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87화
- 던전 클리어 조건을 조회할 수 없습니다.
- 필수 선행 조건이 존재합니다.
선행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그건 그렇고, 왜 하필 서울이래?
그도 그럴 것이, 기껏 지방까지 내려와 던전에 들어왔더니 펼쳐진 광경이 막상 서울이어서야 황당하지 않은가.
나는 떨어진 표지판에 적혀 있는 문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그런 게 문제가 아니긴 하지.
다시 봐도 서울이 맞다.
도시의 전경도 서울이 맞고. 맑게 반짝이는 한강 하며, 녹이 슬기는 했어도 서울하면 떠올리기 마련인 유명한 건물의 형상들 하며.
하지만 가슴이 맑아질 정도로 탁 트인 공기와, 미세먼지가 사라진 푸른 하늘, 그리고 노쇠한 건물 사이 무성한 정글처럼 피어난 식물류를 보면…….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이제껏 던전 내 환경이 한국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당황한 헌터들 사이에서 의견이 오가는 것이 들렸다.
나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부식되어 가고 있는 콘크리트를 쓰다듬어 보았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스러진다.
콘크리트가 이렇게 부식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양태원.”
“예, 예? 저요?”
무슨 일 때문인지 헌터들 사이에 숨어 있던 태원이가 흠칫 놀랐다.
천천히 양태원을 돌아보자, 그의 몸에 감겨 있던 청룡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청룡의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안다는 듯이.
이윽고 양태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대답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그래? 알겠어.”
“으으, 죄송합니다…….”
어쩐 일인지 양태원이 기가 잔뜩 죽은 채 눈치를 보며 사람들 사이로 스윽 사라졌다.
왜 저러지?
잡아 와서 옆에 둘까, 싶었지만 여기서 괜히 친분을 더 과시하는 것도 애한테 못할 짓이다 싶어 그냥 두었다.
그나저나 사라져 봤자, 인데.
양태원 본인도 키가 제법 큰지라 사람들 사이에 숨어도 잘 보이고, 가뜩이나 어지간한 건물 한 채만큼 거대한 청룡이 가려질 리가 없었다.
청룡의 심유한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뜻을 읽기 힘든 색깔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백록담 던전 같은 경우일까?’
나는 던전을 통해 과거의 한국에 갔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 또한 미래 시점의 한국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어 물어본 것인데…….
‘뭐, 순순히 대답을 해 줄 거란 기대를 한 건 아니다만.’
저번 백록담 던전에서도 청룡은 내게 제대로 된 답을 주지는 않았다.
혹은, 청룡 또한 말할 수 없는 상태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만 해도 타르토스에서 시스템 경고를 받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청룡의 저 대답이야말로 답일지도 몰랐다.
‘모른다.’가 아니라 ‘대답할 수 없다.’니까.
그나저나 만일 이곳이 정말로 미래 시점의 한국이라면…….
나는 환경 공해가 사라진 탓인지 모처럼 미세먼지가 사라진 듯한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정신적으로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 그런가, 머리의 빈틈 사이로 부정적인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왜 내가 가는 세계마다 망하는 것 같지?’
타르토스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물론 나 하나 때문에 두 세계가 망했을 거라는 비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만…… 이런 광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그럴 게, 미래 시점의 한국으로 추측되는 이 던전에는 아무리 보아도 인기척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도로 여기저기에 방치된 자동차, 창문이 깨진 고층 아파트들, 어딜 봐도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는 게 한눈에 보이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하면 서울이 이 모양이 되는 거지?’
이제 막 진입한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황당하기는 했다.
어쨌든 한국의 수도인 만큼 강한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헌터들을 모두 동원하든, 아니면 현대 무기를 동원하든 무슨 수를 썼을 것 같은데 말이다.
SSS급 몬스터를 넘어 R급쯤 되는 몬스터가 나타나 인간들을 쓸어버리기라도 했나?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불길한 망상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나는 이우연을 돌아보았다.
“이우연, 네가…….”
“그래그래, 내가 다녀오지.”
눈치 빠르게도 이우연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거대한 흰 날개를 펼쳤다.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른 이우연이 빠르게 서울 외곽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우연이 허공에서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딱 서울에서 다른 시로 구역이 바뀌는 지점이었다.
하늘 위에서 한동안 날아다니며 주위를 살피던 이우연이 곧 다시 돌아왔다.
“서울 밖으로는 나갈 수 없네요. 필드 제한이 떠요.”
역시.
나도 백록담 던전에서 같은 현상을 겪었다. 제주도 밖으로 나가 보려고 시도했지만 막혔던 것이다.
즉, 이번 클리어 조건 또한 이 서울 안 어디선가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 서울만 해도 제법 넓은 크기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만만한 던전은 아닐 듯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땅에 내려선 이우연이 헌터들을 둘러보며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여기 옆, 아차산 말입니다만…… 위에서 언뜻 봐도 몬스터들의 자생지가 생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헌터들이 제각기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설마 던전 내 몬스터 섬멸이 클리어 조건은 아니겠지?”
“산에 자생지를 꾸렸을 정도면 도시 안에도 많을 테니…… 조건이 전멸이라면 이 인원으로도 몇 주일은 족히 걸릴 것 같네요.”
“이렇게 되면 베이스캠프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트 같은 데부터 찾아볼까?”
“너무 일러요. 클리어 조건도 안 나왔는데.”
“맞아요. 그리고 사실 B급에서 C급 정도 몬스터라면 궤멸 쪽이 S급 이상 보스 몬스터보다는 나을 수도 있고…….”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앞으로 반복 퀘스트로 클리어할 생각하면 차라리…….”
“자, 그만.”
김숙자 교수가 앞으로 나섰다.
단번에 헌터들의 이목이 모였다.
“우린 아직 아무것도 몰라. 벌써부터 섣부른 추측으로 힘 빼는 일은 하지 말지.”
동요하던 헌터들 사이에 서 있던 김성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필드 수색을 시작할까요?”
당연하다는 듯 김숙자 교수에게 의견을 구하는 태도.
평소 다른 헌터들을 대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공손한 자세였다.
“물론 수색은 우리 영원 길드에서 솔선수범하겠습니다. 먼저 클리어 조건을 끌어내는 게 우선이니 조를 나누어서 수색을…….”
“아니, 이런 상태에서는 함부로 흩어지는 것도 위험하지 않나?”
김숙자가 곧장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김성연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 함께 움직이기엔 서울 전체는 너무 넓습니다. 신중한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텐데요, 교수님.”
“물론 그렇지. 그래서 탐색 스킬부터 써 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예? 탐색 스킬이요? 그런 스킬이…….”
“있어. 얼마 전 부산에 갔다가 우연히 신입 헌터를 하나 만났거든. 박소희 헌터!”
“아, 옙!”
기합이 바짝 들어간 헌터 하나가 교수 뒤에서 튀어나왔다.
날렵해 보이는 인상의 젊은 여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탐색이라기보다는 맵핑 스킬인데요. 필드 내의 모든 몬스터 위치와 등급을 알 수 있어요. 물론 히든 몬스터가 있으면 찾아내지 못하지만…….”
“그런 정보만 해도 도움이 될 거야. 클리어 조건을 찾기 전까지 쓸데없는 소모전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부탁하지.”
“네, 물론이죠!”
박소희 헌터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흰빛의 마력이 팟, 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실이 되어 사방으로 순식간에 뻗쳐나갔다.
“우와아…….”
그리고 내 근처에 서 있던 이선 헌터가 조용히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이선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뇨, 제가 저러다 대학원에 잡혀가서 그만…… 저 박소희 헌터도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요. 김숙자 교수님 따라서 정부 소속으로 올 것 같은데.”
“이선 헌터한테는 좋은 일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지만요. 아, 물론 1위 씨도 언제든 환영이에요.”
이선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나저나, 나는 박소희 헌터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필드를 맵핑화할 수 있는 스킬 자체는 타르토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처음 본다.
그도 그럴 게 저런 스킬은 보통 사냥꾼 같은 클래스의 플레이어가 발현하는데, 그런 클래스 자체가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사 같은 히든 클래스는 아니더라도,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던전을 공략할 때 유용한 스킬인 것은 분명했다.
“이름이…… 박소희 헌터라고 했나?”
아니나 다를까, 스킬의 유용함을 알아차린 게 분명한 김성연이 흥미롭게 박소희를 주시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니, 먼 길 오느라 고생했겠군. 잘 부탁하네.”
“네, 시간은 좀 걸리지만 기다려 주세요!”
씩씩하게 대답한 박소희 헌터의 뒤로 류세연이 구시렁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되게 침 흘리네. 징그러워…….”
“뭐라는 거야. 가만히 입 좀 다물고 있어!”
노골적으로 하는 소리에 김하현이 옆에서 구박을 했지만 류세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맞잖…… 악! 왜 때려!”
“시끄러워! 교수님 계시잖아!”
김성연 길드장 상대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거리를 하던 류세연도, 교수님이라는 마법의 세 글자 앞에서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는지 드디어 입을 다물었다.
김숙자 교수가 없었다면 당장 사달이 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다.
하기야 저번 던전에서 류세연도 김성연 길드장에게 상당히 낭패를 당했지.
따로 마석을 수집하자는 의견에 반대했다가 낙오되어 해변에 발이 묶여 있었다고 들었다. 자칫하다간 홀로 죽었을 수도 있으니, 감정이 좋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국 헌터 풀이 아직 좁긴 하군.’
조한율이 괜히 골을 싸매는 게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S급 이상의 던전이라고 예상하고 공략 팀을 짰다지만, 그 이후로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아니니 둘을 붙여 놓는 건 영 아니다, 싶은데 말이지.
물론 겉으로야 정식으로 사과하고 보상도 했다고 듣긴 했다만…… 개인적인 감정이 좋을 리는 없을 터.
나는 이번 던전에서 트러블이 생긴다면 나와 김성연 길드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쪽에서 터질지도 모르겠는걸.
“…….”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맵핑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멍하니 빛나는 한강의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팔을 잡아끌었다.
어느샌가 조심스럽게 다가온 양태원이었다.
아까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때는 언제고.
“왜?”
양태원이 비밀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저기, 누나. 혹시 아직도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여?”
“아니, 괜찮은데. 무슨 일이야?”
이 며칠간 밤을 꼬박 샌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우연 차를 타고 편하게 온지라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신적인 압박이 좀 있었을 뿐이지, 던전 내에서 공략이 길어질 때를 생각하면 며칠 밤을 새는 것 정도야 가뿐하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얼굴빛이야 나쁘겠다만, 그거야 지금 ‘은의 장막’을 쓰고 있는 이상 별로 티도 나지 않을 터.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양태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지금 제가 꽃점을 좀 쳐 봤는데.”
“……그런 것도 치냐?”
그러고 보니 양태원의 손에 꽃잎이 뜯긴 민들레 송이가 남아 있었다. 어디 콘크리트 사이에서 뽑아 온 모양이다.
양태원이 민둥머리가 된 꽃대가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승리 혹은 패배, 정도로 간단하게 쳤는데…… 패배가 나왔는데요?”
“패배라고?”
“네, 그치만 누나가 있는데 어지간해선 질 리가 없잖아여. 그래서 여쭤봤어요. 혹시 저 모르게 지병이라도 감추고 계신가, 싶어서…….”
“그런 거 없어. 난 멀쩡하니까 괜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그리고 점도 어차피 확실한 거 아니라며.”
양태원이 얼마나 용한 무당인지 알고 있는 만큼 쉽게 간과하기 힘든 말이기는 했다만, 아무리 유능한 무당이라도 제 머리는 못 깎는 법…… 이렇게 쓰는 말이 아니긴 하지만, 하여간 그랬다.
나는 양태원의 손에서 민숭민숭한 민들레를 빼앗아 흐르는 강물 위로 던져 버렸다.
“설령 확실한 결과라고 해도, 그딴 건 뒤집으면 그만이지.”
“음, 누나다운 말이긴 한데…….”
양태원이 꽃이 가라앉은 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누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다면요?”
“……뭐?”
뜻밖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 양태원을 돌아보았다.
시선을 받은 양태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운명이란 건 결국 인간 세상의 거대한 흐름이에요. 처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무것도 아닌…… 쉽고 가벼운 선택이었을지언정 안이한 그 선택들이 결국은 물길을 틀어 버리죠. 그리고 그 흐름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에요. 파도를 손바닥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평소 워낙 어리게만 보다 보니, 이 녀석이 정말 제대로 된 무당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곤 한다.
무당이라는 사람들은 다 그런가.
정소현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을 운명을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가만히 양태원의 얼굴을 바라보다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혹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미리 포기하라는 말을 하면 꿀밤이라도 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양태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설령 아무것도 바꿀 수 없더라도 그게 누나 혼자의 책임도, 잘못도 아니라고요.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니까.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
나는 눈을 깜박였다.
양태원의 입에서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건…….”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움직이려고 했을 때였다.
“맵핑 끝났어요!”
박소희 헌터가 주위에 흩어진 헌터들에게 소리를 쳐 알렸다.
각자 나름대로 가까운 주변을 탐색하고 있던 사람들의 주의가 한꺼번에 쏠렸다.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은 박소희 헌터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어, 일단 몬스터 숫자는 필드 내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거의 도시 전체가 몬스터 자생지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모든 헌터들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이우연이 이미 하늘에서 본 결과를 말해 주긴 했지만, 이제 맵핑까지 끝낸 이상 더욱 확실해진 셈이다.
“그래도 대부분 B급에서 C급이에요. 문제는 A급 몬스터 수십 마리가 도심 내에 있다는 거예요. 일단 S급은 없는 것 같…… 와악!”
박소희 헌터가 브리핑을 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외의 다른 헌터들도 그랬다.
“앗, 차가워!”
“저거 뭐야?!”
넓은 한강 한복판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한바탕 물보라가 일면서 크게 물방울이 튀었다.
그 광경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도, 돌고래다.”
“한강에 돌고래가 있어? 몬스터겠지!”
“몬스터 알람 안 뜨잖아!”
그 말이 맞았다.
말 그대로, 흰 몸체의 돌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한꺼번에 뛰어오른 것이다.
김숙자 교수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괭이로군.”
“예? 상…… 뭐라고요?”
“아, 젊은 친구들은 모르려나? 하긴, 보기 힘들어지긴 했지. 그건 그렇고, 자연이 꽤 회복된 모양이군. 수중 몬스터도 있을 텐데 어떤 생태계가 구축된 거지? 내 전공 분야는 아니다만 흥미로운데…… 그렇지 않니, 선아?”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선이 화들짝 놀라 파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예? 저 못 들었어요. 뭐라고요, 교수님? 아하하, 제가 요새 귀가 안 좋아서…… 아, 배도 아픈 것 같아요. 잠시 화장실 좀…….”
갑자기 봉변을 당한 이선 헌터는 그렇다 치고, 확실히 돌고래 무리가 한강 한복판을 헤엄치는 모습은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돌고래들이 지나간 자리에 옅은 무지개가 떠올랐다.
인간의 모습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녹슬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나는 약간 복잡한 심정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도시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두고 보니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폐가 같은 분위기가…… 그때였다.
등골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처음 느낀 것은, 시선이었다.
저도 모르게 허리에 찬 파트너에게 손이 갔다.
너무 멀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한강 다리를 건너 도심 쪽, 높이 서 있는 건물 중 하나.
그곳 어딘가에서 이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우연!”
나는 곧장 박소희 헌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던 이우연을 불렀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깜짝 놀란 이우연이 당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무슨 발견이라도?”
“방금 전 저쪽에서…… 뭔가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우연이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내가 느낀 시선이 사라졌을 때였다.
이우연이 표정을 구겼다.
“이런, 괜히 한눈팔았군.”
“……소름 돋았어.”
아직도 팔에는 닭살이 돋아 있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시선 하나로 내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존재감이라.
거리가 거리이다 보니 몬스터 조우 메시지 따위는 뜨지 않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맵핑에 안 걸리는…… S급 이상의 괴물이 있나 본데.”
그리고, 동시에 직감이 스쳤다.
아마 그 괴물을 처치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던전의 클리어 조건일 것이라고.
옆에서 이우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목표는 정해졌군. 내가 전달하고 오지.”
이우연이 내가 발견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떠난 사이, 내 옆에서 살짝 떨어진 채 청룡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어린 꼬마를 바라보았다.
문득 정소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내 책임도, 잘못도 아니라니.
“…….”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에이펙스의 광검이 부르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