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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02화 (20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02화

조한율 :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다고요ㅠㅠㅠ

조한율 : 이제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대화 수락 후 줄줄이 떠오르는 조한율의 메시지를 보며 약간 민망해졌다.

회의의 결과대로 K대 병원으로 가는 길.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상자 취급을 받아 차에 얌전히 올라탔다.

그리고 그때야 조한율이 끊임없이 보내오던 메시지를 떠올리고 수락 요청을 한 것이다.

거기서 처음으로 떠오른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라니.’

조한율은 던전 바깥에서 내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얼마나 심각해 보였으면 이렇게까지 이야기할까.

여러모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방랑하는 구도자 : 그건 걱정하지 마. 그보다, 도움이 필요한데…….

조한율 : 네, 알고 있어요. 클리어 조건 말씀이시죠?

역시 운영자 권한으로 던전을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굳이 부연 설명을 할 것도 없이 알아들었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랑하는 구도자 : 그래, 역시 히든 클리어 조건을 찾아봐야 해.

현재 한국 헌터들의 최우선 목표는 ‘강예나’를 처치하는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 외 다른 대책이 없기는 하지만, 히든 클리어 조건이 나타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리고 이건 딱히 묘지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를 위해서였다.

‘그 녀석에게 이길 가능성…… 잘해 봤자 20퍼센트나 될까.’

만렙인 나를 상대로 보았을 때 20퍼센트라는 수치도 많이 쳐준 것이다.

조금 전 양태원이 ‘신력’이라는, 용사 클래스도 파훼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자체는 고무적이었다. 실제로 잘 먹히기도 했고.

다만, 그 녀석이 같은 수법에 또 당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한 번 호되게 당했으니 또다시 방심하지도 않을 테고.

이우연 말대로 지형적인 이점이라든가, 아이템을 사용하는 등 노력을 해 보기야 할 테지만…… 아무래도, 아무런 전력 손실 없이 이길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모두 전멸이다.

방랑하는 구도자 : 분명히 이 던전에는 히든 클리어 조건이 존재할 거야.

이게 제아무리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만들어 낸 던전이라고 한들, 결국은 시스템 내에서 굴러가는 것. 그리고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밸런스 패치를 해 주기 마련이었다.

언제나 죽었다 깨어날 정도로 고생해야 겨우 클리어하기는 했지만, 이번 던전에도 길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조한율 : 네, 아무래도 그래야 밸런스가 맞겠죠.

조한율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하기야 저쪽도 자칫하다간 한국의 상위 플레이어 스무 명 남짓을 잃을지도 모르는 판이다.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한율 : 보통 히든 클리어 조건은…… 던전 내 숨겨진 장소에 접근하거나, 보스와 관련된 특정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 나오기 마련인데요.

그렇다.

유령의 성 던전에서는 보스 몬스터의 지인과 특정 관계를 쌓고 암살을 시도했을 때 히든 클리어 루트가 떴고, 마석 던전에서는 새끼를 잃은 레비아탄을 달래는 제사를 지냈을 때 클리어 조건이 추가되었다.

즉, 이렇게 공략 베이스가 없는 던전에서 히든 클리어 조건을 발견하는 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희귀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괜히 히든 클리어 조건을 찾는답시고 전력을 분산시키느니, 주어진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낫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조한율 : 그래서 일단 던전 내 건물이란 건물과 몬스터를 코드화해서 다 뜯어보고 있어요.

나에게는 시스템 운영자라는 든든한 백이 있으니까.

조한율은 이런 식으로 운영자 권한을 사용해 던전의 히든 클리어 조건을 찾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운영자가 이러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이번 던전은 난이도가 워낙에 높다 보니 어느 정도의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상대가 반칙을 쓰기도 했고.

조한율 : 문제는 서울 필드가 너무 넓어서 히든 클리어 조건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에요.

방랑하는 구도자 : 필드 전체를 뜯어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조한율 : 음, 적어도 24시간은 더 주셔야 해요.

그것도 감지덕지할 판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만렙을 상대로 버티기에는 긴 시간이라 나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24시간이라…….

한강에 떠밀려 간 강예나가 정신을 차리고 우리를 찾아오기까지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조한율 : 그래서 말인데, 예나 씨. 말하기 조심스럽긴 한데요…….

방랑하는 구도자 : 뭔데?

조한율 : 필드 내 보스 몬스터가 ‘강예나’이니만큼, 예나 씨와 인연이 있는 장소가 히든 클리어 조건이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혹시 짐작 가는 장소는 없나요? 그쪽을 위주로 찾아보게요.

조한율 말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인연이 있는 장소라…….’

나는 휙휙 스쳐 지나가는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강을 건너는 커다란 대교를 다시 건너는 중이었기에, 한강을 기준으로 양분된 도시의 정경이 잘 보였다.

언제나 활기차고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빛나던 도시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폐허가 된 모습.

방랑하는 구도자 :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는데.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는 서울에 살긴 했지만, 이혼 후 할머니 손에 보내졌을 때부터는 일산 쪽에 살았다. 그래서 서울에 별다른 추억은 없었다.

조한율 : 아ㅠㅠㅠㅠ진짜요? 아예 짐작 가는 곳이 없나요?

덕분에 서울을 생으로 뒤지게 생긴 조한율이 울기에, 나는 그나마 없는 기억을 짜내 보았다.

방랑하는 구도자 : 그나마…… 열 살 때쯤 한강 공원으로 가출했던 기억 정도?

당시 부모님 이혼이 결정되고 우울해서 뛰쳐나와 한강 근처에 왔었다.

그때 어린애가 한강 근처에서 몇 시간이나 혼자 앉아 있다는 걸 이상하게 여긴, 지나가던 행인이 나를 발견하고 달래 주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 주소를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는 나를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집까지 데려다준 거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 덕분에 집에 가긴 갔다.

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어린애 입을 열게 하겠다고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니 핫도그 같은 간식까지 사다 주었던 게, 꽤 친절한 어른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별일 없이 집에 돌아간 게 천만다행이었군. 어린애가 보호자도 없이 몇 시간이나 혼자 있었으니 말이다.

방랑하는 구도자 : 그 외에는 진짜로 이렇다 할 추억의 장소가 없는데.

그리고, 내 얼마 없는 추억을 들은 조한율은 잠시 침묵하다가 어색한 메시지를 띄워 올렸다.

조한율 : 어어…… 그렇군요. 추억? 추억인가요, 그거?

조한율 : 그…… 제가 그냥 알아서 잘 찾아볼게요.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없다고 할 때는 없어서 그런 거라고.

왜 내 말을 믿지 않고 물어봤다가 혼자 뻘쭘해지는지 모를 일이다.

조한율 : 뭐, 사실 장소보다는 특정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킬 수를 채우는 조건이 걸려 있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요.

방랑하는 구도자 : 그건 또 왜?

조한율 : 제가 만약 던전을 코딩한다면 그랬을 테니까요.

역시 플레이어가 아니라 운영자 입장에서 상황을 봐서 그런가, 나와는 보는 시각이 전혀 달랐다.

조한율 : 운영자로서 보자면 이 던전은 플레이어들의 렙업, 파밍용으로 만들어진 던전이거든요.

조한율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지금 K대 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몬스터 출현 알람이 뜨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B급에서 C급 정도의 몬스터 무리였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 무리들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었다.

하기야 이런 던전이라면 몬스터 처치 관련 클리어 조건이 뜨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조한율 : 본래 이 정도 던전은 사실상…… 경험치 노가다 던전이라고나 할까요? 뜯어볼수록 완전 그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확실히, 레벨을 단기간에 올리려면 플레이어의 레벨에 비해 수준이 높은 몬스터를 잡는 게 유리하긴 하지만, 이렇게 적당한 수준의 몬스터 무리를 계속해서 공략하는 것도 경험치를 쌓는 데는 나쁘지 않다.

“하하하. 손맛 한번 죽이네! 다들 죽어라!”

그나저나 아까 이우연과 내가 그랬듯, 차 위에 올라타 신나게 몬스터들에게로 마법을 흩뿌려 대고 있는 류세연은 아주 즐거워 보였다.

솔직히 저 여자, 좀 무섭다.

“제발 조용히 좀 해!”

그리고 그런 류세연을 두고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는 김하현도 만만치 않았다.

“네가 그러니까 미친개라는 말이나 듣는 거야!”

“뭐?! 우리 두부가 어때서!”

“제발 개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심지어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도 류세연에게 보조 스킬은 착실히 사용하는 게 상당히 손발이 잘 맞아 보였다. 한두 번 맞춰 본 솜씨가 아니었다.

뭐, 둘 다 레벨은 착실하게 올릴 듯싶었다.

조한율 : 그러니까 제가 볼 땐 ‘강예나’를 처치하라는 조건이야말로 오히려 그쪽 타르타르 소스맛 운영자가 억지로 끼워 넣은 조건 같아요. 그냥 추측이지만.

추측이라고는 해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같은 운영자 입장인 조한율이 하는 만큼 사실상 저게 진실이라고 봐야겠지.

어디까지나, 나를 타깃팅해 만들어진 던전.

던전에 개입함으로써 운영자 본인에게 주어지는 리스크를 모두 감수하고서, 그저 나만을 노린 던전이다.

“그럼, 그 운영자 놈은 대체 뭘 원해서 이런 걸 보여 준 것 같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은 괜한 생각에 골몰할 때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조한율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어 낸 건가.

조한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곧 메시지가 떴다.

조한율 : 그럼, 저는 다시 일하러 갈게요. 제가 다른 클리어 조건을 찾아낼 때까지 잘 버텨 주세요ㅠㅠ

방랑하는 구도자 : 그건 걱정 마.

그리고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다시 한번 타자를 쳤다.

방랑하는 구도자: 혹시 일이 꼬이더라도 한국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해서든 내보낼 테니까.

그러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가, 곧이어 대량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거의 다 ‘ㅠ’로 도배된 메시지였다.

눈앞이 다 어지러울 정도였다.

조한율 : 조한율 : ㅠㅠㅠ그런 문제가 아니라고요‾͟͟͞(((ꎤˋ⁻̫ˊ)—̳͟͞͞o

조한율 :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요!!(ง ͠° ͟ʖ #)ง

방랑하는 구도자 : 뭐야. 저거 어떻게 친 거야?

조한율 : 안 알랴줌

- 운영자, ‘조한율’과의 채팅이 종료되었습니다.

“…….”

기묘한 오타를 마지막으로 대화가 끊겼다.

나는 멀뚱히 조한율이 마지막으로 보낸 정체불명의 이모티콘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기는 했다만, 역시 심란하기는 했다.

애초에 이 던전 자체가 나 때문에 생긴 데다, 또 다른 ‘강예나’의 손에 한국 헌터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게다가 대체 묘지기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도 한몫했다.

나를 죽이고 내 세계로 대신 가겠다니.

‘……진심이 아닌 것 같은데.’

막연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 딱히 근거는 없었다.

검에 실린 살기는 진짜였고, B루트를 탄 그 녀석이 A루트를 탄 나를 부러워하는 것도 사실로 보였다.

다만, 그래도.

‘뭔가 기묘하단 말이지.’

단순한 희망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물론 그저 이런 단순한 감에 내 목숨을 비롯해 다른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의 목숨을 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때였다.

무언가 어깨에 툭, 하고 얹어지는 느낌이 났다.

돌아보니 이우연의 고개였다.

반사적으로 얹힌 머리를 쳐 낼 뻔했지만 겨우 멈추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우연이 곤히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창백한 얼굴에는 피곤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길게 늘어진 속눈썹 그림자 아래로는 볼이 움푹 파여 있다.

어쩐지 같은 차에 탄 것치고 내내 조용하다 싶더니, 잠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피곤할 만하지.’

진언을 파훼당한 와중에, 이선의 진언 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제공하느라 남은 마력까지 쭉 빨린 상태다.

게다가 이우연의 정확한 능력치는 몰라도 클래스가 마검사이니만큼 체력 수치는 나보다 낮을 테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잠에 드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상 기절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외려 이렇게까지 피곤한 주제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이우연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자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운전을 하는 이름 모를 헌터가 계속해서 룸 미러로 나와 이우연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영 신경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곤에 기절해 버린 동료 초과 친구 미만인 녀석을 깨우기도 뭐해서.

‘……여기서 나가면, 저번에 못 한 말을 마저 해야겠네.’

아마 그게 도리에 맞는 일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에 머리 하나의 무게를 얹은 채 파괴된 도시의 정경으로 눈을 돌렸다.

아주 잠깐의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그리고 얼마 후 도착한 K대 병원.

서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는지 군데군데 손상이 되긴 했지만, 박소희 헌터의 맵핑대로 병원 건물 안에 몬스터 군락이 생성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생각보다 쓸 만한 약품이 남아 있네요.”

의료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헌터 몇이 조사한 결과, 어느 정도의 구급 물품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병실 내 멀쩡한 침대를 모아 부상자들을 눕혀 두니 이미 한낮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난 만큼 부상자 중에서도 깨어나는 헌터들이 존재했다.

“클리어 조건이 왜 이래?”

“방랑하는 구도자를 처치하라고……?”

당연하게도 본인들이 기절한 사이 추가된 클리어 조건을 확인한 자들의 반응은 이랬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중, 안타깝게도 결국 정신을 차리고야 만 김성연 헌터의 반응이 제일 격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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