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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3화 (234/323)

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3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괜찮지 않았다.

“어휴.”

나는 홀로 펜트하우스에 딸린 발코니에 나와 찬바람을 쐬고 있었다.

다행히도 건물이 반파되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다가 조한율이 특별히 주문 제작을 한 것이라며 자랑하던 다이닝 탁자의 다리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 몰래 탁자 밑에서 서로 발등을 밟으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식탁에 놓여 있던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그때 두 사람의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넓은 세상에서 오로지 둘만이 비밀을 공유하고 서로 의지해야 했을 텐데, 저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하니 이우연과 조한율, 둘 다 아주 질색을 했지만.

“사이좋게 지내라고? 내가 머리에 총 맞았어?”

“그냥 혼자 세상을 구하는 게 낫죠.”

내가 중간에 끼어 있을 때는 그나마 대화도 하고 밥도 같이 먹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면 서로 대화도 거의 없고 으르렁대기만 하니 사이가 나쁘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둘 다 성격이 좋다고는 못 해도, 나한테 그러듯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당한 사교성은 발휘할 수 있는 타입이니만큼 그건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한국에서 2번째로 강한 플레이어와 운영자.

누가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조합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역시 그 바이러스인가.’

조한율은 이우연을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입에 습관처럼 붙은 것인지, 내 앞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다.

바이러스란 세균처럼 감염병을 일으키면서도 세균과는 달리 혼자서 살 수 없는 물질을 뜻한다.

그리고 조한율의 클래스가 프로그래머라는 걸 고려해 보자면 악성 코드라는 뜻으로 쓰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공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우연이 바이러스처럼 무언가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조한율이 운영자로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한국 서버의 안위다.

즉 조한율이 이우연을 싫어하는 이유는 나처럼 한국 서버에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 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무래도 자연스럽겠지.

‘이우연은 대체 뭘까…….’

사실 이우연의 정체가 궁금했던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그놈에게는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많았다.

겨우 5년차 서버에서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온 송곳처럼 홀로 뛰어난 실력을 쌓은 것도 그렇고, 딱히 랭킹에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던전 공략에 미친 것처럼 집착하는 점, 또 본인이 말했듯 이상하게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자주 휘말려든다는 것도 그랬다.

게다가 내게 스쳐 지나가듯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자신 또한 ‘오류 메시지’를 자주 본다고.

그때는 조한율의 존재를 몰랐기에 한국 서버는 타르토스와 달리 아직 불안정한가,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조한율이라는 멀쩡한 운영자가 있는데, 이우연이 왜 자주 오류 메시지를 본다는 말인가?

게다가 B루트의 강예나 또한 이우연을 보더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고, 심지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알려 주려고도 했었다.

그만큼 중요한 정보라는 뜻일 것이다.

문제는, 그게 뭐냐는 건데…….

‘아, 머리 아파.’

나는 차가운 난간에 머리를 기댔다.

솔직히 나 혼자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혼자서 근거도 없이 이것저것 추측해 볼 필요 없이, 이우연 본인에게 물어보면 끝날 일이니까.

이렇게 쉬운 방법을 두고 고민 중인 건, 그러려면 나 또한 이쪽 사정을 털어놔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게 공평하니까.

운명의 씨앗을 원활하게 구하고 싶으면 도와 달라는 얘기를 해야만 하니, 언젠가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긴 한데…….

“역시 입이 안 떨어진단 말이야…….”

뭐 하나 쉽게 굴러가는 일이 없군.

그렇지만 고민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적어도 다음 운명의 씨앗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우연뿐 아니라 이선, 양태원 이 세 사람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 달라고 말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다음 운명의 씨앗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

‘내 사정을 말하지 않고 그냥 도와 달라고 해도 도와줄 것 같긴 하지만…….’

이건 조한율도 이야기한 사항이었다.

정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에게 전부 털어놓는 게 아니라, 이번 던전에서 알게 된 서버 통합 정보와 함께 한국 헌터들의 전체적인 레벨 향상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공개하고 던전을 공략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운명의 씨앗 문제를 제외하고도 레벨 업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 세 사람이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는 명목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그렇기는 했다.

다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나와 조한율 생각대로 순조롭게 던전 공략이 진행된다면 나는 곧 한국을 영영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내 일에 그 사람들을 이용하기만 하는 꼴이 되지 않나. 그것도 ‘멸혼의 불꽃’ 스킬 대상자가 갱신될 만큼 친해진 사람들을…….

‘망할 시스템 자식.’

신뢰니 믿음이니, 그런 수치화하기 어려운 감정을 스킬이라는 명목으로 확실하게 보여 주다니.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여러모로 편했을 텐데.

여기에 미련을 남겨 둘 것 없이 그대로 타르토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욕심이야.’

그러나 어느새 욕심이 생겼다.

생면부지의 타인과 알게 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함께하고…… 그렇게 어느새 손에 쥐어 버린 인연들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게 싫다.

더 이상은 단 한 명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배가 불렀지.

“……어휴.”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나답지도 않게 이게 무슨 땅파기냐.

말할 거면 손절을 각오하고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숨길 거면 그냥 숨기지, 뭘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냥 지금이라도 확 말할까……?”

“뭘?”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안 오나 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이우연이 서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어딜 봐도 조한율의 집 냉장고에서 꺼낸 듯한 맥주가 한 캔.

누군가 등 뒤로 다가오는 기척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우연의 등장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게다가 조한율의 펜트하우스에서 묵는 이상 누구인지도 뻔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러네.”

여러모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그러자 이우연이 피식 웃었다.

“잠자리가 바뀐 것 정도로 잠을 못 잘 정도로 예민한 성격은 아니지 않던가?”

“그렇지, 맨땅에 나뭇잎만 대충 깔려 있어도 잘 자.”

“그건 좀 심한 거 아니야? 하기야 당신만큼 둔한 게 살기에는 더 편할 것 같긴 해.”

틀린 말은 아닌데 저 자식이 말하니까 묘하게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노려보는 것을 느꼈는지 이우연이 면피하듯 맥주 캔을 내게 건넸다. 받아 들고 흔들어 보니 미지근한 데다, 심지어 반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새 거는 없어?”

“어, 맥주는 하나밖에 없던데. 조한율은 위스키 파라서.”

“나도 위스키가 좋은데.”

“뭐야. 그럼 위스키 한 병 꺼내 올까? 내가 꺼내면 지…… 난리 치겠지만, 당신이 꺼내면 좋아라 조공할걸.”

“조공은 무슨. 됐어. 내일 아침도 일찍 나가야 하니까.”

술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내일도 한국 헌터들을 단련시켜야 하는 만큼 너무 풀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조한율의 준비가 끝나면 언제든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기도 하고.

일전의 던전 난도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다. 한번 풀어진 긴장의 끈을 다시 잡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아쉬운 대로 남은 맥주를 목에 한꺼번에 털어 넣은 다음, 발코니 밖으로 펼쳐진 풍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정부에게서 받은 내 집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한강 바로 옆 높은 건물의 펜트하우스라 그런가, 이쪽의 경치가 훨씬 좋았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한강 표면에 반사되어 별만큼이나 밝게 반짝이고 있었다.

타르토스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광경.

‘한국의 밤은 이랬었지.’

타르토스에 있을 때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광경이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자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의 내가 타르토스의 달과 별빛만이 존재하는 밤을 그리워하듯, 만일 타르토스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는 한국의 불야성이 그리워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하는 것이 많아지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이별을 겪어야만 하니까.

‘으…… 취했나?’

겨우 맥주 반 캔에 감상적인 기분이 들다니.

콰드득!

나는 순식간에 비어 버린 맥주 캔을 작게 구긴 후 이우연에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안 자고 나왔어?”

“나? 나는 당신이 못 자고 발코니에서 서성거리고 있길래.”

그러니까 해석해 보자면, 내가 잠들지 않고 바깥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신경 쓰여서 잠에 들지 못했다, 이거로군.

“……너 진짜 예민하다.”

나도 검사이니만큼 기척에 예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된 장소에서 잠에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수면은 체력에 직결되는 사항이기도 하니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잠들곤 했다.

그러자 이우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도 생각할 거리가 조금 있었거든. 가령 당신이 저번에 한 이야기라든가.”

“저번에 한 이야기?”

“서버 통합 건 말이야.”

아, 그거로군.

운명의 씨앗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향후 5년 내 서버 통합이 될지도 모른다는 정보 자체는 퇴원하기 전날 이미 양태원을 포함해 두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걸 근거 삼아 영원 길드의 검사들을 한번 보게 해 달라고 이우연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우연은 물론이고 양태원 또한 이 정보를 상당히 빨리 납득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

“저도요. 어쩐지…… 청룡 님이 하려던 이야기가 이거였나?”

김성연이 그랬듯 이 두 사람도 멸망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정보를 듣게 되면 심란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전 일단 친구들이랑 꿈의 나라에 다녀오겠어여! 언제 세상이 멸망할지 모르니까!”

태원이야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저런 철없는 소리를 하며 놀이동산에나 갔지만 이우연은 달랐다.

내게 맥주를 빼앗긴 이우연이 발코니의 난간에 등을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아……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앞으로 여기서 더 힘들어진다니. 정말 싫다…….”

그건 확실히 공감이 가는 사항이지만, 나는 이우연에게 충고했다.

“너 그러다 뒤로 떨어진다.”

난간에 등을 걸친 모습이 무척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그냥 낮은 난간이라 성인이라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인 데다, 이우연은 성인 남성의 평균보다도 키가 훨씬 큰 편이다. 약간만 균형을 잃으면 그대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러자 이우연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저어 보였다.

“난 떨어져도 날 수 있거든?”

“……자랑이냐?”

물론 날개를 달고 있는 건 자랑할 거리기는 했다. 나도 님페의 바람 아이템으로 어느 정도 높이 뛰어오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 부럽다.

“자랑할 거면 어디서 얻었는지 좀 알려 줘. 나도 갖고 싶으니까.”

혹시 저 날개가 던전 공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면 며칠 정도는 따로 투자할 의향이 있었다.

공중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라니, 이 얼마나 유용한가.

뭐, 스킬이라면 어차피 멸혼의 불꽃에 잡아먹힐 테니 포기해야 할 테지만.

“응, 스킬이야. 랭킹 2위 보상으로 받은.”

“……네 랭킹 보상이 이 스킬이었다고?”

스킬이라는 것에 실망하기는 했지만, 이어진 랭킹 보상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랭킹 보상이라니, 처음 시스템이 랭킹을 매기면서 주었던 아이템 말인가?

당시 나는 ‘용사를 기리는 망토’를 받았는데 이우연은 저 날개가 달린 스킬을 보상으로 받았다는 거지.

‘스킬도 보상으로 나오는 거였군.’

내가 놀라워하자 이우연은 오히려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몰랐어? 당신이라면 당연히 예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랭킹이 매겨지기 전에 내가 날아다닌다는 소리, 들어 본 적 있어?”

“없…… 지.”

나는 어정쩡하게 말을 끝맺었다.

그야 랭킹이 매겨지기 전 나는 한국에 없었으니, 소식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들었을 리 없다.

내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이우연은 무언가 관찰하는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며 어이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또, 또 그러네.”

“뭐, 뭐가?”

“이걸 말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 고민하는 거 다 보여.”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내 표정이 그렇게 잘 읽힌단 말이야?

심지어, 거기에 결정타까지 날아왔다.

“있잖아. 이렇게 빙빙 돌려서 간만 보는 거…… 우리 사이에 이제 새삼스럽지 않아?”

이우연이 두 손을 모아 기지개를 쭉 폈다.

“나는 이제 당신의 그렇고 그런 스킬 대상자잖아.”

“그렇고 그렇다니…… 말을 왜 그렇게 해?”

걔도 멸혼의 불꽃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다.

“오해받을 말은 본인이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면서 뭘 그래? 그래서, 뭐야? 잠도 못 자고 고민하던 거, 나한테 털어놓을 준비는 됐어?

“…….”

와, 이 자식은 진짜…… 뭐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거야?

내가 어이없어 입을 뻐끔대는 와중에 이우연은 승리를 확신한 것처럼 건방진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고민하는 거 엄청 티 났거든. 서버 통합 건 이야기한 날. 그날도 나한테 뭔가 이야기하려다가 그만둔 거지?”

실은 정말로 그랬다.

사실은 태원이도 있는 김에 두 사람에게 내 사정을 전부 이야기해 주려다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결국 말하지 못하고, 당장 필요한 정보인 서버 통합 건만 전달했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정보라 거기에 정신이 팔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설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파악하고 있었다니…….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을 외쳐야 할 지경이었다.

이우연이 앵무새처럼 위풍당당하게 가슴을 쭉 내밀었다.

“진짜 무당보다 내가 더 무당 같지 않아? 양태원 그 자식은 놀이공원에나 놀러 갔는데.”

“……너는 귀신 같은 거 못 보잖아.”

“그딴 걸 볼 필요가 있나? 하여간에, 말해 봐. 아니면 나 먼저 말할까?

“뭐?”

“그래야 피차간에 속이 시원할 거 아니야.”

이우연의 입꼬리가 둥글게 올라갔다.

“서로 다 까고 가자고.”

그 말에, 언젠가 이우연이 한 말이 겹쳐졌다.

“그 의심은 지극히 타당해. 그리고 나도 당신한테 설명할 생각 없고. 그래서 이제껏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피차 숨기는 게 있으니까.”

그때는…… 서로 간의 비밀을 알아 봤자 피곤하기만 하니까, 우리는 서로 거리를 지키며 주위를 뱅뱅 맴돌기만 했었다.

그렇게 끝나는 것이 분명 편했을 테다.

기껏해야 조금 서운할 뿐, 그래도 얼마든지 잊고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헤어질 순간이 오면 아마도…… 작은 생채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피차간에.

‘……그래도.’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이 순간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 마음은 여전히 타르토스에 기울어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을 떠났을 때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장 결론 내지 못할 일을 두고 지금부터 고민하는 건 역시 나랑은 맞지 않는다.

괜히 절교라도 당할까 봐 고민만 하다가, 이렇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는데도 모른 척 이 순간을 넘기면 그거야말로 분명히 후회로 남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후회할 거라면, 차라리 지금 이 순간에라도 충실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막 입을 열려는데, 문득 이우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야.”

이우연이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박였다.

“왜?”

“너는 지금 낯간지럽지도 않냐?”

하지만 그건 그거고, 뭔가 닭살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간지럽다고.

내가 팔을 문지르자 이우연이 어이없어했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이래? 누가 보면 고백이라도 한 줄?”

“아, 시끄러워. 그딴 건 생각도 하지 마라.”

“흐음…… 그건 일단 두고 보자고. 그럼 내 얘기부터 할까? 뭐, 어디부터 들을래?”

나는 헛기침을 하며 이 이상한 분위기를 잠재웠다.

어쨌든, 드디어 이우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물어볼 것은 정해져 있었다.

“네가 왜 바이러스야?”

“아, 조한율이 붙인 별명 말이지.”

내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이우연이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게, 나는 한국이 아니라 다른 외부 서버 출신이라는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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