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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1화 (232/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1화

신우영은 생각했다.

‘그냥 팬 카페 탈퇴할까…….’

퇴근하면 강예나를 만난 후기 겸 미담을 쓸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미담은커녕 팬 카페 같은 건 당분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신우영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으니까.

그것도 완전히 두들겨 맞은 상태로.

물론 신우영 혼자 그런 건 아니었다.

“으으…… 죽겠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신우영 외에도 영원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검사들 또한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족히 스무 명은 되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꼴은 아주 처참했다. 차라리 던전을 막 공략하고 나왔을 때가 더 나을 정도라, 신우영은 눈물을 찔끔 삼켰다.

‘훈련을 시켜 준다더니…….’

그랬다.

몇 시간 전, 강예나를 만나 들떠서 상사의 꾸지람조차 흘려듣고 있었던 신우영은 길드 건물 내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을 통해, 강예나가 검사들에게 특훈을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연히 신우영은 당장 연무장으로 달려 나왔다.

‘와, 영원 길드에 들어온 보람이 있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예나라고 하면 현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검사가 아닌가.

같은 검사라면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해도 천금 같은 기회일 텐데, 심지어 특훈을 해 준다니!

영원 길드의 길드장인 김성연 또한 뛰어난 검사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길드원인 신우영이 김성연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일 따위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만큼 고위 레벨 헌터들은 몸값이 비싼 존재였고, 이렇게 직접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이 드문 기회에 달려 나온 것은 물론 신우영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여기로 오는 거 맞아?”

“방송 진짜 맞지? 만우절 아니지?”

갑작스러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강예나가 특훈을 해 준다는 말에 신우영뿐 아니라, 영원 길드에 있던 모든 검사들이 달려 나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던전 공략에 나선 이들도 있기에 일단 연무장에 모인 것은 스무 명 남짓이었지만, 사실상 방송을 들은 건물 내의 검사는 모두 모인 것이었다.

게다가 연무장 근처는 검사 외에도 구경을 나온 다른 클래스의 헌터들로 득시글댔다.

그만큼 방랑하는 구도자, 강예나는 화제의 인물이었으니까.

그들은 연무장에 나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랭킹 1위를 맞이했다.

물론 특훈이라는 목적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그중 대부분이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소문의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자 하는.

그리고 그들은 곧, 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이목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곁에 있는 이우연, 그리고 김성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 여자의 정체는 명확했다.

현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 강예나.

얼핏 보면 공개된 영상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어, 얼굴 직관…….”

“우와아…….”

아이템을 썼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영상과는 달리 지금은 강예나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던 것이다.

높이 올려 묶은 긴 머리에, 훤칠한 키와 단정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옆구리에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흰빛의 검 한 자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몇 시간 전에 이미 강예나의 얼굴을 보았던 신우영은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놀랄 일이었다.

“진짜 저게 랭킹 1위야?”

“너무 어린 거 아냐?”

헌터들 사이에서 그런 웅성거림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강예나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머리로는 저 어려 보이는 여자가 이제껏 해낸 일도, 실력도 알고 있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각에 약한 생물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보이는 시각적인 정보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 길드에서도 어린 축에 드는 신우영이 이십대 후반인데, 그보다도 대여섯 살 이상 어려 보이는 강예나의 모습은 이제껏 가지고 있었던 인상과는 정반대되는 것이기도 했다.

방랑하는 구도자의 공략 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야말로 백전연마의, 노련한 검사 같다는 것이었으니까.

“이거, 기대해도 되는 거 맞아? 어쩐지 시간 낭비 같은데.”

“가르칠 만한 실력은 있나? 가르치는 건 경험이 필요한 거라고.”

유난히 호전적인 사람들 몇몇은 일부러 강예나에게 들리도록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아무리 공략 영상이 있다고는 해도 방랑하는 구도자의 진정한 실력에 대해서는 아직 왈가왈부가 많은 데다, 또 영원 길드 소속인 이상 갑자기 나타난 랭킹 1위에 대한 감정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으니 저런 녀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저게!’

그래도 강예나의 마력 하나는 제대로 볼 기회가 있었던 신우영은 욱했지만, 그 전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러다 큰코다칠 텐데.”

돌아보니 인사를 나누어 본 적이 있었던 영원 길드의 선배 검사 중 하나였다.

선배는 신우영과 눈이 마주치자 까딱 눈인사를 해 보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들었냐?”

“어, 넵. 큰코다친다고…….”

“그래, 맞아. 나는 저번에 길드장님 따라 강원도 던전에 같이 들어갔었거든.”

“헉, 그럼 랭킹 1위 실력을 직접 보신 거예요?!”

약간 흥분해 목소리가 커지자 선배가 금방 쉿, 하는 소리를 내며 신우영을 가라앉혔다.

“그거야 보긴 봤지. 너도 보면 놀랄걸?”

“아니, 그러면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렇게 들으라면 들으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하지만 선배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왜?”

“네?”

“어차피 다들 직접 맞서 보면 알게 되어 있어. 괜히 내가 힘 뺄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어…….”

“그리고 너도 이제 말 그만 걸어라. 난 미리 마음의 준비 좀 하게.”

그렇게 말하며 어딘지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정비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 선배는 이번 훈련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신우영도 그렇긴 했다.

랭킹 1위의 특훈이라니.

‘뭐, 그래 봤자 별건 안 하겠지만.’

랭킹 1위 헌터가 자신들 같은 일반 헌터들을 상대로 뭐 얼마나 힘을 들이겠는가.

아마 자세를 봐주고 몇 마디 조언을 해 주는 정도가 아닐까, 신우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지만.

한편, 그런 호승심 어린 웅성거림이 들리지 않을 리도 없을 텐데, 그동안 강예나는 그저 연무장 한가운데 홀로 서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시선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메시지라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 인사라도 한번…….’

신우영은 약간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섰다.

아까 전에도 감사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 이상은 가까이 가지 마시죠?”

갑자기 신우영 앞에 끼어든 것은 이우연이었다.

가까이 훅 들어온 얼굴에 신우영은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생글생글 웃는 낯에 누가 침을 뱉을 수 있겠냐마는, 심지어 그 얼굴이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면 더욱 부담스러울 것이다.

“헉, 넵.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요, 지금 약간 예민한 상태라서. 뭐, 미리 맞고 싶다면 굳이 더 말리지는 않겠지만?”

저런 말을 듣고도 가까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미친놈이 아닐까.

그래도 세간의 상식 정도는 알고 있었던 신입 사원은 눈물을 머금고 물러났다.

“자, 다들 모였나?”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 것은 김성연 길드장이었다.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의 김성연은 자신의 길드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들었겠지만, 특별히 강예나 헌터가 검사 클래스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했네. 다시없을 기회이니만큼 모두 시간을 내서 훈련을 듣도록.”

“저, 길드장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그렇게 손을 들고 나선 것은 조금 전에 유난히 호전적으로 말했던 헌터였다.

“훈련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될지 알고 싶은데요.”

강예나를 쳐다보는 눈길에도 호승심이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을 만한 부분이 있다면 곧장 트집을 잡을 기세였다.

그런 헌터를 보며 김성연이 앗차, 하는 얼굴로 강예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걸 묻는 걸 깜박했군. 어떤 식으로 훈련을 할 건가? 자세나 스킬을 봐주는 식으로 할 건가?”

그 질문에 신우영을 비롯한 헌터들은 깜짝 놀랐다.

설마 강예나가 어떤 식으로 훈련을 할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단 말인가?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랭킹 1위, 방랑하는 구도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김성연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기도 했다.

어쨌든 영원 길드의 길드원들은 김성연의 사람들이니까.

그나마 사이가 좋다면 모를까, 둘 사이가 나쁜 거야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아닌가.

‘우리 길드장, 랭킹 1위랑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

‘그러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헌터들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 눈을 굴리고 있던 때.

스릉!

날카로운, 검을 뽑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그때까지만 해도 약간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일변했다.

순식간에 연무장은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만큼 긴장에 가득한 정적으로 가득 찼다.

신우영은 등골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소, 손이…….’

떨리고 있었다.

마치 강한 보스 몬스터 앞에서나 느낄 법한 압박감.

“훈련이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만히 서 있었던 강예나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도가 풍겨 나왔다.

아니, 그건 단순히 기도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건…… 살기였다.

“벼락치기를 하려면 평범한 훈련으로는 턱도 없거든.”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었는데 아무도 불쾌함이나 위화감조차 느끼지도 못했다.

몇 시간 전, 깨진 마력 구슬을 일부러 고쳐 주었을 때 보인 온화한 미소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신우영 앞에 있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 그 자체였다.

혹은 죽음.

한 걸음.

강예나가 헌터들을 향해 기세를 방출하며 걸음을 내디딘 순간 몇몇의 어깨가 움찔했다.

압박을 받아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강예나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뻔한 말이지만, 실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건 실전이다. 그것도 강한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실전.”

그거야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강예나의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마치 피식자가 포식자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들 나름 본인의 검에 자신이 있겠지. 하지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게 얼마나 통용될 거라 생각하지?”

냉정한 시선이 아까 유독 호승심을 내보이던 헌터들에게 닿았다.

“나보다 수십, 수백 배 강한 상대 앞으로 뛰어들 수 있나?”

“그야……!”

그 깔보는 것이 역력한 말에 욱한 헌터가 나서려 했지만, 그보다 강예나의 행동이 빨랐다.

휙!

모두가 강예나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뻔히 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윽!”

내뻗어진 검이 가른 날카로운 공기가 다음 순간 헌터의 목에 가 닿았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스르륵.

눈부시도록 하얗게 빛나는 검.

그 앞에 선 헌터의 와이셔츠 칼라가 베여 휘날렸다.

털썩!

주르륵, 하고 다리에 힘이 빠진 헌터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한 치만 더 깊었다면 그대로 목이 베였을 것이다.

그 한심하다면 한심한 모습을 아무도 비웃지 못했다.

영원 길드에 들어온 만큼 다들 상당한 경험과 실력을 가진 검사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괴물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만큼 방금 헌터들에게 휘둘러진 일 검은 강렬했다.

일부러 빠르게 휘두르지도 않은 검이다.

그런데 그저 순수한 기세로 압도당해서,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괴물 같은 검사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압도당할 정도로 강한 적과 싸울 때 처음으로 발을 떼는 건…… 힘든 일이지. 앞장서면 제일 먼저 죽을 거라는 게 느껴지니까.”

방금 그 목숨의 위협을 몸소 느낀 헌터들은 아무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런 헌터들에게 강예나의 말이 담담한 어조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살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처음에는 두렵겠지만 살아남으려면 결국 극복해야만 해.”

“…….”

“그러니까 극복할 수 있도록 내가 그 적이 되어 주지.”

……응?

강예나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새겨듣고 있던 신우영은 뜻밖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라고…….”

“한꺼번에 덤벼.”

강예나가 헌터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미리 말해 두겠지만, 갖고 있는 포션 재고만큼 뼈가 부러질 각오를 하도록.”

*   *   *

그리고 강예나는 자신의 말을 철저하게 지켰다.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되면 사람이 괴력을 발휘한다던가, 그런 건 흔히 있는 소리지만 그걸 실제 전투에 적용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보스 몬스터의 종류는 다양하고,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해결 방법도 기상천외할 때가 많다. 그러니만큼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도 머리는 냉정하게, 몸은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 헌터였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지금 눈앞에 떨어지는 검을 피하려면 어느 쪽으로 몸을 굴려야 하는지와 같은!

“윽!”

콰콰쾅!

휘둘러진 검풍만으로, 그렇지 않아도 박살이 나 있었던 연무장 바닥이 더욱 망가졌다.

바닥의 조각이 튀면서 깔려 있던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지만, 강예나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흐아아압…… 으억!”

빠각!

가려진 시야를 틈타 기습을 노리던 헌터 하나가, 뒤로 뻗어 온 팔꿈치에 맞아 어깨를 탈골당하며 고통에 눈을 까뒤집었다.

그리고 그 틈에 다시 배에 한 방.

뻐억!

헌터가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검사들의 무리에 한 명이 다시 추가되었다.

“한꺼번에 덤벼!”

김성연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흐아아압!”

그는 평소 연격을 연습하는 다른 헌터들과 함께 기세 좋게 강예나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그러나, 우측을 맡아 강예나를 견제하려던 헌터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졌다.

김성연이 정면으로 내려친 검을 흘려 버리며, 강예나가 슬쩍 발을 걸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이 울퉁불퉁하게 무너져 있던 지라, 돌부리에 걸린 헌터가 크게 몸을 휘청거리고.

빠각!

강예나가 발로 그를 세게 걷어 찼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저렇게 경쾌할 일인가.

심지어 그렇게 부상을 입었으면 슬슬 좀 봐줄 만도 한데, 강예나는 가차가 없었다.

호통이 울려 퍼졌다.

“뼈가 부러졌다고 그대로 포기하고 뒈질 건가?! 포션은 이럴 때 써먹어야지!”

‘의사가 들으면 혼낼 듯…….’

신우영은 널브러진 채 그렇게 생각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몸에는 이제 멀쩡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하루 정도는 기절하고 싶었다. 겸사겸사 내일은 출근도 하지 말고.

그러나…….

“일어나!”

호령하는 목소리에 신우영은 저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기세가 담긴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용케 일어난 것도 잠시, 신우영은 강예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으악!”

날아오는 검을 피해 바닥으로 몸을 던져 굴렀다.

무협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나려타곤, 그 자체였다.

그런 신우영에게 강예나가 서슴없이 소리쳤다.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서 움직임이 멈추면 안 돼. 그 순간 죽는다!”

그, 그거야 알고 있지만!

신우영은 엄청나게 서러워졌다. 그래도 피한 게 용한 거 아닌가?

‘대체 렙이 몇이야? 이건 무슨 S급, 아니, SS급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이런 무시무시한 살기에 위축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도 일단 피했으니까 어떻게 한 번이라도……!’

신우영이 이를 악물고 틈을 보던 그때, 옆에 쓰러져 있던 검사가 야유를 보냈다.

“이봐, 신입! 그래 봤자 훈련인데 너무 힘 빼는 거 아냐? 땅까지 구르고!”

“그, 그렇지만…….”

“아니, 잘한 거지.”

신우영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강예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막 야유했던 검사가 입을 다물었다.

“땅바닥을 굴러도 살아남아서 다음 일격을 노리는 게 훨씬 낫다. 죽으면 끝이라고.”

“그…… 그렇지만…… 이건 훈련이니까…… 커헉!”

콰쾅!

무어라 반박하려던 검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강예나가 어느새 뻗은 검에 맞아 저 밖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검면이기는 했지만 아마 상당한 타격이었을 터.

한 방에 덩치 큰 헌터 하나를 날려 버린 강예나는, 우아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검을 회수한 후 바닥에 뻗어 있는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혀 우아하지 않았다.

“살기에 익숙해지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스워? 실력이 모자라면 흙을 쥐고 상대방 눈에 흩뿌리기라도 해. 그러면 잠시라도 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우악스럽기까지 했다.

앳된 외모에서는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그간 저 강예나라는 사람이 겪어 온 피비린내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말.

“그렇게 해도 겨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건방지게 수단 방법을 가려?”

랭킹 1위께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말간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반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기력이 털린 채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니면 그냥 죽고 싶은 건가? 그럼 그대로 일어나지 마.”

“아, 아니요…….”

“아닙니다…….”

헌터들이 눈물을 삼키며 대답하며 포션을 또 입에 물고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건 결코 이 훈련 아닌 훈련이 힘들지 않거나, 혹은 강예나의 말에 깊이 공감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무서웠기 때문이다.

‘거, 거스르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안 일어나면 처맞을 것 같은데?’

그만큼 이 몇 시간 동안 강예나의 검이 가르친 두려움은 뼛속 깊이 박혀들었다.

호승심 따위는, 박살 난 연무장 바닥과 함께 몇 시간 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신우영도 콧물을 추스르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나, 퇴근 언제 해……?’

역시 직장은 지옥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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