸벅 인사를 하는 동시에, 옆에 있던 류세연의 뻣뻣한 고개를 억지로 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현이가 고생이 많네. 나중에 술이라도 사 줘야겠다.
“누나…… 아이쿠.”
그리고 미리 도착해 있었던 양태원이 강예나와 이우연을 발견하고 곧장 뛰어가려다, 무엇을 느꼈는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강예나의 행동 하나에 다들 휩쓸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저건 저것대로 대단하다.’
분명히 처음에는 갑자기 튀어나와 랭킹 1위를 차지한지라 다들 적대적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물론 계속 저렇게 기세로 사람들을 압박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강하더라도 헌터들 사이에서 고립되는 걸 피할 수 없겠지만…….
옆에 있던 이우연이 조그맣게 속삭이는가 싶더니 강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제야 사람들이 탁 막힌 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강예나가 기세를 갈무리한 것이다
그 후 약간 머쓱한 태도로 강예나가 옆에 서 있던 공무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보니, 이우연 덕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
‘저런 게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운이지.’
하기야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이우연이, 그것도 저 성격에 누군가한테 찰싹 붙어서 하나하나 챙기는 것 자체가 강예나의 능력이기는 했다.
그나저나, 여러모로 이상했다.
‘예나 씨가 왜 저러지?’
그야 허세에 쩐 몇몇 헌터들이야 일부러 기세를 흘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위압하는 걸 즐긴다지만, 강예나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어느 정도 기세를 억누른 강예나를 향해 정부 측 인원이 겨우 다가가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는 동안, 조한율은 그나마 만만한 이우연을 향해 다가갔다.
강예나가 다른 사람에게 붙잡힌 사이, 김성연 길드장을 비롯해 영원 길드 헌터들과 대화를 나누던 이우연도 곧 조한율을 발견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한율을 향해 걸어왔다.
“뭐야?”
마지막 잎새처럼 생겨 놓곤 성질은 여전했다.
조한율도 딱히 친절할 생각은 없는지라 다짜고짜 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야, 바이러스. 예…… 저 사람 왜 저래? 어디 아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항상 거머리처럼 찰싹 붙어 있잖아. 당연히 알겠지.”
“언제는 붙어 있지 말라더니.”
“그건 아직도 유효해. 내 입장에서는 버그가 쌍으로 붙어 다니는 걸로 보이거든.”
솔직히 조한율 입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 걸어 다니는 폭탄들이었다.
강예나야 당장 안정화시켜 놓았다지만, 조금만 방심했다 싶으면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말려드는 이우연은 더했다.
거의 트러블 자석끼리 다닌다고 볼 수 있었다.
극과 극인지, 같은 극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서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빨리 말해.”
그리고 그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조한율의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우연은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냥, 약간의 멘탈 문제야.”
“뭐? 너 때문에?”
“무슨 헛소리야. 오히려 내가 피해 보상을 청구하고 싶을 정도거든?”
후반의 헛소리는 무시하고, 조한율은 멘탈 문제라는 말에 집중했다.
사실 한국 현대 사회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헌터들에게 멘탈 문제란 그리 특이한 것도 아니다. 헌터 전용 상담 센터도 있을 정도니까.
또 강예나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그런 문제를 겪는 것도 무리는 아니기는 했다.
“그럼 대체…… 아니, 됐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이런 공공연한 자리에서,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이우연에게 물어볼 문제는 아니었다.
현재 조한율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럼 이번 공략에서 빼는 게 나을까? 네 판단은 어때?”
아무리 강예나가 최강의 전력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이번 공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빼는 게 옳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던전 공략 성공이니까.
그런데, 이우연이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내 판단이 옳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말해 봐.”
“평소보다 예민하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에 영향을 끼칠 타입은 아니야. 그래 봤자 시비가 걸리면 좀 더 강하게 받아치는 정도겠지.”
“……잠깐만. 더 강하게?”
저번 마석 던전에서 띠 동갑도 넘게 나이가 많은 김성연 헌터를 걷어찼다는 소식은 조한율의 귀에도 이미 닿아 있었다.
이제 거의 업계에서 내려오는 전설이 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거기서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조한율은 떨떠름해졌다.
“그, 던전 내 살인 사건은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은데…….”
“……양태원이 있으니 너무 나가지는 않겠지. 나도 있고. 그리고…… 오히려 던전에서 몸을 쓰게 두는 게 나을 지도 몰라.”
“흠, 그건 확실히 그럴지도…….”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정신적인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 더더욱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인간이라는 건 의외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특히나 강예나처럼 검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말한 이우연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의 리스크로 우리나라 최강의 검사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그것도 옳은 말이었다.
김성연과 그 외 몇 명의 플레이어로는 아무래도 물리적 공격력이 부족했다.
한국 서버의 고질적인 문제 앞에 조한율은 굴복했다.
결국 운영자로서 이우연의 판단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자 이우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꿈틀댔다.
“쓸데없는 말을 다 하네, 조한율. 당연히 성공해야지. 난 아직 죽을 생각 없어.”
“에이, 설마 한 번 실패했다고 사망까지야 하겠어? 뒈지게 아프기야 하겠지만.”
“왜 좋아하는 것 같지? 아주 불쾌하군.”
짜증 나는 녀석이 아파서 드러눕는 꼴을 한번 보고 싶다는 말은 뒤로 삼키고, 조한율은 여전히 사람들을 멀찍이 두고 홀로 서 있는 강예나를 바라보았다.
‘무사해야 할 텐데…….’
하지만, 이번에도 무운을 비는 것 밖에 해 줄 일이 없었다.
결국 조한율은 말도 걸어 보지 못한 채 던전 안으로 떠나는 강예나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 * *
던전에 입장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집합 시간은 애초에 지났는데, 헌터 중 몇 명이 늦게 온 데다 인원 체크, 아이템 수령 등의 문제가 겹친 탓이었다.
덕분에 계속해서 짜증만 쌓이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발을 탁탁 두드렸다.
- 던전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며, 나는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곧장 동의를 눌렀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며 익숙한 감각이 몸을 지배했다.
우습게도,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가는 판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그야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일이니까.
‘차라리 몬스터랑 싸우는 게 낫지.’
들어가자마자 강대한 S급 몬스터라도 몇 마리 나타났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도시와는 다르게 던전 내에서는 아무리 날뛰더라도 상관없으니까.
‘이왕이면 아무것도 없는 초원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군.’
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광활한 장소를 바라면서,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야?”
먼저 보이는 것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솟아 있는 모습.
그리고 나를 비롯한 십수 명의 헌터들이 서 있는 곳은 회색의 넓은 도로였다.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 분명히 익숙한 풍경이긴 한데…….
“서울…… 인가?”
주변 풍경을 확인한 누군가가 자신감 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익숙할 터인 모습인데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아냐, 이건…… 완전히 폐허잖아.”
언제나 사람들의 활기와 자동차의 시커먼 매연 등, 도시다운 모습이라고는 온데간데없었다. 평소 도시라고 하면 주로 연상되는, 회색빛의 건조한 분위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녹이 슬어 있는 건물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녹빛의 이끼가 보일 뿐.
성한 곳 없는 건물의 표면에는 넝쿨이 멋대로 자라 있었고, 하늘에는 거대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저귀고 있었다.
마치 방치된 지 오래된 유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어…….”
함께 들어온 헌터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당황해 움직이다가 전봇대 하나를 스치고야 말았다.
끼긱!
그 덕에 이미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전봇대가 불길한 소리를 내더니, 이미 부스러진 콘크리트 도로 위로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쿵!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표지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스스 일어났던 흙먼지가 가신 후, 모두가 그 표지판에 쓰여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GOOD-BYE
서울특별시
“…….”
진입한 헌터 중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곧 도시 전체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정말로, 우리의 눈앞에는 폐허가 된 서울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