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1위 용사가 세상을 지키는 방법 234화
외부 서버라고?
“응, 외부 서버. 아, 외국이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고 외계인은 아니…… 악! 뭐 하는 거야?”
“아니…….”
혹시 몰라 이우연의 볼을 꼬집어 보았는데 아픈 모양이다.
음, 내가 꿈을 꾸는 건 아닌 것 같고.
외부 서버, 그것도 외국이 아니라 다른 차원을 뜻한다는 말이 이우연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차원.
그게 뭘 뜻하는지 이 한국에서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설마 이 자식…… 나 같은 케이스인가?’
만일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굴렀다면 한국 서버에서도 특출하게 실력이 뛰어났던 이유가 설명되기는 했다.
“다른 차원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야?”
혹시 나처럼 타르토스에 다녀온 건 아니겠지?
그런데, 긴장한 것에 비해 돌아온 대답은 영 김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걸 나도 모르겠다는 말이지.”
“뭐어?”
이우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분명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에서 자라 왔거든. 근데 시스템이 생겨나니까 갑자기 짜잔, 당신은 외부 서버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입니다! 라고 하는 거야.”
진짜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
이우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전혀 웃을 일이 아니었다.
나는 망설이며 물었다.
“그럼 너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갔다 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응, 내 기억으로는 그런 적이 전~ 혀 없어. 정말 황당하지 않아?”
장난스러운 말투로 설명이 이어졌다.
“아, 바이러스가 뭔지는 알지? 아무리 당신이 한국 물정에 무지하다고 해도 말이야.”
“…….”
그건 내가 한국 사정을 잘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고 지금까지 묻어 두었다는 걸 암시하는 말이었다.
하여간에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녀석이다.
“세균이든 악성 코드든 같은 점이 있지. 그건 바로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침입한다는 거야. 그리고 한국 서버 입장에서는…….”
이우연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파지직!
그를 감싸고 있는 주위 풍경이 일렁였다.
노이즈와는 또 다른, 보는 사람의 속을 울렁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이우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야……!”
“난 박멸해야 할 악성 세균이라는 거지.”
짙은 밤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순간적으로 흐려진 이우연이 미소 지어 보였다.
스스로를 악성 세균 따위로 칭하면서도, 이우연의 표정에는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하는 듯한 무심함이 엿보일 뿐.
하지만 이우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결코 무심하게 넘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건 세계에서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다는 건데…….’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다.
- 경고! 마계가 플레이어, 방랑하는 구도자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마계에 진입할 경우, 나는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다.
인간의 선의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격하하는 세계.
그런데, 이 한국이라는 서버가 이우연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라면……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당연한 일조차 힘겨울 것이다.
솔직히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남은 건지 신기할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각성한 후 곧장 조한율을 만났고, 조한율이 꼼수를 가르쳐 줬다는 거야. 바로 이렇게…….”
딱!
이우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스파크가 튀면서 허공에서 불꽃이 스르륵 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뿌옇게 흐려졌던 이우연의 모습이 선명하게 고정되었다.
“대항할 수 있도록.”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그건……?”
“시스템이 나를 서버에서 제거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이 서버에 도움이 되는 존재다…… 라고 증명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증명하는데?”
“업적치로.”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은 난간에 팔을 대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난 죽어.”
덤덤하게 한강을 보는 시선에서는 어딘가 염증이 느껴졌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뭔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가끔씩 보이던 저 녀석의 신경질적인 모습.
물론 성격 자체가 어느 정도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묘하게 언제나 날이 서 있다고 느끼곤 했는데…….
‘항상 시스템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태였던 건가.’
“아니, 죽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던가? 조한율도 이건 장담 못 한다고 하더라고. 게다가 서버 전체적으로 던전 공략 실패율이 올라가서 시스템이 불안정해져도 위험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우연의 얼굴은 냉정했지만, 듣는 나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야 모종의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런 일을 겪고 있을 줄이야.
이상할 정도로 던전 공략에 집착한다고는 생각했고, 그래서 농담처럼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죽는 병’ 에라도 걸렸냐고 물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니.
‘이게 무슨…….’
타르토스에서 어지간히 굴러 왔지만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 황당하고 억울한 사안이지 않나.
본인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시스템에게 바이러스로 인식되었고, 그 탓에 주기적으로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죽게 생기다니.
물론 이야기의 황당함과는 별개로 이 사연을 듣자 이제껏 이우연이 해 온 행동 중 납득이 가는 대목도 있긴 했다.
가령 돌발성 던전에 자주 휘말린다든가, 오류 메시지를 많이 본다든가 하는.
한국 서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이우연이라는 녀석 자체를 한국 서버가 쫓아내야 하는 일종의 이물질로 보고 있기에 생겨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격에도 맞지 않는데 영원 길드에 굳이 들어가 있는 점도 그랬다.
이우연 말대로라면 한국 서버 전체의 던전 공략 진행률 또한 관리해야 하는 만큼, 아무리 김성연이 짜증 나더라도 영원 길드를 써먹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영원 길드가 던전 공략과 인재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축이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이해가 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였나.”
“응?”
“나 때문에 랭킹 2위로 밀려난 거,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었잖아.”
지금이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기억이지만, 랭킹이 발표되었던 당시 인터넷으로 나름 여론 조사 같은 것을 했기에 기억하고 있다.
모나미 성격에 자신이 랭킹 2위로 밀려난 것을 분명 기꺼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평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막상 만나게 되었을 때 이우연은 밀려난 랭킹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오히려 내 존재를 환영하는 눈치였다.
그때는 따로 무슨 속셈이 있어서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아, 그거.”
이우연이 픽 하고 웃었다.
“그래, 나야 같이 던전을 공략해 줄 사람이 있으면 땡큐거든.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순위가 무슨 상관이야? 써먹을 수 있는 게 생기면 뭐든 써먹어야지.”
그래서 처음부터 나한테 호의적인 거였군.
이우연 입장에서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던전 자동 공략 아이템 같은 거 아니었을까.
만나자마자 강남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했고, 그다음에도 던전이 생기는 족족 해결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잠깐만. 그럼 강남 돌발성 던브도……?”
이우연과 처음 만났던 강남의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
혹시 그때의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는 이우연이 원인이었던 건가?
하지만 이우연은 고개를 기울였다.
“음, 그건 모르겠어. 보통 나 혼자 말려들고 끝나는 규모로만 터지는데 그때는 엄청나게 크게 벌어졌잖아. 그래서 몬스터를 한꺼번에 몰살하면 안 된다는 규칙도 몰랐던 거고.”
“그건…… 그랬지.”
당시 이우연이 뭣도 모르고 1차 때 몬스터를 몰살시킨 덕에 난이도가 급상승했었더랬다.
즉, 이우연이 대규모의 돌발성 던브를 처음 겪었다는 건 사실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처럼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경험도 없다는 증거도 되는군.’
만일 다른 서버에서 나만큼 굴렀더라면 그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우연이 지금 하는 말은 전부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지.
‘뭐,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진실이라는 건 알겠다만.’
이제 이우연에게 그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나중에 조한율 추측을 들어 보니 그때 당신과 내가 한곳에 있었던 게 원인이 아닐까, 하던데.”
이우연의 말을 들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당시 나는 시스템 안정화가 되기 전이었고, 이우연은 애초에 시스템에서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있으니…… 시스템 입장에서 보면 이레귤러가 두 개나 겹친 것이 아닌가.
일종의 오류가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또 당시 던전 브레이크가 끝나는 시점에 내가 목격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우연만이 원인이라고 딱 짚기도 힘들었다.
만일 그랬더라면 타르토스가 멸망하는 모습 따위를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혹시 그때도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개입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런 타이밍에?
‘……모르겠네.’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개입했다고 하기엔, 내가 타르토스를 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가설과 충돌한단 말이지.
만일 타르토스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굳이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번에 던전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정보를 더 캐내 봐야겠어.’
저번에도 알버트를 몬스터화 하면서까지 개입한 자다. 이번에도 방해해 올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잡아다 모가지를 비틀어서라도 무슨 생각인지 토해 내게 만드는 수밖에.
우드득!
잡고 있던 난간에 힘이 들어갔다. 쇠로 된 난간이 손가락 모양대로 구겨졌다.
‘……어쨌든, 이우연 이 녀석도 엄청나게 고생했겠어.’
여하튼, 사연을 전부 듣고 나니 이우연의 행동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굳이 나를 파고들지 않은 것, 답지 않게 성질까지 죽여 가며 호감을 표시한 것, 지극정성으로 날 보필한 것까지…….
내 정체가 뭐든 간에 한국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 도움만 된다면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을 테니.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시스템이 너를 바이러스로 인식하다니, 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나처럼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시스템이 나타난 순간 갑자기 바이러스로 인식이 되었다니.
아무리 시스템이 불가해한 것이라지만 아무런 원인도 없이 이런 오류가 일어날 수 있나?
“조한율은 뭐래?”
코드를 뜯어 볼 줄 아는 프로그래머인 조한율이라면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우연은 아주 듣기 싫은 것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코드를 뜯어 봐도 나는 외부 서버에서 온 게 맞다면서, 아직도 내가 자기한테 거짓말하는 줄 알아. 그냥 솔직히 털어놓으라던데.”
“…….”
“그런데 나도 미치겠다고. 진짜 난 모르는 일인데 그걸 어떻게 해?”
드디어, 이 두 사람 사이가 왜 나쁜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둘 다 잘못한 건 없지만 상황이 영…… 꼬였다.
운영자인 조한율 입장에서는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데, 이우연 입장에서는 뭘 말해 주고 싶어도 말할 게 없는 상황.
서로 억울해서 미칠 지경일 것이다.
만일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각자의 입장 차이를 이해해 볼 수도 있겠지만…… 까딱하다간 목숨이 날아갈 것 아닌가. 이런 긴장 상태에서 남의 사정을 마음 넓게 이해해 줄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둘 다 이해가 간다…….’
그래도 조한율은 이우연이라는 오류를 제거하는 대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고…… 이우연 또한 어쨌든 한국 서버를 지탱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갈아 가며 5년을 보냈으니, 얼굴만 마주치면 악담이 오갈 수밖에.
‘하지만 정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아무리 시스템이 불가해한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지만…… 아무런 원인도 없이 이우연 같은 존재가 생겨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되면 B루트의 내가 전하려던 정보도 이우연이 외부 서버에서 온 플레이어라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우연의 말과는 별개로 외부에서 온 것만큼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
혹은, 다른 세계에 다녀왔지만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뭐, 이걸로 내 이야기는 끝이야. 와, 속 시원하다.”
그렇게 말하며 이우연은 기지개를 켰다.
그냥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속이 후련해 보였다.
“솔직히 당신 반응이 어떨지 걱정했는데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네? 다행이다.”
“내 반응을 걱정했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니 이우연이 고개를 팩 돌렸다.
“아니, 그렇잖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돌발성 던전이 자꾸 생기고, 한국 서버에 부담을 준다는데 그야말로 바이러스, 그 자체잖아? 경원시해도 어쩔 수 없지.”
말에 어딘가 가시가 돋아 있다.
사실만을 말하는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지만 마음에 어딘가 응어리가 져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 5년간 내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부정당해 왔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본인 말대로 남에게 함부로 이야기할 만한 사연도 아니었다. 아무리 본인 탓이 아니라지만 어쨌든 서버 오류의 원인이 되었으니.
유일하게 사정을 아는 건 조한율뿐인데, 조한율은 이우연을 살려 두는 것만으로도 원치 않은 추가 노동을 해야 하니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기는 힘들었을 테고.
“정 귀찮으면 날 슥삭! 해 버릴 수도 있…… 악!”
“그럴 일 없어.”
나는 가볍게 이우연의 옆구리를 쥐어박았다.
뭐, 저렇게 5년이나 버텼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성격은 좀 파탄 난 것 같다만.
“네 잘못으로 일어난 일도 아니잖아. 바이러스는 무슨.”
게다가 그런 걸로 이우연이 제거되어야 한다면, 나야말로 한국 국민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이우연은 그나마 본인만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에 휘말리고 끝인 듯한데, 나는 한국 던전 전체의 난도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게다가 얼마 전에는 나 때문에 타르토스의 운영자가 전국에 오류를 흩뿌렸고.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내 옆얼굴에 시선이 와 닿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재촉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신 이야기는 언제 해 줄 건데?”
“……내 이야기는 엄청나게 긴데.”
“아, 출근 전까지 시간 많아. 여차하면 하루 휴가 내!”
“그럴 순 없지.”
다음 던전에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소중하게 써야 한다.
나는 잠시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원 길드 헌터들의 출근 시간은 9시.
빨리 끝내면 5시간은 잘 수 있겠군.
“대충 요점만 말할 테니 잘 들어라.”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내 이야기가 끝난 뒤, 이우연이 가장 처음 한 말은 이거였다.
“와, 어이없다. 하긴 누가 봐도 용산데. 내가 이걸 왜 몰랐지?”
허망하게까지 들리는 어조였다.
아니, 용사라는 클래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으니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봐도 용사는 무슨. 난 당장 검사 클래스로 바뀌어도 불만 없어.”
“그럴 리가. 당신 클래스가 바뀌느니 내 클래스가 천사로 바뀌는 게 빠르지 않을까? 그런 클래스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으으, 오랜 이야기를 듣느라 지친 이우연이 기지개를 켰다. 뼈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역시 내일, 아니, 오늘은 휴가 내자…… 나 피곤해서 일 못 하겠어…….”
어느새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의 열을 받아 미지근해진 난간에 볼을 대고 이우연이 칭얼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는 쉬어라.”
피곤할 법도 했다.
내 배경 설명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진 것이다.
사실 중요한 부분은 이우연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었기에 내 과거는 다른 세계에서 10년을 보냈고, 그동안 한국에서는 혼수 상태였으며, 사실상 10년 내내 던전을 깬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만 말하고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듣는 이우연의 입장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다가 타르토스로 넘어가게 되었냐, 10년간 그 세계에서는 뭘 했길래 용사가 된 건지, 또 아이템은 어떻게 계승이 되었느냐, 이런 식으로 질문이 끊이지 않아 대답해 주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진짜 1시간도 자지 못하고 영원 길드로 가야 할 판이었다.
이우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만 쉬면 뭐해? 지금 제일 바쁜 건 당신 같은데. 한국도 구하고, 저쪽 세계도 구하시겠다?”
“그건…….”
“……그래도, 뭐. 당신이 왜 이제껏 이야기하는 걸 망설였는지 알겠어.”
아침 햇살에 흘러가는 한강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한강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우연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서 말했다.
“당신의 돌아갈 장소라는 건 저쪽 세계란 거구나. 그리고 나한테 그 타르토스란 곳을 구하는 걸 도와 달라는 거고?”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이 다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이우연이 뺨을 긁적였다.
“숨기기 싫으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그래라.”
시선이 똑바로 마주쳤다.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눈빛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했다.
“진짜 서운하다.”
“…….”
엄청나게 직구였다.