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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11화 (21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11화

현 시스템상 공식 랭킹 4위, 이선.

랭킹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정체 모를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의 존재 때문에 묻혔지만, 혼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이후에는 이선에 대한 이야기도 제법 나오곤 했다.

평소 자주 언론에 노출되는 김성연 길드장이나 김숙자 교수, 조한율.

그리고 반쯤 연예인인 백사현이나, 가만히 있어도 외모 때문에 거론되곤 했던 이우연에 비하자면 이선의 높은 순위는 뜬금없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매우 의아해했다.

왜 이선이 랭킹 4위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이선은 이렇게 답할 수 있었다.

‘그야 실력이 아니라 업적치로 순위를 매겼으니까…….’

한국 시스템에서 매긴 랭킹은 실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던전 클리어 후 받은 공적을 계산한 업적치로 정해진다.

물론 그 업적치와 실력은 어느 정도 비례하기는 하겠지만, 실력과 랭킹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족을 더하자면 정부 소속 헌터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고, 본인이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조용히 살고자 하는 성향인 것도 있었겠지만.

즉, 이선이 랭킹 4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랭킹 11위인 류세연보다 훨씬 강해서라기보다는…….

“24시간 던브에 동원되는 공무원 인생…… 사직을 청하고 싶다…….”

콰콰쾅!

벌레처럼 모여드는 악마들을 향해 거대한 불꽃을 날리며 이선은 한탄했다.

“초과 수당이라고 해 봤자 쥐꼬리만 하고…….”

“그러게 누가 공무원 하래? 헛소리하지 말고 집중해!”

멀리서 용케도 이선의 한탄을 들은 류세연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 도움 안 되는 자식.

이선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완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쨌든 간에 그런 연유로 정부 소속 공무원 헌터인 이선은, 랭킹 4위라는 자리에 오를 정도로 많은 던전을 클리어해 왔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극단적인 상황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이선이 보기에도 이 던전은 정상이 아니었다.

‘몬스터 숫자가 너무 많잖아.’

현재 한국 헌터들의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은 A급 몬스터들이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 광화문.

물론 이 사실은 박소희 헌터의 맵핑 덕분에 알아낸 것이다.

다만, 그 광화문까지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자동차로 30분이면 도달할 거리였지만, 가는 길목마다 몬스터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방어막이 완전히 깨어진 후, 서울 안으로 몰려온 몬스터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몬스터 출현을 알리는 시스템창은 지나간 메시지가 너무 많아 보기도 어려운 상황.

그 드넓은 서울 하늘이 온통 새까맸다.

거대한 말벌 형태를 한 몬스터가 하늘을 뒤덮어 햇빛이라곤 한 점도 비치지 않았으며, 땅에는 어지간한 인간의 팔뚝만 한 갈색 메뚜기가 거대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소리가 적막만이 감돌던 도시를 모두 메울 정도였다.

이미 폐허가 된 도시는 더욱더 지옥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옛이야기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세계가 멸망하기 직전의 날이 이러할까.

그런 상황에서도 이선을 비롯한 한국 헌터들 일행이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김하현이 수리한 자동차 덕분에 어느 정도의 기동력을 확보한 데다, 박소현 헌터의 맵핑을 통해 낮은 등급의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빛 하나 없는 도시에서 앞을 밝히는 빛이라고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정도밖에 없었으니, 체감상 느끼는 수는 더욱 많아 보이기도 했다.

“우, 우욱…….”

운전대를 잡은 박소희 헌터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한쪽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동차가 나아갈 때마다 바퀴에 깔린 메뚜기들이 터지며 그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실드에 몸을 부딪혀 죽는 말벌들의 모습도 너무나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수백 수천 마리가 터져 죽는 장면을 보고 느끼는 것은 정신적인 타격이 너무도 컸다.

이런 대형 레이드에는 첫 참가로 알고 있는데, 너무 힘든 곳에 들어왔군.

이선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맵핑 스킬을 가진 박소희 헌터가 선두 차량을 운전해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각, 후각, 촉각적으로 끔찍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상황이 아주 나쁜 편도 아니었다.

여섯 대의 차량이 지나가는 길.

본래대로라면 떼를 지어 몰려오는 몬스터 때문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할 터였지만…….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오묘한 빛깔을 띤 기운이 휘둘러진 검의 궤적을 따라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기운이 닿는 자리마다, 마치 지우개로 낙서를 지우는 것처럼 악마들이 재처럼 화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지 않은 것처럼.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선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과연 천부인(天符印). 전설의 검이라고 해야 하나…….’

양태원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곡선의 검.

날카로운 날을 지니고 있기는커녕 손을 대도 베일 것 같지 않은 청동검은, 자격 있는 자의 손에 들리자 그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상대가 악마이니만큼, 제 상대를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는 한 마리 더 있었다.

“으, 으하하하하하! 이거 죽여준다!”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하늘 전체를 불사를 것 같은 화염이 말벌 떼들을 일순간에 태우며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건 그것대로 지옥 같은 광경이었지만, 류세연은 그딴 것에 상관도 하지 않고 신나 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피부를 파고들어야 할 마기가 양태원이 나누어 준 수호부 덕에 먹히지 않을뿐더러, 악마를 향한 공격에 버프까지 걸어 주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타격감 좋고!”

진언은 깨우치지 못했다지만, 단순한 마력량만으로는 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류세연은 아주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 여기저기로 난사하는 마력탄이 아주 가관이었다.

현실의 서울이었다면 건물을 무너트린 죄로 형사 입건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뭐, 아무리 류세연이라도 저렇게까지 심하게 날뛰는 건 몇 시간 전 이우연이 내뱉은 ‘짐짝’ 발언 때문이겠지만.

류세연은 이우연의 말을 듣자마자 제 완드를 부러트릴 기세로 화를 냈다.

“내가 더러워서 다음 달에는 기필코 2위 딴다, 이 건방진 새끼야! 어디 두고 보자고!”

그 와중에 1위가 아니라 2위라고 하는 점이 아주 웃겼다.

물론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성이 있느냐는 모르겠다만.

자동차 위에서 날뛰고 있던 류세연이 이선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선! 나 1업 했어!”

“어쩔…… 공략 중에 반말하지 마세요!”

“우리도 내기나 할까? 누가 더 많이 처치하나!”

“따라 할 걸 따라 해라!”

물론 그렇게 말하는 이선도, 류세연처럼 이우연의 말에 느끼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 언제까지고 짐짝이 될 순 없지.’

이우연이 자신들을 도발할 목적으로 그런 말을 던졌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짐짝이라는 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한국에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존재가 나타난 이후, 그 존재가 없었더라면 헤쳐 나갈 수 없었던 국면이 얼마나 많았던가.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부터 시작해 신촌의 유령성 던전, 마석 던전의 레비아탄 공략. 그리고 홍대의 S급 몬스터 이무기까지.

그때마다 자신은 얼마나 도움이 되었던가.

그 생각은 이선 안에도 은근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예나와의 친분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건 이 던전에 들어온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설마 모두 따라올 줄은.’

그랬다.

이우연의 말을 듣고 전투계는 물론이고 보조계 헌터까지, 던전에 진입한 헌터 모두가 가만히 앉아 서른 시간을 버티는 대신 레이드에 참가해 레벨을 올리는 것에 동의했다.

아마 랭킹 1위 헌터와의 격차에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흐아아아압!”

“좀 죽어라!”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평소 자신의 위치 때문에 점잔을 빼곤 하던 김성연부터, 언제나 한발 뒤로 물러서기 일쑤인 백사현까지도 적극적으로 공략에 나서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물론이고, 모두가 합심해서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 하나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거 오랜만에 보네.’

이선은 그 광경에 잠시 상황도 잊고 약간의 감회에 젖어들었다.

헌터들이 공략에만 집중하는 광경이 오랜만이라니 우스운 일이지만, 정말로 그랬다.

맨 처음 한국에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다 같이 살아남고자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새로운 권력 구도가 생기면서, 공략대가 편성되어도 다들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소속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었고.

그런 문제점이 드러난 극단적인 예가 바로 저번 마석 던전 사건이었다.

공략은 뒷전이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고 했었던.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의 동력이 사명감이든, 정의감이든…… 혹은 그저 뒤처지기 싫다는 자존심의 발로이든 상관없었다.

강예나가 저 앞에서 달려 나가고 있는 한 그 동력이 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이렇게 모두가 다시 한마음이 되어서 부차적인 이익이 아니라 순수하게 공략에 집중하면…….

‘나도 초과 근무를 덜 할 수 있을 텐데…….’

“이선 헌터.”

“네, 넵?!”

한창 희망 회로를 돌리던 이선은 갑작스러운 부름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선두 차량에 타 함께 실드를 유지하고 있던 김숙자 교수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한눈팔지 말고 집중하게. 실드가 깨지면 전체적으로 타격이 클 테니까.”

“앗, 넵. 죄송합니다.”

그랬다.

광화문까지 가는 길에서 이선이 맡은 역할은 차량들을 보호하는 실드 유지였다.

본래대로라면 진언을 깨우친 마법사 하나가 맡아도 충분할 역할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우연과 김숙자 교수, 둘 다 보스 강예나와의 싸움에서 진언을 파훼당한 터라 아직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선 또한 진언 마법을 한차례 썼기에 아직 회복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광화문에 도착해 A급 몬스터와 조우하기 전까지는 힘을 아껴 두고 실드 유지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차에 탄 이우연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이선을 향해 김숙자 교수가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자네도 나와 함께 실드를 유지하느니 저렇게 활약하고 싶긴 하겠지만 말이야.”

김숙자 교수가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것은, 역시나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류세연이었다.

거의 폭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마력이, 주위로 몰려들고 있는 몬스터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핫!”

쿠콰쾅!

몰려드는 몬스터를 태우다 못해 결국 건물에 직격한 공격 마법이 기어코 건물을 무너트리며 땅이 진동했다.

그걸 보며 이선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저 정도로 관종…… 아니, 관심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교수님. 그리고 지금 힘을 빼 봤자 나중에 힘들기만 하죠. 전 광화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활약하려고요.”

어차피 그때부터는 싫어도 죽을힘을 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

김숙자 교수의 목소리에 피로감이 묻어났다. 걱정이 된 이선은 김숙자의 안색을 살폈다.

파리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역시 레이드에는 참여하지 않으시는 편이…….”

“나 혼자 남아서 뭘 하겠나. 그리고 나도 이우연 헌터의 말이 다소 직설적이라고 보긴 하지만 틀린 건 없다고 보네.”

“네? 교수님은 짐짝이 아닌데요? 그런 말이 신경 쓰이셨어요? 제가 그 자식 한 대 치고 올까요?”

“그런 게 아니야.”

귀여운 제자에게 대답하며 김숙자 교수가 슬쩍 웃었다.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건 그런 젊은 피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라네.”

“교수님도 아직 젊으신데요.”

“그렇지만 나는 실패할 경우를 먼저 생각하지. 뭐, 그게 나쁜 것도 아니고,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김숙자는 자신의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았다.

언제까지고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던 손등에는 어느샌가 세월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우연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고, 이 세상에 격변이 일어난 이후로도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만…….

“도전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자신 또한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이우연이 먼저 제안하지 않았더라면, 김숙자는 이 상황에서 굳이 공략을 진행해 적극적으로 레벨 업을 한다는 건 고려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은 시간만 버티면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는 데다, 던전 클리어로 포화도를 낮출 수 있어 현실에 피해를 주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무리하게 공략하다가 헌터들이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단순히 개인의 목숨만 위험한 게 아니라 클리어 실패로 포화도까지 높아지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이다.

그렇기에 솔직한 심정으로는 여전히 젊은이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지.’

김숙자 교수는 겸허하게 인정했다.

실패를 대비하는 것은 물론 나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다만, 그런 노파심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두려움은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 보폭을 좁히는 가장 큰 적이고, 인간의 발전은 언제나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왔으니까.

*   *   *

그렇게 모두가 합심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양태원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강한 악의.

악마들에게서 풍기는 악의는 광화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기운이 실체를 띌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고문 도구의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 목적은 단순히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서일 것이다.

양태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코를 막았다.

“이제부터 광화문 부근으로 진입합니다! 전원 대비해 주십시오!”

선두 차량에서 위치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그렇게 외쳐서 알려 주지 않아도 더욱 강해진 마기 때문에, 이곳이 메인 전장이라는 것은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양태원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타고난 도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도 양태원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어린 나이 때문에 실전 경험은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저번처럼 제를 올려 위무할 존재가 아닌, 이 세상에서 없애야 할 악마.

그러니 긴장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역시 무섭기도 했고.

악귀들이 들끓는 지옥에 제 발로 들어가다니,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긴 했다.

- 괜찮으냐?

아까부터 계속해서 양태원을 걱정하고 있던 청룡이 주위를 맴돌았다.

양태원은 조그맣게 속삭였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피부를 찔러 오는 것 같은 악의는 바늘처럼 날카롭고,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억지로 뿜고 있는 신력 때문에 신경도 곤두서 있었다.

그리고 계속 생각이 났다.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창백한 손길.

마기에 침식되어 서서히 무너져 가던 몸.

새삼스레 기억이 떠올라 절로 등골에 소름이 돋아서, 양태원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집에 가서 그냥 게임이나 하다가 라면 끓여 먹고 자고 싶다.”

힘을 가지고 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고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목숨 걸고 적을 물리치는 건 게임 속이면 충분한 일인데 말이다.

그 대답에 당황한 청룡이 양태원의 몸을 빙글빙글 돌았다.

- 내가 어떻게 해 주랴. 도망이라도 가겠느냐?

청룡이 건네는 저 말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안다.

아마도 악마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훨훨 날아 저 먼 곳까지 데려다주겠지.

도망치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청룡 님.”

하지만, 결국 양태원은 고개를 저었다.

“악귀 앞에서 도망치는 무당 보셨어요?”

두렵기도 했다.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악귀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신력을 타고난 양태원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아무리 도망쳐 외면한다고 한들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책임감이다.

구할 수 있는 이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악과 무엇이 다른가?

“이게 제 운명이라니까요, 청룡 님.”

그 말을 들은 청룡은 괴로운 마음에 흰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결국 이번에도, 운명은 반복되는가.

이 아이 또한 제 어미처럼…….

“그래도 괜찮아요.”

끼이이익!

드디어, 차량들이 몬스터가 몰려 있는 광화문 근처로 들어섰다.

그 인공적인 괴음에 어딘가를 향해 몰려가고 있던 악마 몇이 뒤를 돌아보았다.

선두 차량 위로 나타난 헌터 하나가 크게 외쳤다.

“몬스터가 접근……!”

그러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콰콰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몬스터 무리들이 향하던 곳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건 아주 강렬한 불꽃이었다.

짧은 인간의 생을 연료로 모든 것을 태워 버리려고 작정한 듯한 강렬한 불꽃.

악마로 가득 덮여 까맣게 물든 하늘 아래, 그 불빛만이 오롯이 빛나고 있었다.

온통 악의로 물들어 있는 전장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며 모든 장애물을 파괴하는 궤적.

길게 뻗은 빛의 궤적이 스칠 때마다 악귀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소멸해 나가고 있었다.

양태원은 그 궤적이 검로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퍽!

쿠에에엑!

달려오는 힘 그대로 세게 걷어차인 코끼리 형태의 마수가 그 육중한 육체째로 날아갔다.

털썩!

마수의 둔중한 몸에 깔린 악귀들이 비명을 질렀다.

영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너희들, 여기에는 대체 왜 온 거야?”

어마어마한 수의 악마들을 배경으로 둔 한 여자가 빛이 나는 검을 들고 우뚝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앞장서는 사람.

용사를 향해 양태원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누나가 있으니까요!”

그래, 괜찮을 것이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니까.

- 클리어 조건 : 필드, ‘서울’에서 생존하십시오.

- 제한 시간 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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