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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24화 (225/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24화

-보스 몬스터, ‘욕망하는 화염’의 ‘무저갱의 공포’에서 벗어납니다.

‘망할 악마 새끼.’

뒤늦게 뜬 메시지를 보며 나는 이를 갈았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일부 손상되었습니다. 충격 감소 옵션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 앙겔루스의 가호가 당신의 의지에 힘입어 스스로 손상을 복구합니다.(현재 복구 진행도 40%)

앙겔루스의 가호가 손상되어서 제대로 보호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때 저런 상위 정신계 마법에 당하고 말다니.

게다가 하필이면, 릴리스가 사용한 것은 무저갱의 공포.

무의식에 숨어 있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마법이다.

그러니 내가 그런…… 모습을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덕분에 이번에는 정말 그대로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만일, 백사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 다른 용사의 의지가 당신의 영혼을 일깨웁니다.

끝 모를 환상에 빠져 있었을 때, 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다행히도 정신계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캉!

카캉!

마주한 검에 흰 불꽃이 튀었다.

릴리스의 손속에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세라도 목을 베어 낼 것 같은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 어어어, 너 방금……!”

그 와중에 백사현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시도하고 있었지만, 이우연이 가차 없이 그를 밀어냈다.

“잘했고, 이제 그만 뒤로 빠져!”

“나도 싸울 수 있다고! 방금 내가 해낸 것 못 봤어?”

“검에 이가 다 나갔는데 무슨 소리야!”

“야, 이우연. 너 형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 방금 내가 너희들을 구한 거라고!”

백사현의 말마따나 다소 정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이우연의 행동은 적절했다.

잠시 용사의 광휘를 둘렀던 바스타드 소드는 이제 빛이 사라져 있었다.

사실 백사현의 경우, 그 레벨에 SS급 몬스터인 릴리스를 한 합이라도 상대했다는 게 용했다.

그야 배우 클래스로 용사를 연기했으니 어느 정도 용사 클래스 보정을 받기는 했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영혼에서 고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약해 빠진 인간일 뿐인데…….”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이 릴리스가 적당히 상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의 눈길이 잠시 백사현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흥미와 경멸이 혼재된 시선이었다.

“감히 내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다니. 가끔 시스템도 실수를 한다니까.”

“뭐, 뭐라고?!”

갑자기 악마 따위에게 모욕당한 백사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릴리스가 차갑게, 그러나 어딘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 같은 인간의 속을 모를까.”

“무, 무슨 말을……!”

“백사현, 듣지 마!”

나는 릴리스의 개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릴리스는 내 검격을 받아 내면서도 계속해서 지껄였다.

“마치 네가 한 일이 남을 위한 것인 양 치장하다니 참으로 뻔뻔하구나. 아무 대가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타인 따위는 내팽개칠 거면서. 그런 인간을 악마가 무어라고 부르는지 아니?”

릴리스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악마보다 못한, 위선자라고 한단다.”

그 폭언에 보지 않아도 백사현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내가 무슨……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악마의 말에 뭘 그렇게 하나하나 반응해 주고 있어!”

이우연이 백사현을 향해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다 헛소리야. 들을 필요 없어! 얼른 후방으로 빠져!”

“그래, 정말 헛소리에 불과하다면 그리해도 그만일 테지.”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마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이니까, 언제까지고 네 마음에 박혀 사라지지 않을 거란다.”

펑!

백사현이 충격을 받아 굳어 있는 틈에, 다른 헌터가 난사하는 공격이 날아왔다.

“백사현, 뭐 하는 거야!”

다행히 이우연이 끌어내 다치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차리기는 요원해 보였다.

나는 혀를 찼다.

악마들은 그 악명에 걸맞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마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백사현의 본질을 꿰뚫어 본 거로군.’

그래서 아까 전 백사현이 앞으로 나섰을 때 곧장 죽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저 녀석의 의지 자체를 무참하게 꺾어 버리는 게 훨씬 더 즐거우니까.

과연 악마다웠다.

릴리스의 이명(異名)은 욕망하는 화염.

인간의 욕망을 유희 거리로 삼으면서도, 그 욕망의 순수함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깔보고…… 결국에는 인간을 깔아뭉개며 비웃는 악마다.

마치 제가 전능한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인간을 내려다보고, 그 의지를 하찮은 듯 무시하고, 유한한 생의 의미조차 깔아뭉개는 악마 새끼들.

백사현이 허옇게 질린 채 소리쳤다.

“아니야! 바, 방랑하는 구도자! 넌 알지? 나는 진짜로 그런 게……!”

“그래, 안다.”

내 말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파리해져 있던 백사현의 눈에 간신히 빛이 돌아왔다.

캉!

나는 릴리스의 공격을 받아 내며 대꾸했다.

“저런 말은 들을 필요 없어. 네가 해낸 건 겨우 흉내 따위가 아니야. 위선도 아니고.”

진심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릴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정하구나, 레나는. 저런 거짓말을 믿어 주다니. 그렇게 순진할 만큼 인간 세상을 겪지 못한 것도 아닐 텐데, 레나.”

“네가 인간에 대해서 뭘 안다고 지껄여.”

나는 참다못한 이우연이 백사현의 뒷덜미를 잡아 냅다 후방으로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며 말했다.

악마 따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무엇을 안단 말인가.

그래, 어쩌면 백사현이 앞으로 나선 건 무언가 대가를 바라서일 수도 있겠지.

원래도 명예욕이 있는 성격이니 더더욱.

설령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그러한 열망이 무의식중 자리 잡아 앞으로 나서게 만든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악마가 꿰뚫어 본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그 잠재된 욕망일 것이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릴리스. 인간에 대해 모르는 건 네 쪽이라고.”

그러나, 그게 뭐 어때서?

인간이라면 죽음 앞에서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타인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그런 건 흉내라고, 위선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백사현이 그 순간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섰고, 그 용기가 다른 사람을 구했으며…… 그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는 것.

그래서, 내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는 것.

누군가가 또다시 나를 도왔으며, 나 또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악마는 결코 꿰뚫어 보지 못할…… 이제껏 내가, 우리가, 인간이 살아남아 온 방법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지는 건 너야.”

캉!

나는 힘을 주어, 대치하고 있던 릴리스의 손톱을 크게 밀쳐 냈다.

그 바람에 잠시 생긴 틈.

그 사이로 검을 밀어 넣었지만, 릴리스는 내 검을 쉽게 피한 뒤 되레 내 쪽으로 파고들며, 손톱을 휘둘러 내 팔을 베어 내려 했다.

퍼펑!

그러나, 릴리스의 손톱이 내 몸에 닿기 전에 이우연이 쏜 마법이 닿았다.

시기적절한 도움이었다.

쾅!

릴리스가 잠시 멈칫한 사이, 나는 내 품으로 파고 들어온 릴리스의 이마를 내 머리로 세게 들이받으며,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릴리스의 오른쪽 손목을 잡아챘다.

“그러니까 넌 나랑 개싸움이나 하자고!”

뿌득!

“윽!”

릴리스의 손목이 으스러졌다.

마력을 낭비하다시피 주입한 보람이 있었다.

릴리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반사적으로 내 팔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놔주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세워 릴리스의 복부를 가격했다.

뻐억!

제대로 들어갔다.

“커헉!”

릴리스가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그것도 그럴 게, 방금 부러트렸던 릴리스의 손목이 곧장 재생되기 시작하는 게 감촉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더, 허리를 굽힌 릴리스의 몸통을 걷어찼다.

휙!

아니나 다를까.

축 늘어져 있던 릴리스의 손목이 어느새 힘을 되찾고 내 팔을 반대로 감아쥐었다.

빠드득!

릴리스의 힘에 팔목이 완전히 으스러지기 직전, 나는 주먹으로 릴리스의 뺨을 후려치며 그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릴리스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대악마치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몰골이었다.

릴리스가 코피를 훔치며 씩 웃는 게 보였다.

“하기야 개싸움도 너랑 하면 즐겁지. 안 그래?”

난 하나도 안 즐겁다, 이 새끼야.

나는 입안에 고인 피를 땅바닥에 뱉었다.

붙어서 싸울 때는 숨 하나조차 마음 놓고 내뱉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잠시 숨을 돌리자니 얼마나 내가 소모되었는지 잘 알겠다.

‘이러다 진짜 뒈지겠는데.’

하기야 이번 던전에 들어온 이후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워낙에 이레귤러 상황이 많이 일어났으니 말이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에 비해 이번의 릴리스는 SS급인 만큼 재생력과 회복력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끝내야 해.’

그러니까 생각해라, 강예나.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끝장낼 수 있지?

개싸움에서 코피 터지게 쥐어 패긴 했다만 내게도 여유는 없었다.

당장은 마력이 바닥났는지 아니면 내게 얻어터져서 그런 건지, 변변한 마법은커녕 제 권속으로 불러낸 저 거대한 그림자 괴물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금만 여유를 줘도 금방 회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직 앙겔루스의 가호가 수복되지 않은 나는 멍청하게 또 정신계 마법에 걸려들 테고, 그럼 우리는 전멸이다.

또 아직 몇만 마리 남짓한 마물들도 몰려들고 있으니 더더욱.

게다가 문제는 또 있었다.

‘대체 어디에 숨긴 거지?’

이렇게 근접해서 싸우고 있는데도 릴리스가 핵을 숨긴 위치를 전혀 모르겠다는 것.

릴리스처럼 신체에 핵을 숨기고 있는 녀석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부위를 감싸기 마련이다. 덕분에 저번 전투에서는 정소현이 틈을 벌어 준 사이에 정확하게 코어를 깨부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 전투의 경험을 뼈아픈 실책으로 여긴 모양인지, 아무리 릴리스의 모습을 관찰해 보아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의심이 가는 부위를 모두 베어 보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접근하기도 힘든데 말이지.’

현재 내 능력치는 레벨 79.

내 본 능력치인 만큼 나쁜 건 아니지만 SS급 보스 몬스터, 그것도 릴리스처럼 여러 번 싸워 본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내 나름의 히든카드였던 기사회생조차 릴리스의 계획된 기습으로 이미 소모한 마당이다.

그러니까 이제 내게 남은 수단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수밖에 없나.’

내키지는 않았지만 현재 사용 가능하며, 이 상황을 단번에 타파할 수 있는 스킬은 그것밖에 없었다.

‘망설일 때가 아니야.’

“야, 이우연.”

“……왜?”

후방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이우연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답했다.

계속해서 내 싸움을 서포트하고 있었던 만큼, 저 녀석의 소모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부탁을 하려니, 솔직히 양심에 찔리지만…….

“너, 나 믿냐?”

“……뭐지? 그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 물음은?”

“농담하는 거 아니야.”

시도해 볼 만한 남은 수단은, 이거밖에 없다.

“진짜로, 나한테 목숨을 맡길 수 있겠냐고 묻는 거야.”

- ‘멸혼의 불꽃’ 스킬은 사용 가능 상태입니다.

- 현재 당신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이필연’입니다.

용사 클래스 전용 스킬, 멸혼의 불꽃.

내게 현재 남은 수단이라고는 이것뿐이다.

이건 릴리스 앞에서는 한 번도 쓴 적 없는 스킬이기도 했다.

즉, 릴리스가 아직 모르는 유일한 비장의 수단이다.

내가 릴리스를 잠깐이나마 압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사실 제대로 설명해 줘야겠지만, 그럴 수가 없네.”

릴리스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함부로 내 스킬에 대해서 떠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이우연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눈앞에 내 스킬 발동에 동의하느냐는 창이 떴을 테니까.

- 플레이어, 강예나의 ‘멸혼의 불꽃’ 스킬 발동에 동의하십니까?

- Y/N

아마 이런 식이겠지.

……솔직히, 이우연이 어떻게 대답할지는 모르겠다.

정확하게 알려 주진 않았지만 이우연 정도의 눈치라면 리스크가 상당하다는 건 알 테고, 거절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또 나는 이제 이우연을 동료라고 생각하지만, 이우연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우리는 안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고, 몇 번 함께 싸웠다고는 해도 서로의 속사정을 시원하게 털어놓은 것도 아니며, 피차간에 귀찮은 일을 피하고자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대하던 사이였으니까.

그러던 게…… 이상하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여기에도 괜히 정 든 사람이 생기는 건, 내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만 될 뿐인데.

“너는 어느 쪽 세계를 구할 거지?”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 불과한데, 어깨는 무겁고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질문만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그래도.

“질문이 잘못됐네.”

이우연은 씩 웃었다.

- 플레이어, ‘이필연’이 멸혼의 불꽃 스킬 발동에 동의합니다.

“나는 이미 올인했다니까.”

만일 네가 나를 믿어 준다면.

- 용사 클래스 전용 스킬, ‘멸혼의 불꽃’ 이 발동됩니다.

-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자신의 영혼을 당신에게 맡깁니다.

- ‘욕망하는 화염’이 목표물로 설정됩니다.

- 목표물 처치에 실패할 경우 동료 플레이어에게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 이번 페널티는 ‘능력치 소멸’ 입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작열했다.

- 상태창이 갱신됩니다.

용사 클래스 전용 스킬인 멸혼의 불꽃은, 바로 동료의 힘을 이 몸에 빌리는 것.

플레이어명 : 강예나

LV.79

특성 : 관철하는 아귀

클래스 : 용사

체력 : 3020(+840)

근력 : 2515(+765)

민첩 : 1782(+912)

마력 : 850(+1230)

스킬 : 멸혼의 불꽃 lv.max 기사회생 lv. max 불굴의 의지

쉽게 말해 이우연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내 능력치에 더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수치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잠시 극단적인 도핑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극심히 소모되었던 체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에 차올랐다.

동료의 힘을 빌려 강해진다니, 그야말로 용사의 정석 같은 스킬 아닌가 싶다가도.

“으윽……!”

얼음 밑 호수에 갇혀 살이 저며지는 것처럼 아프게 만드는 고통을 전신으로 느끼면 좋은 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인간의 육체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본래 내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빌렸기에 이런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동료의 페널티도 그렇고, 정말이지 어지간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은 스킬이었다.

“괘, 괜찮아?!”

이우연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저 고통만이 아니었다. 마치 육체를 초월하는 것 같은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검 한 자루로 모든 것을 벨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

쿵!

발을 박차는 순간, 님페의 바람이 넘쳐흐르는 마력에 비명을 질렀다.

그저 바람이 아니라 태풍처럼, 숨조차 압박하는 거대한 공기의 흐름.

눈을 한 번 깜박하기도 전에…… 아니, 인식조차 하기 전에 나는 이미 릴리스의 코앞에 와 있었다.

크게 허리를 뒤틀고, 손에 쥔 검자루에 힘을 주었다.

“저게 무슨!”

뒤에서 감탄하는 소리는, 내 검이 릴리스에게 닿았을 때에야 와닿았다.

물론 릴리스도 그 자랑스러운 손톱을 세워 내 검을 막으려 했지만.

뚜두둑!

다섯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부러졌다.

릴리스의 표정이 드디어, 마침내 오롯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콰콰콰쾅!

대신, 주먹으로 증오스러운 악마를 갈겼을 뿐.

릴리스의 몸이 저 멀리로 나가떨어졌다.

- 제한 시간 00:05:00

육체에 한계가 있으니만큼 당연히 제한시간도 존재했다.

내 몸이 지금의 도핑된 능력치를 견딜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

그사이에 릴리스를 끝장내야만 한다.

나는 멀리로 날아간 릴리스의 몸을 향해 발을 굴렀다.

내 자신의 껍데기를 부수는 것만 같은 고통과 함께 검을 내질렀다.

콰콰쾅!

검풍만으로 콘크리트 바닥이 깊게 부서지고, 피부가 비명을 지르고, 적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왼팔을 잃은 릴리스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쿠콰쾅!

다음은 오른팔.

그리고 다리.

복부.

콰지직!

그럼에도 검날에 닿는 감촉은 없다.

느껴지는 것은 내 자신의 고통과 완전히 무력화된 릴리스의 공허한 비명뿐.

대체 어딜까.

릴리스가 자신의 핵을 숨겨 놓은 곳은.

문득,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릴리스의 눈과 마주쳤다.

지난번 백록담 전투에서 릴리스는 핵을 저 왼쪽 안구에 숨겨 놓았다.

그렇다면 한번 시험해 볼 만했다.

내가 검을 쳐들고 안구를 향해 검을 세로로 꽂아 넣으려 할 때였다.

휘잉!

미세한 바람이 불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내가 고개를 들려 했을 때, 무언가가 내 검날을 콱 잡았다.

그건, 릴리스의 손이었다.

제 살이 베이는 것도 상관 않고 검을 잡은 릴리스의 입이 귀밑까지 쭉 찢어졌다.

그리고 그런 소름 돋는 미소 위로 갑작스레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건……!’

릴리스의 악의의 집합체.

줄곧 바닥에서 숨을 죽이고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그림자 악마가 일순간 그 기세를 부풀린 것이다.

그리고 그 악의가 향하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악마의 손길이 나를 휙 스치고 지나가 등 뒤로 향했다.

“피……!”

피하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거대한 그림자 몬스터의 공격이 이우연을 비롯한 한국 헌터들을 덮치기 직전이었다.

“아하, 아하하핫!”

릴리스의 광소가 울리고, 내가 뒤늦게라도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그림자 몬스터를 베려고 했을 때.

콰직!

어둠을 가르고 빛이 도래했다.

키에에에엑!

그림자 악마는 단말마만을 남기고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나는 악마를 단숨에 찢어발긴 그 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때 빛을 잃고 영원히 되찾지 못할 것 같던 그 검은…….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 끝내라.”

휘황찬란한 빛을 두른 성검을 든 여자.

내 손에 들려 있는 것과 같은 검이었다.

- 플레이어, ‘강예나’가 ‘욕망하는 화염’의 내기에 응하지 않아 내기가 종료됩니다.

릴리스가 포기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여기까지…….”

나는 더 듣지 않았다.

콰직!

- 보스 몬스터, 욕망하는 화염이 처치되었습니다.

- 최대 업적자 : 강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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