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21화
김성연은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무언가 보여 주겠노라고.
물론 상대는 SS급의 보스 몬스터이니만큼 쉽지는 않을 터였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 근거는 바로 자신을 따르는 다른 헌터들이었다.
지난번 레비아탄이 나온 던전을 공략할 때 방랑하는 구도자…… 그러니까 강예나에게 한 번 망신을 당한 후, 김성연은 이 몇 개월간 저들과 힘든 훈련을 해 왔다.
레비아탄급과 맞먹는, 매우 강력한 상대와 싸우게 될 때를 대비해서.
그런데 이렇게 딱 맞는 무대가 준비된 것이다.
김성연은 이를 갈고 눈앞의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라고 못 할 리가 없다!’
이번에야말로 이제껏 대한민국 길드를 이끌어 온 저력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김성연을 따르는 다른 헌터들도 같았다.
‘5년간 우리도 엄청나게 굴렀다고!’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한테 질까 보냐!’
그들이 강예나에게 반발심을 갖는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긴 했다.
약 5년 전, 대한민국에 시스템이 나타난 후.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쏠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중에서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연 김성연이 만들고 이우연이 소속되어 있는 영원 길드였다.
대한민국 1위 길드.
영원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면 헌터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취급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으쓱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진정한 영웅들!
그것이 대중들이 영원 길드의 헌터들을 바라보던 시선이었다.
그런데, 랭킹이 발표되면서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만일 랭킹이 존재한다면 1위는 당연히 영원 길드 소속의 헌터가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실제 1위에 랭크된 것은 방랑하는 구도자라는 이름을 쓰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무언가 잘못되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홍대에 나타난 이무기를 한 방에 퇴치하며, 현 랭킹 1위의 실력은 이제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증명되었다.
그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방랑하는 구도자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직 정체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면이 있었다.
덕분에 최근에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방랑하는 구도자’ 가 화제의 중심이 되곤 했다.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영원 길드가 강예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방랑하는 구도자가 랭킹 1위가 된 후로, 기존에 유명했던 헌터들이 대중들의 논평에 살짝 부정적인 방향으로 소환된다는 것에 있었다.
- 영원 길드는 너무 과대평가된 것 아냐? 그래 봤자 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헌터도 몇 없던데.
- 말하는 것만 보면 대한민국은 아주 자기들이 다 지키더니. 그래 놓고 세금 감면 이야기는 왜 함?ㅋㅋ
- 영원 길드의 한XX 헌터가 Y퀴즈 나왔을 때 나왔던 인터뷰 다시 보니 좀 그렇다. 김성연의 뒤를 따라 차세대를 대표하는 검사가 되고 싶다던데 요샌 방송 활동이 거의 대부분인 듯. 던전은 언제 공략하쉬는?ㅋㅋ
- 백사현만 욕할 거 없다. 어차피 방송물 든 것들은 다 백사현 열화판임ㅋㅋㅋ
- 어차피 랭킹 1위는 무소속인 =3 잖아 ㅋㅋㅋ
- 진짜 영웅은 저쪽인데 엉뚱한 놈들이 혜택받고 있었네.
- 백사현 광고 뺏어서 방.랑하는 구.도자님 줘라
└ 이 새끼 점 찍은 것 봐 ㅋㅋㅋㅋㅋ
혜성처럼 새롭게 나타난 인물을 추종하며 예전의 성과를 까 내리는 심리야 어디든 존재한다지만, 그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사실상 그쯤 되면 ‘방랑하는 구도자’를 칭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를 핑계로 기존의 헌터들,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게 재미있는 것이다.
- 솔까 =3는 얼굴도 안 드러내고 그냥 자기 할 일 한다는 느낌인데 다른 놈들은 맨날 생색만 오지게 내고 실속은 없다
- 맨날 정부랑 기 싸움이나 하고 S급 몬스터 나오면 책임 전가하려고 난리치고
- S급 몬스터? 아, 방랑하는 구도자 님이 한 방에 처치한 그거?ㅋㅋ
- 응 방구 미만잡 ㅅㄱ
근 5년간 헌터라는 직업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일종의 반작용이었다.
하지만 김성연과 영원 길드 헌터들은 그렇게 일변한 취급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야 랭킹에서는 밀려났으되, 그들 또한 나름대로 근 5년간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던전을 공략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그거야 이런 자본 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흐름 아닌가? 모두가 물욕이 없는 수도승이나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용사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나.
목숨을 걸고 일하는데 보상을 바라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알 수 없는 방랑하는 구도자 같은 녀석과 비교되면서, 이제껏 세워 왔던 성과들이 죄다 난도질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평가 절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영원 길드의 헌터들은 김성연과 함께 이 몇 개월간, 정말로 절치부심해 초심으로 돌아간 것처럼 매일 훈련에 매진해 왔다.
그러니 이제는 그 성과를 보여 줄 때였다.
헌터들은 보스 몬스터에게로 앞장서서 달려가는 김성연 길드장을 따랐다.
김성연의 검이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악마의 목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카캉!
김성연이 자신 있게 휘두른 검은 곧바로 릴리스의 손톱에 막혀 튕겨져 나가고야 말았다.
“큭!”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되받아쳐진 검에 김성연의 발이 한순간 주르륵 밀려났다.
그리고 김성연의 뒤를 따라 달려가던 검사들은 튕겨 나가는 검을 보며 당황했다. 보스 몬스터가 가진 힘이 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받아치는데?’
‘길드장님 정도면 근력 수치도 상위권인데!’
하지만 당황한 것도 잠시, 어차피 S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만큼 다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당황한 것과 별개로, 김성연이 밀려나며 생긴 틈에 곧바로 세 명의 검사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압!”
“죽어라!”
기합 소리와 함께 검사들이 동시에 릴리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 몇 개월간 호흡을 맞춰 온 만큼 그 합격은 완벽했다.
‘누구 하나의 공격이라도 먹히면 성공이다!’
게다가 이번 SS급 몬스터는 인간형으로, 딱히 원거리형 무기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손톱을 검 대신 사용하니, 검사들이 합동으로 공격하기에는 딱 좋은 상대였다.
설령 아무리 강하더라도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모든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다 막을 수는 없는 법.
다수가 달려들면 어느 한군데에는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검사들은 그 틈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셋 중 하나의 검이 악마의 팔에 직격했다.
검을 휘두른 검사는 자신의 검이 상대의 팔을 베어 낼 것을 직감하고 환호했다.
캉!
하지만, 막상 릴리스의 팔에 검이 닿았을 때 나온 결과는 달랐다.
분명 검이 팔에 닿았음에도 울리는 금속성의 소리에 검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강철……?”
두꺼운 강철로 된 벽에 이쑤시개를 들이댄 것 같은 감각이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릴리스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제법 용기가 있구나. 다만…….”
휘익!
“아직 내게 도전하기에는 어설픈데?”
챙강!
릴리스가 손톱을 휘두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사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검이 마치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세 명의 연격은 한 명의 검이 부러진 순간, 완전히 균형이 무너졌다.
곧장 뒤로 밀려나 있던 김성연이 다시 중심을 되찾고 달려들었지만, 릴리스의 팔이 휘둘러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빨리 뒤로 물러서!”
“크아아아악!”
서걱!
손톱으로 어깨를 깊숙이 베인 헌터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나마 다른 헌터들이 보조해 주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곧바로 목이 잘려 나갔을 터였다.
그 모습을 본 이선이 다급하게 외쳤다.
“2조, 정면 타격!”
콰콰쾅!
이선의 지시에 따라 마법 공격이 릴리스를 정확하게 타격했다.
릴리스는 날파리라도 대하듯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불화살을 손으로 쳐 냈다.
“귀찮게.”
그러나 아무리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틈은 생겼기에, 그사이 다른 두 사람이 부상자를 뒤로 끌어냈다.
“맙소사, 겨우 일 합도 못 버티다니.”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야?!”
검사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물론 일 합조차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보스 몬스터의 육체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단단하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설마 검이 손톱에 무 자르듯 잘릴 줄이야.
캉!
다른 헌터들이 잠시 몸을 빼낸 사이, 홀로 릴리스의 공격을 받아 낸 김성연도 이를 악물었다.
‘무슨 힘이 이렇게……!’
현재 김성연의 레벨은 36.
근력 수치는 얼마 전 900을 넘겼으며, 사용하는 검 또한 장인에게 특별히 의뢰하여 던전 부산물로 만든 명검이었다. 게다가 악마를 상대하는 데 최적인 양태원의 힘까지 부적의 형태를 이용해 빌린 상태.
그러니 아무리 SS급 몬스터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공격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캉!
릴리스의 팔이 마력을 불어넣은 김성연의 검날을 쉽게 튕겨 냈다.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지난번 만났던 S급 몬스터, 레비아탄의 비늘만큼 단단한 강도였다.
‘과연 SS급 몬스터는 다르다는 건가?’
그래도 김성연은 이를 악물고 공격에 집중했다.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절대로!
“전열을 가다듬어!”
“검에 마력을 더 불어넣어라!”
처음 검이 부러진 후 당황하던 검사들도, 김성연의 분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릴리스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아압!”
이제껏 한국 헌터들은 김성연을 중심으로 합격을 연습해 왔다.
김성연의 검은 변화와 속도를 중시하는 변화무쌍한 검이라기보다는, 공격 하나하나에 힘과 무게를 실어 치명타 한 방을 노리는 중검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쾌검과 환검을 주로 사용하는 검사들을 선발, 중검을 쓰는 김성연에게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틈을 메우도록 했다.
즉, 서로의 약점을 보조할 수 있는, 그야말로 가장 정석적인 조합이었다.
게다가 원거리 지원도 완벽했다.
“1조, 왼쪽 타격!”
이선의 지휘에 따라 마법사들의 공격이 적재적소에 터지고 있었다.
이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공략 경험을 가지고 있고, 더불어 지휘 능력까지 갖춘 인물이다.
그래서 근접전에도 이해가 높기에 언제 원거리 공격이 들어가야 검사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파악하고 있는 데다, 마법사인만큼 마법사들의 마력 배분에도 귀신같아서 이런 공략에는 최고의 지휘를 보여 줄 수 있었다.
“3조, 류세연 헌터에게 마력 강화!”
더불어 릴리스의 부름을 듣고 몰려오기 시작한 후방의 몬스터들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추가로, 이번 공략에 참여한 헌터들 모두가 한국에서는 한가락 한다는 실력자들이다.
사실상 대한민국 최강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전력들이 한데 모여 협력하고 있는, 전례가 없었던 공략.
마법사들이 원거리에서 지원을 하고, 검사들은 현란한 공격으로 릴리스를 압박해 들어가는 동안, 김성연은 한 방의 치명타를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한 번만!’
캉! 캉! 캉!
하지만, 그것도 검이 상대방의 방어를 뚫고 들어갈 수 있어야 성립되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피부’를 벨 수 있어야 공격이 성립되는 것이다.
겨우 릴리스의 등 뒤를 노려 검을 휘두른 검사 하나가 결국 튕겨져 나갔다.
“크헉!”
별다른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검이 릴리스의 육체를 강타했을 때, 손목에 작용하는 반탄력을 감당하지 못해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치 태산을 검 한 자루로 치려다 튕겨나간 것 같은 감각.
릴리스는 자신을 상대로 고전하는 인간들을 보며 낄낄댔다.
“이건 이것대로 제법 신선하네.”
릴리스의 신체는 어지간한 검 따위보다 훨씬 단단한 강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손톱을 상대로 버티려면 검의 소재 자체가 강철을 ‘따위’로 취급할 정도의 강도를 가진 것이어야 했고, 그렇지 않다면 검사들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버텨야만 했다.
그러나 검에 마력을 불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검사로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야만 해낼 수 있는 기예였다. 그것도 마력 컨트롤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오래 유지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력 컨트롤은 섬세한 작업.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해내기는 더욱 힘들었다.
덕분에 김성연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점점 빠른 속도로 정신력과 체력이 소모되고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해일을 검 한 자루로 막겠다고 나서는 인간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전혀 먹히지 않는 공격에, 김성연은 전략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대로는 승부가…… 차라리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강화 마법을 다시 받고 재도전하는 편이…….’
한 명의 검사가 아니라 다른 헌터들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타당한 사고였다.
후퇴 또한 훌륭한 작전의 일부이니까.
하지만, 지금 김성연이 상대하는 것은 악마였다.
“아하하…….”
상대방의 마음에서 빈틈을 찾아낸 릴리스가 눈초리를 사르르 접었다.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인식한 김성연이 무언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 순간.
“방심은 안 되지.”
스르륵!
이제껏 헌터들의 검을 상대하던 릴리스의 손톱이 갑자기 확 길어졌다.
설마 상대방이 사용하는 무기의 길이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김성연을 비롯한 한국 헌터들은 일제히 당황했다.
설마 신체의 일부를 저렇게 한순간에 변형할 수 있을 줄이야!
상대방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신체 변형 따위는 무의식중에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SS급쯤 되는 보스 몬스터가 단순히 적의 방심을 유도하고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고.
‘바, 방심했다!’
검을 들고 근접하여 싸우고 있었던 만큼, 모두가 릴리스의 사정권에 들어와 있는 상태.
이대로 릴리스가 팔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검사들 모두가 큰 부상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1조……!”
그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이선이 손을 들어 공격을 지시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크, 큰일……!”
릴리스의 입이 쭉 찢어졌다.
“그럼, 어디 수확해 보실까?”
팔이 휘둘러졌다.
쐐애액!
이제까지의 공격은 장난이었다는 듯,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검사들의 귀에 닿았다.
그리고 그 공격이 가장 바깥에 서 있던 검사의 목을 막 베어 내려고 했을 때…….
캉!
“……아주 X랄을 하는군.”
휘둘러지던 릴리스의 팔이 도중에 가로막혔다.
“오, 드디어 나서시게?”
하지만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낸 상대를 보는 릴리스의 눈빛은, 전에 없을 만큼 반짝거리며 즐거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막 보스 몬스터의 손에 목이 따이기 직전이던 헌터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 있던 것은 너무나 예상했던 사람이었다.
동시에, 제발 아니기를 바랐던 헌터이기도 했다.
태양보다도 더 빛나는 것 같은 검을 들고 선 여자를 본 순간, 절로 한숨처럼 그 이름이 새어 나왔다.
“바, 방랑하는 구도자…….”
왜 하필이면 또 저 헌터란 말인가!
강예나 덕에 목이 떨어지지 않은 검사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자신의 실력이, 이제까지 쌓아 올린 성과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어 가며 SS급 몬스터에게 도전했다.
그런데 결국 방랑하는 구도자에게 구명받았다.
왜 하필 저자란 말인가.
‘젠장!’
아무리 랭킹에서 밀려났다고 한들, 자신들이 이제껏 목숨을 걸고 몬스터들과 싸워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이 순위로 매겨져 폄하당하는 것도 싫었고, 이렇게 제대로 활약조차 하지 못하고 쓸모없는 엑스트라처럼 한순간에 밀려나는 것도 싫었다.
심지어 이제껏 몇 명이 달려들어도 제대로 막아 낼 수 없었던 몬스터의 공격이, 단 한 사람의 검에 막혔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니 더욱 싫었다.
그것도 너무 쉽게!
끼긱!
침묵 사이로 릴리스의 손톱과 강예나의 검이 팽팽하게 대치하며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파고드는 열등감과 패배감이었다.
나도 정말로 노력했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격차가 벌어지고야 마는 것일까.
그게 너무나도 억울했다.
‘나는…… 안 되는 건가?’
‘내가 이제까지 해 온 건 대체…….’
그런 생각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울렁이는 감정을 예리하게 잡아낸 릴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려고 할 때였다.
“……고맙다.”
담담한 목소리가 헌터들의 귀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모두가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가면에 가려진 얼굴은 볼 수 없었으되, 아마도 그 목소리만큼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헌터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진솔한 감사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들 정말 힘껏 공격해 준 덕분에…….”
쾅!
릴리스의 손톱이 휘둘러진 검에 담긴 힘을 버티지 못하고 크게 튕겨 나갔고, 그와 함께 발을 박차는 굉음이 울렸다.
크게 일어난 흙먼지 사이로 무언가가 쏜살같이 쇄도해 가는 것이 보였다.
뻐억!
그리고 들려오는 경쾌한 타격음.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 때문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확연하게 기울어진 릴리스의 신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봤다.”
그것과 함께 광휘를 두른 검이 한껏 뒤로 젖혀지는 것도.
콰직!
다음 순간, 릴리스의 심장을 성검이 완전히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