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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2화 (233/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2화

조한율 : 그래서 다들 상태가 어때요?

나는 조한율의 메시지를 힐끗 본 다음 널브러진 검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들 탈진해서 거의 기절한 상태이긴 하지만.

강예나 : 생각보다는 고ㅇㄹ

“빈틈…… 커헉!”

빠각!

일단, 내가 중간중간 한 손으로 가상 키보드를 칠 때마다 빈틈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점이 대견했다.

덕분에 오타를 내고 말았지만, 뭐 저 정도는 알아서 해석하겠지.

조한율 : 고생하겠다고요?!

……이 녀석,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강예나 : 아니, 괜찮다고.

조한율 : 괜찮은 거 맞나요?

강예나 :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해.

조한율 : 그야 6시간 정도 지났는데 다들 예나 씨 옷자락도 못 스치고 있으니까?

“…….”

나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그건 아마도…… 한국 헌터들에게 가진 조한율의 기대가 너무 과했던 게 아닐까.

현재는 레벨 50대 언저리까지 능력치를 회복한 데다 내 경력이 얼만데. 이런 초보들도 상대 못 하면 간판 내리고 영업 종료해야 한다.

조한율 : 그래도 그렇지, 상처 하나 안 난 게 말이 돼요?!

조한율 : 아, 그렇다고 예나 씨가 상처 입길 바란 게 아니고요! 제 맘 알죠?!

모르겠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주변의 널브러진 헌터를 둘러보았다.

물론 나의 경우, 조한율과는 달리 처음부터 기대치를 아주 낮추고 있기는 했다.

조한율의 브리핑에 따르면 지금 연무장에 있는 검사 플레이어들은 레벨 20대 정도였으니, 타르토스 기준으로 말하자면 이제야 겨우 용병으로 활동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내 입장에서는 햇병아리나 다름없다, 이거다.

“흐아아압!”

카캉!

물론 김성연 길드장처럼 레벨 30대의 검사도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전투하는 장면을 꽤 본 터라 어느 정도 패턴이 보여서 상대하기 쉬웠다.

능력치 자체도 내가 보기엔 중닭 정도기도 하고.

그나저나 직접 두드려 패는 손맛이 아주 좋았다.

뻐억!

“으억!”

제대로 얻어맞은 김성연이 기어코 거품을 입에 물며 쓰러졌다.

아마 정양하는 데 오래 걸릴 듯했다.

‘아, 시원하다.’

나름 협력하게 되긴 했지만, 나는 쌓인 원한을 쉽게 잊지 않는 타입이다.

내 손에 쓰러진 김성연을 보며 헌터 몇 명이 절규했다.

“길드장니이이임!”

“길드장님의 원수!”

누가 보면 진짜 죽은 줄 알겠다.

그래도 김성연이 기절한 덕분인지 이를 악물고 죽어라 내게 덤벼 오는 헌터들을 다시 흠씬 두들겨 패면서, 나는 면밀히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역시 나쁘진 않아.’

뭐가 나쁘지 않느냐 하면, 이렇게 패도 패도 굴하지 않는 근성이.

내가 왜 뜬금없이 근성을 찾고 있느냐, 하면…….

경험상 사람들이 레벨 20대 즈음에 겪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거였다.

바로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지금까지도 던전에서 몬스터를 처치하며 레벨을 쌓아 올렸는데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 이 정도 레벨까지는 크게 위험하지 않은 던전만 클리어해도 달성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슬라임이나 오크 따위만 기계적으로 잡더라도 올릴 수 있는 레벨이라는 소리다.

그러나 이다음부터는 더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아야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렇기에…….

‘저 시기에 제일 많이 죽기도 하고.’

레벨 20쯤 되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약간 넘어선 정도의 체근민 수치를 갖게 된다.

즉, 쓸데없는 자신감이 붙을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헌터로서는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게 될 때가 가장 위험하다.

마치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감을 누리는 시기.

그러다 보니 본인의 실력보다 한참 윗선인 몬스터에게 도전하는 경우도 많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본인 생각과는 달리 막상 상급 몬스터를 앞에 두면 기세에 눌리기 마련인 데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두려움 때문에 본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타르토스의 규모 있는 길드에서는 일부러 고위 레벨 용병을 초청해서라도 신입 신고식을 거하게 치르곤 했다.

말이 좋아 신입 신고식이고, 실제로는 나처럼 압도적인 강자가 죽어라 쥐어 패는 거긴 하지만.

뭐, 덕분에 도시에 있을 때는 소소하게 용돈을 버는 재미가 쏠쏠했더랬다.

게다가 나는 여러모로 악명도 붙어 있었으니 더더욱 몸값도 비싸게 쳐줬었지.

거기다 더해 그렇게 한바탕 굴리고 나면 신입 용병들이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헛소리를 해 가며 술집으로 끌고 가고는 해서, 내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부수입까지 챙길 수 있는 의뢰였다.

흠, 생각해 보니 그리운데.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 왁자지껄하게 놀던 추억이 그리운 거겠지만…….

조한율 : 왜 답이 없어요?! 삐진 거 아니죠, 예나 씨?!

조한율 : 저는 강예나 님을 진짜진짜진짜×100 사랑하고요, 카드도 한 장 더 드릴 수 있고요, 차도 뽑아 드릴 수 있거든요? 오늘도 우리 집에 자러 와 주십사 하고…….

……이쪽도 다른 의미로 왁자지껄하긴 하군.

하여간에, 이렇게 훈련을 몇 번 받고 나면 아무리 콧대 높던 녀석들이라도 본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렇게 강한 살기를 경험하게 되면 이후 보스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위압감에 짓눌리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사실상 예방 주사를 맞는 셈이랄까.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생존 확률이 압도적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한국 헌터들도 딱 그런 시기였다.

한 번쯤 무참하게 당하는 경험이 가장 필요한 때.

퍼버버버버벅!

“끄어어어어어어…….”

털썩.

이렇게 깨져 봐야 자신의 실력을 돌아보고 역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반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반이야말로 앞으로 던전을 공략하며 살아남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테고.

그래서 벼락치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꺾이는 놈들이 있단 거지.’

용병왕인 알리시아의 말을 빌리자면, 오히려 그런 쭉정이는 이즈음에서 솎아 내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검사 인재 풀은 쭉정이라도 어떻게든 활용해야 하는 상황.

퍽!

“으아아악!”

뒤에서 달려드는 헌터 하나를 발로 차서 날리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그래도 다들 1, 2업 정도는 더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검사들은 쭉정이까진 아니었다.

까아앙!

“끼에엑!”

이렇게 오래 팼는데도 여전히 포션을 들이켜 가며 일어나 내 빈틈을 노리고 달려든다는 점을 보면 한국인의 특성인지 뭔지, 확실히 근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근성이야말로 헌터로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

어찌 됐든 성실함만큼 큰 재능은 없는 법.

즉, 정말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좀 더 굴리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뻐어어억!

“꾸억!

“길드장니이이임!”

시스템상 레벨 업을 하려면 몬스터를 잡아 업적치를 쌓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만, 이렇게 훈련으로 체근민 수치를 올리는 방법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지금 이 훈련은 레벨이나 능력치를 올리려는 게 아니라 헌터들의 위기 대처 능력을 길러 주려고 하는 거긴 했지만…… 이왕 시작한 거, 조금이라도 체근민 수치도 늘려 주면 좋지 않을까.

다음 던전에 들어가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겨우 일주일 정도다. 그러니 있는 시간은 최대한 유익하게 활용해야 했다.

“길드장님을 위하…… 꽤액!”

쿠당탕!

‘어쨌든 이 헌터들을 공략에 써먹어야 하니까.’

나와 조한율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이우연과 이선, 두 사람에게 각각 공략대를 꾸리게 해 던전 공략을 시킬 예정이기에, 동원 가능한 검사 플레이어들은 훈련을 최대한 시켜 두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그래도 오늘은 첫날이니까……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더 굴려 볼까.’

솔직히 내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굴리고 싶기는 했지만, 지금 탈진 상태인 헌터들을 보니 그랬다간 당장에라도 탈주할 기세였다.

그렇다고 사정을 봐주기도 뭐한 것이…… 던전 내에서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릴리스 같은 게 눈앞에 들이닥쳤는데, 거기서 내가 기절할 것 같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오히려 이렇게 기력이라곤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는 경험도 중요했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바닥에 뻗어 도통 움직이려 들지 않는 헌터들을 향해 검기를 날리려고 할 때…….

“잠깐만, 강예나.”

저 멀리서 홀로 커피나 홀짝이고 있던 이우연이 갑자기 쑥, 얼굴을 내밀며 끼어들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야?”

안 그래도 나는 일하는데 혼자 여유나 부리고 있던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참이었다.

그야 훈련을 빙자해 얄미운 놈을 몇 대 때리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우연을 훈련에 참가시키려니 연무장의 강도가 문제가 됐다.

나 혼자 헌터들을 굴리기만 해도 거의 초토화된 수준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우리 두 사람이 제대로 대련하게 되면 건물 자체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우연은 다른 검사들과 달리 순수 검 실력으로만 따져 보았을 때도 결코 얕볼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 팔의 부상도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하기도 했고.

그러니 지금처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상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우연은 남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동안 쉬고 있었던 건데…….

“왜 방해해? 이제야 뭘 좀 해 보려는 참인데.”

“지금 시간 좀 봐. 이미 저녁 6시가 넘었거든?”

저 자식은 이게 문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본론부터 말하란 말이다.

내가 말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그제야 이우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어 말했다.

“퇴근 시간이라고. 퇴근시키지 않으면 노동법 위반이야.”

“……노동법?”

나는 눈을 깜박였다.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마치 10년 만에 듣는 것처럼.

아니, 정말로 10년 만에 듣는 게 맞네. 10년간 타르토스에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지…….’

갑자기 현대 사회에 뚝 떨어진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 나를 향해 이우연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헌터라는 직업 특성상 교대 근무가 기본에, 한 달 40시간의 초과 근무는 고정 수당으로 급여 체계에 포함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응, 못 알아듣는 거 알겠어. 한마디로, 오늘은 이쯤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야.”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반쯤 흘려듣긴 했지만 그래도 의문이 생겨서였다.

그야 나도 직장인의 업무 시간을 건드리면 원한을 산다는 것 정도야 안다.

정부 측에서 내 담당을 맡고 있는 최민혁 씨만 해도 정확히 출퇴근 시간을 지켜 연락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데 그 노동법은 헌터들한테도 해당되는 거야?”

“당연하죠!”

그때 가만히 숨을 죽이고 널브러져 있던 헌터 중 하나가 갑자기 일어나 벼락처럼 외쳤다.

“헌터도 사람이라고요!”

“아니, 사람이 아니란 게 아니라…….”

나는 손사래를 쳤다.

“던전 들어가면 노동법이고 뭐고 없잖아.”

퇴근 시간이니 눈앞의 몬스터더러 꺼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헌터라는 직업의 특성상 본인 실력이 늘지 않으면 본인 손해인데 말이다.

‘애초에 헌터인데 퇴근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잘 안 가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는 거의 10년째 퇴근하지 못하고 일하는 중인 거 아닌가?

타르토스에 떨어진 후 하루 이상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일주일 넘게 던전 공략을 쉰 적도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였고, 지금도 조한율의 던전 세팅을 기다리고 있을 뿐 여건만 되면 바로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다.

지금도 이렇게 내 개인 시간을 쪼개어 헌터들을 단련시키고 있고.

어라…….

“…….”

“왜 그래? 강예나, 울어?”

“……안 울어…….”

그냥 내 상황이 실감되어 약간 슬퍼졌을 뿐이다.

나도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던전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친구들이랑 술이나 퍼마시고 시시한 농담이나 건네는 불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타르토스와 한국을 구해 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 알겠어.”

하지만 그건 결국 내 사정에 불과했다.

이제야 걷기 시작한 사람들을 내가 억지로 달리게 할 수는 없는 법. 말을 물가에 데려가도 결국 물을 마시는 건 말의 의지에 달린 일 아니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이걸로 마무리하지.”

“와아아아아아악!”

“드디어!”

“살아남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보세요? 그냥…… 아빠가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연무장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내가 그렇게 심하게 굴렸나?

나는 약간 반성하며 물었다.

“그런데 내일 출근 시간은 몇 시지?”

내 질문이 끝나자 환호성은 사라지고 그 즉시 죽음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 사이로 조한율의 메시지가 번쩍번쩍 빛났다.

조한율 : 아니, 다들 건방진 놈들이네!! 이게 다 지들 좋으라고 하는 일인데!! 그렇죠, 예나 씨?! 제가 한번 혼쭐을 낼깝쇼?!

아니, 나 같아도 일방적으로 처맞을 게 뻔한데 아침 9시부터 나오라고 하면 싫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퇴근이란 개념이 쏙 빠져 있군.’

운영자라는 책임을 짊어져서 그런가. 그래도 책임이고 뭐고 방치하고 싶을 것도 같은데 사실 얘도 대단하단 말이지.

“에이, 이것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

그때 이우연이 어깨에 팔을 턱하니 걸쳤다.

“현대 사회란 건 여러모로 복잡한 거라고. 세상엔 말야, 워라밸이란 단어가 있는데…….”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나는 이우연의 팔을 떨구어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나를 무슨 원시인 취급하는 거 같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10년 정도 떨어져 살았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토종 한국인이었단 말이다.

노동법이란 단어와 멀게 살아왔을 뿐인데 이런 취급이라니.

그나저나 이 녀석도 무슨 던전 공략 안 하면 죽을 것처럼 공략에 집착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이우연이 과장되게 눈썹을 늘어트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손대기 전의 당신 집 꼴을 생각하면 말이지…….”

“아, 집 하니까 말인데.”

조한율 : 그래서 오늘 다 같이 우리 집 오는 거 맞죠?

아까 전부터 메시지창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운영자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슬슬 답변을 해 주지 않으면 저 운영자가 미쳐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같이 집에 갈 거지? 어차피 내일도 네 차 타고 올 건데 그게 편하지 않겠어?”

“나야 괜찮은데…….”

이우연이 애매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소문은 안 괜찮을 것 같네…….”

“뭔 소리야?”

*   *   *

“아아아아악!”

조한율에게서 미리 받은 카드키를 이용해 펜트하우스로 올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괴이한 비명이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렇게 놀란 것이 무색하게도…….

“깜박 잠들었다!”

무지개 빛깔로 염색한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현관으로 뛰쳐나왔다.

물론, 조한율이었다.

꼴을 봐선 거의 몬스터에게 습격당한 수준이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평범하게 밤샘하다가 깜박 잠들어 버린 개발자의 모습이었다.

‘어쩐지 메시지 꼴이 평소보다도 이상하더니.’

피곤한 나머지 반쯤 사경을 헤매고 있는 듯했다.

이우연이 한숨을 쉬며 덩달아 뽑았던 검을 집어넣었다.

“놀라게 하지 마라. 진짜 베는 수가 있어.”

“닥쳐! 네가 내 심정을 알아?!”

하지만 조한율은 여전히 애통할 정도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내 계획이 엉망진창이 됐잖아!”

“계획?”

“네. 현관문부터 목욕물과 식사, 침대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맞이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바빠서 잠들었더니 준비된 게 없다고요!”

“상관없는데. 밥이야 시키면 되고, 나 아무 데서나 잘 자.”

애초에 조한율 집에 온 것도, 이선 헌터 경유로 나와 이우연 집 주위에 기자가 쫙 깔려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밝혀진 지 거의 일주일이 되어 내 신상이 거의 밝혀졌고, 이우연과의 친분도 나름 유명해져서 그렇게 된 듯했다.

그래서 공간이 충분하고 기자도 깔려 있지 않은 조한율의 펜트하우스가 오늘의 숙박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런고로 밥도 굳이 먹지 않아도 된다. 잠만 조용한 곳에서 잘 수 있으면 아무 상관도 없는데.

그러나 내가 뭐라고 하든 조한율은 여전히 넋을 놓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이대로 여기에 눌러앉게 하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그만…….”

“개소리 좀 그만해라.”

이우연이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조한율이 코웃음을 쳤다.

“왜? 쫄리냐?”

“개소리 그만하라고 했지.”

두 사람 사이에 찬바람이 쌩, 하니 불고 있었다.

나는 이우연과 조한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음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한율 집에서 이대로 묵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이 건물이 파괴되는 거 아냐?’

괜찮을까.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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