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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17화 (21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17화

콰쾅!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땅바닥에 꽂히며 대지를 작살냈다.

“위험해!”

이우연이 한 번 더 내 팔을 잡아끌어 겨우 검을 피할 수 있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이우연이 호통을 쳤다.

“정신 차…… 윽!”

뻐억!

내 팔을 잡아끄느라 미처 본인은 피하지 못한 이우연이, 묘지기의 주먹을 왼쪽 어깨에 정통으로 맞고야 말았다.

빠직!

뼈가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으악, 형!”

한발 늦게 양태원이 청동검을 들고 달려들려 했지만, 그 시도도 무위로 돌아갔다.

“어른들 노는데 방해하지 말렴.”

화아아악!

검은빛의 마기가 옅은 장막처럼 변해 양태원의 주위를 감쌌다.

양태원은 당황하며 청동검을 휘둘렀으나, 끈적이는 액체처럼 들러붙은 검은 마기는 다른 악마들의 기운처럼 쉽게 정화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번 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님페의 바람이 발동되는 소리였다.

쿵!

발을 박찬 묘지기가 순식간에 내게로 달려들었다. 그걸 보는 동시에, 나는 아직 내 팔을 잡고 있던 이우연의 어깨를 밀쳐 냈다.

“피해!”

캉, 캉, 캉, 캉!

이우연을 밀쳐 내는 동시에 겨우 검을 들어 막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몇 번의 공방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더라면 금세 깊은 상처를 입었을 만한 공세였다.

말도 못 하게 빠른 검을 맞받아치면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뭐 이딴 경우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별로 길지도 않은 인생에 별별 일을 다 겪는다 싶기는 했는데, 이건 정말 너무했다.

이러다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다른 세계의 나 자신에게 맞아 죽게 생겼다.

게다가 어이없는 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또 다른 나 자신이 나보다 더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묘지기의 눈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우는 꼬락서니가 처참했다.

온통 마수의 피를 뒤집어쓴 흉악한 몰골이라 티는 잘 나지 않았지만……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한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져 왔다.

처음에는 저 녀석이 릴리스를 감싸다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알 수 없어 당황했지만…… 지금 저 뒤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릴리스의 얼굴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다.

릴리스의 전매특허인 시스템의 개변(改變).

그걸로 분탕질을 친 것이 분명했다.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다.

문제는 따로 있다.

휙!

서걱!

키에에에엑!

묘지기의 검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자, 그 검기는 마침 주위로 몰려들고 있던 마수들에게 날아가 명중했다.

마수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으며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릴리스가 분탕을 친 건 알겠는데…… 정확히 뭐라고 한 걸까.

본래대로라면 현재 시스템이 우리 두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으니만큼 묘지기가 보고 있는 메시지가 내게도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시야에서는 아무런 메시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릴리스가 개입해서 내 쪽에선 시스템 메시지를 볼 수 없도록 만든 듯했다.

하여간 철두철미한 새끼.

물론 릴리스가 뭐라고 한 건지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릴리스의 목적이야 당연히 우리 둘을 싸우게 하는 걸 테고, 묘지기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그건 당연히 타르토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뭐, 나를 죽이면 타르토스를 구해 준다는 조건이라도 건 거겠지.

저쪽 강예나가 저 정도로 눈이 훼까닥 돌아 버린 걸 보면 뭐가 조건으로 내걸렸는지는 뻔한 일이었다.

뻔하지만, 나라면 걸려들 수밖에 없는 함정.

릴리스다운 함정이었다.

끼긱!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묘지기의 손에서 빛을 잃고 침묵하고 있는 에이펙스의 광검을 바라보았다.

본래 검신을 휘감아야 할 눈부신 광휘는 온데간데없이, 단순한 고철덩어리처럼 전락한 잿빛의 날에는 푸른 마력이 정제되지 않은 채 톱니처럼 날카롭게 뭉쳐져 있었다.

그것도 물론 충분히 위협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네 파트너가 운다, 강예나.”

“…….”

묘지기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나를 노리며 검을 휘두를 뿐.

파지직!

검이 반발하듯 내 검과 부딪힐 때마다 울었으나 묘지기가 나를 향해 내리치는 검속도, 살기도 변하지 않았다.

본래 에이펙스의 성검은 어느 정도 자아를 가진 검으로, 검의 의지와 반대되는 일을 하면 저렇게 침묵하며 힘을 빌려주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내 검을 파트너라고 부르는 만큼, 우리는 상당히 깊게 연결되어 있고…… 그렇기에, 내 파트너가 빛을 잃은 모습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나는 딱히 내 용사라는 클래스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다.

게다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용사가 된 건지조차 모르는 만큼, 솔직히 내 클래스가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리시아만 해도 항상 네 클래스는 용사가 아니라 광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빡치면 일단 들이받고 본다면서.

그런데, 막상 성검이 저쪽의 내게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만큼 이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선택을 할 만큼 묘지기가 몰려 있다는 뜻도 되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남을 희생시켜 내 목적을, 아…….’

나는 문득 깨달은 점을 말했다.

“희생시키는 게 남이 아니라 내 목숨이네…….”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뭘 납득하고 있는 거야, 강예나!”

퍼퍼펑!

묘지기에게 불꽃으로 된 화살이 꽂혔다.

이우연이 마법을 캐스팅한 것이다.

물론 그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묘지기가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날 정도의 위력은 갖추고 있었다.

“일단 피해!”

그리고 그 잠시간의 여유를 틈타 내 앞에 둥그런 반원 형태의 실드가 완성되었다.

과연, 이런 정신없는 전투에서 저렇게 빨리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다니.

이우연은 대인전에도 능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만렙의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운이 좋지 않았다.

순식간에 형성된 두껍고 반투명한 실드를 본 묘지기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실드 위로 검을 내리쳤다.

와장창!

“이런…….”

이우연이 신음하는 것이 들렸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 한 번의 내려치기만으로 실드가 유리처럼 깨져 버렸으니까.

지금은 마력 파훼 따위의 기술도 쓸 수 없는 만큼, 단순히 완력으로 실드를 깬 것인데…… 그게 더 놀라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시의 틈은 생겼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묘지기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정말 이런 걸로 괜찮겠어?”

그렇게 물은 것은 진심이었다.

“네 선택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냐. 내 목숨이야 그래, 뭐…… 솔직히 네 손에 죽어도 별로 원망 안 할 것 같고.”

내 말을 들은 녀석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그게 뭔 소리예요!”

외야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솔직히 죽고 싶지는 않기에 이렇게 말한 건 반쯤 거짓말이었지만…… 지금 저 녀석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게 나라는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내게는 저 녀석을 비난할 자격 따윈 없었다.

나와 저 녀석의 차이는 그저 행운의 유무였을 뿐이다.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아직 기회가 있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타르토스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저 녀석은 운이 없게도 멸망한 세계로 돌아왔기에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것뿐이다.

나는 다른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저 녀석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애초에 주어진 조건부터가 다른데, 저 녀석에게 왜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그런데, 타르토스를 구한 다음에 애들 얼굴은 어떻게 볼 건데?”

아니나 다를까, 검을 든 묘지기의 어깨가 약간 움찔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용사라는 직업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남을 구하며 사는 것도, 부조리한 일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로운 신념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나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고, 타르토스에 떨어진 후로는 살아남는 데 바빠 남 따위는 신경 쓴 적도 없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용사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타르토스에서 만난 내 친구들 덕분이다.

길가에서 부랑자처럼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던 나를 주워 준 아리아드네나, 하찮은 용병이었던 나를 발견하고 손을 내민 루카스, 그리고 이세계에서 왔다는데도 별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어 준 알리시아와 일리아스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내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픈 게 싫고, 나와 상관없는 일은 외면하고 싶기도 하고, 너무 힘들면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내가 용사가 아니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그 녀석들이 내게 내밀었던 호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으레 말하듯, 남들에게 베푸는 호의 따위는 멍청한 짓이라고, 손해를 볼 뿐이라고 증명하는 꼴인 것 같아서, 어떻게든 용사다운 일을 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묘지기의 손에 들린 용사의 검은 빛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 애들 앞에서 당당할 자신이 있어?”

“나는…….”

그리고 막 묘지기가 입을 열려던 순간…….

쇄애액!

무언가가 쇄도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묘지기의 입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그만 그 무언가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야 말았다.

그게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콰직!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먼저 들린 것은 살가죽이 뚫리는 소리.

고통은 그 후에 찾아왔다.

화끈하게 불이 붙는 것 같은 아픔이 꿰뚫린 허벅지 전체에 번졌다.

기다란 창이 다리를 완전히 관통한 후 땅에 박히자, 나는 무릎을 꿇고 뒤늦게 신음을 토해 냈다.

“헉……!”

“으, 으하하하하! 여기에 있었군!”

- S급 몬스터 : 마몬이 출현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새의 부리를 가진 악마가 희희낙락하는 것이 보였다.

‘미친……!’

방심했다.

SSS급인 릴리스가 나타난 만큼, 이제 와서 마몬 같은 것까지 나타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드르륵!

쇠사슬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다리에 고통이 찾아왔다.

다리를 관통했던 창끝에 달린 쇠사슬을 마몬이 하늘에서 무자비하게 잡아당긴 것이다.

관통한 창이 거꾸로 상처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갈 뻔했다.

“저 미친 악귀가!”

챙강!

그때 겨우 릴리스의 마수에서 벗어난 양태원이 청동검을 휘둘러, 마몬의 창에 달려 있던 사슬을 끊어 냈다.

덕분에 허벅지 중간까지 빠져나가던 창이 겨우 멈추고, 허공에서 빈 사슬만 회수하게 된 마몬이 눈에 불을 켜며 지상으로 달려들었다.

“하등한 인간 따위가 어딜 감히!”

‘아, 이런……!’

나는 반쯤 뽑히다 만 창을 애써 무시하며, 나를 향해 쏜살같이 덮쳐오는 마몬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빠르게 흰 날개를 펼친 이우연이 이를 악물고 마몬에게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콰쾅!

허공에서 폭발음이 울리는 것이 들렸다.

이우연의 검이 마몬이 시전한 마법을 가르며 부리를 세게 후려치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전투 센스와 순발력 하나는 정말 타고난 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부상을 입은 상황인 데다, 상당히 마력을 소모한 상태이니 S급인 마몬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을 터.

“아, 이 망할 악마 놈들이 진짜 귀찮게 하네! 누나, 형! 조금만 버텨요!”

그리고 양태원은 나와 이우연의 발이 묶여 있는 사이, 악마들 사이에서 청동검을 들고 분투하며 몬스터들을 막아 주고 있었다.

청룡이 양태원의 몸을 감싸 안고 보호 중이긴 했지만, 숫자가 워낙에 많아 언제까지 홀로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거 숫자가 너무……!”

“태원……!”

캉!

검이 부딪혔다.

허벅지 부상 때문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검을 맞받은 나는, 무릎까지 땅으로 박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무시무시한 완력이었다.

내리쳐지는 검을 맞받은 팔이 견디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묘지기를 올려다보았다.

“너…….”

역광 때문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몬 녀석도 참, 눈치 없기는.”

이 모든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악마가 한가롭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상황은 여기서 더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수단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겸허하게 인정했다.

‘승산이 없어.’

사실 묘지기 녀석이 릴리스와 거래를 끝낸 후 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발악해 봤자 나 혼자서 이 판을 뒤집는 건 무리다.

사실상 SSS급 보스 몹 2마리를 홀로 상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나 혼자라면 모를까, 이우연에 양태원까지 내 싸움에 말려들어 죽는다.

머릿속의 계산기가 순식간에 돌아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기껏 이 한국에서 사귀게 된…… 동료인지 친구인지 동생인지, 뭐 그런 녀석들이었다. 저 녀석들이 죽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될 바에야…….

“……알았어.”

검을 잡은 손에서 천천히, 힘을 빼기 시작했다.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빠져 가는 내 손의 힘을 느꼈는지 묘지기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차라리 내가……!”

죽겠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을 때였다.

파직, 파지직!

“악!”

묘지기가 고통에 찬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갑자기 나와 묘지기 사이의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거대한 스파크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을 채우는 거대한 붉은 글씨.

- 경고!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 과도한 간섭 탓에 플레이어의 신체에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립니다.

‘어, 저 메시지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아니, 하지만 저런 오류가 왜 하필 지금 일어났단 말인가.

그것도 저 오류 메시지의 과부하가 내게 걸린 것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선 묘지기가 놀란 얼굴로 입을 뻐끔대며 허공에 나타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지가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듯했다.

‘시스템이 저 녀석에게 과부하를 걸었다고?’

이렇게 타이밍 좋게?

설마 운영자…… 조한율이 한 짓인가?

갑자기 일어난 모든 상황이 의문스러웠지만, 한가롭게 그 의문을 풀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우르릉.

하늘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청룡 덕분에 잠시 맑아져 있던 하늘이 어느새 무척 어두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악마 때문이 아니었다.

툭.

투툭.

빗방울이 얼굴 위로 하나둘 쏟아졌다.

일반적인 비가 아니었다.

마력을 품고 있는 빗방울이 어느새 빗줄기가 되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 아무리 강대한 힘이라고 한들.

- 내가 선 곳이 곧 내 삶의 영역임을 선포하니…….

익숙한 두 목소리가 충만한 마력을 타고 광활한 전장 위에 울려 퍼지는 것이 들렸다.

크르르릉!

마수들이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일제히 포효하며 그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 달려들려고 했으나.

- 의지라는 그릇에 담지 않으면 형태를 지니지 못하는 법.

“어딜 넘봐!”

전장을 깡패처럼 누비는 여자가 완드를 들고, 악마들을 말 그대로 마력으로 두들겨 패며 폭주하고 있었다.

- 이 영역을 침범하는 자에게 벌을 내려…….

“진언이 완성되는 동안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네, 넵!”

“알겠습니다!”

또 그 폭주족을 다 따라가지는 못해도 분투하고 있는, 김성연을 비롯한 검사들의 모습도.

“아니, 이 인간 놈들 따위가……!”

하늘에서 그 광경을 발견한 마몬이 비명 같은 노호를 지르며 김숙자와 이선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네 상대는 나야.”

빠각!

하지만 그 틈을 놓칠 리 없는 이우연이 마몬의 뒤통수를 향해 거대한 마력구를 세차게 갈겼다.

뜻밖의 적수를 만난 마몬 외에 데스나이트들 또한 본능적으로 죽음의 예감을 느꼈는지 발을 분주히 움직이려 했으나, 이쪽에도 경험은 부족하지만 타고나길 강대한 무당이 있었다.

“이익, 내가 질 줄 알고!”

오색 창연한 기운이 광화문에 파문처럼 넘실대며 퍼졌다.

일순간 모든 악마들이 움찔할 정도로 강력하고 청정한 기운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진언이 완성되었다.

모두의 협력 아래서.

- 그러니 행하여 내 뜻을 증명하라.

- 나의 삶을 공고히 하노라.

콰콰콰콰쾅!

거대한 해일이 허공에서 생겨나, 순식간에 보이는 모든 곳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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