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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227화 (228/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27화

조한율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어렵네요. 마음 같아서는 적어도 몇 주는 쉬라고 말해 주고 싶은데…….”

푹!

과도로 깊게 찔린 배의 과즙이 튀었다.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제 입장에서도 지금 고민이 많거든요.”

내게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키보드를 휙, 하고 한쪽으로 치우며 조한율이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맞추었다.

“그래도 당장 움직이는 건 무리니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죠. 일단 정보를 좀 정리해 볼까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이번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얻은 것은 비단 능력치 회복과 운명의 씨앗뿐만이 아니었다.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정보가 손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의 미래, 라는.

“그래서? 저쪽 한국 서버는 조사해 봤어?”

어제부터 조한율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본인에게만 보이는 모니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날 비롯해 헌터들의 공략은 끝났지만, 조한율의 싸움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 던전은 여러모로 독특한 점이 많았다.

자연적으로 생긴 던전이 아니라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이쪽 서버에 간섭해 생성된 데다, 특정 시점부터 우리와는 운명이 갈라진, 일명 B루트의 한국이 배경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운영자 권한으로 뜯어보면 흥미로운 정보가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운영자가 내 편이라는 게 이리도 든든하게 느껴질 줄이야.

“안타깝게도 일회성 던전이라 흔적이 남지 않아 깊게 조사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결과는 나왔어요.”

피곤 때문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조한율이 대답했다.

“일단 저쪽 강예나 씨가 말한 대로, 몇 년 후에 서버가 통합된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역시.

이번 던전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가 바로, 향후 몇 년 내에 전 세계의 시스템이 타르토스처럼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한국을 비롯한 지구는 나라별로 서버가 나뉘어 있고, 해당 서버 소속의 헌터들만이 각 나라의 던전 공략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전에 김숙자 교수님은, 내가 해외의 다른 던전을 공략해 업적치를 쌓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지.

어쨌든 이렇게 나라별로 서버가 나뉘어 있는 덕분에 아직까지는 각국의 헌터들 간에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 서버가 통합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던전은 계속 관리해 주어야 하는 위험 요소인 동시에, 자원을 채굴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이기도 했다.

그리고 던전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여의도 던전 때처럼 같은 나라 안에서도 분쟁이 일어나고는 하는데, 이게 세계 단위로 넓어진다는 소리니까.

그렇다면 정말 나라 단위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타르토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에요.”

조한율이 이어 말했다.

“통합 서버가 되면 기존의 운영자 중에서 전체 서버를 통솔할 운영자를 다시 뽑는 것 같아요.”

나는 뜻밖의 정보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전체 서버의 운영자?”

그건…… 큰일인데.

지금의 한국만 보아도 운영자가 어떤 성향과 목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헌터들의 방향성이 상당히 달라졌다.

하물며 한 나라 단위가 아니라 세계 통합쯤 되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진다.

“그럼 그 전체 운영자는 또 어떻게 뽑는대?”

조한율은 원하지도 않는데 운영자를 떠맡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랜덤으로 뽑히는 건가?

“음, 그건…….”

“아, 아직 모르는 건가?”

“확실한 건 아니고, 대강 추측되는 방법이 있긴 한데요…… 으음.”

지금까지는 재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술술 정보를 뱉어 내던 조한율은, 왜인지는 모르지만 말을 하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이거 극비 정보인데……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나 씨니까 괜찮긴 하지만…….”

꽤 오랫동안 고민하나 싶더니, 조한율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도 아이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 확인부터 좀 하고 이야기할게요.”

그러더니 병실에 설치한 방음 아이템을 한 번 더 점검했다.

“좋아, 잘 작동하네요. 도청기도 없고.”

“뭐 얼마나 대단한 비밀이길래 그래?”

“진짜 극비거든요.”

그리고 다음 순간, 정말로 폭탄이 떨어졌다.

“살인이에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절 죽인 사람은 제 운영자 직책을 넘겨받을 수 있다고요.”

그렇지만 막상 폭탄을 떨어트린 조한율은 덤덤한 어조였다.

“그러니까 중앙 운영자도 비슷한 방법으로 뽑는 거 아닐까, 싶은데요. 최고 운영자가 되고 싶으면 다른 운영자를 모두 죽여야겠죠.”

“아니, 그게 무슨…….”

나는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나한테는 말해도 상관없다니…… 그렇게 쿨하게 넘기기에는 너무 큰 정보였다.

조한율을 죽이면 그대로 운영자 직책을 넘겨받게 된다고?

“그런 걸 나한테 말해도 돼?”

그렇게 묻자 조한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영자가 하고 싶으세요?”

“그거야 아니지만…….”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예나 씨는 용사인데 운영자라는 자리까지 떠맡기엔 이미 어깨가 무겁잖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사양하고 싶으실 것 같은데.”

“……그것도 그러네.”

하긴 그랬다.

운영자처럼 책임이 무거운 자리는 아무리 권한이 많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으니까.

게다가 이 정보대로라면 향후 몇 년 안에 다른 운영자와의 싸움도 겪어야 한다는 것 아닌가.

최고 운영자가 될 생각 따위는 없어도, 다른 서버의 운영자가 나를 제거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어차피 싸움은 피할 수 없을 테다.

‘첩첩산중이군.’

사감을 빼더라도 내게 호의적으로 도움을 주는 운영자란 잃고 싶지 않은 자원이었다. 애초에 운명의 씨앗만 해도 조한율의 도움이 없으면 세팅할 수 없으니.

나는 지끈지끈 아파 오는 머리를 짚었다.

그러니까, 정보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한국을 비롯한 지구는 향후 5년 내에 통합 서버로 변경될 것이다.

두 번째, 운영자 또한 통합 운영자가 선출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상대방의 목을 딴다는 야만적인 수단일 확률이 높고.

이 모든 과정에서 상당한 고난이 예상되었다.

결론은, 영토 따먹기와 권력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 아닌가.

시스템과 운영자의 직책이라는 새로운 먹잇감이 생겼을 뿐, 인간이 하는 일은 어차피 똑같았다.

어찌 됐든 그런 난세에 고통받는 건 힘없는 약자들뿐일 테고.

그나마 미리 이런 정보를 알게 되어 준비할 시간을 벌게 된 건 다행이지만…….

“…….”

나는 깁스를 한 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포션 몇 개 들이키면 낫는 거 아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나한테는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의 씨앗을 모은 참인데.

“의사 선생님이 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포션 더 쓰면 위험하다잖아요. 적어도 이틀 정도는 얌전히 계시라고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자, 이거 드세요.”

조한율이 어느새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한 배를 건넸다. 하도 과도에 푹푹 찔려 못생겨지긴 했지만, 고급 과일인지 맛은 좋았다.

“그나저나 걱정거리는 또 있는데요.”

“여기서 뭐가 더 있어?”

슬슬 과부하가 올 것 같은데.

“타르토스 쪽의 운영자가 강예나 씨한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래, 그것도 있긴 했지. 역시 만만치 않게 머리 아픈 화제지만.

어느새 조한율의 표정은 진지한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예나 씨 말을 들어 보면 그쪽 세계도 이미 대륙 통합 서버로 굴러가고 있었다는 거죠? 즉, 그 또라이는 다른 운영자를 죽이고 최고 운영자가 된 사람일 거란 말이에요.”

“……말이 그렇게 되는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계적인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모든 세계는 같은 과정을 밟게 된다. 그러니 타르토스 쪽은 이미 한 명의 운영자가 통합된 서버를 관리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조한율의 추측대로 최고 운영자가 뽑힌 경위 또한 같을 것이다.

나 같은 일반인만 모르고 있을 뿐, 운영자들끼리 싸움을 벌였겠지.

“역시 완전 개또라이라니까요.”

조한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 던전에서 예나 씨를 죽이는 데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정말 무슨 일을 할지 몰라요.”

죽이는 데 실패했다, 라.

조한율의 말을 들은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번 던전은 날 죽이려고 꾸민 함정일까?”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조한율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애초에 클리어 조건부터가 강예나를 죽이라는 거였는데 그것 외에 무슨 목적이 있었겠어요?”

하긴, 그것도 그랬다.

B루트의 강예나는 멸망한 한국의 모습을 내게 보여 주는 게 타르토스 운영자의 목적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했지만…… 그건 클리어 조건을 알게 되기 전이었으니, 아무래도 조한율의 추측이 좀 더 타당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알리시아를 만났던 던전에서 알버트가 몬스터화된 것도 그렇고 이번 던전의 생성도 그렇고,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내게 악의를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릴리스의 밸런스 조정을 시도한 것도, 과부하를 건 것도 타르토스의 운영자였다면서.”

내 말을 들은 조한율의 얼굴이 찌부러진 호빵처럼 구겨졌다.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던전에서 나온 후 들었다.

당시, 릴리스의 등급 조정 및 다른 강예나에게 과부하를 걸었던 것은 조한율이 아니라 타르토스 쪽 운영자였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상당한 페널티를 짊어져야만 해낼 수 있다는 일을 타르토스의 운영자는 또다시 아무렇게나 해 버린 것이다.

“단순히 나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때 개입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그래서 더 이상한 거죠.”

조한율이 정색을 했다.

“애초에 그 정도 또라이라면 사고방식을 추측하려고 하는 게 무리예요. 그냥 자연재해 같은 거라고요.”

“……그것도 그렇군.”

하기야 그렇다고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단순히 내 편을 들어 준 거라고 하기엔, 그건 그것대로 말이 되지가 않았다.

조한율이 또라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는 짓에 일관성이 없긴 해.’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멸망했다는 타르토스의 운명을 바꾸어, 내 친구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

그건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명약관화한 사실일 터.

그렇다면 타르토스의 운영자는 이대로 타르로스가 멸망하기를 바라기에 나를 방해하는 걸까?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

나는 자꾸 이어지려는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지금은 모든 게 억측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한 번은 더 타르토스에 돌아가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또 타르토스 운영자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내가 해야 할 일에는 변함이 없기도 하고.

- 메인 퀘스트 : 운명의 씨앗을 수집하여 운명을 변화시키십시오.

- 보상 : 멸망한 세계의 복구

운명의 씨앗을 모아 타르토스의 운명을 바꾸는 것.

다만 여기에 지켜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겨 버린 것뿐이다.

‘……쉽지 않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타르토스를 구하는 동시에 한국도 지켜야 한다니.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픽 웃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뭐라고 세계를 구하니 마니 하는 일을 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마음 맞는 친구들과 유유자적하게 술이나 마시면서 적당히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그러고 싶으면 세상을 구해야 한다니.

‘딱히 분에 넘치는 소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또 다른 세계의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란 점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해내라. 두 세계 모두 구해 내.”

아니, 저쪽이 더 힘들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타르토스를 구할 단초를 찾아내려면 도대체 뭘 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막막해도, 나 자신에게 맹세한 것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저쪽의 강예나는 어떻게든 해내겠지.

그럼 나도 질 수 없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지금 퇴원할래.”

“그러니까 그건 무리라니까요?! 일단 계획부터 짜자고욧!”

조한율이 내 어깨를 꽉꽉 누르며 짜증을 냈다.

*   *   *

그런데 정말로 무리였다.

“지금 퇴원하셨다간 팔을 영영 못 쓰는 수가 있어요.”

아침 회진차 온 의사가 피곤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신체의 회복이란 근본적으로 충분한 영양과 수면을 취해야 가능한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적어도 이틀은 쉬셔야 합니다.”

“……기합으로 어떻게 안 되나요?”

“안 되죠.”

나는 떨떠름하게 내 팔을 바라보았다.

일단 하루 충분히 잔 덕에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퇴원이 안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퇴원 의사를 밝히자마자 저렇게 정색하며 만류할 정도라니…….

“능력치가 부족해서 그런가?”

레벨 79 때는 그냥 하룻밤 자면 상처가 대충 다 나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회복이 더디단 말인가.

역시 약해 빠져서 그런 건가?

하지만 돌아오는 의사의 대답은 냉정했다.

“아뇨, 피로가 쌓이는 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른 영양제 맞고 더 주무세요.”

“이미 아침인데요……?”

“더 많이 자야 회복이 됩니다. 아, 식사하고 주무시는 게 낫겠네요.”

“그럼 집에 가서 자면 안 됩니까? 제가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아뇨, 급한 일 없고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한율이 이불을 덮어 주며 또다시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혔다.

의사가 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쉬더니 병실을 떠나갔다.

“…….”

내가 너무 귀찮게 굴었나?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투정을 부리기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솔직히 여전히 불만스럽기는 했다.

“진짜 괜찮은 것 같은데…… 이제 아프지도 않고…….”

“괜찮기는 무슨, 어이가 없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환자복 차림에다, 다리 한쪽에 깁스를 한 이우연이 목발을 내려놓으며 나를 비웃었다.

“그 꼴로 뭐, 어딜 가? 더어어언전? 웃기고 있네.”

“시끄러워.”

퍽!

비아냥거림에 짜증이 나서 머리맡에 놓인 사과를 던졌지만 이우연은 쉽게 받아 냈다.

“이제 물건을 던져도 힘이 안 실리네. 이러다 내가 1위 되는 거 아니야?”

“봐준 거야. 다시 제대로 던져 줘?”

“봐준 거 아니던데. 팔에 힘도 안 들어가고 조준도 빗나간 거잖아? 회복하려면 한~ 참 걸리겠는데?”

“아니라고.”

“맞던데.”

“아니라고 했지!”

“둘 다 애도 아니고 무슨 유치한 말다툼이래요?”

병문안을 핑계 삼아 아침부터 와서는, 병실 텔레비전에 게임기를 연결해 큰 화면으로 게임을 하던 양태원이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화면 속에서 이등신의 캐릭터가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여. 그거 나중에 벌 받아요. 지금 누나 옆에 아사한 잡귀 하나가 있는데 엄청 째려보는 중.”

그 말과 함께 낚싯대의 찌가 흔들리더니, 화면 속의 캐릭터가 힘차게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아, 왜 또 농어야!”

스피커로 울리는 유쾌한 효과음과는 달리 으스스한 소리를 들은 병실은 순식간에 싸해졌다.

이우연이 침대 가까이 두었던 의자를 약간 멀리했고, 조한율은 입을 떡 벌린 채 양태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

진담인가 싶어 양태원을 감싸 안고 있는 청룡을 바라보니, 청룡이 푸른 눈동자를 깜박였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흠, 흠. 우리 다 어른이니까 이런 거에 겁먹을 때는 지났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조한율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허세에 이우연이 금세 찬물을 끼얹었다.

“난 솔직히 무서운데. 귀신한테는 마법도 안 먹히잖아.”

“아, 네가 그러면 내가 뭐가 돼?”

“알 게 뭐야. 그래서, 강예나.”

이우연이 팔짱을 낀 채 나를 응시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태도가 영 삐딱한 것이, 아무래도 요전에 쌓인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웃고 있기는 했지만 일단 눈빛부터가 날카롭다.

‘하긴, 화가 날 만 했지.’

애초에 멘탈이 깨진 상태로 공략에 들어간 데다, 작전을 짜놓고 내 멋대로 뛰쳐나가고, 설명도 없이 저 녀석의 능력치를 빌려 쓰기도 하고.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번 던전에서는 정말로 저 녀석의 신세를 많이 졌다.

나중에 밥이라도 사 줘야겠군.

“이 이른 아침부터 나를 부른 이유는? 설마 내 얼굴 보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닐 테고.”

“어, 맞는데?”

“뭐?”

“너도 많이 다쳤다고 들어서. 원래 내가 직접 가 보려고 했는데 의사가 움직이지 말라고 하더라고.”

이우연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안부도 궁금했다.

그만큼 이번 던전 공략은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태원이는 이미 어제 퇴원해서 아침부터 놀러 왔고, 이선 헌터의 경우는 심지어 오늘 새벽에 출근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병원에 입원한 건 나와 이우연뿐이었다.

그래서 상태도 살펴 볼 겸해서 연락한 것이다.

……뭐, 그 외에도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나 때문에 고생한 데다, 부상까지 입은 사람한테 곧장 본론부터 꺼낼 정도로 후안무치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부터 꺼낼 이야기는 이우연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기분을 좀 풀어 줘야 하는데.’

그냥 어지간한 부탁이 아니니까 말이다.

‘화이팅!’

조한율이 소리 없이 입을 움직여 속삭였다.

그랬다.

이우연의 협력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어제 새벽까지 이어진 브레인스토밍의 결과였다.

즉 이우연의 기분을 풀어 주고 협력을 얻어 내는 것은 일종의 퀘스트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가 낼 수 있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좀 괜찮아?”

그런데, 이우연은 눈썹을 치켜올릴 뿐 어쩐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기껏 안부를 물었는데 저 반응은 다 뭔가.

기분을 풀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야, 무시하지 말고 대답을 해. 몸은 좀 괜찮냐니까?”

휙!

효과음과 함께 게임 화면에 또다시 낚시에 성공한 캐릭터가 춤을 추고 있었다.

게임기를 잡은 양태원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낚였네. 낚였…… 악!”

퍽!

이우연이 뜬금없이 양태원의 뒤통수에 사과를 던져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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