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93화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물론 내가 누군가에게 진 게 처음은 아니었다.
당장 얼마 전만 해도 알버트와 싸워서 처참하게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진짜 내 몸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핸디캡을 가지고 한 싸움이긴 했지만, 애초에 내 본래 능력치로 맞붙었을 때도 졌다.
그 외에도 나는 숱하게 많이 패배해 왔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는 무수한 강자가 존재하고,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상대와 싸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면 자존심이야 상하겠지만, 어쨌거나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다.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으니까.
그리고 다음이 있으면 이길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 A급 몬스터, 파리지옥이 출현했습니다.
나는 내 움직임을 감지하고 조용히 달콤한 냄새를 흘리기 시작한 식물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몬스터를 ‘알람용’으로 설치했나, 했더니 석촌 호수를 둘러 심어 둔 나무들 사이에 듬성듬성 식물형 몬스터인 파리지옥이 섞여 있었다.
어디에 진득하니 정착해 본 적이 없어서 고려해 본 적은 없는데…… 따져 보니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제 구역에 침입자가 생기면 소리를 지르는 동물형 몬스터를 방범용으로 주위에 서식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동물형 몬스터는 소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한 반면 파리지옥은 움직임을 감지하는 즉시 냄새를 피워 먹이를 유인하는 데다, 설령 처치하더라도 진액의 냄새가 워낙 고약해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또 식물형 몬스터라 동물과는 달리 스스로는 이동할 수 없으니 관리하기도 쉽다. 번식도 제한적이어서 너무 많이 번질 일도 없고.
“…….”
그러니까, 이런 점이 짜증이 난다.
이 똑 닮은 사고방식.
아무리 봐도…… 그 여자는 나 자신이었다.
‘도대체…….’
일어나자마자 이우연을 닦달해 그 여자의 행방을 물어보았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이기지 못한 자를 이우연이든, 혹은 다른 한국의 헌터들이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 다음으로 이어진 전투는 상당히 빠르고 허무하게 끝난 듯했다.
이우연을 비롯해 김숙자 교수, 김성연 길드장까지…… 공략대 주력들은 대부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물론 인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의 강대함을 느끼게 했다.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든 스무 명 남짓한 헌터들을 상처 입히지 않고 완벽하게 제압해 냈다는 의미니까.
실력이 어지간히 차이가 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 클리어 조건 : 강■나를 처치■십시오.
아까 이우연을 통해 조한율의 의견을 들었다.
조한율의 추측대로라면, 이 던전 자체가 나를 죽이기 위해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만들어 낸 던전이라는 모양이다.
솔직히 놀랍지도 않다.
저번 운명의 씨앗 1회 차 던전에서, 몬스터가 되어 재등장한 알버트를 보았을 때부터 직감했다.
이건 분명히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
평범한 플레이어가 단독으로는 저지를 수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그건 즉, 저쪽은 내가 타르토스의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유야 모르겠다만.
뭐, 나에게도 누군지도 모를 운영자의 이유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이런 클리어 조건을 내건 던전을 한국에 만들었겠지.
게다가 이건 정말이지…… 잘 만든 함정이었다.
‘이따위 참신한 자살 방법을…….’
미래의 나 자신을 죽이면 현재 시점의 나는 어떻게 되느냐, 같은 시간 여행자 특유의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뒤로 미뤄 두자.
그냥 단순히 공략하는 법만 생각해 봐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니까.
‘저걸…… 어떻게 이겨?’
상대방이 나라는 걸 생각하니 내 얼굴에 직접 금칠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지만, 솔직히 나도 나 자신을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검사 클래스라면 몰라.
히든 클래스인 ‘용사’라서 ,일반적인 검사와 달리 원거리에서 마법으로 공격하는 것도 먹히지 않는다.
그냥 파훼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내 약점이라고 한다면…… 지난번 레비아탄이나 혹은 몬스터가 되었던 알버트처럼 외피가 무식하게 단단하거나 물리적인 힘이 압도적일 경우인데, 이건 몬스터라서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쨌든 인간인 만큼 검으로 베면 끝이니까.
압도적인 능력치로 어떻게든 찍어 누르는 방법이 있기야 하지만…… 저쪽이 만렙이다.
그러니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사용하더라도 능력치로 딸리는 셈이니 그것도 불가.
심지어 어떻게 방심을 틈타 기습으로 한 번쯤 죽인다고 해도 ‘기사회생’으로 살아날 거고, 또 나와 달리 저쪽은 ‘멸혼의 불꽃’ 스킬도 만렙을 찍었을 거란 말이지.
역시 아무리 봐도 답이 없었다.
적의 입장에서 보니까 방랑하는 구도자란 정말 골 때리는 녀석이었다. 이제껏 나를 상대한 적들에게 동정심이 갈 정도였다.
그래도 나를 상대한 놈들은 내용물이 1/3만 들어찬 허접 깡통이기라도 했지, 내 상대는 만렙인 나 자신이다.
‘X발.’
생각해 보니 또 열 받는다.
아니, 누구는 레벨 79까지 찍어 놓고도 갑자기 레벨 1로 돌아와 버려서 정말 이 꽉 깨물고 뒈질 뻔하며 겨우겨우 이 정도로 끌어올려 놨는데…… 저쪽은 어떻게 레벨 100을 찍은 건데?
나와 저 녀석은 대체 어떤 점이 달랐던 걸까?
“…….”
나 자신을 두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웃기기는 한데, 뭐랄까.
만렙인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기절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패배에 대한 분노가 식어 갈수록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내가 레벨 100을 찍은 걸 보니…… 그것이 마치 나의 불성실함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실패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들었던 생각들.
그저 무의미한 상념들에 불과했던 모든 가능성들이 마침내 형태가 되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내가 겪었던 모든 실패는 정말로 나의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내가 이제껏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을 위한 기만에 불과했고, 나는 정말로 ‘더’ 노력할 수 있었다.
더 잘할 수 있었다.
모두를 구할 수도 있었다.
“……아, 씨.”
나는 호수 근처 잔디밭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도 안다.
이미 지나간 일을 생각해 봤자 쓸데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에 혹시 모를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을 좀먹는 지름길이다.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이 클리어 조건을 달성할지, 그리고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밖으로 무사히 꺼낼까, 하는 것뿐이다.
내 싸움에 휘말려 다른 이들이 희생되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그런데 답이 안 나와서 문제지.’
왜 나는 만렙을 찍을 만큼 잘난 걸까, 망할 새끼 같으니라고.
나는 그렇게 한동안 호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진 도시에는 달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그 언젠가 이 도시를 비추었을 높은 건물들이나 가로등의 불빛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호수에 비치는 달그림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그 고요함을 깨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서부터 휙, 하고 건물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음이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 아직 뽑지 않은 채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표면이 흔들려 고요하던 달그림자가 이지러졌다.
“달이 예쁘지 않은 날이야. 그렇지?”
그리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곳에 달을 등지고 조용히 내려선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저걸 농담이라고 한 걸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여자의 눈길이 조용히 나를 훑어보더니, 곧 검지로 제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그건 이제 벗지 그래?”
하기야 이미 각자의 파트너로 첫 검을 나눈 순간부터 내 정체를 알아차렸을 텐데, 굳이 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웃긴 노릇이었다.
‘은의 장막’을 해제하고 드러난 내 얼굴을 본 여자의 눈이 잠시 크게 떠졌다.
아마도 예상은 했을 텐데, 그래도 직접 보니 동요가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나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보는 것은 상당히 묘한 느낌이었다.
그리 밝지는 않았지만 이미 어둠에 상당히 적응한지라 상대방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어쩌면……나보다 몇 살 더 먹었을 수도 있겠다, 라고 추측했다. 얼굴이나 몸에 눈에 띄는 외상이나 세월의 흔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인상이 그랬다.
그런데 몇 시간 전과 조금 다른 점도 있었다.
“머리카락은?”
낮에 봤을 땐 나와 비슷할 정도로 길게 길러 하나로 올려 묶었던 머리카락이 어디로 갔는지 뚝, 자른 단발이 된 것이다.
어깨에도 닿지 않을 만큼 짧은 단발이 된 여자가 그 물음에 웃으며 제 머리칼을 넘겼다.
“아, 잘랐어. 망할 예언자 놈과 거래를 하느라.”
“예언자?”
“그래, 과거는 알지만 미래는 모르는 주제에 클래스만 예언자인 쓸모없는 변태 새끼.”
“변태 새끼?”
“이상하게 내 머리카락에 집착하거든. 덕분에 거래 재료로는 잘 썼다만…… 너희 쪽에는 없나?”
나는 예언가라는 말에 잠시 태원이를 떠올렸지만, 양태원은 내 머리칼에 집착하지도 않고 변태도 아니라 금방 후보에서 삭제하고 고개를 저었다.
“무당은 있지만…… 동일 인물은 아닌 것 같군.”
그러자 여자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하난 부럽네. 쓸모는 있긴 하지만 하여간 일본 놈들은 상대할 게 못 된다니까.”
“……뭐? 어디 놈?”
“아, 맞다. 그쪽은 아직 전 세계 통합 서버로 굴러가는 시점이 아니라면서?”
여자가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발을 굴러 자리를 다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좀 앉지 그래?”
나는 여전히 허리의 검자루에 손을 올린 채, 털썩 주저앉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발검하면 금세라도 목을 벨 수 있을 것처럼 풀어진 자세로 보였지만, 나 자신이기에 안다.
목의 움직임,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풀어진 유연한 어깨, 손가락의 긴장과 굳이 숨기지 않는 강자의 여유.
‘……짜증이 나긴 한데.’
역시 틈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검을 뽑았다간 되레 내가 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의 기도가 서려 있었다.
역시 저쪽이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서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그 말대로 잔디밭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은 것도 있으나…… 저 여자의 말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도 나 자신이기에 아는 것이지만, 저것도 일부러 한 짓이다.
여기가 미래의 시점인 만큼 딱 내가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흘려서 ‘너 여기서 싸우면 재미없다.’라는 뜻을 전달한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잔디밭 위에 앉자 여자가 씩 웃었다.
재수 없다. 내가 저렇게 재수 없는 얼굴이었나? 이우연더러 뭐라 할 게 아니군.
“그쪽은 내가 아주 재수 없나 본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피차간에 서로의 심정을 아주 정확하게 읽은 듯했다.
나는 굳이 부정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무슨 연극을 보는 것 같아서 아주 불쾌해.”
“나는 그렇게 불쾌하지도 않은데. 그리고 아주 똑같지도 않아. 네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아니, 무슨 나이를 따지고 있어? 꼰대야?”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네 얼굴에 침 뱉기인 건 알고 하는 소리지?”
진짜로 욕이 나올 뻔했다.
저렇게 여유로워 보이는 것조차 능력치의 차이인 듯해서 한층 더 재수가 없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앉았으니 말해 봐. 아직 세계 통합 서버가 아니라니?”
상대가 나 자신이기에 의뭉을 떨 것도 없이, 나는 곧장 흘린 떡밥에 덤벼들었다.
예전 김숙자 교수와 만났을 때 이미 들은 이야기다.
현재 지구는 세계 모든 곳에 던전이 존재하되, 각국의 헌터들은 자신이 소속된 서버에서만 공략이 가능했다.
즉, 대한민국 서버 소속인 나는 미국에 있는 던전을 공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타국의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불가능하다는 뜻도 되지만, 각 나라 소속 헌터가 타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물론 교류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헌터는 던전을 공략하며 능력치를 올리고, 아이템을 얻는다. 현실에서의 부도 결국은 던전과 연결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자국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타르토스와는 양상이 달랐지.’
타르토스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타르토스 대륙 안에도 숱하게 많은 나라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루카스가 왕자인 왕국을 포함해서.
하지만 타르토스는 지구와는 달리 국가별로 나뉘어 운영되지 않았다.
그 차이점이 계속 마음에 걸리기는 했는데…….
“그럼 나중에는 전 세계가 하나의 서버로 굴러가게 된다는 말이야?”
그렇다면 말이 된다.
지구 쪽은 시스템이 나타난 지 겨우 5년 차고, 타르토스는 내가 이동했을 때조차 이미 시스템이 나타난 지 10년이 넘었을 때였다.
즉, 얼마든지 단계적인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
내 추측이 맞았는지 저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는 이제 5년 차라면서? 아마 대략 4, 5년 후 서버가 통합될 거야.”
“그럼…….”
“대혼란이지.”
전혀 깔끔하지 않은 이야기가 명쾌한 목소리로 떨어졌다.
“던전이 아닌 곳에서 고렙 플레이어들끼리 싸우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굳이 설명할 것도 없이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거고.”
그렇게 말하며 여자가 부서진 도시의 건물을 가리켰다.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니, 직접 싸울 것까지도 없어. 인간의 악의란 언제나 무궁무진하지. 다른 나라 던전에 기어 들어가 일부러 터트리는 테러를 반복하기만 해도 될 일이니까.”
“……그래서 서울이 멸망한 건가? 그리고 서울이 이 모양이 되는 동안 너는, 그러니까 나는 뭘 하고?”
내 물음에 여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내가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나라고 모든 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나 자신도 알다시피.”
“하지만 할 수 있다면 노력은 했을 거 아냐.”
나는 나를 안다.
물론 타르토스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타르토스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서울이 이런 상태가 되었다면…… 내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포자기해 남의 위기를 방관할 성격도 못 된다.
어쨌든 한국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좋든 싫든 간에 내 부모님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 꼴이 된 거냐고.”
그래서 불안했다.
나 자신조차 저 강예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데, 질투가 날 정도로 완벽한 능력치까지 갖추었는데.
그런 내가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막을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렇게 묻자 여자가 주저앉은 채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검푸른 하늘을 향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숱한 불빛이 사라져서인가, 눈동자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나는 것이 무척이나 또렷하게 보였다.
그 입에서 답이 나오는 것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뒤로하고, 드디어 ‘강예나’가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할 수 있다면 노력했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 대답에 한순간 절망이 나를 덮쳤다.
“나는…….”
결국 실패한다는 건가, 그렇게 물으려던 나를 향해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들어 봐.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없었다는 뜻이야. 아무것도 없었다고.”
“……뭐?”
“내가 타르토스에서 여기로 돌아왔을 때……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여자의, 나 자신의 눈이 나를 응시했다.
순간적으로 피어오른 살기가 느껴졌다.
허리에 매달린 검집을 향해 절로 손이 움직였지만, 그것을 가로막은 것은 조용한 목소리였다.
절대적인 절망에 물든.
“그래서 궁금해. 너와 난 뭐가 달랐던 걸까?”
“…….”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무덤을 지키는 것뿐.”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그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이 여자가 나 자신임을 통렬하게 느꼈을 뿐이다.
만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가 다른 세계를 구하는 동안 짓밟혀 버린 세계에 돌아와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멸망한 도시에 내가 홀로 남은 이유.
“그러니 네가 내게 말해 봐.”
또 다른 내가, 강예나가 초라한 잔디밭 위에 주저앉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손에 무덤이 짓밟히지 않게 관리하는, 묘지기.
그 눈동자는 나와 같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와 나의 차이점은 뭐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