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05화 (206/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05화

거리가 불꽃에 휩싸이는 것과 동시에, 그것을 지켜보던 헌터들의 입에서는 씁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적을 상대로 함정을 판 것이라고는 해도 이제껏 한국의 헌터들이 상대해 왔던 적은 대부분 몬스터였으며, 사람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또한, 적인 것과는 별개로 저 지옥 같은 광경에 제 발로 들어가는 여자의 모습이 어딜 보나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어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것도 아니었다.

여자가 갖추고 있는 것은 가벼운 가죽 갑옷과, 손에 들려 있는 검 한 자루뿐.

어딜 보나 저 포화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장비는 없어 보였다.

“설마…….”

누군가의 입에서 기대인지, 혹은 절망인지 모를 말이 새어 나왔다.

그 혼란 사이로, 여자는 흔한 기합 소리 하나 없이 제 머리 위로 무너지는 건물 위로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이선은 완드를 꾹 잡았다.

이미 저 ‘강예나’가 검으로 마법을 파훼할 수 있음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마법이 아닌, 실제 물리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함정을 판 것이다.

그런데, 역시라고 해야 할까.

“와, 대박.”

적임에도 불구하고 곁에 선 헌터 하나가 감탄사를 내뱉는 것이 들렸다.

콰콰쾅!

검이 휘둘러진 순간, 폭발과는 또 다른 폭음이 울려 퍼졌다.

여자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콘크리트 조각이 가루처럼 부서졌다.

마법사 클래스인 이선으로서는 저 검의 움직임을 모두 따라갈 수 없었지만, 검에 실린 힘은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저게 가능해?”

아무리 시스템이 나타나고, 능력치를 수치상으로 올리면서 플레이어들이 인간 같지 않은 힘을 각성했다고는 해도, 한계는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이 붕괴하는데 그걸 맨몸으로 버텨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금 저 불꽃 속에 서 있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위 같은 콘크리트들을 검으로 휘둘러 깨 버리는 것을 보면, 휘두르는 것이 검이 아니라 무슨 판 초콜릿을 깨는 망치쯤 되어 보였다.

쿠콰쾅!

“지금 저거 주먹으로 친 것 같은데?”

그 말 그대로였다.

심지어 여자는 때때로 검을 사용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자신에게 날아드는 건물을 쳐 냈다.

인간의 주먹이 콘크리트에 부딪혔는데, 부서지는 게 콘크리트 쪽이라니.

우악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저거…… 말이 되냐?”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선이 조장인 3조의 헌터들은 모두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실, 같은 헌터라고 할지라도 마법사 클래스들은 물리 계열 클래스 헌터들의 힘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법이라는 불가사의하고 화려한 힘을 사용하는 마법사에 비해, 직접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는 클래스들은 아무래도 눈에 덜 띄기 마련이다.

물론 김성연 길드장을 필두로 한국에도 나름대로 우수한 검사들이 있다지만, 그런 김성연조차 마법사 클래스 헌터들의 도움이 없으면 공략대를 편성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검사 클래스만으로는 화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압도적인 검사의 실력을 보게 되면…….

“미쳤다. 저게 마법 아님?”

검이 한 번 휘둘러지자 거리를 휩싸 안고 있던 불꽃이 연기처럼 사그라지는 것을 보며 헌터 하나가 신음했다.

“저거 그 유명한 무스펠헤임의 불꽃 아닌가? 어지간한 A급 몬스터 무리도 처치할 수 있는 아이템인데. 이건 말도 안 돼…….”

“대체 레벨이 몇이야?”

“자, 집중합시다!”

동요하는 헌터들 사이로 이선이 외쳤다.

그 동요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이선은 애초에 저 강예나를 이 정도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강예나조차 단신으로 S급 몬스터를 한 방에 제압했는데, 저쪽은 심지어 그보다 더 강한 존재다.

겨우 하루 전, 모든 한국 헌터를 단신으로 제압했으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이선은 현재 저 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류세연과 김하현이 포함되어 있는 그룹에게, 텔레파시 스킬을 이용해 메시지를 보냈다.

- 준비됐어?

- 물론!

적이 막 거리를 벗어나려고 할 즈음이었다.

끼이익!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전깃줄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고가 도로에 매복해 있던 류세연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막 걸음을 내디디려던 여자의 눈이 류세연을 포착했다.

그리고 여자의 팔이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어딜!”

먼 거리에서도 이선은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폭풍처럼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마력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류세연다운 마력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마치 전기처럼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그러나, 폭풍의 눈 한가운데 있던 여자는 평온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 손에는 여전히 은은한 광채를 휘감은 검이 들려 있었다.

“머리가 나쁜가? 나한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학습했을 줄 알았는데.”

“그야 그 말대로.”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마구잡이로 흘러넘치는 마력 때문에 허공에 둥둥 떠오른 류세연이 완드를 꽉 잡고 있었다.

“마법으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쯤은 알지!”

“……그런데?”

“그래서 다른 걸 준비했다, 이 말이야!”

쿠르릉!

지반이 흔들릴 정도로 일대에 격한 움직임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는, 강한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력을 극한까지 끌어모은 류세연이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죽어!”

쿵!

쿠구궁!

여자의 머리 위로 고가 도로의 일부가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 위로 밀어닥치는 붕괴를 보면서도 여자는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지겨운데, 이거.”

그야 그럴 법도 했다. 저 높은 고층 건물들이 밀어닥쳤는데도 멀쩡히 걸어 나온 사람이니까.

그러나 한국의 헌터들이 준비한 것도 겨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끼긱!

끼기긱!

무심히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로 떨어지는 도로의 일부를 베어 버린 강예나의 귀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소리이기도 했다.

‘이건…….’

자동차가 굴러가는 소리?

강예나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곳에는, 확실히…… 낯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적어도 근 몇 년간 볼 일이 없었던 광경.

고가 도로 위, 버려진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본래라면 도로가 무너지며 그대로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져야 했었던 그 자동차들은 모두…….

강예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오, 이건 제법이네.’

파지직!

자동차들에 묶여 있던 끊어진 전깃줄에 강렬한 빛이 깃들었고.

다음 순간, 그 빛이 폭발했다.

펑! 퍼퍼퍼펑!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된 자동차들이 강예나를 향해 떨어졌다.

물론, 님페의 바람을 발동해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런.”

강예나는 혀를 찼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어제와 같은 그 ‘알 수 없는 힘’이 발목을 속박하고 있는 듯 보였다.

‘왜 계속 소용도 없는 건물을 부수나 했더니, 내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나.’

물론 어제와 같은 물벼락은 사양이기에 평소보다 주변 기척에 신경을 쓰고 있긴 했으나, 아무래도 시선이 위에 고정되어 있다 보니 발치를 맴도는 무언가를 눈치채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별수 없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불덩어리를 마주하게 된 강예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뭐, 귀찮게 되기야 했지만.’

마법이 아닌 만큼 폭발해 버린 자동차를 아이템처럼 파훼해 버릴 수는 없다. 저 한국의 헌터들 또한 그것을 노린 거겠지.

다만, 겨우 그런 걸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후끈한 열기가 닥쳐오자마자 강예나는 검을 휘둘렀다.

꺾이지 않는 검은 상대가 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불덩어리가 된 고철을 갈랐다.

쾅! 콰쾅!

하지만 이번에는 화염이 사라지진 않았다.

불타는 쇳덩어리가 강예나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지는 못했으되, 자동차가 도미노처럼 떨어지며 진정되지 않는 폭발과 불꽃이 주변을 점점 좀먹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청룡의 힘 때문에 계속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고철 덩어리들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

“……윽.”

무엇 하나 타격을 줄 수 없을 것 같던 피부에 점점 화상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 지금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 헌터들이 준비한 마지막 한 방이 다가왔다.

끼기기긱!

불길한 소리에 강예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너진 고가 도로와, 불타오르는 자동차.

그리고…….

“허어…….”

여기가 K대 입구 역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레일이 거대한 굉음 소리를 내며 뚝, 하고 끊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력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끽.

끊긴 레일 사이로 지하철 차량이 모습이 드러났다.

폐허가 된 도시에 버려져 있던 동안 흉물이 다 되어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은, 사실 인공적인 구조물이라기보다는 몬스터에 가까웠다.

그 지하철 차량의 선두가, 끊어진 레일 밑으로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끽, 끼긱!

동력이 없어 마력을 주입해 억지로 움직이는 바퀴에 불꽃이 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류세연이 주먹을 쥐었다.

“이걸로도 안 죽으면 말도 안 돼!”

지하철 한 량 무게만 해도 대략 30톤 이상.

그런 차량을 몇 대나 엮은 채로 머리 위에 직격시키는 셈이니, 아무리 시스템을 통해 강해졌더라도 이건 죽지 않으면 이상할 수준이었다.

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작자에게 먹힐 만한 작전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강예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머리 위로 아주 천천히, 거대한 쇠로 된 용이 그 몸을 숙이고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얼마 만이지?’

이렇게 목숨을 건 전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목숨이야 언제나 걸어 왔다.

눈을 뜬 순간 모든 것이 멸망한 세계에서 눈을 떴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거쳐 온 전투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분명…….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켜야 할 게 있는 전투라는 거.’

그렇기에 절대로 패배할 수는 없다.

강예나는 검을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의지 따위는 전혀 개입되지 않은 이 빌어먹을 운명에 이대로 굴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 헌터들이 이 세계에 온 순간부터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을 향해, 강예나는 검을 들었다.

“이렇게 뒈질 수는 없지.”

잘 지켜봐라.

휘두른 용사의 검이, 견정한 의지를 담고서 고요히 울었다.

*   *   *

“아, 미친…….”

이선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제껏 그 어떤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서도 드러내 놓고 한탄한 적은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이선의 반응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와…… 으아…….”

“저걸…… 뭐,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모두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이선을 비롯해 2조, 3조의 헌터들은 모두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한 건물에서 ‘강예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하철 차량이 강예나를 직격하는 것을 보면서 이 작전은 성공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분명, 몇 백 톤에 달하는 고철덩어리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으깨졌어야 할 인간.

본래대로라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자욱한 흙먼지와, 지하철 차량의 잔해뿐이었는데…….

“저게 인간이야……?”

모두가 그 말에 동감했다.

반으로 갈라져 버린 지하철 차량.

하늘을 가를 것처럼 치솟은 빛과 함께, 지하철 차량이 반으로 쪼개진 것이다.

반으로 갈라져 버린 고철 덩어리는 자동차를 휩싼 폭발 위로 떨어져, 화염 속으로 깊게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화염 속,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

물론 아예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타격이 없을 수는 없었는지 아까 전처럼 당당히 두 발로 선 대신,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검으로 몸을 지탱한 모습이었다.

폭발의 화염에도 휩쓸린 탓인지 부상이 군데군데 엿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강예나는 살아 있었다.

심지어 치명타도 입지 않은 듯 고개를 든 얼굴에는 여전히 형형한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두려움.

“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그래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과연 이선 헌터였다.

어쨌든 이번 공격이 실패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힌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클리어 조건이 갱신되었다.

그러니 굳이 정면 승부에 집착할 것 없이, 이대로 남은 시간 동안 도망 다니기만 해도 클리어가 가능했다.

“작전대로, 일단 우리는 뒤로 물러서서……!”

콰쾅!

하지만, 그때였다.

빛나는 무언가가 헌터들이 숨어 있던 건물의 모퉁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콘크리트 일부가 박살이 나며 건물이 흔들렸다.

“으, 으아아악!”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헌터들의 비명이 울렸다.

이선 또한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 상태로도 검을 휘둘러 검기를 쏘아 보낸 여자가 웃고 있었다.

이쪽의 위치를 들킨 것이다.

그 눈길은 건물 속에 숨어 있던 헌터들을 정확히 향하고 있었다.

순간적이나마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렬한 눈빛에, 먼 곳에 있음에도 확실하게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었다.

“……간만에 재밌었어.”

물리적인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모든 헌터들의 정신을 할퀴었다.

마치 세계를 멸망시킨 최종 보스라도 되는 것 같은 강렬한 모습이었다.

“이, 이선 헌터!”

“어떻게 하죠? 이렇게 위치를 들키면……!”

“진정하세요! 아직 거리가 있으니까, 문제는 없어요!”

이선 또한 당황하기는 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위치를 들켰음에도 저 성격에 곧장 달려오기는커녕 검기만 날린 데다, 위치도 빗나갔다.

즉, 타격을 주기는 주었다는 말이다.

“1, 2조의 보조를 받으면서 이대로 대공원 쪽으로 대피를……!”

그렇게 지시를 내리려던 때, 이선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검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예나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선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당황했다.

물론 ‘방랑하는 구도자’, 강예나는 한국의 공략대에서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지형지물의 파괴를 이용해 타격을 주기로 한 만큼, 뒤로 물러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앞으로 나서다니.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왜?’

속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위험한 것도 당연했다. 저쪽 보스 강예나의 목적이 또 다른 자신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이선 헌터, 어떻게 하죠?”

“김숙자 교수님이 실드를 보조할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과는 별개로, 이선은 현재 한국 헌터를 이끄는 조장의 위치에 있었다.

갑자기 작전을 어기고 홀로 튀어 나간 강예나를 위해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

이선은 입술을 깨물고 강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체…… 뭘 어쩌려고!’

*   *   *

그리고, 그 심경이 궁금한 것은 이쪽 강예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면을 뒤집어쓴 여자를 올려다보며 강예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작전은 나름대로 잘 먹혔다.

과연, 몇 백 톤에 달하는 고철덩어리는 아무리 만렙인 강예나에게도 베어 내려면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성공은 했다만 덕분에 손목이 너덜거릴 정도로 나가 버렸고, 솔직히 말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회복해야 할 성싶었다.

“너는 이 틈을 타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상태인 주제에 어쩌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태도였지만, 강예나에게는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그야 그랬다.

이 세계에서 시스템상 만렙을 찍은 후,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적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으니까.

설령 그 힘으로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세계라고 해도.

“설마 어제와 같은 요행을 바라는 거라면 그런 꿈은 깨도록 해.”

마력과 달리 성검으로 파훼할 수 없었던 그 ‘힘’은 분명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아마도 오래 쓰지는 못하는 듯했다.

방금 자신의 발을 속박하고 있던 힘이 사라진 것만 보아도 그랬다.

“이제 날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했는데도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상할 정도로 곧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 이후, 여자가 입을 열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지?”

“뭐?”

“너, 시간제한이 걸려 있어서 곧 뒈진다면서.”

“…….”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한 강예나는 픽, 웃어 버렸다.

“운영자와 알게 되었다더니, 그새 나를 조사했나 보군. 이거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이 클리어 조건을 상대에게 들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이건 정말로 ‘지켜야 할 것’이 걸려 있는 전투니까.

“그래, 맞아. 나한테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어. 하지만, 그래서 뭐?”

강예나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손에 착 감겨 오는 파트너.

“내가 고작 너 하나 따위를 죽이지 못할까 봐.”

여전히 하루 반나절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하루 반나절.

혹은, 겨우.

강예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단둘이 승부를 내자.”

그리고, 그런 강예나를 바라보며…… ‘방랑하는 구도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이상하네. 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