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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198화 (199/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198화

이우연은 정말이지…… 피곤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면, 지금 눈을 감는 즉시 그대로 3일은 깨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자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

건물을 나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낮의 전투로 상당히 파헤쳐져 있던 호수 주변의 정경이 더욱 흐트러져 있었다.

나름대로 A급 몬스터인 ‘파리지옥’조차 검풍에 휘말려 너 나 할 것 없이 혀를 쭉 빼물고 죽어 있는 게, 아무래도 본래 용도로는 더 이상 쓰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파리지옥보다도 훨씬 더 엉망진창인 꼴을 하고 있는 것은…….

“뭐…… 하는 거…… 쿨럭!”

강예나가 말조차 채 잇지 못하고 피를 뱉어 냈다.

아마도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깨에는 처참한 관통상까지.

그 꼴을 본 이우연은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무시하고 대답했다.

“아니, 가만히 자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야.”

사실 이우연 본인은 내상도 입었겠다, 어지간하면 강예나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어서 내버려 두고 정말로 선잠이 들었는데…….

조한율 : 야야야야 미쳤다

조한율 : 지금 빨리 튀어 나가

조한율 : 얼른

조한율 : 이러다 예나 씨 죽겠어

조한율 : 일어나라고!!

스팸 메시지처럼 미친 듯이 보내오는 조한율의 메시지 덕분에 깨어났던 것이다.

‘운영자 메시지를 알람처럼 써도 되는 건가?’

어쨌든, 운영자 권한으로 강예나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던 조한율 덕분에 이우연은 건물 안에서도 바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나마 이 타이밍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이고.

“누나!”

그리고 자신이 친 꽃점 결과 때문인지 내내 안절부절못하고 이우연의 뒤를 따라 함께 튀어나온 양태원은 당장 강예나 곁으로 달려갔다.

“어, 어떡해…… 죽는 거 아니에요?!”

강예나의 상처를 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제 막 스물이 된 청소년이 보기에는 다소 잔혹한 광경이기는 했다.

물론 여태껏 던전 공략에 자주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거나 주변인이 다친 꼴을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낮에는 신세를 졌죠.”

반면, 이 광경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고 이우연 옆에서 조용히 적의를 불태우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예나 씨까지.”

이선 헌터였다.

보스 몬스터, 아니, 보스 플레이어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무척이나 강렬했다.

그나마 낮에 있었던 전투에서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마법사였기에 이선의 주위를 맴도는 살기는 무척이나 흉흉했다.

하기야 은사인 김숙자 교수도 깊은 상처를 입고, 강예나조차 저런 상태이니 이선이 적의를 품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게 상대방에게 먹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예나의 얼굴을 한 여자가 풋, 하고 웃었다.

“……웃어?”

이선이 옆에서 노골적으로 울컥했다.

그러자 ‘강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비웃은 건 아니야. 다만…… 저 클리어 조건을 보고도 다들 널 죽일 생각은 안 하고 나한테 덤비는 걸 보니 나름대로 인망이 있다, 싶어서.”

그 말에는 과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다짜고짜 갱신된 클리어 조건부터 지적하는 그 발언에 이우연은 내심 탄식했다.

“성격 한번 진짜…….”

솔직히 이 자리에 이우연, 이선, 양태원처럼 직접적으로 강예나와 사적인 관계가 있는 헌터들만 있었던 게 아니라면, 저 발언은 분명 사람들 사이에 상당한 동요를 가져왔을 것이다.

설마 이렇게 직접적으로 ‘방랑하는 구도자’를 처치하라는 클리어 조건이 뜰 줄은.

‘그야…… 저게 강예나와 동일 인물인 만큼 클리어 조건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저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과, 이렇게 클리어 조건으로 못이 박혀 버린 건 완전히 이야기가 다르다.

애초에 강예나의 존재는 지금 한국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상당히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

이 와중에 클리어 조건이라는 ‘대의명분’이 생겼으니 여러모로 강예나에게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저 ‘보스 몬스터’와 직접 부딪혀 형편없이 깨진 만큼, 방랑하는 구도자 쪽을 처치해서 클리어를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는 식의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 헌터들이 현재 휴식 중이라 클리어 조건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다행이지, 만일 모두 일어나 클리어 조건을 보았더라면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 봤자 내일 아침이 되면 다 인지하겠지만.’

다만 지금은 내일 아침까지 살아남을 수 있느냐, 가 문제다.

주위를 맴도는 심상치 않은 살기에 이우연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자신과 김숙자 교수가 같이 공격했을 때도 진언을 바로 파훼해 버린 괴물이다.

‘어쨌든 시간을 벌어야…….’

“그런데 넌 뭐야?”

여자가 검 끝을 들어 이우연을 가리켰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살짝 움찔하긴 했지만, 이우연은 내색하지 않은 채 여자를 마주 보았다.

낮만 해도 강예나와 같은 긴 머리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사이에 단발이 되어 있었다.

바람 때문인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한 손으로 쓸어넘기며, 여자가 이우연을 빤히 주시했다.

마주한 눈동자가 스윽, 하고 가늘어졌다.

순간적으로 호랑이 앞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덮쳤다.

그건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낮에도 눈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때는 군중 속 하나로 스쳐 지나갔다면,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뼛속까지 발라낼 것 같은 집요한 관찰.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찰 끝에, 여자가 탄성을 터트렸다.

“와, 이거…… 묘한 놈이 하나 있네.”

그 목소리는 정말 말 그대로 감탄한 것 같기도, 혹은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언제나 직설적으로 말하는 성격에 비해 이상하게도 두루뭉술한 내용이었다.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이랑 섞여서 제대로 못 봤는데…… 이런 게 왜 한국에 있는 거지?”

이우연은 그 말에 단번에 경계심을 세웠다.

“이런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알잖아. 너, 지금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데…….”

그렇게 보스 강예나가 다음 말을 이어 가려던 순간…….

파지직!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이우연!”

깜짝 놀란 이선이 이우연의 팔을 잡아끌었고, 여자도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한 번 스파크가 일었을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명백했다.

시스템의 개입이었다.

조한율 : ??

조한율 : 뭐야?

조한율이 당황해 메시지를 띄웠지만 영문을 모르는 건 이우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왜 시스템이 개입하는 거지?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여자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필터링’이 뜬다고?”

필터링?

이우연은 어딘지 낯익게 들리는 그 단어에 주목했다.

내가 저 단어를 어디서 들었더라?

더 묘한 것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저 녀석이 ■■의 ■■으로 ■씌■졌다고 말해도…… 안 들리겠네. 뭐 이딴 게 다 있지?”

속사포처럼 이어진 말.

그러나 군데군데 기묘하게 노이즈가 낀 채 제대로 된 내용이라고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수명이 다한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녀석 뒤에 이렇게 뻔하게 ■■■의 ■■이 보이는데 이건 도대체…… ■■■의 ■■인가? ■■? 아니면 시간축의 문제?”

여자가 말하는 내내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그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말 중에서 이우연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시간축’ 정도.

고개를 돌려 이선의 표정을 보니, 이우연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모양.

강예나 쪽도 마찬가지였다.

양태원에게 몸을 기댄 채 여전히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던 강예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필터링이 왜…….”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선이 경계를 세운 채 이우연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게 다 무슨 소리야? 네 존재가 왜 불안정해?”

“……글쎄요, 저도 잘…….”

솔직히 이우연도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뭘 알고 있기에 저렇게 말하는 거지?

이우연은 조용히 손가락을 움직여 가상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필연 : 너한테는 로그 형식으로 대화가 보인댔지. 저것도 보이나?

조한율 : 아니, 전혀. 아예 시스템상으로 읽는 게 불가능해.

역시 그런가.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우연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나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다면…… 나도 알고 싶은데.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거든.”

딱히 효용은 없을 듯했지만 당장 이 여자와 전투를 벌이게 되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어찌 됐든 시간을 벌면서 약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저 여자가 흥미를 보이는 부분을 캐묻고 늘어져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게 나았다.

그래도 너무 많은 정보를 오픈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이 새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우연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존재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주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리는 건 사실이야.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휘말리는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한 번?”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져, 여자가 흥미를 보였다.

“그 정도 빈도수로 휘말리는데 여태까지 죽지 않은 게 신기하네.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자체는 네가 일종의 ■■라서 일어난 것 같은…… 아니, 이거 엄청 귀찮네. ■■를 ■■라고 말하는데 이것까지 제한할 일이야?”

보스 강예나는 말을 잇다 말고 표정을 찌푸렸다.

아마도 저쪽의 시야에서는 자신과 다른 것이 보이고 있는 모양인지, 허공에 대고 손을 젓는다.

파리라도 쫓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알겠어. 5년 차 플레이어에게는 스포일러 금지라 이거지? 그런데 그럴 거면 애초에 여길 보내지 말든가.”

파직!

여자의 말에 항의라도 하듯 스파크가 다시 한번 거세게 일었다가 스러졌다.

그 꼴을 잠시 바라본 보스 강예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긴 한숨이었다.

“아무래도 도움이 되는 정보는 못 줄 것 같군. 보다시피 시스템상 제한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점이 오히려 의외였다.

강예나와 저렇게 죽일 듯이 싸운 것으로 보아 한국 쪽 플레이어에게 호의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하는 걸 봐서는 정말로 제대로 된 정보를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한국에서 나…… 그러니까 강예나를 만나게 된 거지? 그냥 우연이었나? 무슨 사이야?”

그렇게 물어 오는 것 또한 그리 적의가 담긴 느낌은 아니었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물어 오는 듯한 느낌에, 이우연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음, 동료 초과 친구 미만인 사이?”

“……뭐?”

보스 몬스터, 아니, 보스 플레이어인 강예나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거잖아?”

“에이, 그게 아니지.”

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이우연은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정작 이 대화의 또 다른 주축인 강예나는 여전히 양태원의 부축을 받은 채 대화하는 두 사람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한 발자국 뒤로 가면 동료, 한 발자국 다가오면 친구란 뜻이지.”

그렇게 농담을 하며 미소를 짓기는 했지만, 이우연은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입을 잘 터네.”

그런데 의외로, 여자가 미미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의외로 제법 호의적인 미소였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할 수 있는 용기는 흔치 않지.”

“그거 칭찬인가?”

“물론 만용이라고도 하고.”

딱히 칭찬인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이우연과는 일견 호의적으로 들리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보스 플레이어와 강예나 사이에는 여전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당장 다시 전투를 재개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감.

그 긴장감 속에서, 강예나가 보스를 향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정말로 무슨 생각인 거야? 왜 답지도 않게 친한 척이냐고.”

“내가 뭘? 이제는 내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데, 잘해 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너 진짜 돌았냐?”

동료가 될지도 모른다고?

아무래도 저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건 자신만이 아닌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본인인 강예나조차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명백했다.

그런 강예나를 보며 여자가 씩 웃었다.

“왜? 너야 손해 볼 거 없잖아. 어차피 네 입장에서는 이 사람들, 동료도 친구도 아닌 거지?”

이우연에게 건네는 말은 의외로 호의적이었던 것과는 반면, 그 자신에게 건네는 어투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이상한, 노골적인 적의가 가시처럼 돋아 있었다.

그 적의를 감지한 강예나 또한 자연스럽게 가시를 세웠다.

“너 지금 대체 뭐라는…….”

“그도 그럴 게 아직 멸혼의 불꽃, 해금 못 한 거잖아. 만약 해금했다면 나랑도 해볼 만했을 텐데 말이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우연이나 다른 사람이 더 캐묻기도 전에, 여자가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제 다 소용없는 얘기지.”

강예나의 목덜미를 향해 검이 앞으로 뻗어졌다.

전조가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막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쾅!

어느새 강예나의 주위에는 푸른빛의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얇은 유리막처럼 형성된 결계.

그 결계는 용사의 검 앞에서도 파훼되지 않은 채 아침 햇살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른 여자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결계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심지어, 그 결계에 보호된 강예나조차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의 검 앞에서서 강예나 앞을 막고 선 것은…….

“역시, 이럴 줄 알았어요. 제 수호 결계는 파훼되지 않네요.”

양태원이었다.

두려움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는데도 부적을 들고 선 양태원,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강예나에게로 향하는 검을 대신 맞겠다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본 강예나의 입술이 떨렸다.

“야, 너 무슨…….”

“제 힘은 순리를 거스르는 힘이 아니니까, 용사의 검으로도 벌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여자는 동요하지 않고 제 검을 막은 푸른 결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팔을 들어 한 번 내리쳤다.

콰쾅!

“그래 봤자 결계지. 파괴될 때까지 내려치면 그만이야.”

쾅! 쾅!

마치 망치로 유리를 내리찍는 것 같은 소음이었다.

상성을 이용해 파훼할 수 없다면 물리적인 힘으로 압력을 주어 깨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그 우악스럽기까지 한 방법이 정말 먹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결계에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 헉……!”

결계에 금이 갈 때마다 양태원의 얼굴이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결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신력이 소모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예나가 양태원의 팔을 잡았다.

“그만, 그만해! 이러다 네가 죽어!”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만둬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양태원이 허옇게 뜬 얼굴로 외쳤다.

“누나도 안 그랬으면서!”

하, 그 대화를 듣던 이우연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거 정말 정곡을 찌르는 재주가 있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집중해!”

그리고, 역시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고 있던 동료가 이를 악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진작 건물 옥상에 대기시켜 두고 있었던 김하현이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였다.

- 플레이어, ‘김하현’이 당신을 상대로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 스킬, ‘마력 이전’이 완성됩니다.

온몸의 마력이 급속하게 빨려 나가는 것 같은 이 감각.

그리고 그 마력이 향하는 곳은…….

내가 선 곳이 곧 내 삶의 영역임을 선포하니…….

인간의 몸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과도하게 몰린 마력에 눈이 하얗게 까뒤집힌 이선이 진언을 외고 있었다.

그런 이선을 향해 결계를 깨부수고 있던 여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결계 뒤의 강예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마법은 써 봤자……!”

“그래.”

빛나는 검을 손에 든 여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여자의 시선은, 도시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굉음의 근원지를 향해 있었다.

“뭘 하나 했더니만…… 내 상대로는 힘들 텐데?”

역시, 김하현의 존재를 눈치챘는데도 모르는 척했던 건가.

“너희들 수준의 진언 정도는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어.”

과연, 강한 만큼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그 어떤 변수가 일어나더라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기야 ‘마법사’ 따위는 워낙 흔한 클래스이니 많이 다루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검을 휘둘러야 파훼할 수 있는 거잖아.”

강예나의 전투 패턴은 이미 파악할 만큼 보았다.

여자의 눈썹이 움찔했다.

“뭐?”

분명 강예나는 마법을 파훼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을 휘둘러야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했다.

이우연은 외쳤다.

“양태원 헌터!”

대한민국 최강의 무당은 상대해 본 적이 없겠지.

촤르륵.

그리고 그 부름에 기다렸다는 듯 양태원의 손에서 흰 무선(舞扇)이 펼쳐졌다. 오색찬란한 빛이 그 무선 주위로 무지개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을, 강예나는 어쩐지 멍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휙!

그리고,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것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은 커다란 바람이 일었다.

아니, 차라리 태풍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정도로.

이 영역을 침범하는 자에게 벌을 내려…….

우르릉!

갑작스럽게 몰려오기 시작한 먹구름 사이로 우레가 번쩍였다.

그리고 먹구름이 잉태한 빗방울이 땅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무슨…… 윽!”

검을 든 채 여자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칭칭 감겨 있는 것처럼, 사지를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채로.

그를 향해 양태원이 부채를 내리쳤다.

“지금!”

동시에, 이선의 진언이 완성되었다.

나의 삶을 공고히 하노라.

콰르르릉!

굉음과 함께 멸망한 도시 사이로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같은 해일이 몰려들었다.

이윽고 그 해일은, 보이지 않는 용에게 사로잡힌 용사의 몸을 통째로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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