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10화
“그건……!”
양태원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보며 류세연이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색찬란한 빛을 뿜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법한 자태.
한국에 시스템이라는 것이 나타난 후 아무도 정복하지 못했던, 백록담 정상에 잠들어 있던 청동검.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랭킹 1위인 방랑하는 구도자…… 아니, 강예나 헌터가 그 청동검을 클리어 보상으로 받았다는 것 또한.
“그런데 저걸 왜 저 녀석이 가지고 있어?”
“그러게. 방랑…… 아니, 강예나 헌터에게 받은 건가?”
헌터들의 이목이 모두 양태원이 들고 있던 청동검에게로 쏠렸다.
모두가 갈망했던 아이템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것도 어린 녀석이 손에 넣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약간의 적대감이 흘렀다.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양태원의 몸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던 청룡의 거대한 몸이, 마치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소년을 보호하듯 조금 더 가까이 움직였다.
그때 이우연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 말이 맞아.”
그렇지 않아도 급박한 상황에 이야기가 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김숙자 교수 또한 그랬다.
“지금 중요한 건 그 청동검이 악마 계열 몬스터에게 잘 듣냐, 아니냐지. 그래서 어떤가, 양태원 헌터.”
“저도 얼마 전 수리산 던전 봉인 때 외에는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양태원이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와장창!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서울을 감싸고 있던 막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물론 이우연이 경고하기는 했으되, 너무도 빠른 전개에 헌터들은 일제히 당황하고야 말았다.
“방어막이 벌써 부서졌다고?”
“어떻게 하죠? 빠르게 대피를…….”
그리고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땅울림이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쿵!
쿠쿵!
그렇게 지진처럼 땅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으아아악!”
“귀가 아파!”
몇몇 헌터가 귀를 감싸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두가 어찌 된 일인지 몰라 당황한 사이,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한 양태원이 다가섰다.
“방어막이 깨져서 악마들의 마기(魔氣)가 침투한 거예요. 아무래도 기감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빠르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양태원의 손가락에 푸른빛의 청명한 기운이 맴돌았다.
“일단 제 기운을 불어넣은 다음 수호 부적을 나눠 드릴게요. 이게 있으면 마기에서 몸을 지킬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기감이 예민한 헌터 중에는 김성연도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사보다는 육체를 사용하는 검사 클래스 헌터들이 가장 먼저 이상을 감지한 탓이었다.
“윽, 머리가……!”
김성연이 머리를 움켜쥔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검사 클래스 중에서는 가장 능력치가 높은 만큼 타격도 큰 모양이었다. 전날 전투에서 입은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는 탓도 있었다.
그런 김성연 근처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헉,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그, 양태원 헌터! 얼른 길드장님에게도 조치를…….”
그렇게 말하던 영원 길드 소속의 한 헌터는 순간적으로 헙,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는 몇 달 전, 마석 던전 레이드에 참여한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당시 김성연 길드장의 배를 걷어차 버린 데다, 칼까지 목에 들이민 방랑하는 구도자…… 그러니까 강예나 헌터 때문에 묻히기는 했지만, 그 전에 무슨 일이 원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 양태원 헌터 또한 김성연 길드장의 뺨을 후려쳤었다는 것을.
‘아, 안 도와주려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김성연 길드장은 자신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타입이었다.
한 길드를, 그것도 영원 길드처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그만큼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판정된 이에게는 가차가 없었다.
당장 영원 길드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밥줄이 끊기는 중소 길드도 허다했다.
그리고 그건, 눈앞에 있는 양태원이라는 어린애를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랭킹 1위인 강예나가 대놓고 싸고도는 데다, 영원 길드의 간판인 이우연이 항상 끼고 다니는지라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으되, 어쨌든 김성연이 양태원을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는 건 업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알았다.
만일 이우연의 비호가 없었더라면 기반도 없는 어린 헌터 따위 진작 헌터계에서 고립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판이니 양태원이 굳이 김성연 길드장을 도와줄 리가 없었다.
어지간한 호구가 아닌 이상은.
“……잠시 기다리세요.”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양태원은 순순히 김성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손가락에 보기만 해도 정화될 듯한 깨끗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며 영원 길드의 헌터는 입을 벌렸다.
“어, 어어…… 가, 감사…….”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죠.”
맑은 기운이 감도는 손가락을 김성연의 관자놀이에 가져다대며 양태원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그게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해야 할 도리다.”
“네?”
“그러니까 저한테 감사하실 필요 없다고요. 그리고 무상으로 도와 드린 거 아니니까. 나중에 비용 청구할게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양태원이 불어넣어 준 기운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머리가 아파 뒹굴던 김성연의 얼굴에 곧장 안색이 돌아왔다. 언제 바닥을 뒹굴었냐는 듯, 김성연은 다소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야 민망하기도 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장(長)이 고작 스무 살짜리를 견제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아 버리다니.
“……청구서는 언제든지 보내 주게.”
양태원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바닥에 뒹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우연은 내심 혀를 찼다.
‘정말 아직 어리다니까.’
언제는 김성연 길드장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난다고 해 놓고선, 언제 자기가 그랬냐는 듯 도와주는 걸 보면 아직 어리긴 어렸다.
도와주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조금쯤은 비싸게 굴어도 될 텐데 말이다.
그래도 뭐, 저런 순수한 면이 마음에 들어서 곁에 두고 있는 것이기는 했다.
‘이쯤 되면 내 취향에 단단히 문제가 있어.’
당장 강예나만 해도 그러니 말이다.
“다들 일단 진정하게.”
그리고, 양태원이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있는 동안 김숙자 교수가 혼란해하는 헌터들을 빠르게 진정시키고 있었다.
“상황은 변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어. 안 그런가? 앞으로 30시간만 버티면 그만이야. 이만하면 난도가 높은 건 아니지.”
“그, 그렇지만 교수님. 그 보스 몹만 해도 엄청 강했는데 악마들까지 몰려온다면…….”
“서울은 넓어. 악마들이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제법 지날 테고, 게다가 그 보스…… 어쨌든, 그자도 이렇게 악마들이 몰려오는데 우리만 쫓아오진 않을 거야.”
역시나 김숙자 교수는 노련했다.
침착하게 사실만을 짚어 내는 말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었다.
옆에서 이선 또한 거들었다.
“또 지금 우리 파티에는 악마와 상극인 히든 클래스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전에 양태원 헌터와 몇 번 협동 레이드를 뛰었는데, 정말 대한민국 최고의 무당이라는 명성이 헛된 말이 아니라니까요. 다들 놀라실 겁니다.”
그 와중에 김성연 길드장과의 관계로 은근히 왜곡되었던 양태원의 평판을 이선 헌터가 올려 주기까지.
여러모로 이우연이 나서지 않아도 될 분위기였다.
그래서 이우연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필연 : 그쪽 상황은 어때?
일단, 아직도 합류하지 않은 강예나 쪽 상황부터 알아봐야 했다.
강예나의 목숨을 걱정해서 묻는 건 아니었다.
방어막 너머로 몰려든 악마들을 본 순간 보스 강예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파악했으니까.
한국 헌터들을 해치기 않기 위해 일부러 외부에서 침입자를 끌어온다니……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 할 일이었지만 상대는 그 강예나다.
입으로야 뭐라고 하든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용사 같은 인간이지 않나.
이젠 무슨 일을 벌이든 간에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조한율 : 아, 몰라.
조한율 : 이대로 둘이서 사이좋게 악마들 레이드 뛰겠대.
“뭐?”
너무 놀란 나머지 이우연은 저도 모르게 가상 키보드를 치는 대신 육성으로 내뱉었다.
옆에 서 있던 류세연이 이우연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둘이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더니 어느새 화해한 것은 그리 놀랄 것도 아니었다. 강예나는 어쨌든 본인이 납득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뒤끝이 있는 성격은 아니니까.
이우연이 놀란 것은 다른 것 때문이었다.
‘한국 헌터들과 합류할 줄 알았는데.’
그야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많은 편이 유리할 테니까.
보스 강예나가 강한 것이야 충분히 알고 있다만, 이우연은 보스 강예나의 클리어 조건인 ‘침입자를 배제하라.’라는 조건에 숨겨져 있는 필수 조건이 하나 더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 추측이었다.
지난번 유령성 던전에서도 백만의 병사 중 30퍼센트 이상을 처치하라는 조건이 붙었듯이, 이번에도 침입자라는 조건이 불명확한 만큼, 어느 정도 이상의 숫자를 없애야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는 그 클리어 조건을 채울 수 없다. 단 한 명으로는 저 벌떼 같은 무리를 상대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시간이 무한정으로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30시간이라는 제한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도 강예나는 기본적으로 검사 클래스였다. 그러니 아무래도 광범위한 적을 대상으로 할 때는 화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우연을 비롯해 진언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지원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이우연은 보스 강예나가, 한국 헌터들을 살려 주는 대신 악마들을 처치하는 데 투입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 단둘이서 레이드를 뛴다고?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검사 둘이서는 물리적으로 화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필연 : 아니, 대체 왜?
혹시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다른 클리어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아주 골을 때리는 걸작이었다.
조한율 : 어차피 악마들의 목적은 본인들인데, 이 싸움에 남이 말려드는 게 싫대.
이필연 : 뭐?
조한율 : 한국 헌터들이야 앞으로 30시간만 버티면 살아서 돌아갈 텐데, 괜히 본인들하고 합류했다가 목숨만 버리는 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그냥 둘이서 알아서 하겠대!
오죽 답답했으면 문자 하나하나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이우연은 뚝, 멈췄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의 계산기가 냉정하게 돌아간 탓이다.
그리고 조한율 또한 문장마다 짜증이 배어 있는 것치고, 그다음 메시지는 냉정했다.
조한율 : 틀린 말은 아니야. 솔직히 지금 저쪽에 합류하는 것보단 지금 위치에 머무르면서 버티는 게 한국 헌터들의 생존에는 훨씬 유리하긴 해.
그거야 그렇겠지.
이우연은 이성적으로 그 말에 동의했다.
사실 한국 헌터들 입장에서야, 악마들과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기는 했다.
심지어 전방에서 강예나 두 사람이 어그로를 끌어 준다면 더더욱.
두 여자가 그렇게 날뛰면서 일종의 방어선 구축을 하게 된다면, 악마 녀석들이 여기까지 당도조차 못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설령 몬스터 몇을 흘린다고 해도 저 강예나 두 사람이 전방에 있는 이상, 메인이라고 할 법한 높은 등급의 몬스터들이 여기까지 닿기는 어렵겠지.
게다가 정말로 서울에 몰려온 악마의 목적이 강예나라면 더욱더.
그러니 강예나 말대로 여기에서 이대로 안전하게 있으면, 그걸로 살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단지, 그렇게 되면 지원받을 길 없이 단둘이서 악마들과 맞서야 하는 강예나 쪽의 생존 확률은 확 줄어들겠지만.
‘물론 강예나도 거기까지 생각했겠지.’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그게 강예나란 인간이다.
조한율 : 대한민국 서버의 운영자라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거기 있어 주면 좋겠어. 들어간 헌터 모두를 잃을 수는 없으니까.
강예나에게 빠진 티를 풀풀 내는 것치고는 냉정한 이야기였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이우연도 조한율의 성격…… 아니, 운영자로서의 신념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헌터들은 언제나 던전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기로에 서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한율은 관조자일 수밖에 없는 일개 운영자로서 감히 목숨의 경중을 판단할 수 없기에, 사감을 집어넣는 대신 그나마 눈에 보이는 수치인 숫자로 판단의 기준을 세우겠다며 누누이 말해 왔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겠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있기보다는 악마들을 처치하러 가고 싶은데요.”
이우연은 메시지창을 외면한 채 눈앞의 한국 헌터들에게 말했다.
그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이우연에게로 향했다.
막 다른 사람들에게 양태원을 자랑하고 있던 이선의 목이 돌아갔다.
이선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뭐, 뭐라고요?”
“이왕 몬스터들이 몰려오는데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아깝죠. 레벨 폭업에 딱 좋을 것 같은데. 아이템도 제법 나올 테고.”
이전 수리산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그렇고, 던전의 필드가 넓을 경우 몬스터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찾아볼 필요도 없이 몬스터들이 찾아와 준다는데, 찾아갈 수고를 더는 셈이다.
이우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경험상 B급 악마를 20마리 정도 없애면 1업 정도는 하더라고요. 뭐, 레벨 20대 때 이야기기는 하지만.”
“뭐? 정말?”
그 이야기에 가장 먼저 눈을 빛내며 나선 것은 물론 류세연이었다.
류세연 외에도 이우연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는 헌터가 적지 않았다.
“하긴 악마는 희귀한 몬스터긴 하지.”
“오히려 렙업할 기회인 건가?”
그럴 줄 알았다.
목숨을 걸고 헌터가 된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강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
각자 목적은 다를지언정 비교적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헌터가 된 만큼, 강해지는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바라는 일이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에 들어온 것은 대부분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헌터들이다.
다들 향상심이 없는 인간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점을 십분 활용하며 이우연은 입을 열었다.
“이왕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는데 활용해야죠. 여기에 숨어서 살아남고 싶은 분이 있다면 말리지야 않겠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이우연은 일부러 말을 한 번 끊고, 헌터들을 둘러본 후 씩, 웃으며 이어 말했다.
“다들 언제까지 짐짝으로 남아 있을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
그 노골적인 도발에 헌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심지어 평온을 유지하고 있던 김숙자 교수마저 눈썹 한쪽을 치켜올렸다.
조한율 : 아. 미친 새끼.
조한율의 반응은 무시했다.
그도 그럴 게, 이우연은 본인이 틀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령성 던전을 비롯해 레비아탄을 지나 이번 던전까지…… 비교적 높은 수준의 던전을 공략할 때 자신 앞에 있던 헌터들은 도움이 됐냐고 질문을 던져 보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 모든 던전에서 강예나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진입한 헌터 모두가 전멸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냥 목숨이나 부지하자고 여기 들어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야 살아남는 게 제일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이우연은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짐짝으로 살아남는 것은 이우연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이렇게 마냥 도망치기만 할 거라면, 헌터 같은 직업은 때려치우는 게 나을 겁니다.”
그야 강예나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안다.
그런 이레귤러처럼 나타난 존재를 무작정 따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강예나가 아무리 동화 속에서 등장할 법한 용사 같은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인간이다.
그냥,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누군가 한 사람의 어깨로만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도 안 되고.
“언제까지 랭킹 1위가 독주하도록 놔둘 겁니까? 적어도 뒤처지지는 말아야죠.”
가장 맨 앞에서 길을 열지는 못할지언정,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그 등을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뒤를 쫓아 달려 나가야 한다.
그게 함께 살아간다는 거니까.
이우연은 허리에 찬 검을 툭툭 치며 선언했다.
“그래서, 저랑 같이 가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