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22화
그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접근하기는커녕,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는데도 생채기를 입히는 게 고작이었는데, 강예나의 검은 너무도 쉽게 릴리스의 몸을 관통했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콰득!
몬스터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은 강예나가 무심하게 손목을 뒤틀었다.
우드득!
연약한 살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났다.
모두의 시선이 강예나의 검으로 집중되었다.
“해, 해치웠나?”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기대할 만도 했다.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은 상처. 누가 보아도 치명타였으니까.
“교활하긴.”
하지만 기대하던 것과는 달리 아무리 기다려도 처치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검에 심장을 관통당한 악마의 뱀처럼 서늘한 눈동자가 눈앞의 용사를 주시했다.
“이러려고 나서지 않고 관찰하고 있었구나?”
“악마에게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니군. 게다가…….”
강예나는 놀라지도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핵을 옮기는 데 성공한 모양이고.”
우둑.
강예나가 손목을 비틀어 한 번 더 상처를 검으로 헤집었으나, 릴리스는 꿈쩍도 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
오히려 그 상황에 동요한 것은 다른 헌터들이었다.
핵.
몬스터를 공략한 경험이 적지 않은 만큼 모두가 상황을 깨달았다.
“핵을 찾아야 하는 건가!”
몬스터들 중, 흔하지는 않아도 신체 안에 있는 핵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재생하는 타입도 존재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SS급 보스 몬스터가 그 핵이 존재하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선은 혀를 찼다.
‘예나 씨 말 들어 보니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은데.’
이제껏 다른 헌터들이 총공세를 하는 동안 가장 큰 전력인 강예나가 합류하지 않았던 이유.
그건 바로 릴리스가 다른 헌터들의 공격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핵의 위치를 알아내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핵의 위치를 알아내더라도 릴리스에게 한 번은 그 핵을 옮길 능력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럴 틈을 주지 않을 셈으로 강예나가 기습을 감행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저 눈치 빠른 악마가 한발 앞서 핵을 옮긴 모양이었다.
“맙소사…….”
누군가의 입에서 절망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릴리스에게 핵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략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소리이니 당연했다.
가슴이 꿰뚫린 릴리스가 망가진 장난감처럼 목을 기괴하게 뚜둑, 꺾으며 강예나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안 그래, 자기?”
마치 연인에게라도 속삭이는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였으나 행동은 달랐다.
“너도 나한테 이렇게 했었잖아.”
휘익!
심장이 꿰뚫려 축 늘어져 있던 릴리스의 팔이 갑자기 강예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당연하게도 릴리스의 심장에 검을 박고 있는 강예나는 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
“헉!”
“안 돼!”
이미 릴리스의 손톱이 가진 위력을 익히 알고 있는 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강예나에게 가진 감정과는 별개로 당장 눈앞에서 사람이 목이 잘릴 상황에 모든 이가 헛숨을 삼켰다.
펑!
퍼펑!
그때 릴리스가 휘두르려던 오른팔로 수십 개의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윽!”
갑작스럽게 터진 공격에 릴리스가 팔을 잠시 멈춘 순간, 강예나가 빠르게 검을 뽑고 뒤로 물러났다.
탁!
그 옆자리에 공중에서 마법을 날린 이우연이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았다.
콰콰쾅!
그리고 강예나가 무사히 뒤로 물러난 것을 보자마자 거대한 불덩어리를 릴리스에게 냅다 꽂아 버렸다.
화르륵!
양태원의 버프까지 받아 순식간에 릴리스를 덮친 거대한 푸른 불길은 족히 3미터는 넘게 치솟았다.
그 광경을 보며 이우연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잘 타네.”
“잘했다. 임시방편은 되겠군.”
헌터들은 내심 경악했다.
다만 그들이 놀란 것은 방금 전 릴리스에게 냅다 던져 버린 마법의 위력 때문은 아니었다. 이우연이 한국 최강의 마검사라는 거야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그들이 놀란 건 다른 쪽이었다.
특히 마법사 클래스 헌터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방금 보스 몹 견제하던 마법 봤어?’
‘엄청난 컨트롤인데.’
방금 전, 강예나에게 휘둘러지려던 릴리스의 팔에 직격한 수십 개의 불화살.
보기에는 간단해도 무척이나 섬세한 마력 컨트롤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릴리스와 아주 근접한 위치에 있던 강예나에게는 한 치의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릴리스의 팔만 정확히 타격해야 하는 상황.
마력 소모는 둘째치고 막대한 심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우연이 시전하다니.
‘원래 이우연 성격이라면 옆에 누가 있건 보스 몬스터한테 마구잡이로 공격을 때려 넣었을 건데.’
‘둘이 친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 정도면 진짜 많이 친한가……?’
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였다.
“잘했다, 는 무슨. 역시 당신한텐 작전이 필요 없는 거 맞잖아? 또 말도 안 하고 혼자 튀어나간 거 봐.”
누가 들어도 심기가 상한, 잔뜩 비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물론 이우연이었다.
이우연의 말을 들은 헌터들 중 몇몇은 잠시 자신이 주먹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성깔을 겪어 본 자들이 가진 일종의 후유증이었다.
‘아, 그럼 그렇지. 역시 이우연…….’
이우연은 전반적으로 언론이나 대중에게는 평판이 좋은 편이지만, 실제로 그와 자주 마주치는 헌터들 사이의 평가는 달랐다.
특히 이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은 모두 이우연과 던전 공략깨나 해 본 사람들이었다.
이우연은 실력은 확실하지만, 대신 공략 중에는 예민하기 짝이 없고, 무엇보다 저 녀석이 작정하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심지어 하는 말이 다 맞는 말이라는 게 더 얄미웠다.
맞는 말만 하는 충신이 왜 사약을 받았는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실력이 좋으니만큼 좀 짜증 나게 한다고 함부로 공략에서 빼 버릴 수도 없는 데다, 영원 길드의 간판이기도 해서 사이가 틀어지면 귀찮은지라, 대부분의 헌터들은 이우연의 성깔에 다 맞춰 주는 편을 택하는 쪽이었다.
어쨌든 틀린 말은 안 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저러다 둘이 한판 붙는 거 아냐?’
헌터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도 당연했다.
빈정댄 상대가 저 강예나이지 않은가.
강예나는 저 SS급 몬스터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을 정도로 강한 실력자다. 그리고 강한 실력자일수록 자존심이 센 법이다.
그런 이들이 공략에서 지적을 당했을 때 순순히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경우는, 김숙자 교수 정도의 인격자가 아닌 이상 전혀 없다고 봐야 했다.
심지어 저 강예나는 그 김성연 헌터를 발로 차 버릴 정도로 한성깔 하는 헌터였다.
사적으로 친하다는 말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예민한 상태로 부딪치게 되면 또 다른 문제일 터.
‘저러다 둘이 싸우면 어떡하지?’
‘이선 헌터가 중재를 해야 하나? 아니면 교수님?’
그러나 그때 예상외의 일이 또 일어났다.
“미안. 이번엔 진짜 깜빡했다.”
강예나가 약간 머쓱한 목소리로 사과한 것이다.
물론 다소 무성의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건 확실히 사과였다.
‘사과했어?!’
‘그런데 저걸 사과라고 해야 돼?’
‘이우연 성격에 저런 사과를 받아 줄 리가…….’
“흥.”
이우연이 코웃음을 쳤지만, 으레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졌던 더한 독설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도와줘서 고마워. 타이밍 잘 맞췄네.”
“칭찬으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 빚 하나 당신 앞으로 달아 둘 테니까.”
비아냥거린다기보다는 어쩐지 새침하게까지 들리는 반응.
평소 이우연의 성깔을 아는 헌터들은 황당해졌다.
‘……뭐 하냐, 저 새끼?’
‘애초에 저거 칭찬 아니지 않아?’
‘랭킹 1위랑 2위가 하는 대화치고는 뭔가 유치…….’
사람들이 이상한 대화의 흐름에 약간 혼란스러워할 때.
“어, 저것 좀 봐!”
누군가는 여전히 릴리스를 주목하고 있었다.
“보스 몹 녀석. 불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
그 말대로였다.
시퍼런 불길 속, 인영이 너울거리는 것이 보였다.
“쳇.”
강예나는 나직하게 혀를 찼다.
이우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저거야 시간 벌기밖에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 빠른걸.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 맞아. 하지만…….”
강예나가 그렇게 말하며 아직 전열을 채 되찾지 못한 헌터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빠져나갔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들은 헌터들은 모두 놀랐다.
심지어 후방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추가 공격을 할 준비를 하던 이선조차 그랬다.
“네? 여기서 빠져나가라고요?”
“네, 보스 몹이 회복하는 동안 모두 이 지역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어요. 저 녀석 처치하는 건 클리어 조건도 아니고.”
“누나!”
“예나 씨, 그게 무슨……!”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당연히 강예나의 그 일방적인 지시를 납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김성연이었다. 그 기세에 양태원과 이선조차 입을 다물었을 정도다.
“왜 여기서 물러서란 거지?”
“이미 한 번 싸워 봐서 알 텐데.”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저 녀석은 너희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일러.”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저 담담한 말이었을 뿐이지만, 적어도 그 말을 듣는 이들은 그렇게 느꼈다.
아니,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듯 사감을 담지 않은 냉정한 목소리였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아직 한참 모자라다.
그 말이 그렇지 않아도 헌터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열등감을 제대로 자극했다.
“하, 하지만!”
울컥한 김성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도 할 수 있어! 그쪽도 보지 않았나. 조금만 더 하면 분명……!”
“할 수 있을 것 같다?”
콰쾅!
그 와중에도 강예나는 불길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악마를 향해 검기를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공략이 길게 이어졌는데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게 바로 저 악마의 무서운 점이야.”
시퍼런 불길 너머, 악마의 그림자를 시선으로 쫓으며 강예나가 대꾸했다.
“저건 원래 희망을 준 다음 절벽 밑으로 떨어트리는 게 취미인 녀석이거든.”
“그게 무슨…….”
반사적으로 따지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김성연도, 그리고 다른 헌터들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 릴리스라는 보스 몬스터가 일부러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제로 릴리스는 무기력하게 당하는 척하다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어 헌터들의 목을 베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걸 깨달은 순간 헌터들은 더욱 커다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윽…….”
“젠장……!”
분했다.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이 실력의 격차가.
“너희들은 이미 충분히 노력했어.”
그런 헌터들을 달래는 듯한 서투른 말.
아까 고맙다는 말을 했을 때처럼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오히려 더욱 비참했다.
실제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덕분에 릴리스가 핵을 한 번 이동시키게는 만들었으니, 다음번에는 제대로 처치할 수 있어. 그러니 이쪽은 걱정 말고 내게 맡겨.”
“그런…….”
“이런 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야.”
광휘를 두른 검과 함께 강예나가 푸른 불길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김성연을 비롯한 헌터들은 그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말이 맞나?
그래, 분명 강예나에게는 힘이 있었다.
SS급 보스 몬스터의 심장조차 일 검에 꿰뚫어 버리는, 열등감을 느끼는 것조차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강대한 힘이.
그렇다면 정말 강예나가 말하는 것처럼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건가?
능력이 부족한 범인(凡人)들은 뒤로 물러서서, 뛰어나고 특별한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제껏 우리가 한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아아아아아악!”
그때였다.
시퍼런 불꽃 속에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찢어질 것 같고, 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고통 그 자체를 나타내는 목소리.
산 채로 지옥불에 들어간 인간이 있다면 분명 저렇게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갈 것이다.
하지만, 릴리스가 겨우 저 정도 불꽃에 고통을 느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예나는 코웃음을 쳤다.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그래도 조심해. 악마가 대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우연이 강예나를 향해 충고를 던졌을 때였다.
눈앞에서 스윽, 하고.
마치 불꽃으로 된 장막을 걷고 나오는 것처럼, 타오르는 불길 안에서 흰 손이 불쑥 나타났다.
가느다랗고 연약해 보이는 손가락이었다.
이우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본 모습과는 다른데……?’
마기를 띤 검은 손톱이 자란 손가락이 아니라, 투명한 흰 피부를 가진 손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보인 것은 땅을 밟은 맨발.
섬세한 뼈가 드러난 발이 대지를 밟으며, 불꽃 속에서 하늘하늘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마치 실로 조종하는 인형처럼, 불에 반쯤 타 버린 몰골을 한 여자가 불꽃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척비척 걷는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흑마법으로 되살린 언데드처럼 보였다.
그나마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진 금발과, 아주 약간 피부가 남아 있는 얼굴뿐이었다.
끼긱.
“……레…….”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이 벌어졌지만, 딱히 나오는 목소리는 없다. 잘 들리지도 않았고.
이상하군.
이우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권속이라도 불러낸 건가?’
하지만 딱히 공격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겠군.
상대가 악마인 데다, 몬스터 출현 메시지도 없는 만큼 함부로 공격하는 것은 꺼림칙했다.
이우연은 의견을 구하기 위해 강예나를 돌아보았다.
“저거 어떻게 생각…… 강예나?”
“…….”
푹.
힘이 빠진 강예나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땅에 박혔다.
깜짝 놀란 이우연이 반사적으로 검을 주워 손에 쥐여 주려고 했지만, 강예나는 좀처럼 검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심한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대체 왜 그래?”
“……아…….”
“강예나?”
강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동자는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꽉 악문 잇새 사이로, 고통스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아리아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