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91화
콰콰쾅!
한 번 더 거대한 폭음 소리가 울렸다.
그저 두 자루의 검이 부딪혔다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소리였다.
심지어 두 사람의 대치는 그저 소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둘의 격돌이 고스란히 충격파가 되어 주변에 퍼져 나갔다.
호수가 거대하게 일렁였다.
“컥!”
이미 다중으로 쳤던 실드는 깨어진 상태.
그 탓에 기본 능력치가 떨어지는 편인 김하현 등 보조 계열 헌터들이 고스란히 영향을 받았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이우연과 이선, 그리고 류세연이 제각각 실드를 구현하지 않았더라면 몇몇은 충격파만으로도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류세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씨. 저거 뭐야?”
“…….”
이우연조차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강예나가 강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김성연과 백사현을 보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는 충격 외 다른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만했다.
이우연조차 그저 잔상만을 겨우 쫓아갈 수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만큼 두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공방은 눈으로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로 빠르고 격렬했다.
검이 부딪힐 때마다 주변에 미친 듯이 검기가 튀어 나가 기물을 모두 파손하고 있었다. 이우연을 비롯한 대한민국 상위권 헌터들조차 도저히 싸움에 끼어들지 못할 정도의 기세였다.
특히나, 강예나의 공격은 맹렬했다.
상대방을 향하는 검격 하나하나가 목숨을 끊어 놓고야 말겠다는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저렇게 능력치를 올린 거지?’
이우연은 상황도 잊고 그 점에 놀랐다.
이우연이 강예나의 실력을 마지막으로 제대로 본 것은 저번 마석 던전에서 레비아탄을 처치했을 때였다.
당시 이우연이 가늠하기로, 강예나의 능력치 자체는 자신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이템을 사용해서 능력치를 끌어올릴 때는 빼고.’
이전에도 몇 번 직접 목격했던 만큼, 이우연은 이미 강예나가 망토라는 아이템을 활용해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크게 증폭시킨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제한이 있을 테고, 지금도 어째서인지 그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평소의 능력치만 따지자면 아마 차이가 나 보았자 레벨 2, 3정도로 미세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이렇게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가 아니었어.’
그리고 현재 이우연의 능력치 자체도 결코 낮지 않았다.
플레이어명 : 이필연(상태 : 불안정)
LV.40
특성 : 기적의 승부사
클래스 : 마검사
체력 : 840
근력 : 765
민첩 : 912
마력 : 1230
스킬 : 프시케의 염원 lv.10, 고급 검술 lv.9, 텔레파시 lv.8, 주사위의 행운 lv.7, 집중력 lv.10(이하 목록 상세 보기)
강예나는 얼마 전 홍대입구역에 나타났던 S급 이무기를 한 방에 처치한 전적이 있었다.
물론 실력보다는 요령과 경험, 그리고 배짱의 지분이 더 컸다고 보지만.
강예나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당시 강예나는 이무기의 단단한 외피를 한 방에 뚫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일부러 이무기가 자기 정면으로 달려들도록 상황을 유도…… 단번에 입속으로 검을 들이밀고 몸체를 일도양단해 처리했으니까.
물론 그러한 순간적인 판단력과, 괴물의 아가리에 직접 제 팔을 집어넣는 배짱까지 합해져 강예나라는 헌터를 더욱 고평가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능력치라는 것은 존재한다.
아무리 시스템이 생겨났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보조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저번에 레비아탄을 처치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능력치가 뛰어오른 듯했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10레벨 이상 위인 것 같은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단기간에 능력치를 저렇게까지 올릴 수 없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카캉!
검이 튕겨 나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쾅!
“으아……!”
두 사람 간의 대결을 지켜보던 헌터 중 누군가가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강예나가 어떤 방법인가로 저번보다 훨씬 강해졌고, 배짱이 좋고, 순간적인 판단력까지 뛰어나 아무리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졌다고 한들, 그게 상대방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이어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강예나는 물론 강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강.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 이번 던전의 공략 조건인 저 여자와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큭……!”
지금도 두 손으로 검을 잡은 채 상대방의 검을 막아 내고 있는 강예나의 발이 뒤로 밀려난 것이 보였다.
반면에, 강예나를 상대하는 여자…… 그러니까, 또 다른 강예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말간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순수한 완력의 차이였다.
강예나가 이우연과 비교해서 10레벨 위라면, 저쪽은 감히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나야말로 물어봐야겠는데.”
모자를 푹 눌러쓴 강예나가 의아한 시선으로 상대편, 그러니까 가면을 쓴 강예나 쪽을 훑어보고 있었다.
현재는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보지 못했겠지만, 아마도 검을 맞부딪치며 상대가 어떠한지 감을 잡은 듯했다.
“너야말로 뭐지?”
그렇게 묻는 여자의 눈이 슥, 가늘어졌다.
시선이 차가웠다.
이우연은 그 얼굴에서 강예나가 가끔 보여 주던 다정함 따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같은 얼굴임에도.
이우연이 볼 수 있던 것은 살벌하게 재단된 노련함뿐이었다.
강예나 또한 숱한 싸움을 겪은 사람 특유의 기세가 풍겼지만, 저 여자는 또 한 차원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도대체 이 던전은…….’
이우연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멸망한 서울의 모습을 하고 있던 이 던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우연은 시스템을 이해하길 포기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왜 강예나와 똑같이 생긴 인물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그것도 클리어 조건 대상으로.
- 클리어 조건 : 강■나를 처치■십시오.
‘시스템 메시지가 오류가 난 것도 이상…….’
그러나, 이우연의 사고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캉!
한동안 가까운 곳에서 강예나를 주시하던 여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가볍게 강예나의 검을 쳐 내 버렸다.
“윽!”
그리고 강예나가 힘으로 밀린 사이, 여자는 너무도 쉽게 검면으로 강예나의 손목을 세게 내리쳤다.
아마도 뼈가 나갔을 법한 정확한 타격.
그래도 역시 기합이 남다른 탓인지, 강예나는 그래도 검을 놓지 않고 되레 여자의 품으로 파고들며 틈을 노리려 했으나…….
“근성 좋네.”
기본적으로 힘의 차이가 너무도 확연했다.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여자가 팔꿈치를 들어 강예나의 턱을 가격했다.
“커헉!”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강예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를 놓치지 않고 여자가 강예나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풍덩!
그리고 호수 쪽으로 걷어 차여 버린 강예나는 그대로 호수 속으로 빠져 버렸다.
“누나!”
그 대치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양태원이 호수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동시에, 이우연도 준비하던 마법의 캐스팅을 마쳤다.
대지에 푸른 마력이 들끓고 있었다.
이 생을 이어 가야 할 필연은 없으나……
그리고 이미 이우연의 진언에 맞추어 마법을 증폭시키는 보조 마법을 캐스팅하던 김하현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나머지 진언을 읊기 전, 이우연은 실드 너머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강예나와 같은 얼굴.
전혀 다른 서늘한 시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맞설 기회를.
진언이 끝났다.
그리고 대지에 들끓던 푸른 마력이 폭발했다.
그렇게 폭발한 마력이 불꽃이 되어 모든 것을 삼키려 불타오르려던 순간.
아무리 강대한 힘이라고 한들.
김숙자 교수가 완드를 쥔 손을 뻗었다.
안경을 쓴 코끝에 땀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본래 이우연의 진언 마법은 대범위 공격 마법으로, 특정 대상을 공격하는 데에는 특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김숙자 교수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김숙자 교수는 이우연이나 본인의 제자인 이선에 비해 절대적인 마력치 자체는 높지 않다.
그래서 ‘진언’을 깨달은 경지에까지 올랐더라도, 그 절대적인 마법의 위력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강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런 김숙자 교수가 대한민국 최강의 마법사 중 하나라고 불리는 이유는…….
의지라는 그릇에 담지 않으면 형태를 지니지 못하는 법.
마력 제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인의 마법에도 간섭할 수 있을 만큼.
대지를 온통 태울 것처럼 들끓던 마력이 김숙자 교수의 진언에 그 존재감을 죽이고 한순간에 확 사그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시 숨을 죽이고 모습을 감추었던 푸른 마력이 대지 속, 한 점으로 몰려서…….
김숙자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쩍였다.
그러니 행하여 내 뜻을 증명하라.
쾅!
땅이 용솟음쳤다.
방금 전까지 여자가 오연하게 서 있었던 자리가 폭발한 것이다.
이우연이 진언으로 담아낸 푸른 마력,이 김숙자 교수의 인도에 따라 마치 하늘을 가를 것처럼 용오름을 만들며 솟구쳤다.
파파팟!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주위로 휘몰아쳤다.
호수가 요동치고, 나무가 뽑혀 나갔으며, 건물이 흔들리며, 창문이 깨져 나갔다.
감히 인간이라면…… 아니, 생물체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위력에 비례해, 주위의 헌터들이 환호했다.
“와, 위력 미쳤다!”
“이대로 클리어했나?”
“저래도 살았으면 그게 인간이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김숙자 교수의 눈동자가 슥 가늘어졌다. 그 날카로운 눈빛은 자욱한 흙먼지 속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니, 아직이야!”
김숙자 교수가 외쳤다.
“이선 헌터!”
“예!”
그리고 뒤에서 준비하고 있던 이선이 나섰다. 옆에는 류세연이 함께였다.
이선이 완드를 들고 진언을 읊기 시작했다.
이 삶의 영역이……!
그러나, 그때.
쨍그랑!
마치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커헉!”
이우연은 자신의 속 깊숙한 곳에서 울컥, 하고 피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 진언 마법이 파훼되었습니다.
- 진언 마법이 파훼되어 페널티를 받습니다!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충격을 받을 새도 없었다.
옆을 보니 김숙자 교수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비척거리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이선이 당장 김숙자를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막상 김숙자 교수의 반응은 달랐다.
“……이우연 헌터!”
그리고 그 피를 토하는 벼락같은 외침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우연은 움직이고 있었다.
- 스킬, 프시케의 염원이 발동합니다.
거대한 날개가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날아오른 이우연은, 검을 들고서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속 한 지점을 향해 내찔렀다.
감으로 내지른, 송곳처럼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그리고 이우연의 검이 찔러 들어갔을 때!
“나쁘진 않네.”
날카롭게 내지른 칼끝이 세게 내쳐졌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도 그 검의 빛은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어설퍼.”
쾅!
그리고 동시에 이우연의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 낸 여자가 발로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날개를 펼친 보람도 없이 이우연은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건물 표면에 처박혔다.
쿠쿵!
“이런 씨……!”
물론 한국 헌터들도 그런 걸로 포기할 만큼 쉬운 사람들은 아니었다.
“죽어!”
김숙자 교수를 부축하는 동시에 진언 캐스팅을 다시 시작한 이선의 시간을 벌어 주고자, 곧장 류세연이 마력구를 무작위로 날리기 시작했다.
“젠장!”
그리고 김성연 헌터를 비롯해, 검사 클래스의 헌터들도 날아드는 마력구 사이에서 여자를 향해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만일 이것이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레이드였다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빛나는 검이 한 번 휘둘러지면 마력구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볼처럼 터졌고, 달려드는 헌터들은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검날에 튕겨 나갔으며, 발길질 한 번에 다들 나가떨어졌다.
한마디로 말해, 상대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보스…… 강예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오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아, 모자 탔네.”
그나마 불꽃에 닿아 조금 타 버린 모자를 벗어 버렸을 뿐이다.
여자가 후, 하고 심호흡을 하며 팔을 푸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진언 캐스팅을 마친 이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딱히 위협적이게 보이려고 노력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시선을 마주한 이선은 독사 앞의 개구리처럼 딱, 굳어 버렸다.
이선을 바라보며 여자가 씩 웃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강예나와 너무도 똑같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우연은 속으로 탄식했다.
지독히 닮았다거나, 혈연관계가 있겠거니, 정도로 넘어갈 게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동일 인물이었다.
또 다른 강예나가 이 던전 속, 멸망한 서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더 할 건가? 마력 낭비일 텐데.”
압도적이다.
그렇게밖에 묘사할 말이 없었다.
“…….”
석촌 호수에는 죽음 같은 침묵이 자리했다.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전력 차로 패배를 당해서야 오히려 실감도 나지 않았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헌터들 대부분도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이선 헌터에게 부축을 받은 김숙자 교수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죽일 계획인가?”
“허어?”
여자가 황당하다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람을 무슨…… 아니다. 하기야 죽어도 할 말이 없긴 하지. 내 영역을 먼저 침범했으니.”
“그건…….”
“하지만 호기심이 생겼어. 대한민국 헌터라고 했지?”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시선이 잠시 허공을 떠돌았다. 아마도 본인의 시스템창 메시지를 읽고 있는 것 같았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지만…….”
여자가 흘끗, 호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우연은 양태원이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에라도 올라탄 듯 물살을 가르며, 호수 건너편으로 기절한 강예나의 몸을 끌어올리는 것을 발견했다.
“뭐, 일단 나도 상황 파악할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여자가 검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면 하룻밤 정도는 지낼 수 있을 거야. 그쪽들 처분은 내일까지 생각해 보지.”
“뭐, 뭐라고?”
마치 포로를 다루는 것 같은 말에 김성연이 잠시 발끈한 듯했지만, 여자가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아, 해가 지면 함부로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안에 있도록 해. 내가 이 근처에 알람용으로 A급 몬스터들을 심어 뒀거든? 그것들 깨우면 귀찮으니까. 밤에 깨우면 진짜 뒈질 줄 알아.”
그리고 곧장 자리를 떠나려던 여자가 무언가 생각난 듯 휙, 뒤를 돌았다.
“아, 도망치면 어떻게 될지는 알겠지? 서울 전역이 내 구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자, 잠깐……!”
누군가 외쳤지만, 여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바람이 몸을 감싼다 싶더니, 높게 뛰어오른 여자가 건물을 뛰어넘어 멸망한 도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이제 어떻게 하죠?”
이선이 허탈하게 물었지만, 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어라 덧붙일 한마디조차 없는, 굴욕적인 패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